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26) - 가로와 세로 실의 교직(交織)
스승의 날(5월 15일)과 5.16 쿠데타(5월 16일), 광주민주화운동(5월 18일)이 들어 있는 한 주간을 보내며 숙연한 마음이다. 누구나 엄숙한 역사의 시공을 스쳐가는 나그네, 무심코 접한 시 한 수와 노래 한 구절이 때에 맞는 삶의 지혜로 다가온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윤재철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면 돼
술값은 재들이 낼 거야
옆 자리 앉은 친구가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그때 나는 무슨 계시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빙긋이 웃는다
그래 죽을 때도 그러자
화장실 가는 것처럼 슬그머니
(⸱⸱⸱)
왁자지껄한 잡담 속을 치기배처럼
한 건 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면 돼
아무렴 외로워지는 거야
외로워지는 연습
술집을 빠져 나와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걸으며
마음이 비로소 환해진다(중앙일보 2018. 5. 18, 시가 있는 아침)
실(糸)
나카지마 미유키(中島みゆき)
1. なぜ めぐり逢うのかを
어째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지
私たちは なにも知らない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いつ めぐり逢うのかを
언제 만나게 되는지
私たちは いつも知らない
우리들은 언제나 알 수 없어요
どこにいたの 生きてきたの
어디에 있었나요 살아 왔나요
遠い空の下 ふたつの物語
먼 하늘 아래 둘의 이야기
縦の糸はあなた 横の糸は私
세로 실은 그대 가로 실은 나
織りなす布は いつか誰かを
짜낸 천은 언젠가 누군가를
暖めうるかもしれない
따뜻하게 해줄지도 몰라요
2. なぜ 生きてゆくのかを
왜 살아가는 것인가를
迷った日の跡の ささくれ
잃어버린 날들의 흔적의 거스러미
夢追いかけ走って
꿈을 좇아 달리다
ころんだ日の跡の ささくれ
넘어졌던 날의 흔적의 거스러미
こんな糸が なんになるの
이런 실이 무엇이 될까
心許なくて ふるえてた風の中
어쩐지 불안하고 떨리는 바람 속
縦の糸はあなた 横の糸は私
세로 실은 그대 가로 실은 나
織りなす布は いつか誰かの
짜낸 천은 언젠가 누군가의
傷をかばうかもしれない
상처를 감싸줄지도 몰라요
縦の糸はあなた 横の糸は私
세로 실은 그대 가로 실은 나
逢うべき糸に 出逢えることを
만나야할 실이 만나게 되는 것을
人は 仕合わせと呼びます
사람들은 행복(운명)이라고 부릅니다(5월 17일, 일본어강좌에서)
스승의 날,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일본어강좌에서 수강생들이 소담스런 꽃다발을 선생에게 드리고 스승의 노래를 합창하였다. 뜻밖의 이벤트에 일본어 선생이 크게 감동하여 ‘정성이 담긴 선물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에는 스승의 날이 없답니다.’ 하며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오랜 제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교수님은 저희에게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존경하는 스승님의 삶을 배우며 노년을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강건하고 평안하기를 빕니다. 오늘 노인건강타운의 일본어공부시간에는 어른들이 선생님에게 꽃다발을 드렸습니다. 배움에는 노소가 없답니다.’
나이든 수강생들이 전한 꽃다발을 받고 밝게 웃는 모습의 일본어 선생
제자들뿐 아니라 주변에서 선생이라 부르는 호칭이 마음에 든다. 빛고을특별강좌 ‘선배시민과 공동체’의 세 번째 주제는 ‘선배시민, 후배시민을 품다’, 이를 들으며 어려운 세월을 이겨낸 경험과 지혜를 터득한 선배시민으로 여러 가지 힘겨운 상황에 직면한 후배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길잡이기를 되새겼다.
고등학교 1학년 때 3.15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들고 일어난 4.19 혁명에 동참하면서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험하였다. 이듬해 일어난 5.16 쿠데타는 교과서와 행동으로 배운 민주헌정을 무너뜨린 폭거로 여겨져 불편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승자로 군림한 쿠데다 세력은 이를 혁명으로 미화하였고 이에 순치되는 민초들인 것이 안타까웠다. 쿠데타와 유신으로 18년간 장기 집권한 박정희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독재의 사슬이 풀리기를 기대한 국민들의 희망은 12.12 무력찬탈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폭력진압으로 물거품이 되었고 전두환 등 신군부세력의 억압통치로 이어졌다. 공직생활 20여년, 젊어서 다짐했던 공익에 대한 봉사를 마감하고 더 자유로운 삶을 찾아 광주의 대학으로 옮긴 것은 어떤 실타래의 교직(交織, 다른 실로 엮어 짜는 일 또는 그 직물)일까.
뜻밖의 인연으로 연초부터 광주국제교류재단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부터 수임한 5.18 전후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정부사이에 주고받은 비밀문서의 번역작업에 감수자로 참여하였다. 주고받은 전문이 수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아픈 역사의 속살을 더듬으며 5.18 주간을 맞는 서생의 감회가 별다르다. 갈 때는 그냥 살짝 가려니와 세로 실과 가로 실로 만난 그대와 나, 역사의 상처와 생명의 아픔을 감싸는 한 조각이 되어라.
* 오늘(5월 18일) 오후 빛고을 노인건강타운 공연장에서 영화를 관람하였다. 때에 맞춰 관람한 영화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다룬 '택시운전사', 1,000만 관객을 넘긴 화제작을 5.18 기념일에 감상하는 소회가 특별하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세계로 전파한 독일기자와 교통이 막힌 광주의 현장으로 그를 태우고간 택시운전사의 실화를 소재로 한 것, 주인공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는데 독일기자의 아내와 택시운전사의 아들이 광주에서 열린 5.18 기념식장에서 조우하였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나는 1980년 5.18 당시 중앙부처에 재직하며 실시간으로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상황이 긴박한 5월 21일, 석탄 휴일에는 통신을 관장하는 부처의 당직책임자로 근무하는 중 시민들과 관련공직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를 접하였고 상황종료 직후에는 부처별 사후대책 파악요원으로 광주출장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1984년에 광주로 이거, 1985년 현충일에 5.18묘역을 처음 찾은 이래 외부의 지인들을 자주 5.18묘역으로 안내하였다.
첫댓글 일본어 수강생들이 참 많으시네요.ㅎㅎ쉬지 않고 배우시다니 정말 대단해 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