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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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리내 작가
[글 = 송미리내 작가] 동시대 미술에서 공예나 생활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실'이 주류 현대미술의 핵심 매체로 부상하고 있다. 앤 해밀턴(Ann Hamilton),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 등 3인의 거장은 섬유를 단순한 재료가 아닌 몸과 기억, 노동과 공동체를 번역하는 새로운 조형 언어로 탈바꿈시켰다.
가늘고 약한 실, 관계와 기억의 거대한 망이 되다
실 한 가닥은 가늘고 약하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한 가닥의 실이 다른 실과 만나 수없이 교차하고 얽히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구조가 탄생한다. 천이 되고, 그물이 되며, 때로는 거대한 하나의 공간을 창조한다.
이는 인간의 관계와도 깊이 닮아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만나고, 개인의 경험이 공동체의 경험과 겹치며 보이지 않는 관계의 망이 형성된다. 최근 동시대 미술에서 실과 천, 직조와 바느질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들은 섬유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을 물질적인 형태로 옮기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번역'이라는 핵심 언어가 자리한다.
앤 해밀턴, 직물이 선이 되고 이미지가 될 때
미국 작가 앤 해밀턴은 섬유를 회화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직물의 구조와 촉각적 성질을 작업 안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특히 '날실과 씨실(warp & weft)' 연작은 섬유와 회화 사이의 경계를 흥미롭게 허문다.
작가는 실크 오간자를 철제 브러시로 문질러 직물의 규칙적인 구조를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리고, 그 흔적을 판화판으로 옮겨 직물의 결을 이미지로 변환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작품 설명에 따르면 "직물은 단순히 판화를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가 드로잉 도구가 된다." 즉, 해밀턴에게 천은 무언가를 그리기 위한 바탕이 아니라, 천의 구조 자체가 선이 되고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회화가 천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천이 회화를 다시 쓰기 시작하며 섬유의 물성이 이미지의 언어로 번역된다.
사진: 앤 헤밀턴(Ann Hamilton). 날실 및 위트 2007, dated 2008 Moma 발췌
세실리아 비쿠냐, 고대 '키푸'로 잊힌 기억을 기록하다
칠레 출신 작가 세실리아 비쿠냐에게 실은 훨씬 더 오래된 기억과 연결된다. 그 중심에는 색깔 있는 실과 매듭을 이용해 정보를 기록했던 고대 안데스의 체계인 '키푸(Quipu)'가 있다. 비쿠냐는 이 오래된 기록 방식을 현대미술로 호출해 실과 매듭을 하나의 언어처럼 구사한다.
그의 작품 '키푸 비세라(Quipu Viscera)'는 염색한 양털을 길게 늘어뜨리고 매듭을 연결해 유기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은 "이 작품은 고대 안데스의 의사소통 체계였던 키푸와 연결되며, 식민지화 이후 금지된 지식의 역사까지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비쿠냐의 작업에서 직조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잊힌 지식과 현재를 다시 연결하는 행위다. 관람자가 거대한 실의 공간 사이를 지나며 스스로 하나의 '매듭'이 되는 참여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테이트 모던에 설치된 작품과 세실리아 비쿠냐 (출처: Portrait of Cecilia Vicuña in front of Quipu Womb 2017 at Tate Modern, 2022 c. Cecilia Vicuña. Photo Lucy Dawkins)
아네트 메사제, 일상의 바느질이 삶의 경험을 번역하다.
프랑스 작가 아네트 메사제는 거창한 재료 대신 천, 실, 바느질, 옷, 인형 등 일상적인 물질을 미술의 언어로 끌어들였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LACMA)은 메사제가 자수와 천, 안전핀 등을 사용해 "여성의 삶과 평범한 것들"을 이야기해 왔다고 소개한다. 1973년 작 '나의 바느질(My Needlework)'은 책이라는 형식 안에 일상적 재료를 배치해 여성의 노동을 미술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오랜 기간 가정과 생활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바느질과 자수를 미술의 중심으로 가져옴으로써, 메사제는 미술과 비미술의 위계를 흔든다. 그의 손을 거친 바느질은 일상의 경험을 물질로 옮기는 과정, 즉 삶의 경험을 바느질로 ‘번역’하는 행위가 된다.
사진: 아네트 메사제 2008 국립현대 미술관 개인전 도록에서 발췌
관계의 문법이 된 섬유, 번역회화의 새로운 지평
이처럼 세 작가는 모두 섬유를 다루지만 번역하는 대상은 각기 다르다. 해밀턴이 직물을 이미지로, 비쿠냐가 기억을 실로 번역했다면, 메사제는 삶의 경험을 바느질로 번역했다. 실이 교차하고 묶이며 다시 연결되는 과정은 인간의 관계망과 일치한다.
결국 '번역회화'란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것을 넘어, 기억이 물질이 되고 감각이 선이 되며 개인의 경험이 조형 언어로 바뀌는 거대한 과정을 의미한다. 빠르게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에, 손과 물질과 시간이 개입하는 '느린 번역'의 가능성을 실이 다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송미리내 번역회화(사진: 송미리내 작가)
다음 편에서는 ‘시간을 그리는 사람들’을 통해 반복과 축적, 흔적과 행위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회화로 번역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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