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마지막날>
숙소 → 자연사 박물관 → 인형박물관 → 시계박물관 → 그라벤 → 숙소
새벽녘에 돌아와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그를 두고 우리는 다음날 또 거리 구경을 나섰다.
빈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별 의욕이 없었다. 여행의 끝자락이라 지치기도 했고, 달랑 남은 둘이서 구경을 다니는 것이 흥이 나지 않아 조금 늦게 일어나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대학생을 만났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인 아웃으로 170만원에 항공권을 끊었다고 했다. 세상에! 우리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의 항공권이었다. 그는 어제 빈에 도착했는데, 미술관 두 곳을 보고나니 하루가 다 갔다고 했다.
미술관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되는데 전시된 모든 것을 보려니 그렇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차피 머리에 남아 있지를 않으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 작품만 골라서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별 준비 없이 여행 와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학생들을 보니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일단 산들이를 위하여 자연사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자연사박물관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 왜냐하면 프라하의 국립박물관에서도 산들이가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아주 즐거운 곳이었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자연사박물관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구에는 애기 코끼리상과 호랑이상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층은 아쿠아리움, 보석, 자연석을 전시하고 있었고, 2층은 화석 전시, 3층은 조류, 동물을 전시해 두었는데, 1층과 2층만 보는데도 두 시간 정도 걸려 3층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 교실이었다. 어린이들이 박물관의 자료를 관찰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교실도 꾸며 놓는 등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너무나 부러운 공간이었다.
다음으로는 인형박물관과 시계박물관으로 갔다. 게른트너 거리와 그라벤 주위를 돌며 골목골목을 누볐다.
먼저 인형박물관으로 갔다. 바깥에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지 않으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입장료가 제일 비싼 곳이었다. 그리고 어린이 요금이 어른보다 비싼 곳으로 요금이 비싸긴 했지만 인형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컸다.
다음으로 시계박물관으로 갔다. 인형박물관 바로 옆집이었다. 모두 4층으로 된 건물이었는데, 지하까지 합하면 5층인 셈이다. 모두 값나가는 옛날 시계들이어서 층마다 독립되어 있었고, 초인종을 눌러야만 문을 열어주는 곳이었다. 이 두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 산들이가 입장료를 낸 유일한 곳들이다.
마지막으로 어제 못간 빈숲으로 가기로 계획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친구도 없이 어린 딸과 무슨 재미로 저녁 노을을 볼 것이며 포도주를 마시겠는가? 차라리 산들이와 그라벤 거리에서 맛있는 저녁이나 먹기로 했다.
그라벤 거리에서 단체배낭여행을 온 40대의 아줌마를 만나 한 시간 가량 안내해 주었다. 빈의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봐야겠는데, 어디서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여 우리가 늘 가던 아이스크림가게로 데려다 주었다. 아줌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 목적인 듯 열심히 사진 부탁을 해 왔다. 그래도 며칠 묵었다고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소개해 주었다.
아줌마와 헤어진 우리는 카페 Europe에서 저녁을 먹으며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늘 지나다니며 구경하던 줄 인형 아줌마의 공연에 산들이도 캐스팅되어 삐에로 분장을 하고 줄 인형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저녁 8시쯤 되자 룸메이트도 돌아왔다. 피곤에 지친 듯 집에서 조금 쉬다가 나중에 또다시 나간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예정으로 동유럽여행 중이라고 했다. 벌써 한 달째 유레일 패스도 끊지 않고 히치 하이크로 다닌다는 청년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산들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한참을 쉬다가 미국인 친구와 다시 저녁시간을 즐기러 나갔다.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그날 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을 잤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도 믿을 수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