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역은 1972년에 처음 영업을 개시할 때부터 그다지 좋은 입지를 가지지 못했다.
오가면 마을과 걸어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에, 주변엔 도로다운 도로 하나 들어오지 않는 오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을에선 예산역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며 버스로 약 10~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가롭게만 보이는 마을 풍경. 이런 동네엔 철도가 전혀 들어올 것 같지 않아보인다.

하지만 반대편으로 눈을 돌려 넓은 들판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 쭉 뻗은 철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가로등이 보인다. 바로 저 곳이 오가역이다.
장항선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기엔 어색하긴 하지만,
최소한 접근성 면에서는 학성, 원죽 등등 어떤 역과 붙어도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다.

오가면 마을을 지나 농로를 따라 한참 걸어간다.
비가 오지 않는 시기인지라 가뭄에 땅이 바싹 말라있다.
지금 남아있는 물도 각종 농약과 축산폐수 범벅으로 이미 오염이 심하게 진행되었다.
그나마 땅이 바싹 말라있는 초봄이니까 농로로 걸어갈만한 것이다.
비가 끝없이 주룩주룩 퍼붓는 6~9월이 되면 농로로 걸어가는 것은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더러운 농수로 옆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니 드디어 오가역이 나온다.
주변 어디를 살펴봐도 개발의 흔적이라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서도 외곽으로 비켜나 있는 역인지라, 한적함의 미(美)는 그야말로 최고조가 된다.
단 한가지, 더러운 농수로를 옆에 끼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나마 곡선이 적다는 예산-삽교 구간도 은근히 험하게 달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예산읍내로 들어가기 위해 열차는 오가역에서 500R 반경으로 크게 꺾는다.
한적한 평야지대에서 엄청난 반경의 곡선이라. 이런 것도 장항선이 아니면 보기 힘든 풍경일 것이다.

역에 진입하기 전에는 항상 사람조심. 역 진입 전의 인상깊은 표지판이다.
오가역은 아직도 철도영업표에 엄연히 등장하는 '죽지 않은 역'.
하지만 폐역에 가야 볼 수 있는 레일 한가닥이 승강장을 대신해 눕혀져 있다.
이미 오가역은 죽은 역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오가역의 현재 모습.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이미 2004년 7월 영업을 중단한지 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흔적이 용케 남은 것이 신기하다.
검은색의 앳된 역명판과 컨테이너로 지어진 가역사가 그들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열차가 서지도 않는 역에선 더 이상 승강장조차 필요가 없는가보다.
여객열차가 통과하기 시작한지도 어언 4년. 승강장은 흙에 파묻혀 그 형체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

철거될줄만 알았던 오가역 역명판도 다행스럽게 명맥을 유지하며 아직까지 남아있다.
알게 모르게 철거에 열을 올리는 철도시설공단의 행태를 보면 금세라도 바로 뽑아버릴 것 같은데 말이다.
오가. 발음하기도 편하고 쓰기도 얼마나 간단한가.
너무나도 간단한 이름처럼, 역명판 또한 같은 형태의 다른 역들보다 더욱 아기자기하고 귀여워 보인다.

하지만, 불운한 운명의 전주곡이 시작되는 것인가.
분명 남아있어야 할 역명판이 한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흔적마저도 하나 둘 씩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역 건물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지만, 분명한 역 건물이다.
역사가 아니라 컨테이너 창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무궁화호 출신의 의자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뿌옇게 쌓인 먼지들은 사람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었다.

역 건물같지도 않은 오가역사 내부는 이미 역탑리 주민들의 비료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제 역할을 미처 하지 못해 쓸쓸히 버려진 오가역처럼,
여기에서도 제 역할을 미처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려진 포대들로 가득 쌓여 있다.
버려진 오가역사, 버려진 쌀포대... 제발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같이한다.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가 뿌연 매연을 내뿜으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한 차례 커다란 곡선을 돌며 건널목을 건너 서서히 '기차역'에 들어선다.


하지만, 이미 존재감을 잃은지 오래인 오가역을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통과한다.
승강장조차 사라져버린, 역명판조차 반쪽이 사라져버린, 이미 흙길로 덮혀버린 오가역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공식 폐역처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공식 폐역처리된 학성, 선장역보다도 훨씬 상태가 심각하다.
여기에 역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무심한 열차는 오직 예산역을 향해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비록 모든 희망은 떠나갔지만,
임종 직전에 자그맣게 존재감이라도 알려보고 싶다.
하늘을 높게 날고 싶어도 날개조차 펼 수 없었던 예전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쓸쓸한 퇴역은 더욱 비참하고 참혹해질 뿐이다.
화려한 관심 속에 아쉽지만 멋지게 현역에서 은퇴했던 선장역처럼,
나 자신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멋지게 퇴역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것 또한 허황된 바램일 뿐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 무척 잘 알고 있다.
그럼으로, 손이 닿지 않을 먼 곳에 있는 예산역과 삽교역을 애틋하게 동경한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고, 하지만 될 수 없었다고...
언제나 그들처럼 되기를 꿈꾸다가 결국 한 줌 먼지로 사라진다고...
* 신례원, 예산, 삽교역은 게시판 도배 방지 목적으로 인해 올리지 않겠습니다.
첫댓글 위에있던 의자는 구특전 의자가 아니라 2*3 배열의 옛 무궁화호 열차 좌석입니다
앗, 그렇군요. 부강역에 있던 구특전과 헷갈렸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