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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
 
 
 
카페 게시글
미권스 자유게시판 스크랩 비 맞고 나서의 찜찜함, 그리고 밀려드는 일본 쓰나미의 흔적들
권종상 추천 4 조회 106 12.06.24 11:44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토요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토요일은 아내가 일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서 늦게 끝나는 까닭에, 제가 집에 올 시간엔 아이들만 집에 있습니다. 오늘 브로드웨이엔 게이 퍼레이드가 있어서 길을 막고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만일 사진기를 가지고 갔더라면 이것저것 찍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일단은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이것저것 먹을 것 해 놓은 것이 많아서, 평소처럼 피자를 산다던지, 아니면 파스타를 만들어줘야 한다던지 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했고, 저도 월요일이 비번날이어서 내일과 월요일 이틀 연이어 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샤워 하고 나서 홍차 한잔 우려 마시면서, 오랫만에 턴테이블에 브람스 실내악곡을 걸어 놓고 리클라이너 펴 놓고 발 뻗고 반쯤 누워 있습니다. 이러다 졸음이 오면, 아마 그대로 잠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할 때 다리가 조금 아팠고, 무릎이 약간 따끔따끔 시리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집에 와서 발 뻗고 무릎 위에 랩탑 올려놓고 차 마시니 언제 아팠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 다리에 배신감이라도 들 지경이군요.

 

지금 바깥을 보니 하지를 갓 넘긴 때의 햇살이 조금씩 기울어져 비추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후는 길 것이고, 오후 아홉 시를 훨씬 넘기도록 바깥은 훤할겁니다. 하지만 오늘 낮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방수 장비를 가지고 나가지 않았던 저는 속옷까지 흠뻑 젖는 황당함을 겪어야 했습니다. 여름이 실종되었는지, 지금쯤은 더워야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쌀쌀하다 싶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비를 다 맞아가면서도, 우편물은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비를 맞고 다니니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새어나온 방사능의 이야기가 쏙 들어가긴 했지만, 비가 많이 와도 우산 쓰고 다닐 생각을 별로 안 하던 시애틀 사람들이 요즘은 우산 들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보고 있습니다. 저도 그래서 별로 챙기기 귀찮아하던 방수 장비들을 챙기고 다녔는데, 오늘은 꼼짝없이 빗속에 갇혀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온 몸을 씻어냈는데, 지금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살이 비쳐 훤하니 조금은 배신감(?) 같은 것도 느낍니다.

 

지난해 11월엔가, 일본 대지진과 이어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바다로 밀려나간 재해의 잔재들이 처음으로 워싱턴주에까지 밀려왔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도 적지 않은 양의 일본 대지진 여파로 인한 부유물들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발견된 잔해들 중엔 '사람의 발 뼈가 그대로 표본처럼 담겨 있는 운동화' 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의 기억이 새삼 상기되면서,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 역시 다시 상기된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인간이 아직 완전히 모르는 힘을, 그것도 완벽히 통제되지 않는 자연의 힘을 꺼내서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은 지금 이곳에서 계속 진행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라는 것이 현대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원전이 안전한 것도 아니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이 원전(그리고 절대로 복구가 될 수도 없는)의 청소작업을 위해 일본 정부와 동해원전사가 쏟아부은 비용도 엄청나지만, 이 과정에서 그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지금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바로바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를 추적해보면 원전이라는 것이 가진 비용대 효율이 얼마나 참담하게 낮은지를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세계는 후쿠시마 원전의 참사 이래로 원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이 재해 때문에, 태평양이라는 커다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미국에서도 비 맞는 것을 꺼리고, 참치와 다른 일본산 생선의 판매량이 크게 급감하는 등, 전혀 다른 대륙의 살아가는 모습이 과거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젠 재해도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되어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새삼스레 확인하게 됩니다.

 

아, 한가하고 밝기만 했던 토요일 오후, 생각이 깊어지면서 마음도 조금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저 레코드판도 뒤집어줘야겠군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정말 소리가 깊습니다. 집안이 마치 콘서트장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가끔씩 툭 튀는 소리조차 정겹군요. 아내가 퇴근하면서 삼겹살을 사온다고 했습니다. 와인 한 잔 하면서 토요일 저녁의 여유로움, 마저 즐기려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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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6.24 12:23

    첫댓글 일본에서온 한 사람과 운동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슬적 왜 너희 일본 사람들은 이웃에 폐를 끼치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가?
    쿡 찔러 봤습니다.
    그런데 묵묵부답. 아무 말도 않하는 그 사람이 더욱 미웠습니다.
    그래서 더 한번 찔렀습니다.
    너네 정부는 신뢰가 없으니 못믿겠고, 왕(황제란 말을 안썼슴)이라도 나와서
    전세계 시민에게 바다를 오염시켜서 죄송하다는 밀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왈 "일본 천왕은 사과하지 않습니다!"
    딱한마디 하더군요!
    기가 막혔습니다.

  • 작성자 12.06.24 23:56

    아무튼, 그 사람의 개인 의견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히 그들의 '집단성'은 우리가 늘 경계해야겠지요.

  • 12.06.24 12:48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더 나쁘다는 생각이 드는게, 바다에 오염물질을 다 방출했다는거죠. 대체 그렇게 무책임한 처사를 국제사회에서 방관하는 것 같아 참 기분이 별로예요. 이게 일본 사람들의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요

  • 작성자 12.06.24 23:57

    그것 때문에 여기서도... 일본 생선이 안 팔리는 거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물고기들이 거기서만 놀지를 않죠. 일본 앞바다에서 놀던 참치는 하와이 앞으로도 옵니다. 그러니 걱정이 안 될수가 없는 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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