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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오백리길.1 - 대청댐 물문화관-찬샘 농촌체험마을
4월은 하루가 다르다. 하루 다르게 꽃이 피고 지고 하루 다르게 풀이 돋고 산자락이 초록으로 변해간다. 아침저녁으로 다르지 싶게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싶다. 대청댐 주위는 온통 벚꽃으로 꽃밭이 되고 꽃터널이 되었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찾아나서 본다. 대청댐 물문화관 앞에 섰다. 하늘은 왜 그리 푸르며 조망은 거침없이 뻗어나가 맑기기만 하다. 건너 편 청남대 가는 길 산자락 중턱에 흰 구름이 내려와 앉은 듯 벚꽃이 뭉크러져 환하다 잔잔한 물결이 햇볕의 강력한 조명을 받으며 금빛으로 반사되어 반짝반짝 눈이 부시다. 저 깊고도 깊은 청청한 물속에서 금빛 고기들이 물기를 툭툭 털며 튀어오를 성싶다. 마음이 하늘과 호수를 따라 맑아지는 아침이다.
산자락으로 가뿐히 올라선다. 여기에 이렇게 호젓한 길이 있었구나. 언제부터 있었는지 수없이 대청호를 찾았지만 처음 밟아보는 길이다. 이제 계속 왼쪽으로 호수를 끼고 걸어야 한다. 오늘 하루 내내 함께 걸어야 한다. 산벚이 활짝 피었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꽃이 좀은 엉성하다. 꽃송이가 서로 엉키며 다닥다닥 한 것이 아니라 너무 듬성듬성 느슨하다. 본래 저런데 지금의 모습으로 자꾸 개량되었을 것이다. 순수함이 묻어 있다. 아주 화려함 뒤에는 그만한 사연도 함께 한다. 겉 다르고 속이 너무 다른 때도 있다. 때로는 그냥 보이는 대로 보면 되는데 속속들이 보다가 그리 좋은 모습만은 아니다. 너무 알면 마음 아파 대충 덮어주는 것도 괜찮다.
보드라운 흙길에 나무가 우거졌다. 아직은 빈 나무 둥치가 발을 세우듯 한 사이사이로 힐끔힐끔 호수를 곁눈질하노라면 그 모습들이 수시로 변화하고 있다. 보는 위치와 주위 배경에 따라 야외세트장처럼 들어오는 것이다. 발은 산자락을 걷고 눈은 호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산과 호수가 만들어 내는 풍경에 빠져드는 것이다. 햇살까지 끼어들면서 분위기를 업 시킨다. 호수가 푸르기도 하고 검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고 출렁거리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있으니 굳이 누가 모델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자연의 조화다. 그것도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이니 더 좋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아침 길을 걷고 있으니 신선하면서 산뜻하고 상쾌하다.
편의시설로 중간 중간에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말은 없지만 그냥 편히 앉았다 쉬엄쉬엄 가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특급열차라도 타고 가듯 급히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두를 내려놓고 자연과 이야기라도 나누란다. 뜻은 꼭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눈이 있고 느낌이 있다. 직접적인 소통은 아닐지라도 뭔가 전함이 있고 받아들임이 있다. 그 자체만으로 대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분명히 자연 속의 하나임을 잊고 살아간다. 앙증스럽게 작은 몸집에 피운 꽃을 보게나. 저 나무는 줄기가 화살의 깃털처럼 생겼다고 화살나무다. 보들보들한 잎이 홑잎나물이다. 봄날이 주는 선물로 조금 채취한다. 알록달록한 곤줄박이가 기웃기웃 지켜보고 있다.
청설모가 존재를 확인시키듯 드러낸다.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여기가 멀고 먼 산속이 아닌 대전시의 일부분임을 일깨운다. 도심서 조금 벗어났는데 이런 곳이 있었구나. 등잔 밑이 어둡듯이 새삼스러워진다. 평평해지면서 공사 중이다. 대청호제2보조댐 공사를 끝내고 일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며 휴게소건물을 짓고 있다. 지금은 조경공사에 다소 어수선하지만 머잖아 사람들이 몰려드는 멋들어진 휴식공간으로 거듭 나리라. 작은 봉우리를 오른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청남대가 보이는 명소란다. 하지만 너무 가파르다. 지금은 물이 차올라 곤란하다며 옆구리로 돌아간다. 몸통이 하얀 자작나무 길이다. 아직은 조성 중으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제2보조댐을 건넌다. 공사로 어지럽혀져 길이 헷갈린다. 우왕좌하다가 호숫가로 간다. 대청호호수는 마치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돌듯이 반도처럼 불쑥 내민 지형을 오고가기에 때로는 제자리를 맴도는 듯싶기도 하다. 삼정동이다. 산소들이 다소 떨어져 보기에도 위엄이 있어 보인다. 한 때는 조정의 고관백작 벼슬로 불호령도 하였을 것이다. 그 자손은 그 기세를 죽어서도 누리려하고 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호수만 바라본다. 아늑한 산책로 길이다. 걷고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길이다.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주어 고맙다는 인사인지 자꾸 재잘거린다. 호수에 주인을 기다리는 것인지 손님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매여 있는 빈 배가 시무룩하다.
큰 도로변이 들어온다. 길은 벚꽃으로 환하다. 그림 같은 정자가 있다. 정자는 우리를 맞으려는 듯 비워두었다. 주변에 연못을 파고 수생식물을 심었으나 때가 아닌지 귀퉁이에 미나리만 무성할 뿐 메말라 볼품이 없다. 이쯤에서 점심을 즐기자며 정자에 올랐다. 다소 시끄러웠던지 갑자기 개가 컹컹 짖어댄다. 그냥 개 짖는 소리라 여기며 개의치 않으니 눈치 빠르게 입만 아프다고 조용하다. 고개를 숙이고 잠을 잔다. 개 팔자 상팔자다. 아침과 달리 구름이 다소 모여들며 바람이 차가워졌다. 다시 출발이다. 도로로 올라서니 호숫가의그림두편 이란 상호다. 상호치고는 좀 별난 데가 있다. 그래, 여기서 바라보는 대청호가 어찌 두 편의 그림뿐이랴 싶다.
도로를 타고 가다가 여흥민씨 종가집이다. 여기서 다시 산자락을 타고 오른다. 길이 어긋났던가, 철조망을 타고 넘고 좋은 길이 나오는가 하면 뒤엉킨 길을 질겅거리며 가다가 끝내는 산비탈을 타고 내려서니 갈전이다. 길은 가라고 있다. 그런데 사유지라며 길을 막았다. 길이 없으면 다시 길을 만들며 가야 한다. 와중에 할미꽃이다. 하나가 앞서 가고 그 뒤를 따르면 그날의 새로운 길이 된다. 처음에는 거칠다가도 그럴 듯한 길이 된다. 곳곳에 봄맞이 밭을 돌보는 손길이 바쁘다. 좀은 멋쩍게 다시 오르는 산길이다. 돌아보니 어디에서 잘못 되었는지 훤히 드러난다. 산자락에 자연산 두릅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줄기 끝에서 두릅을 딴다. 가시가 지켜본다.
침침해지나 싶더니 빗방울이 비친다. 비가 내리려나 보다. 항간에 믿지 못할 것이 일기예보라고까지 한다. 끝내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아침에 그 좋던 날씨가 돌변하였다. 일부러 우의를 내놓고 왔는데 늘 유비무환이다. 갈전노인회관 옆 정자다. 아무리 눈치를 보아도 대책이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지만 길을 나선다. 도로는 만개한 벚꽃을 보려고 차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좀처럼 빈틈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없이 차들만 벚꽃을 즐긴다. 다시 호숫가로 접어들었다. 낚시꾼은 큰 대구만한 배스를 낚아서 내팽겼다. 외래종으로 생태계가 변할 만큼 민물고기를 마구 잡아먹는 녀석이다. 그런데 아무리 품질 좋은 고기를 먹어도 배스 그 자체는 아무 맛이 없다.
숲이 우거지고 오솔길이다. 한눈팔다가는 호수로 미끄러진다. 왜가리가 난다. 바삭바삭 나뭇잎을 밟는다. 무척이나 급했던가. 길옆에 물이 조금 고였는데 어쩌자고 도롱뇽이 팔찌 같은 알 타래를 저리 많이 쏟아 놓았을까. 너도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앞에는 대청호 푸르고 맑은 물이 사시사철 출렁거리는데 왜 하필 이곳에서 목이 말라 마음을 조여야 하는가. 대대로 너희 종족이 이어오는 가통이라지만 너무나 애절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가랑비는 멎고 거대한 갈대밭이다. 참갈대는 키가 오종종하니 작아도 짱짱한 재래종으로 아직껏 대궁이 붉다. 푸드득 청둥오리 두 마리가 힘차게 물을 박차고 오른다. 물버들군락지에서 오늘의 종점인 찬샘마을로 들어섰다. - 2014.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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