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요한 묵시록 14,14-19 루카 21,5-11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재난에 관한 예고입니다.
이 내용이 우리의 신앙 여정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6-17; 2코린 6,16 참조)이라는 관점에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는 때때로 귀가 얇아져 하느님의 뜻에 머물기보다 다른 가치들을
더 중요시할 때가 있습니다. 성공, 권력, 명예, 돈, 자녀 교육은 일상생활에서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놓고는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닥쳐올 재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경기 침체, 전 세계를 둘러싼 절망적인 상황과 정세 때문에
세상이 당장 멸망할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가 오고,
그분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실현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을 것(루카 21,19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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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미카엘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요한 묵시록 14,14-19 루카 21,5-11
하느님께서 늘 나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마라”(루카 복음 21장 5-11절)
하느님의 연민
결혼 후 2년 만에 남편을 뇌종양으로 떠나보내고, 딸 아이 하나만 바라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어느 자매님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보다 저를 더 안타깝게 만들었던 것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로
그 자매님이 더는 하느님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마나 하느님이 원망스러웠을까 싶어 한편으로 이해도 되었지만, 정말 하느님이 필요한 순간에
그분을 찾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참 서글프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까닭 모를 고통을 마주할 때, 이렇듯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또 그분이 정말 계신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애초에 하느님께서는
지금 당장 모든 고통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지요.
대신 우리와 함께하는 임마누엘 하느님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자가도 함께 지겠노라고, 멍에도 함께 메고 가겠노라고, 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그분의 권능은 고통을 없애는 마술 같은 기적이 아니라,
고통마저 함께하는 연민의 사랑입니다.
때로는 우리 삶에 기쁨보다 슬픔이, 위로보다 고통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까지도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글라렛선교수도회 박재형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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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요한 묵시록 14,14-19 루카 21,5-11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에서 하신 긴 담화의 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과 세상 종말이 오기 전의 표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6)
옛 솔로몬 성전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586년에 파괴되었고,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에 의해 기원전 515년에 즈루빠벨의 치하에서 재건된 제2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로데 왕에 의해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지면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십니다. 사실 성전 파괴에 대해서는 이미 예언자
미카,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에 의해 예고된 바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때와 표징을 묻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루카 21,8)
이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이비 메시아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재물이라는 우상을 사이비 구세주로 따르고, 속아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소.”
“치유해주고 행복하게 해주겠소.”하고 외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결국 우상을
따르고 섬기도록 부추기는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는 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을 구원자라 고백하지만, 정작 무엇에 목매달고 쫓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 재물이나 능력 혹은 세속 정신을
사이비 메시아로 따르고 섬기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또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고약한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녀석입니다. 우리는 곧잘 자신의 욕망과 생각, 자신의 견해와 뜻을 섬기고
추종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곧 ‘자기 자신’이 거짓 예언자, 거짓 메시아 행세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1티모 4,16)
그렇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샘 기도>
주님!
속이지도 속지도 말게 하소서.
재물에 속지 않고, 세속에 속지 않게 하소서
또한 나의 생각과 견해, 편견과 허영에 속지 말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내 자신과 내 자신의 뜻에 속지 않게 하소서.
아멘.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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