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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는 빙그레 웃는(莞) 섬(島)이란 뜻이다. 인심, 풍광, 경치가 좋아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청해진 옛터로 알려진 장도의 성벽을 따라 완도일대의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나그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
21세기 새로운 여행트렌드이다. 모래시계로 정동진이 유명해졌고, 한류열풍 붐을 일으킨 가을동화,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춘천, 남이섬, 용평리조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최근 드라마의 추세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다. 주제는 바다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를 배경으로 위풍당당 기개를 떨친 맹장들의 이야기이다. 장보고(?~846년)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해신’이 그 중심에 있다.
꾸준하게 시청률 정상권을 고수하면서 전남 완도의 드라마 세트장은 연일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장보고가 실제로 활동한 주무대 청해진이 완도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또한 관광객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매체의 힘이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정작 청해진 유적지현장을 둘러보는 관광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땅끝 해남과 다리로 이어지면서 새 땅끝이 된 완도. 차량으로 달릴 수 있는 국토의 남단까지 와서 학창시절 국사시간 귀가 닳도록 들었던 청해진을 지척에 두고 세트장만 구경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청해진의 옛터로 알려진 장도는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본섬과 180m가량 떨어진 작은 섬이다. 완도대교를 지나 13번국도를 따라 군의면 불목리와 영풍리를 지나면 만난다.
장도와 인접한 장좌리일대에서도 장보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목없는 장군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한다. 사실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장보고가 숙적인 염장에게 살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전설이다.
장보고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법화사지터도 발굴됐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 조그만 섬이 청해진이었다는 것이 사실일까.
섬에 들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발길에 채이는 것마다 소중하고 의미있는 유적들이다.
장도 여행은 의외로 쉽다. 썰물때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진 자연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먼저 섬 오른편으로 향한다. 바닷속에 파묻혀있는 목책을 보기 위해서이다.
섬둘레 330m에 걸쳐 1,000여 개의 통나무가 50㎝간격으로 박혀있다. 섬을 따라 깊이 1.8m가량 도랑을 판 뒤 목책을 묻었다. 이 곳이 청해진터였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실 이전까지 청해진은 기록에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지명이었다. 천년 세월을 바다 속에 묻혀있던 목책이 1959년 태풍 사라호때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일대가 청해진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목책은 방어용 교량 혹은 부두시설로 사용됐고, 밀물때 들어온 바닷물은 자연 해자(垓子)역할을 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이다.
나무의 연대는 서기 840년 전후. 이 역시 장보고가 활약한 시대와 일치한다. 자연재해로 적지 않은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터였지만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 드러난 셈이다. 당시에는 섬 전체를 따라 수많은 목책이 발견됐으나, 용도를 모르던 주민들이 땔감으로 베어 사용했다고 하니,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섬 입구에 들면 발굴공사가 한창이다. 당시 군사들이 마셨던 우물도 최근 발견됐다. 우물을 지나면 섬을 둘러싼 성곽의 흔적이 조금씩 나타난다. 30m안팎의 언덕을 따라 내성과 외성 2개의 토성이 조성돼있었다고 한다. 현재 350m가량의 토성이 복구됐다.
망루에 오르면 섬둘레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으로 고금도가, 남으로는 7월 준공을 앞둔 완도-신지도를 잇는 다리가 펼쳐진다. 섬의 서편으로는 완도 본섬과, 북으로는 해남군과 강진군 사이에 위치한 강진만의 전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주위에 크고 작은 섬이 많아 웬만한 적군이 넘볼 수 없는 천연요새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좁은 섬이지만 천하를 호령할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장쾌함을 가진 섬이다.
토성을 따라 섬을 한바퀴 도는 시간은 20분 남짓이지만 다도해의 풍광에 빠져 걷다 보면 발걸음이 느려진다. 막 몽우리를 틔우는 동백꽃은 제법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바람도 겨울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남도의 봄이 시작되고 있다.
완도=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완도] '해신' 촬영장
신라방… 군영… 물길따라 천년전으로 역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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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불목리에 들어선 드라마 '해신'세트장. 천년전 중국의 어느 고장으로 시간이동을 한 착각을 일으킨다. |
제작비만 150억여원으로 국내 최대규모인데다, 최수종, 채시라, 송일국, 수애 등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트장 역시 허름한 임시건물이 아니라 영구건물이다. 촬영이 끝나도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해신의 촬영지는 3곳. 섬 서쪽의 소쇄포, 화홍포와 동쪽의 불목리이다. 소쇄포는 모감주나무 군락지와 어촌민속전시관 사이에 위치한 조그마한 포구이다. 300m 남짓한 아담한 포구이지만 백사장의 모래질이 빼어나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있다. 포구 앞으로 흑일도, 백일도, 동화도 등 섬이 이어지고 멀리 해남 땅끝마을을 볼 수 있어 전망이 뛰어나다.
이 곳에는 장보고가 활약하던 청해진의 모습이 재현돼있다. 장보고의 청년시절을 촬영했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해전장면을 찍고 있다. 장보고가 신라로 돌아와 본격적인 명성을 떨치는 청해진도 이 곳이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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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드러난 원형목책. 섬둘레에 빼곡히 박혀있었으나 상당부분 훼손돼 자세히 봐야 찾을 수 있다. |
불목리세트장은 원불교청소년수련원에 조성돼있다. 청해진 유적지인 장도와 가깝다. 장보고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이 배경이다. 중국땅이지만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신라방을 재현했다.
이 곳에도 본영, 객사, 민가, 중국거리가 조성돼있고, 설평상단과 이도형상단의 무역 물품과 상인숙소도 마련돼있다. 당나라 풍의 저자거리 사이로 대규모 수로가 만들어졌고, 물길을 따라 배가 떠다니고 있어 어렵지 않게 1,200년전 중국으로 공간이동할 수 있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관광객들도 배를 탈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 있다. 화홍포항은 일반인의 입장이 아직 불가능하다.
완도대교를 지나자 마자 왼쪽편 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불목리세트장과 장도에 도착할 수 있다. 완도대교를 건너 오른쪽 길을 택하면 소쇄포로 가는 길이다. 세트장입구에 임시주차장이 마련돼있다.
주차공간이 넓지 않아 주말이면 어느 정도의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촬영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드라마가 끝나는 6월부터는 연중 개방하며, 입장료도 받을 예정이다.
완도=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완도 가는 길] 가볼만한 곳
부안 '이순신 촬영장'·보길도엔 조선의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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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군 궁항에 조성된 불멸의 이순신세트장. |
호남고속도로의 종점인 광주에서는 2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힘든 여정이다. 대안을 생각한다. 도중에 관광지 한 두곳을 들른다.
긴 여행의 지루함을 없앨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완도여행의 주목적은 역사의 현장을 맛보기 위함이다. 비슷한 주제로 계획을 짜본다. 우선 ‘해신’과 함께 인기리에 방영중인 ‘불멸의 이순신’세트장이 있는 전북 부안을 거친다. 완도를 구경한 뒤 돌아가는 길에는 고산 윤선도의 생가가 있는 해남의 ‘녹우당’을 방문한다.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를 나와 30번국도를 타고 전북 부안을 거쳐 변산반도로 들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착각을 일으킨다. 성천에는 왜군진지, 적벽강인근 죽막에는 명나라진지, 격포에는 거북선이 들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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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의 생가 녹우당전경. |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성된 세트장들이 500m~2㎞간격으로 펼쳐져 있어 이 곳들만 둘러보는 데도 한나절은 족히 잡아야 한다. 해안선을 끼고 펼쳐지는 최고의 드라이브코스. 인근에 채석강, 변산해수욕장, 적벽강 등 볼거리도 널려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완도의 남단섬 보길도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시조시인 고산 윤선도의 섬으로 이름나있다. 인조임금이 병자호란때 삼전도에서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속세를 떠나 제주로 향하던 윤선도가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매료, 해남과 이 곳을 오가며 여생을 지낸 곳이다.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하지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녹우당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녹우당(사적 167호)은 해남의 갑부로 알려진 해남 윤씨의 종가집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 윤효정이 건축한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건물 앞에 은행나무와 마을 뒷산에 우거진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으로 둘러싸인 고즈늑한 옛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 형태를 갖춘 전형적인 조선중기 상류주택의 모습이다. 사랑채가 들어선 배경이 재미있다. 이 집은 원래 효종임금이 스승인 윤선도를 위해 경기 수원에 지어준 것.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이 기울자, 목재를 모두 해체, 배에 싣고 해남으로 가져와 이 곳에 다시 지었다. 임금이 하사한 집을 내버려 두고 고향으로 내려올 수는 없었던 그의 사모곡도 대단하지만, 재료값보다 더 많이 들 운반비용을 기꺼이 투자했을 윤씨 일가의 재력도 놀랍기만 하다.
녹우당 오른편에 마련된 유적전시관에는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420호)와 미인도, 노비문권 등이 전시돼있다. 도난사건이 있은 이후 진품이 아닌 복사본을 전시하는 점이 다소 아쉽다. 고산유적관리사무소 (061)530-5548.
글ㆍ사진=한창만기자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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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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