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쥔 10만원을 내려다보았다. 토익에 치이고 학점에 절망하는 두 ‘死학년’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줄 요 녀석. 돈 냄새 물씬 풍기는 곳보다는 그저 조용히 시골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진 결과, 인천 대부도와 선재도·영흥도가 낙찰됐다. 자, 여대생 2명이 합계 10만원으로 섬에서 만끽한 1박2일 ‘뚜벅이의 자유’!
[10만원] 5일(토) 오전 8시40분. 인천 용현동 버스터미널에서 선재도행 시외버스표를 4200원에 샀다. ‘도시 탈출 프로젝트’는 출발선을 끊었다.
[잔액:9만1600원] 오전 10시30분. 선재대교를 건너 민박집 ‘바다향기’(032-889-8300~1)에 도착했다. 식당과 민박집을 겸한 이곳은 ‘아버지의 바다’라는 포토 에세이를 낸 김연용씨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다. 왼편에 목섬, 멀리 측도가 보인다. 칼바람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실려온다. 민박집 하룻밤 3만원!
목섬으로 향했다. 모랫길이 육지까지 목줄기처럼 이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모랫길을 10분쯤 걸어가면 섬이 나온다. 우리는 섬 한쪽에서 ‘재미삼아’ 굴을 캔다는 할머니를 만났다. 우리도 횟집에서 호미를 빌려 측도로 향했다.
30분 뒤. 호미 하나 빗겨 차고 보무도 당당히 갯벌에 진입했던 우리, ‘뻘’에 빠져 울먹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칼날 같았고 볼은 떨어져 나갈 듯했다. 교훈 하나. 갯벌 체험은 따뜻해지면 할지어다.
▲ 한 사람당 5만원씩, 10만원을 들고 둘이서 섬으로 갔다. 선재도에서 목섬까지 발 푹푹 빠져가며 걸었고 산낙지도 먹었다. 두벅이들, 정말 잘 놀았다! | |
[잔액:6만1600원] 측도를 벗어나니 벌써 오후 3시. 1000원짜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영흥도로 나섰다. 원래는 걸어갈 요량이었지만, 진흙투성이 발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잔머리를 굴린 끝에 내린 결론, “그래, 히치하이킹이야!”
사람들의 눈초리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5분쯤 지났을까, 검은 중형차 한 대가 멈췄다. 앗싸, 성공이다. 승용차는 친절하게도 우리를 십리포해수욕장까지 데려다 줬다. 경기도 화성의 김승환·장숙연님 감사합니다!
오후 5시, 십리포해수욕장에 도착.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사나무가 몰려 사는 곳이다. 겨울바다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다면 반드시 가봐야 한다. 뿌연 안개 사이 검푸른 바다, 뒤돌아보니 사나운 해풍에 사방으로 비틀어져 버린 소사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인적 없는 모래사장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금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 기분, 언어로는 옮길 수 없다.
한껏 감상에 젖어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찍다가 선재도로 넘어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려고 15분 정도를 걸어 내동교회 앞으로 갔다. 막차 시간은 오후 6시30분. 그런데 25분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버스 벌써 끊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버스회사에 미리 확인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그렇게 ‘생뚱맞은’ 대장정이 시작됐다. 민박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뚜벅뚜벅 영흥대교를 건너 선재도를 아예 가로질러야 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환상적이었던 영흥대교의 야경. 일곱 색깔로 끊임없이 바뀌는 영흥대교는 조명 설치만도 2억원이 들었단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오롯이 빛을 발하는 영흥대교, 로맨틱했다. 가난한 커플 산책 코스로도 안성맞춤인 듯. 오후 8시30분. 대장정 두 시간여 만에 드디어 민박집에 도착.
[잔액:5만9600원] 뱃가죽이 등과 만나는 미증유의 사태를 막기 위해 서둘러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메뉴는 민박집 아주머니가 ‘강추’한 산낙지볶음. 우리는 ‘최후의 만찬’이라 명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격이 3만7000원(2~3인분)이니 전체 예산의 40%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빨갛게 버무려진 알 굵은 낙지를 한가득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 맛, 천하일품이다.
[잔액:2만2600원] 다음날 오전 9시. ‘바다향기’에 작별을 고하고 대부도행 버스에 오른다. 대부 상동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누에섬 전망대’로 향했다. 버스비 총 3600원.
1.2㎞ 떨어진 누에섬은 썰물 때 길이 열린다. 대부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인기있는 여행코스다. 전망대에 오르니 보이는 것은 바다와 하늘뿐. 푸른색 칠판에 글씨를 쓰듯 사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갈매기가 거침없다.
[잔액:1만9000원] 전망대에서 나온 시간은 오전 11시. 아침도 거른 터라 배가 고팠다. 근처에 죽 늘어서 있는 음식점들이 식욕을 더 자극했다. 가난한 우리에게 우럭이나 회 같은 음식은 그림의 떡. 해물칼국수로 허기를 달랬다. 식탁 한쪽에 조개무덤을 쌓아가며 국수 반, 바지락 반인 칼국수를 먹어치웠다.
마지막 목적지는 작년 8월에 문을 연 경기 영어마을 안산캠프.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체험학습형 영어교실이다. 학기 중에는 5박6일, 주말반 코스가 있고 전화로 신청하면 매주 화요일엔 견학도 할 수 있단다. 지하 1층에선 요리 수업에 참가한 주말반 가족들이 초콜릿 쿠키를 만들고 있었다. 서툰 영어로 열심히 질문도 하고 쿠키도 만드는 모습이 재미있다. 두 시간 남짓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 뚜벅이족을 보우하사, 경기도 영어문화원 한성원 대리님이 대부 상동까지 데려다 주셔서 차비도 아꼈다.
[잔액:9000원] 인천 주안역까지 가는 버스표는 3700원. 표를 사고 남은 돈을 세어 보니 1600원이나 된다. 여행 이틀 만에 재테크 도사 다 됐다. 늦은 오후 인천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2호선 신도림역에 내렸다. 발디딜 틈 없는 비좁은 지하철역이 답답하다. 눈을 감았다. 발 끝에서부터 바닷물이 점점 차올랐다. 알싸한 바다 냄새와 발 푹푹 빠지던 갯벌도 느껴졌다. 내 안에, 겨울 바다 있었다. 주머니에는 1600원이 있었다.
◆ '아버지의 바다' 떠날 수 없어… 4대째 선재도 살고 있는 사진가 김연용씨
그는 여전했다.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대신하며 고기를 잡고, 또 사진을 찍었다. 재작년 6월 실명한 어부 아버지와의 바다생활을 엮은 포토 에세이 <아버지의 바다>를 낸 김연용(30)씨. 평생 고생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평범한 미대생에서 어부가 되어 작은 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제 선재도의 ‘명물’ 중 하나가 됐다.
선재도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집안 내력은 차치하고라도 김연용씨는 선재도에 애착이 많다. 같이 조개를 캐고, 그것을 똑같이 나눠 먹고 살았던 평화로운 외딴 섬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돈 많은 도시 사람’들에 밀려 떠나는 ‘시골 사람’들이 안타깝다. 그가 ‘아버지 팔아 돈버는 놈’ 소리를 들어가면서 ‘바다 향기’를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험 많고 서비스 좋은 외지 출신들의 음식점 못지 않게 ‘시골 사람’들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가 생각하기에 선재도는 ‘조개 껍데기에 감탄하고 갈매기에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놀러오기 좋은 곳이다. 그 흔한 놀이공원도, 제트스키장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그게 바로 선재도의 매력이다. 아직 손때가 덜 묻은 선재도의 바다에는 ‘여유’가 있다.
바다는 김연용씨에게 밥벌이 수단이기도 하지만 ‘안식처’이기도 했다. “갯벌 일을 하면서 자연과 소통해요. 갯벌에 나가면 속세의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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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건너에 선재도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니 꼭 한번 가 보고 싶네요..스크랩할 게요^ㅡ^
선재도 글잘읽어습니다 절음이 그런용기늘 단돈 5 만원을가지고 1 박2일 여행을더날생각 부럽군요 그런용기로 열심히 공부해서 조흔결실매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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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게시물이구요.. 낼 우리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는데..이 곳으로 갈거 같네요..^^ 즐거운 여행겸 야유회가 됐음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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