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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를 타고 오른 향적봉... 자연이 흠뻑 느껴지는 '명품' 절경
무주라고 하면 무조건 따라붙는 말이 구천동이다. 나제통문에서 덕유산 향적봉까지 36km 사이는 무주구천동의 33(景)을 모두 품고 있는 곳이다. 그 산자락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우리나라의 희귀한 동식물이나 태고의 원시림, 맑은 물과 폭포가 무주구천동을 이루고 있다. 지금 이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덕유산은 푸르름이 한창이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대에 산과 숲을 먼저 떠올려 보게 된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올라 힘들인 후에 맞이하는 뿌듯함을 '쾌감'이라고들 한다. 그 뿌듯함을 위한 고단한 과정이 반갑지 않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덕유산에서는 1500m가 넘는 드높은 설천봉까지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날개를 단 것처럼 곤돌라로 가뿐히 이동할 수 있다, 고맙게도.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도착한 덕유산 곤돌라 매표소는 직원들이 아직 출근 전이다. 조금 서두르니 이렇게 여유롭다. 겨울엔 스키장이었던 드넓은 설원이 이젠 마냥 푸르다. 푸른 잔디 위로 아침 해가 쏟아지는 걸 바라보며 즐기는 시간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의 야외 테이블 파라솔 아래 앉아 그저 느긋하게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와 눈 맞추고 놀아본다. 잔디밭에 나가 키 작은 꽃들을 렌즈에 담아보기도 한다. 산 정상에 올라 만끽하는 시간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하다.
사시사철 핫플레이스였던 곳이었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겨울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타기 어려웠던 곤돌라였다. 이젠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 서지 않아도 된다. 탑승장 앞에 서자 비어 있는 곤돌라가 연달아 다가온다. 곤돌라를 타고 내다보니 완연한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덕유산 숲이 발 아래 울창하다. 덕유산을 떠올릴 때마다 멋진 계절의 변화와 함께 인파가 북적였다. 이렇게 한가할 수가 있는지. 유유히 흔들거리면서 숲 사이를 오르는 곤돌라가 15분쯤 지나 가뿐히 설천봉에 내려앉는다. 힘 안 들이고 1520m 산정에 올랐다.
혼자 힘으로 정상에 오른 양 기분 좋게 둘러보고 향적봉으로 향한다. 그런데 예전처럼 산에 오르는 사람은 적어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오르기 전에 기꺼이 산행과 관련한 서명 등에 협조를 했다.
놀며 쉬며, 사진도 찍으며 올라도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그 길에 철쭉이 봉오리를 맺었거나 분홍빛으로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산 아래와는 생장이 다르다. 데크 로드엔 발걸음마다 돌 틈의 바람꽃이 반기고 군데군데 곰취와 당귀, 그리고 괭이눈과 모데미풀이 자라고 있는 게 보인다. 고산 지역의 청정한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온전한 모습이다. 사람도 이곳에 오래 있으면 산을 닮을까. 이해인 시인의 시 <내 안에서 크는 산>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향적봉이다. 1614m에 서서 사방을 빙 둘러보면 적상산이 보이고 멀리 지리산도 보인다. 능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산하를 굽어보는 짜릿함, 참 쉬운 호사다. 인증샷을 찍거나 다정하게 놀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대피소와 중봉을 거쳐 오른 후 돌아선다. 그러면 비로소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산을 내려가는 자의 여유로움이다. 무엇보다도 새소리가 어찌나 맑고 청아한지. 관리하시는 분이 '마침 요즘이 숲 속 새와 곤충들의 산란기여서 특히 더 그렇다'고 설명해주신다.
내려오며 설천봉 주변의 삐죽삐죽 뻗은 주목나무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다. 유난히 덕유산정에서 긴 세월 서 있는 모습이 나무의 꼿꼿한 그 마음을 느끼게 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 간다는 주목이 지금 몇 년째 서 있는 걸까. 겨울이면 설국의 눈꽃이 얹혀 수정처럼 빛나는 멋진 상고대가 신비롭던 나무다. 또한 덕유산은 한 겨울의 설산과 새해의 일출 또한 명품이다. 그래서 겨울산의 진수로도 알려져 있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서너 시간 땀 흘리며 숲길을 오르거나, 손쉽게 곤돌라 승차를 택하기도 한다. 산에 올랐다가 다시 그 길을 내려간다. 우리 사는 인생과 뭐 다를 게 있는지. 그 길에 눈과 비가 내린다. 햇살이 내리쬐거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날들도 있었다. 요즘은 생활 속 거리를 두고 매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럴 때 한적한 산정에 올라 청량한 공기 속에서 코로나 블루를 다스려보는 건 어떨까. 산길을 걷고, 부근의 높은 사찰을 향해 오르며 뚜벅뚜벅 자연 속에 들어갔다. 단련되지 않은 몸인지라 다녀온 후 온몸이 뻐근했지만, 기분은 뿌듯하고 가뿐했다. 갑갑하기만 한 날들이다.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말하는 '혼산'으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니 훌쩍 나서볼 만하다.
주변 명소와 맛집덕유산 주변의 호국사찰, 안국사(安國寺)
적상산 능선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아늑한 사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숨차게 오르게 된다. 오가는 이 없는 조용한 사찰 안에 수국과 작약이 피어났고 다람쥐도 쉴 사이 없이 돌아다닌다. 맛고을 회관
덕유산에서 내려오면 가까운 마을에 버섯전골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이와 송이, 노루궁뎅이 버섯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육수의 깊은 맛도 좋다. 특히 갖가지 산채나물은 별미다. 이현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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