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송심씨(靑松沈氏) 할매(삼척심씨할매)
우리 할매가 원래는 청송심씨였으나 삼척심씨로 족보에 기재한 것은 부인을 낮추어 표한 것으로 보여 진다.
겸익할아버지께서는 강성문씨 할머니를 그렇게 떠나보내시고 어린 창발, 융발을 보살필 것을 걱정하던 중 침모(針母)를 구하기 위해 수소문하였다 몇 분의 사람들이 찾아와 만나보았으나 어린 자식을 맞기기엔 부적합하다고 판단되고 고심하고 있던 중 아기를 출산하다. 잃고 홀로 사는 청송심씨 부인을 소개받고 기본의 학문도 익히고 성품이 온화한 분이라 판단하고 받아 들려 창발 융발 양육과 집안 살림을 맡겼다. 그리고 공직의 일과 학문에 전념하셨다 그 후 심씨 부인은 창발 융발 할아버지를 훌륭히 양육하시면서 집안 살림도 나름 잘 사셨다 창발 융발 두 분 할아버지께서 성인이 될 무렵부터 겸익할아버지 주변에서 사대부 남자가 세상에 나와 사모관대 한번 하고 정식으로 혼례 한번 못해서야 되겠느냐고 말이 많으므로 중신을 받아 들려 재혼을 결심하고 심씨부인에게 섭섭하지 않게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그렇게 겸익할아버지 집을 나온 심씨 부인은 멀지 않은 근동(近洞)에 이주하여 자리를 잡으니 어릴 때부터 따뜻한 정으로 보살핌을 받은 창발 융발 할아버지들은 학업이 흔들리고 특히 융발할아버지는 정을 끊지 못하고 심씨할매 집을 자주 왕래하다 아예 심씨 집에 눌러 살기까지 함으로 겸익할아버지게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시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 살림을 맡아 보는 마름 송노인을 시켜 충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재물을 주고 창발 융발 할아버지들의 장래를 위해 먼 곳으로 이주해 살기를 설득하여 모월 모일 새벽을 틈타 먼 강원도 삼척으로 떠나므로 비로소 창발 융발 할아버지들께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시고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심씨 부인과 인연도 이것으로 끝이 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집에서 오랫동안 심부름 일을 한 송노인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