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요한 묵시록 15,1-4 루카 21,12-19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요한 묵시록 저자는 세상 징벌에 대해 일곱 천사들이 차례로 나팔을 불어 알려줍니다.
얼핏 보면 탈출기에서 열 가지 재앙들을 상기시키게 해줍니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탈출기의 재앙과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묵시록 저자는 일곱 번째 천사가
마지막 재앙을 알려주는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난 사실을 설명을 합니다.
이제는 유리 바다 위에는 신앙의 시련을 견디어 낸 이들이 서서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묵시록 15,3)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이고
주님의 의로우신 처사가 드러나게 됩니다.
시련과 고통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요? 또한 박해와 미움을 겪지 않는 신앙이 또한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당신 때문에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뿐 아니라 회당과 감옥에 넘겨지고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 갈 것이라는 말씀도 해주십니다. 심지어는 부모와 형제와 친척들,
친구들까지도 자신을 넘겨서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비록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이 세상이 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이 세상 논리에 맞지 않을 때가많겠지요.
세상은 어떻게 보면 재물 중심으로 아니면 기회 중심으로 살아야 잘 산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해관계를 따지고 손해를 보거나 해를 입으면 내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논리에서 보면 신앙인들은
어리석거나 약삭 빠르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로 보이는 아니겠어요?
거기다가 ‘자기 희생’은 말도 되지 않는 논리가 되겠지요. 신앙들은 미움보다는 업신여기는 것을
당하거나 바보 숙맥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수 많은 성인 성녀들, 서양학문으로 연구하다가
신앙으로 옮겨 붙은 삶을 살았던 한국의 신앙의 선조들, 순교자들을 보면
주님께서 오늘 말씀대로 ‘나를 위해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이든, 종말론적인 무서운 징표, 형틀과 칼날의 두려움에서도 신앙인이
희망과 위로를 받는 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오늘 문득,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들었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신앙인은 비록 세상에서 어지러움,
두려움과 고통을 살더라도 흔들림 없이 성실한 오늘의 삶을사는 사람들이지요.
우리 각자의 죽음 세상의 종말의 새기며 위령성월의 멋진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순간 하는 일,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를 헤아리는 깨우침이 있으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울까요!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8-19)
원주교구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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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요한 묵시록 15,1-4 루카 21,12-19
육상 경기 중에 ‘장애물 경기’가 있습니다. 그냥 달릴 수 있지만 장애물을 건너는 것은
우리의 인생도 그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장애물이 넘어져도, 장애물 때문에 넘어져도 끝까지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모임을 마치고 뉴저지에 또 다른 모임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7시에 모임이기에 오후 2시 30분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저에게도 3번의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2시 30분 비행기 늦어져서 3시 10분에 떠났습니다.
다행히 5시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게이트가 부족해서 30분을 기다렸습니다.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콜택시를 불렀습니다. 분명 게이트 B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택시기사는 게이트 C에 있었습니다. 택시기사는 게이트 B로 왔고,
저는 무사히 7시 뉴저지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모임에서 신부님은 ‘용기를 내어라’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신부님은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기차여행을 하는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간에 식당 칸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음식을 먹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시애틀에 도착해서 보니까,
식당 칸의 음식은 모두 기차표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자신의 무지를 탓하였습니다.
살면서 많은 경우에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한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더 많은 신자들을
도울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했다고 합니다. 더 많이 기도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변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혼인의 성사성도 많이 줄어들었고,
공동체성도 많이 줄어들었고, 개인화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존재해야 하고, 도전에 응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동화가 생각납니다.
토끼가 잠을 자는데 도토리가 떨어졌습니다.
토끼는 그것이 지진이 난 것으로 착각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러자 다른 동물들도 토끼가 도망가지 덩달아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지진은 나지 않았고. 땅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걱정들도 그런 것이 많습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
벌어지지 않을 일 때문에 우리는 늘 걱정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십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고.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용기는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용기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용기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만용은 교만에서 나옵니다. 준비되지 않은 용기는 실패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정의롭지 않은 용기는 상처가 되어 돌아옵니다.
용기가 정의를 만날 때, 용기가 신의를 만날 때 용기는 사랑으로 열매 맺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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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요한 묵시록 15,1-4 루카 21,12-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박해 상황을 예고하십니다.
신앙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박해는 예수님께서 메시아 임금으로서 영광에 들어가시기 전
고난을 겪으셨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종말이 닥치기 전
박해를 겪음으로써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할 사명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증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낱말은 인상적입니다.
여기에는 증언의 최고 단계이며 완성인 ‘순교’라는 뜻까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소 증인들에게 힘이 되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증언의 순간에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예수님께서 친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이에게 그분께서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을 증언하는 삶이 ‘장밋빛 인생’일 수만은 없겠지만, 그분께서 늘 지켜 주실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오늘날 외적 물리적 박해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내적 영적 박해에 노출되어 있음을 직감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율법 정신과 당신 자신의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증인이 되는 길입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 이 사랑의 실천을 일상에서 내 것으로 내면화하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의 증인이 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서울대교구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