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칼라(roman collar)는 가톨릭 사제들의 정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단어가 그렇듯이 엄밀히 말하면 성직자 복장의 일부, 즉 옷깃만을 지칭하고 있는 셈입니다.
본래 검정색 셔츠에 칼라 부분이 치장된 것 없이 단순하게 올라와 있고 목 부분을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잠그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목 부분을 잠그는 단추(혹은 후크)를 빳빳한 흰색 천(오늘날에는 탄력 있는 흰색 플라스틱 각대)이 가리게 된 것이데, 이것을 언제부터인가 로만 칼라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로만 칼라는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이 주로 착용하고 다녀서 붙여진 별명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태상 앞서 설명한대로 목 가운데 흰색 사각형(디자인상 드물게 역삼각형)이 드러나는 것을 로만 칼라라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목 전체를 흰색 띠로 두르는 경우도 있으나, 검정색 칼라가 지배적으로 드러나고 흰색은 살짝 내비칠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형태의 옷깃은 영화나 기록 사진에서 보듯이, 유럽의 개혁파 교회나 미국의 개신교 목회자들의 복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목둘레를 흰 천으로 감고 나머지 부분은 수단〔soutane, 영어로는 캐속(cassock)〕과 같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통옷이나 검정 양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복장을 로만 칼라라 우길 필요가 없습니다.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형태의 복장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분들은 다른 교파의 사목자들이기에 그렇습니다.
비(非) 가톨릭 교파라고 해도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사목하는 이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오히려 건강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성직자복의 옷깃에 관하여 부를 때, 로마 가톨릭 소속 성직자만을 지칭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성직 칼라〔클러지 칼라(clergy collar), 클레리컬 칼라(clerical collar)〕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게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에 여행갔을 때, 정교회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의 복장을 실컷 볼 수 있었는데 지중해의 그 강한 햇살 아래서도 머리에는 높이 있는 검정 모자와 검정색 통옷을 입고, 옷깃의 목은 채운 차림이었습니다.
남자 성직/수도자들의 복장을 보니, 영락없이 본당 신부님들이 잘 입는 검정 수단을 떠올리게 됐는데, 검정 통옷(단추는 보이지 않고)의 칼라에 흰색 부분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마 교회 성직자복이 동방전례 성직자 복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보통 프랑스 법관복에서 디자인을 차용해왔다고 설명되지만 말입니다.
제게 성직자복의 유래를 물어보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의 질문은, 좀 더 정확하게는 교계 내에서 어찌하여 신분을 구분하는 복장이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교회의 처음 몇 세기 동안은(6세기 무렵까지) 복장에 따른 성직자들과 일반 신자들의 구분이 특별히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복장보다는 성직자들이 배우고, 신자들을 잘 인도하며, 정결한 마음을 통해 일반 신자들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성직 복장이 요구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박해 시대가 지나가고 교회가 세속화되는 상황에서, 복장을 통해 성직자들이 헌신과 가난한 삶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성직복의 형태는 로마인들의 복장에서 유래한 것이었답니다. 처음에는 팔리움(pallium)이라는 두루마기 비슷한 외투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지금의 수단 형태인 발목까지 오는 긴 옷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성직복에는 기본 정신으로 순수함, 가난, 겸손과 헌신 등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옷깃의 흰색은 순수하고 가난하며 단순한 삶을, 검정색은 세속에서 죽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수단의 색상은 성직자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사제는 검정색, 주교는 진홍색, 추기경은 붉은색, 교황은 흰색으로 구분됩니다.
검정색은 이미 설명한 바대로 죽음을 의미하고, 진홍색과 붉은색은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며, 흰색은 빛을 가리킵니다. (참고로, 교황이 아닌데도 간혹 흰색 수단을 입은 본당 신부님들이 있는데, 이것은 더운 기후에서 생활하는 성직자들에게 예외적으로 허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성직복장은 요즘처럼 특권의 상징이기 이전에, 세상의 흐름과 배치되어 온전히 유지되어야 할 정신을 드러내 보이고자 고안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특권층의 상징이 되었고,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에서는 사회적 세속화와 더불어 그런 정신에 거부감을 보이며, 반성직주의〔혹은 반교권주의(anticlericalism)〕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정교분리 정책으로 공공기관 내에서는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이해 때문에, 요즘도 적잖은 사제들(특히 예수회원들)이 로만 칼라를 하지 않고 평상복(셔츠에 넥타이 혹은 노타이) 차림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빠리에서 생활하며 사제들이 정장에 넥타이 하는 것을 정복처럼 간주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넥타이만이 아니라 보우-타이(나비넥타이)를 하고 공동체 파티에 나가봤습니다. 모두 멋지다고 추켜 세워주는 덕에 우쭐해져서 그 이후에는 자꾸 파티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프랑스 신자 분이 제게 묻더군요. 왜 로만 칼라를 하지 않고 다니느냐고요. 저는 굳이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복장으로 구분될 필요가 있냐고 얼버무렸습니다.
정장에 보우-타이 좋아한다고는 말씀 못 드리고요. 그 신자 분은 그것도 의미 있으나, 오늘날 프랑스 교회는 자신 있게 로만 칼라를 하고 다니는 성직자가 별로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가톨릭교회가 잠들어 있다고 느낀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로만 칼라가 특권계급의 상징처럼 보였다지만, 오늘에는 그 의미가 달라졌으니 이제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우선 복장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어떤 사회에서도 성직복장의 근본적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겠지요. 성직복에 관한 질문 덕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파티 좋아하면서도 ‘세속에서 죽는’ 방법 아시면 알려주세요.
박종인 신부 (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