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재일을 맞이하여
부처님 께서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시어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신지 45년 그 시간동안 부처님 께서는
한시도 중생의 곁을
떠나지 않으신 채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동고 동락하셨습니다
가사 한벌과 발우 하나 뿐이었지만
온우주를 꿰뚫는 진리의 몸이 시고 대자비의
몸이 시기에 인간은물론 하늘의 신들도
경배하고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세수 80세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내육신은
이제 가죽 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이 걱정근심하고 누가
교단을 이끌것인가가 관심을가졌지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제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다른것에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죽은뒤에도 내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은
나의 제일 가는 제자가 될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춘다의
공양을 드시고 열반를 드시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행복하다.울지 말아라.
우리는 항상 헤어져야한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것으로 부터 헤어져야한다.
우리가 사랑하는것으로부터 헤어져야한.
태어나는것은 죽어 가느니라.
꽃은 피었다가 지느니라. 아난아! 내 말을 잊지말라.
모든것 생명은 소멸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슬프니라
모든 생명을 가엾이 여기거라.
아난아! 바른 길을 걸어라. 자비로워지거라.
그러면 전생에 네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생에 마지막 전법은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마지막순간까지
제자들에게 의문나는것이 있는가를
세번이나 물으신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모든것은 변하여 가니 게으르지말고 힘써 전진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고. 길에서 가시니
부처님의 생애는 어떤 영화도 호사스러움도
없는 성자의 생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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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의 의미
열반이란 -범어로 니르바나에서
나온말로 "불어서 끈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것인가요?
바로 번뇌의 불을 불어서 끄는것입니다
그래서 존자 사리불은 열반이란 ?
탐욕을 영원히 없애고 성냄을
영원히 없애고 어리석음을 없애어
모든 번뇌를 다한 것이라고 말하고 열반에 이른 방법이
바로 여덟가지 바른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성도 이루신 그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들어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상세계는 생멸하는것이고
생자필멸(生者必滅)이니
부처님은 이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보이신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육신의 소멸을
또한 열반이라고 부릅니다.
열반은 두가지의 의미로 있는데
첫째는 욕망의 불길이 꺼진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한없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이사라지면
바로 열반인 것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지고
번뇌의 불이 소멸되어 지혜가 완성된
"깨달음"을 열반이라 부르며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셨다" 할때의
반열반의 반(般) 완전의 뜻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부처님의 입멸인 죽음이란 의미로 물론
큰스님의 죽음도 여기 열반에 든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두열반을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이라 부릅니다
유여열반은 자기의 수행으로
고통의 원인인 번뇌는 끊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업보롤 받은 신체가
멸하지 못한 열반을 말합니다
즉 아직 살아있으면서 욕망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여열반은 몸이나 몸에따르는
업까지도 완전히 소멸된것.
즉 죽음에 드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수행을 피나게 하여
번뇌와 욕망을 쉬고
안락함을 얻었다 하더라도 몸이 있으면
그몸에 따른 업으로 인해 새로운
번뇌와 욕망과 고통이
생길수 있으므로 완전하다고는 볼수 없습니다.
육체까지도 사라져야만
삼독번뇌가 뿌리내리지 못하므로
남김 없는 열반이라고 합니다
몸이 있는 열반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며,
몸이 없어야만 하는 죽어야만 완전한 열반이라고
하는것이 근본불교의 열반관입니다
그러나 번뇌를 소멸하는것만이 불교수행이 아니라
지혜를 생성하게 하여 열반을 얻게하는것이
대승불교의 열반관인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의 세계를 나타내고 실현하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생을 살고 죽음을 사는
대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주체적으로 죽음을 실현함으로써
영원의 세계를 여는 불신(佛身)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육신은 물에 비친달과 같고, 법신(法身)은하늘에 있는
달과 같은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십니다
부처님이 오고 감이 없으면서도 열반에 드는 것은
중생들의 오해를 막기 위함이며 진정한 몸은
몸을 떠나서 있는데 게속해 육신에 머물면 중생들이
부처가 되면 장수한다고 오해할까봐
열반에 드신것입니다
열반에 기쁨은 네가지 좋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을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합니다
열반의 경지에서는 모든것이 진정으로 항상하고
즐겁고 진정한 나이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번뇌와 무명에 가려져서 뒤바뀐 마음을 내어
나에 대하여 내가 없다고 생각하고,
항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생각하고
깨끗한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
즐거운것을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번뇌에 가려져 그런 생각을
내는 것이니 마치 술 취한
사람이 해와 달을 보고는 돌지 않는 것이
돈다고 생각하는것과같습니다
나는 곧 부처라는 뜻이며 항상한 것은 법신이며.
즐거운 것은 열반이며 .
깨끗한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법입니다.
깨달음의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맛보려면
이처럼 번뇌와 욕망에 가려져 있으면
상락아정을 바르게 보고느낄줄 알아합니다
뒤바뀐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열반락을 느낄수 없습니다
열반은 눈으로 귀로 코로 혀로 몸으로 식별할수는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수 있는 것이며
올바로 실천하는 수행자가 청정한 지혜로 보는 것입니다
열반이란 고통의 실상을 바로 보아 그고통이 전해주는 욕망을
불길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언제나 항상 우리 앞에 열려 있으나
즐거움만 보기를 원하고 괴로움은 보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얄팍한 마음이 열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번뇌는 보리와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잊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은 본래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항상 계시는
곳이지만. 우리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그 세계를
욕망의 불꽃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번뇌를 바로 보는것. 그것이 바로 지혜를 얻었다고 다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그 자리에서 번뇌를
바로 본다면 그곳에서 열반의 기쁨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경전을 통해 열반으로
가는 길을 다채롭게 제시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온 세상에 항상 함께 계신다는 불신상주(佛身常住)
에 입각하여 우리가 사고 있는 이땅에 부처님을 정성껏
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을 지닌다면 당연히
부처님이 계실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청소도 하지않고 지저분한 상태에서 귀한 손님을 초대할수
없는 것처럼 부처님을 이 사바세계에 모시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몸과 마음과 주변을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늘 말씀하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힘써 닦아야할것입니다
열반과 불자의 삶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자 그 순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고
갑자기 천둥이 쳤습니다 출가와 재가 제자들은 물론
하늘과 땅. 그리고 이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슬퍼했습니다 부처님의 시신은
음악과 꽃. 향과 등으로 장엄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 대로 화장의식을 행하고 불을 붙였으나
다비대에 불이 전혀붙질 않았습니다
이때 상수 제자인 가섭이 500명의 대중과 함께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듣고 쿠시나가라로 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가섭은 밀려오는 슬픔과 아쉬움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
무아. 고. 공의 법을 생각하면서 억누르며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 가섭의 일행이 도착하여
부처님의 유해에 예배를 올리자 관 밖으로 두발이 내 보이셨습니다
가섭이 예배를 끄내자 화장대에서는 저절로 불이 붙었다.
마치 가섭을 기다린 듯말입니다
다비가 끝난 후에 부처님 몸에서 나온 사리는
여덟 말이나 되었으므로 근처 8개국에서 모인 왕들이 고루 나누어
가졌고 사리분배를 한 도나 라는 바라문이 사리를 담았던 항아리를
가져가고 뒤늦게 나타난 나라의 와에게 재를 나누어주엇습니다
열반에 드실 때의 부처님은 철없는 어린것을 두고 멀리 떠나는
어버이처럼 느껴집니다 이험난한 고해(苦海)에
아직 수행이 익지 않은 중생들을 두고 떠나기전에
한 말씀이라도 더해주려고 애쓰시는 그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열반에 드신 부처님 앞에서
몸부림치는 제자들과 슬픔대신 무상함에 대한 절실한
공부로 받아들이며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견디는
제자들의 두가지 모습을 우리는 흔히
대웅전 쌍림 열반상 벽화에서
볼수 있습니다 가슴 저미는 슬픔을 극복하며
부처님이 남기신 법등명 자등명의 법문을
마음깊이 새기고 수행정진하는 길만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덕에 보답하는것입니다
열반은 깨달음의 구현입니다
깨달음은 우리 무두가 하나의 그물에 얽혀있는
연기(緣起)적 공통체임을 깨닫는 것이고.
사회와 민족 그리고 자연과 세계가 하나임을 올바로
인식하는 것입니다.따라서 열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자비를 구족해야합니다.
왜냐면 열반은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역동적 실천인것이기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45년동안 쉬지 않고 중생속에서 진리를
가르치신것이 바로 이러한 열반의 구체적 실천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날을 맞아 일생동안 중생을 위해
헌신하셨던 중생을 기리고 그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처님을 닮아 가는것입니다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쉬지 않고 정진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것이
바로 부처님을 닮는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그늘진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곳으로 달려가
대비수고(大悲受苦)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불자의 자세라합니다
부처님 열반재일을 맞이해
부지런히 정진하시고 마음속에불길을
끄는것이 열반이라합니다
삼독의 불길을 바로 잡으시고
부처님 닮아가는 삶을 사시기를 발원합니다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광명두손모음
부처님의 열반모습
쿠쉬나가르에 도착하여 사라수들이 있는
숲에 자리를 펴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시게 되니,
보드가야에서 '위 없는 깨달음'을 증득하신지
45년이 지난 80세 때의 일이었다.
부처님께서 작별을 서러워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남기신 말씀은,
평생에 걸쳐 말씀하셨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다시 한 번 지적한 것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항상 하던 말을 잊었느냐?
가까운 사람과는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법이다.
세상에서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세월을 따라 변해간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너희들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법에 의지하고 다른 것에 의지 하지 말아라.
'조건 지어진 것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썩어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벗어나도록 하라.'
(열반일: 한국, 남방권 음력 2월 15일) -( 광명님 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