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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39년 10월 25일에 벌어진 독일 제국의 황제 해군과 제3인터내셔널 연합해군이 충돌한 대해전. 유틀란트 해전 이후로 유일한, 그리고 양측 도합 300여척이 넘는 함정이 동원된 포격전으로서는 세계 해전사상 최대 규모의 함대 결전이다.
[배경]
제1차 세계대전과는 반대로 독일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미텔유로파 진영이 국력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수비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소모전 국면으로 유도하면 무리한 작전 없이도 간단히 승리할 수 있었으나, 양면전쟁의 위험성에 대한 교훈을 얻은 독일은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차르가 복위한 러시아는 표면상 입헌군주정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노골적인 침략정책으로 동유럽의 우방을 위협하고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식민지들의 독립 여론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국 내전에서 노조연맹의 승리가 확실시 되어감에 따라 미국 공업생산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는 독일 정부는 미국이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기 전에 종전조약에 서명하고자 제국 군부를 재촉했다.
9월 19일, 제국 참모본부는 제3인터내셔널의 종주국인 브리튼연합의 본토를 침공한다는 바다사자 작전을 수립하여, 대한제국 독립 전쟁과 스페인 내전에서 대활약한 롬멜 군단을 영국 본토 침공의 첨병으로 차출하고 10월 9일에 플랑드르에 진주하게 한 뒤 곧바로 상륙전 준비에 돌입시켰다. 다음날에는 황제 해군의 최신예 군함들로 구성된 계몽함대가 헤르만 뵘 상급대장의 지휘 하에 빌헬름스하펜의 해군기지에서 출격하여 상륙부대를 호위하기 위해 도착했다.
하지만 10월 3일에 이미 바다사자 작전의 정보를 첩보를 통해 입수한 인터내셔널 연합군 측은 앉아서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인터내셔널 측의 해군 전력은 개전 일주일 만에 빈약한 노르웨이 해군이 괴멸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네덜란드가 독일의 전격전 앞에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할 당시 장병의 숙련도만큼은 유럽 최고라고 자부하는 덴 헬데르 모항의 주력함대만은 아무런 손실도 없이 영국 본토로 후퇴하는 데에 성공하는 등 혼란스러운 전황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전력을 잔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브리튼 연합의 해군은 전간기 동안 군비확충에 심혈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적어도 그 양적인 측면에서만큼은 과거 대함대의 위용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한 상태였다.
10월 15일, 인터내셔널 최고중앙지휘사령부는 대규모 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함대를 에든버러에 결집시켜 연합해군을 편성하고 젊은 지장 안토니 폴레트 퍽슬리 중장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앞서 10월 11일에는 내전을 마치고 미텔유로파에 합류했던 스페인 왕국의 왕립 해군이 지브롤터 해협에서 이탈리아사회주의공화국 해군의 지중해 함대가 에든버러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전력으로 나섰으나 내전을 거치면서 해군을 재정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선조의 무적함대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간단히 돌파 당했다.
[양측 전력]
독일 제국 황제 해군
•지휘 체계
◦황제해군최고사령관 겸 대양함대 사령장관: 루트비히 폰 로이터 제국원수
◦대양함대 사령차관: 카를 되니츠 상급대장
◦계몽함대 사령관: 헤르만 뵘 상급대장
◦해역사령부 사령관: 에리히 레더 원수
◦육군 제3군단 군단장: 에르빈 롬멜 원수
◦발트공국연합 육군항공분견대: 지휘관 미상
•병력 구성
◦항공모함 4척
◦전함 6척
◦순양전함 6척
◦중순양함 8척
◦경순양함 8척
◦구축함 16척
◦잠수함 16척
◦함상전투기 232기
◦함상뇌격기 232기
◦근접항공지원기 8기(발트공국연합 육군항공분견대) - 겐트 공군기지에서 이륙
◦육군 병력: 208,800명
◦해역사령부 예하 북해해안방위대: 규모 미상
제3인터내셔널 연합해군
•지휘 체계
◦연합해군 주력함대 사령관: 안토니 폴레트 퍽슬리 대장
◦연합해군 주력함대 참모장: 프레더릭 존 워커 준장
◾제1함대: 브리튼연합 ‘대함대’
◾제2함대: 네덜란드 함대
◾제3함대: 이탈리아사회주의공화국 함대
◾제4함대: 노르웨이 잔존 함대
◾제5함대: 브리튼연합 해역방위전대
◾제6함대: 독립기동 순양함대
◦프랑스코뮌 국가해군 사령관: 마르셀 데아
•병력 구성
◦항공모함 2척
◦전함 16척
◦순양전함 8척
◦중순양함 3척
◦경순양함 34척
◦구축함 123척
◦잠수함 36척
◦함상전투기: 50기
◦함상뇌격기: 40기
[전개]
연합해군 사령관 퍽슬리 대장은 해전에서의 항공기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지만, 간신히 규모 측면의 구색을 갖추는 정도에 성공한 수준인 브리튼 대함대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양으로든 질로든 대함대 이상의 전력이 없는 연합해군이 이미 수척의 정규 항공모함을 운용 중이고 최신예 항공모함들을 추가로 건조 중인 황제 해군을 상대로 대규모 항공편대의 지원을 받아가며 해전을 벌이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였다. 연합공군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도 어려웠다. 공군의 가치를 우습게 여긴 조합주의 정치인들 덕분에 변변찮은 예산만 편성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전쟁 준비가 부실했던 인터내셔널 연합공군은 루프트바페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할 줄로만 알았으나, 에이스 파일럿들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대활약 덕분에 프랑스 상공에서 힘겹게나마 비등한 싸움을 벌여주고 있다는 고마운 사실을 연합해군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공군에 원군을 요청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오히려 연합해군의 함재기들이 항공전에 차출되어 프랑스의 공군기지들에 배치된 것이 현실이었고, 그나마 있는 6척의 항공모함들 중 4척이 함재기가 없어서 사실상 방치 상태가 되고 말았다.
퍽슬리는 대신에 함대의 수적 우위를 활용하여 학익진 꼴의 전열을 구축하고 포격전으로 난타하여 독일 함대를 도버해협에서 격퇴한다는 기조를 수립했다. 거기에 더해 황제 해군의 항공모함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가능한 한 야간전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기술로는 야간에 함재기를 이착륙시키는 것은 무척 위험했기 때문에 기피되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또한 해안요새의 화력과 대공망의 엄호를 받고자 다가올 전투의 기본원칙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진격해오는 적을 상대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함대를 도버해협 맞은편의 노르망디에 배치하여 유사시 황제 해군의 측면을 노리도록 하였다.
한편, 제국군은 바다사자 작전을 25일 정오에 결행하기로 하고 상륙부대를 호위할 계몽함대 외에 연합해군과 맞붙을 함대로 황제 해군의 주력인 대양함대를 비밀리에 킬 군항에서 출격시켜 25일 새벽에 함부르크 앞바다로 위치시켰다. 대양함대의 공식적인 지휘관은 사령장관인 루트비히 폰 로이터 제국원수였으나 그는 황제 해군의 상징적인 존재이자 원로로서 해군최고사령부의 집무실을 떠나지도 않았고 전선에서 현장지휘를 맡은 것은 사령차관인 카를 되니츠 상급대장이었다.
제국군이 25일 정오에 바다사자 작전을 결행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연합해군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그런데 10시 15분경 첩보와는 달리 계몽함대가 프랑스 북부를 따라 서진하며 해안에 포격을 가하였다. 노르망디 해안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의 지휘관은 마르셀 데아였는데, 그는 제대로 된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 출신이었다. 정치장교에게 군사적 교양이 조금 있다고 하여 함대사령관으로 기용하는 현실은 프랑스 코뮌 군수뇌부의 한심한 인재풀 상태를 방증하는 것이었지만, 보다 큰 문제는 그가 군사적으로 공격을 선호하는 매파이자 정치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성향이 강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었다. 데아는 처음에는 방침에 따라 교전을 회피하고 신중하게 대응했으나, 정찰을 통해 적 함대에 항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공명심에 눈이 멀어 전 함대를 이끌고 교전에 돌입했다(10시 40분).
연합해군 본진은 프랑스 함대의 전투개시 소식을 접하고 전장으로 출격하기에 앞서 황제 해군의 도발이 너무나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방으로 정찰기를 3차례나 보냈는데, 마지막 회차의 정찰기 중 1기와 연락이 끊기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바 해당 정찰기는 대양함대에서 출격한 함재기에게 격추되었다. 그렇지만 퍽슬리는 연락이 두절된 정찰기를 통해 황제 해군이 연합해군을 꾀어내어 두들기기 위해 대양함대를 진격시켰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이 상태에서 연합해군 본진이 노르망디로 향하는 것은 범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격이었으나,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프랑스 함대를 버리면 그들은 다가오는 황제 해군의 주력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퍽슬리는 꾀를 내어 순양함대를 유틀란트로 진격시켜서 연합해군 본대가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는 것처럼 위장한 뒤 진짜 연합해군 본대는 노르망디에서 프랑스 함대를 구원하여 플리머스로 후퇴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이는 나름대로 기책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황제 해군은 개전 초 침몰한 노르웨이 해군의 함정에서 암호표를 입수하여 인터내셔널 측의 무선 통신을 거의 모두 감청해낼 수 있었다.
초전에 연합해군의 강력한 공격에 전황은 잠시 인터내셔널 측에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제 해군은 연합해군의 동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나 괴멸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좀 더 깊숙이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고 대양함대는 때를 기다리며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에는 미끼 역할이 된 계몽함대가 동서 양방으로부터 가해지는 공격을 견뎌내야 했는데, 기함인 H-44급 전함 ‘빌헬름 대제’를 비롯하여 동시대 최강의 함선들로 구성된 함대였지만 피해를 감수하면서 밀어붙이는 프랑스 함대의 무모한 돌격이 황제 해군에 위기감을 줬고 계몽함대의 전열이 무너지면서 구축함 5척을 순식간에 잃고 만다. 그런데 이로 인해 황제 해군을 과소평가한 데아가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고 승기를 잡았다고 오판해서는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 함대를 최대 속도로 돌격시켜 연합해군 본대와 연계하여 십자포화망을 짜고자 시도했다.
데아의 악수로 프랑스 함대의 전열은 매우 얇아졌고 프랑스 함대의 좌익을 강행돌파한 계몽함대가 반전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대양함대 함재기들이 연합해군 본대의 후방에서 들이닥치면서 인터내셔널 연합해군은 황제 해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꼴이 되었다. 이대로는 함재기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고 판단한 퍽슬리는 함재기들의 뇌격과 폭격을 어지럽히기 위해 함대전을 지근거리에서 벌이는 난전 국면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연합해군은 태반이 잔존함대를 어설프게 결집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조직력이 형편없었고 따라서 제각각 움직이며 수적 우위를 누리지 못했다. 또한 수적으로는 연합해군이 3배 규모였지만, 황제 해군 군함들은 최소한 한급수 위의 연합해군 함급에 상응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합해군의 함선들이 차례로 격침되는 와중에, 그나마 유틀란트로 진격했다가 황제 해군 해역사령부의 격한 환영인사를 받고 허탕 쳤다는 것을 파악한 연합해군 순양함대가 부랴부랴 전장에 도착하여 사투 끝에 포위망을 허무는 데에 성공했다.
25일 오후, 퍽슬리는 참패를 인정하고 전 함대에 총퇴각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15시경에 퍽슬리가 직접 지휘하는 브리튼 대함대의 머리 위에도 황제 해군의 함재기들이 활개치고 있었고 곧이어 집중적인 뇌격에 의해 기함인 라이온급 전함 ‘테메레르’가 대파되면서 연합해군은 완전히 와해된다. 이때 이미 연합해군의 손실률은 50%가 넘어가고 있었다.
16시 10분, 참모장으로서 차석 지휘권을 지니고 있던 프레더릭 존 워커 준장은 지휘권을 인수하는데 성공하고 연합해군을 3개 방향(플리머스, 브레스트, 에든버러)으로 나누어 철수시킨다. 이렇게 함대를 나눈 이유는 '하나가 쫓기는 동안 다른 둘은 어찌어찌 탈출할 수 있겠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이미 보조함들은 전멸하여 없었고, 주력함의 태반이 중파 이상의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16시 24분, 연합해군의 움직임을 간파한 되니츠는 플리머스 방면으로 철수하는 함대로 목표를 좁혀 이를 격멸하고자 했다. 이쪽으로 향한 함선 중에는 워커의 기함인 넬슨급 전함 ‘로드니’가 있었다.
16시 55분, 넬슨급 특유의 나쁜 조타성 때문에 함대 후미에 위치하고 있던 로드니는 황제 해군에 따라잡혔고, 모든 주포가 정면으로 배치된 독특한 설계 탓에 반격마저 여의치가 않자 워커는 자신의 기함을 방패막이로 삼아 부하들을 철수시키고자 함선을 반전시켜 저항했다. 17시 14분, 주포의 포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격렬히 저항하던 로드니는 포격 8발, 어뢰 4발을 맞고 격침당한다. 그러나 그 사이 연합해군은 필사적으로 도주하여 남은 함선을 살리는 데에 성공한다. 이로서 노르망디 전역이 끝난다.
[결과]
↑사진 속 인물은 각각 카를 되니츠(좌)와 마르셀 데아(우)
제3인터내셔널 진영 몰락의 시발점.
본격적인 항공모함 시대의 개막을 알린 해전사의 이정표.
인터내셔널 연합군이 있는 대로 끌어 모은 연합해군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사실상 와해되었고, 미텔유로파를 상대로 가지던 해군에서의 양적 우위가 무너졌으며, 이탈리아 반도 및 영국 본토 일부 해역을 제외한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이었으나, 패전조약이 강요한 제한을 받아서 많이 약화된 상태에서 조합주의혁명 이후 왕실이 캐나다로 망명할 때 해군 엘리트들이 그나마 멀쩡했던 군함 중 다수를 빼돌려서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함대운용, 건함기술 등의 노하우가 그대로 정체해버렸다. 이 명맥의 끊김이 제2차 세계대전을 위해 다시 해군을 일으킬 때 큰 장애가 되어서 영국의 신조함들은 사실상 새로 만든 고물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전반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장갑과 화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각종 기계장비들이 덧붙여졌지만, 기본적인 설계사상의 동향이 훨씬 더 많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으로 얻은 장점은 묻히고 단점이 심각해졌다. 브리튼연합 정부는 과거의 영광에 빠져서 해군의 질적 저하를 외면한 채 양적 확장에만 치중했고, 결과적으로 물량 확보에는 성공했지만, 물량으로 보완할 수 없을 정도로 스펙이 형편없었다.
반면 독일 해군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유틀란트에서 영국 해군과 맞짱을 떠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데다가, 그 무렵부터 이미 수가 아니라 질로써 승부한다는 전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승전 이후에는 첨단 무기들의 실전배치를 과감하게 시도했고, 이런 노력의 보상으로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직전에는 H-44급 같은 논외의 물건들을 진수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괄목할만한 변화는 항공모함의 적극적인 활용이었다. 당시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항공모함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해군사상의 근간을 뒤흔든 변화에 앞장서있던 것은 독일 제국과 불안한 동침 관계에 있었던 일본 제국이었다. 일본과의 전면전도 상정하고 있던 독일은 정규 항공모함만 8척이나 편성되어있었던 일본 기동함대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과론적인 평가지만, 양측이 충돌하게 되면 승패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퍽슬리를 위해 변명을 해주자면, 그는 승부수를 띄워볼 준비가 될 때까지는 함대를 사리려고 했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전황을 끌고 가기에는 여러 환경적 여건이 너무나 안 좋았다. 퍽슬리 본인은 기함이 대파되었을 때 기적처럼 탈출하였지만 포로로 붙잡혀서 종전을 맞이하였다. 정작 패배의 원흉인 데아는 기함인 알자스급 전함 '알자스'가 고질적인 포탄적재량 부족으로 인하여 서전 직후 일찌감치 후방에 위치했던 덕분에 아비규환을 맛보지 않고 철퇴할 수 있었으나, 그의 군경력과 정치인생은 노르망디 앞바다에서 전사한 거나 다름 없었다.
격침된 연합해군 함선의 절대다수가 구식 보조함이었고 신조 주력함들은 상태야 어찌되었든 생환하였기 때문에 악재가 겹친 처지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한척 한척이 아쉬운 연합해군 입장에서 이는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터내셔널 진영의 뒤떨어지는 기술 때문에 연합해군 함정의 평균 수리기간은 비슷한 손상을 입은 황제 해군 함정의 평균 수리기간의 2배가 넘어가고, 중파 이상의 손상을 입어서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한 군함이 대부분이었다. 그리하여 황제 해군은 킬 군항으로 개선한 당일에 해전 이전의 전력 거의 전부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연합해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참한 처지가 되었다.
당초 구성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연합해군은 해산되어 각국의 근해 해역방위에 집중하게 된다. 퍽슬리의 뒤를 이어 대함대의 사령관이 노먼 더글러스 홀브룩 소장은 황제 해군 수상함대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고 주력함들을 군항 안에서 숨죽인 채 얌전히 있게 하는 대신에 잠수함을 이용한 통상파괴전에 집중하게 된다.
[영향 및 후일담]
라인 전선에서는 독일 육군이 질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과거의 작전교범을 개선하지 못한 제국군은 질적 우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군을 중심으로 한 인터내셔널 연합육군은 지난 대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사기충천한 상태였고 과감하게 새로운 작전교범들을 받아들여 군의 체질개선에 성공하였고 수적으로는 제국군에 미세하게 앞서는 준비를 하는 데에 성공한 상태였다. 예방전쟁 차원에서 제국이 먼저 시작한 전쟁이었지만, 예상보다 완강한 프랑스의 저항에 전국이 교착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한 제국 정부는 군부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제국 참모본부가 짜낸 묘안은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 따라 약한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 제3인터내셔설은 개전 이후 정치․군사 수뇌부를 모두 런던에 집중시켰다. 다시 말해 제국군은, 연합군의 전선사령부는 프랑스에 있었지만 런던의 수뇌부에 세부적인 작전까지 결재를 받고 있다는 점을 노려서 머리와 몸통을 끊어놓고자 했다. 노르망디 해전에서 제국군이 대승을 거두면서 런던의 최고중앙지휘사령부는 말라죽게 되었다. 지휘체계가 마비된 프랑스가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인터내셔설 연합군 잔당은 영국 본토 밖으로 미텔유로파를 향해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하게 되었고, 독일 제국은 그해 겨울 러시아의 쿠반 침공으로 시작된 동부 전쟁에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브리튼 해군의 통상파괴작전으로 인하여 바닷길을 통한 식민지로부터의 물자조달에 다소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오스만 제국을 지나는 독일의 황립철도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전쟁수행에 큰 지장은 없었다. 러시아와의 전쟁 및 식민지의 잇단 궐기로 인하여 제국군이 영국 본토에 대한 상륙작전을 전개할 여유가 없게 되었지만, 사지가 절단된 제3인터내셔널 측은 무의미한 소모를 계속하면서 종전조약을 강요받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종전 후 제국군 총사령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바다사자 작전은 사실 속임수로, 영국 본토에 대한 상륙 시도는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고, 안전한 곳에서 숨죽이고 있는 인터내셔널 진영의 주력함대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아 일대 회전을 벌여 완전히 괴멸시키는 것을 처음부터 목표로 했다고 한다. 즉, 플랑드르 지방으로 독일 육군 정예가 집결하여 상륙전 준비를 한 것은 전부 미끼였다. 심지어 바다사자 작전에 관한 참모본부의 작전회의 내용을 인터내셔널 측에 유출시킨 것이 참모본부 자신이었다.
그러나 인터내셔널 최고중앙지휘사령부가 첩보를 신중하게 분석하여 바다사자 작전이 미끼라는 것을 간파하여 주력함대의 온존을 꾀했더라고 가정한다면 그때는 바다사자 작전이 실제로 실행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롬멜 군단이 대한제국 독립 전쟁과 스페인 내전에서 올린 대전공을 생각컨대, 독일 육군이 일단 영국 본토 상륙에 성공하기만 하면 브리튼 육군이 런던을 일주일은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인터내셔널 연합군 입장에서는 설령 바다사자 작전이 거짓 정보라고 해도 제국군이 의도하는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걸린 격이라고 봐야하겠다. 실제로 독일 육군은 점령한 네덜란드에서 다가올 상륙전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사자 작전이 단순히 미끼였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
토요일 오전에 쇠염통4 카이저라이히 모드 하다가 해전 결과 보고 갑자기 삘 받아서 썼습니다.
첫댓글 필력이 장난아니네요 ㄷㄷ
문장의 표현은 읽었던 대하소설들에서 가져온 게 많습니다.
크흐 이런거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오기입니다. 고맙습니다.
카이저라이히에서 니콜라이 2세 복위 후에 헌법제정 하는 포커스가 있는데 거기에 너무 집중하다보니까 입헌군주정인데 공화정인 걸로 착각해버렸네요.
@공돌이콩 노르웨이 공산화는 이 모드에서도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이번 게임에서는 조합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인터내셔널에 가입했더군요.
북쪽에서 노르웨이 함대가 내려올 때까지는 공산화 된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 독립 전쟁 이벤트는 여러모로 승산도 희박하고 독일발 대공황 이벤트 때문에 사실 신경 끄는 게 내정관리에 있어서 안정적인데...
국뽕과 롬멜뽕 맞고 무리해서 전차군단을 자원병 형식으로 한반도로 보냈더니 얼마 후에 일본이 속국 형식으로 독립승인하더라고요.
와 필력 대단하시네요 ㄷㄷㄷㄷ
전쟁사나 전술,밀리터리 분야에 문외한 수준인 저로선 이런 묘사가 부럽네요...전투 묘사는 어째 어려워서리...
뭐 현역 부대라도 가봤으면 대충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와 필력 대단하십니다 ㅎㄷㄷ
훌륭!
이런글 좋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시작 부분부터 연대기로 만들어보심이..!
대박이네요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