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산행
창원 정병산(566.5m)
창원 시내를 두 팔 가득 안은 산
철도산행을 담당했던 윤성중 기자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다. 나에게 주어진 첫 미션이자 앞으로 계속 이어갈 테마산행이라는 사실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사람들의 가슴에 아련한 추억과 낭만을 실어나르는 기차와 광활한 자연 앞에 사람을 무한 강동하게 만드는 산의 만남이라니, 누구라도 반하지 않고 배겨 낼 수 있을까.
8시40분, 서울역에서 경전선 KTX에 몸을 싣는다. 우리의 종착지는 창원역, 목적지는 정병산이다. 철도산행의 오랜 지기 철도산악연맹 김윤수 구조대장, 이효기 부대장과 설레는 인사를 나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창원역에 오전 11시33분에 도착예정인 새로운 KTX는 기존 KTX와 확실히 차별화된다. 한 량이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한 구역당 이열종대 좌석이 여섯 줄밖에 없는 구조로 앞뒤좌우 공간이 매우 넓다. 훨씬 넓어진 창은 벽걸이형 LCD텔레비전을 바라보듯 창밖 풍경을 시원하게 보여준다.
"서울에서 창원까지 철도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으니... 창원에 있는 산을 서울에서 출발해 하루 중에 오른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김대장이 툭 하고 내뱉는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한 시간 여를 내달리던 열차가 대전역에 정차한다.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 머리 위로 눈발이 흩날린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소한이다.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는데 오후 산행이 슬쩍 걱정된다. 정병산은 낙남정맥의 한 축으로 창원과 김해 사이에 걸터앉은 해발 566m의,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창원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창원의 주산으로서 어느 곳으로 오르든 꽤 힘든 등산로를 펼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더니 졸음이 몰려온다. 창밖 풍경이 조용히 페이드아웃되며 얕은 꿈속으로 떨어진다. 그 사이 열차는 힘차게 달려 창원역에 당도한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역 밖으로 나가면서, 차우언이 명실상부한 공업도시임을 피부로 확인한다. 그때, 고운 얼굴로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드는 한 사람, 오늘의 정병산 산행을 함께할 경상남도 관광정보센터 일본어 통역사 안순자씨가 보인다.
11시50분, 점심을 먹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안순자씨가 안내하는 순두부집에서 뜨끈한 순두부와 뚝배기밥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산행들머리인 용추저수지로 출발한다. "날씨가 엄청 춥다고 하더니 창원은 봄날이구만." 김대장이 기분좋게 한마디 한다. 화창한 창원의 날씨처럼 오늘의 산행도 맑기를 바란다.
오후 1시쯤 용추저수지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용추저수지 옆으로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산길이 등장한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용추고개까지 천천히 오른다. 가파르진 않지만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다. '숲속나들이길' 이란 팻말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붉은 흙길을 따라 걷는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큰 유행이 되면서 둘레길을 만들어 소개하고 있는 곳이 많다. 정병산도 그런 발걸음에 맞추어 '숲속나들이길' 이란 깜찍한 이름을 지어 흙길을 다듬어 놓은 것. 덕분에 일행은 똑같은 길을 반복해 도는 실수를 한다.
용추고개를 지나 북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산세는 그 즈음부터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 길을 오르니 간단하게 몸을 풀 수 있는 운동시설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일행은 목을 축인 후 두꺼운 외투를 벗어 배낭 안에 넣는다. 역시 남부지방은 다르다. 오늘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도 홑겹 차림으로 정상까지 문제없을 것 같다. 동쪽으로 뻗은 길이 있는데 우곡사로 향한다. 일설에 정병산의 산세를 소에 비유하였다 하는데 우곡사란 사찰의 이름은 그것에서 비롯된 듯하다.
20분을 더 올라 도착한 내정병봉(493m) 북쪽으로, 저 멀리 2km가 넘게 남은 정병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우뚝 솟은 불모산도 보인다. 그 사이로 창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바라보는 창원대학교가 무척이나 넓다.
"내정병봉에 올라선 것 뿐인데도 창원 시내가 훤히 보이네요. 아참, 창원이 얼마 전에 마산, 진해와 통합되지 않았나요?"
"네, 지난해 창원, 마산, 진해가 통합되면서 '창원시'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중남부 일대를 차지하게 되면서 현재 인구가 108만 정도고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요람으로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산 아래로 공업단지가 보일 거예요."
그림 같은 풍광의 정병산
안순자씨의 깔끔한 설명에 괜스레 산 아래 창원이 달라 보인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산의 정취를 즐기던 일행은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정상을 향한다. 느슨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그리고 또 다시 등장하는 오르막길, 그 끝에 독수리바위로 향하는 나무계단이 있다. 계단과 계단 사이를 흘깃 쳐다보고는 절벽의 아찔함에 다리가 그만 묵직해진다. "낮은 산이라 우습게 생각했더니 경치가 장관이구만." 김대장이 독수리바위에 올라서 한마디 한다. 능선길 따라 내내 이어지던 창원 풍광이, 북동쪽으로 마치 바다처럼 느껴지는 낙동강 줄기가 힘차게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그 옆에 철새도래지로 알려진 주남저수지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3시40분, 독수리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무뚝뚝한 바위산 능선길을 지나 20여분 걸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억새밭이 등장한다. 다른 산에 오른 듯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에, 발아래 창원조차 색달라 보인다.
정병산 정상이 코앞이다. 헬기장을 지나 물속 깊이 잠수할 때처럼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다리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정상으로 튀어 오른다. 콩콩 뛰는 심장소리가 귓가에서 흔들린다. 600m가 채 되지 않는 정병산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기막히다. 남쪽으로 비음산, 대암산이 보이고 그 뒤로 내정병봉에서 바라보았던 불모산이 포개어진다. 정상에서 20m쯤 떨어진 곳에 단정한 정자가 하나 있다. '전단쉼터' 라는 이름도 가졌다. "정병쉼터가 아니라 전담쉼터네." 김대장이 정자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자 안순자씨가 "옛날에는 정병산이 전단산으로 불렸대요. 그래서 정자 이름을 '전단쉼터' 라고 지었나 봐요."
정병산에는 몇 가지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정병산이라 불리고 있지만 본래는 '전단산' 이라 하였다. 통일신라 말기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사와 이에 소속된 많은 사찰이 산을 중심으로 건립되면서 불교가 성하게 되고, 정병산은 불교의 요람으로 여겨진다. 이에 고려시대 이후부터 '전단산'이라 불리게 된다. 마야부인이 전단향나무로 만든 평상 위에서 석가모니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전단' 이란 단어는 불교와 매우 관련이 깊다.
산이 날아오른다. 전단쉼터에 앉아 아래를 굽어보고 있자니 봄날 꽃길 따라 출타한 여인네 마음처럼 가슴이 마구 일렁인다. 여기서라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효기 부대장이 건네는 술 한 잔이 더 짜릿하게 느껴진다.
정오가 지나 산행을 시작한 탓에 해가 서산마루로 달음질하고 있다. 일행이 걸음을 서두른다. 소목고개를 지나 창원 종합사격장으로 내려갈 게획이다. 정상에서 360m 지점까지는 바싹 선 경사의 내리막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한걸음씩 떼고 있는데 앳된 얼굴의 무리가 올라온다. 물어보니 날머리에 있는 사격장에서 훈련 중인 학생들이다. 혹시 아는가, 훗날 저들 중 누군가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겨줄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미래의 금메달리스트들'을 향해 싱긋 웃어본다. 소목고개에서 어느 방향인지 잠시 주춤하다가 하산길을 찾는다. 묵묵히 길을 내려가는 나에게 김대장이 묻는다.
"정기자, 혹시 비둘기호라고 들어본 적 있어?"
"아유, 당연하죠. 하루 온종일 타본 적도 있는 걸요. 외가댁이 제천에 있었는데 아침에 비둘기호를 타면 다 저녁 때 도착했죠."
아련한 어릴 적 기억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추억의 비둘기호구만. 완행열차만이 전하는 맛이 있지. 지금은 맛볼 수 없지만."
그 대신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 이를테면 서울에서 출발해 하루 만에 경상남도의 멋진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일이 가능해지면서, 완행열차와는 또 다른 빛깔의 추억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겨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산행길잡이
용추저수지-(40분)-용추고개 이정표-(20분)-우곡사 갈림길-(20분)-내정병동-(40분)-독수리바위-(30분)-정상-(30분)-소목고개-(40분)-창원종합사격장
정병산은 창원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비음산(510m), 대암산(669m)을 경유하는 '창원외곽 1일 등산 종주 코스'로 이름나 있다. 소목고개와 정상 사이의 등산로가 약간 급경사이나 전체적으로 완만한 산이며, 산 정상에서는 창원공단과 정방향으로 구획된 시가지의 모습, 동읍과 대산면의 광활한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행글라이더 활공장시설이 인근에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정병산은 높지 않고 오르내림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곳곳에 운동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내정병동, 독수리바위를 지나는 능선을 따라 샘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용추저수지에서 길상사를 지나 내정병봉에 오르는 길도 있는데 용추고개로 향하는 코스보다 더 가파르다. 내정병봉에서 독수리바위까지는 30분 정도 걸리고 442m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다. 독수리바위에 가까워지면 나무계단이 보인다. 계단이라고는 하지만 바위절벽이 위험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서 올라야 한다. 정병산 정상에는 여름에는 태양을 피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피하는 '전단쉼터' 라는 정자가 있다. 하산길은 일반적으로 소목고개를 지나 봉림사로 내려가는 경우와 창원종합사격장으로 가는 길이 있다. 어느 곳으로 날머리를 정하든 창원 시내로 가기에 좋다.
*교통
KTX 경전선(서울-마산)은 주중(월~목) 14회(하행 7회, 상행 7회), 주말(금~일) 24회(하행 12회, 상행 12회) 다닌다. 요금은 서울역에서 창원역까지 47,100원(특실 63,100원)으로 3시간쯤 걸린다. 창원역에서 경남도청 방향 버스(110번, 122번)를 타고 용추저수지까지 가면 된다. 택시는 8~9000원쯤 나온다.
*잘 데와 먹을 데
정병산 주변에는 들머리 쪽이든 날머리 쪽이든 창원 중심지와 가까워 식당과 숙박시설이 많다. 창원터미널 인근의 드래곤관광호텔(055-237-1001), 북면황토방온천장(298-9890~2), 한마음파크장(276-0456) 등이 있다.
먹을 곳으로 반지동의 구복바다횟집(265-7610)은 매일 아침 잡아올린 자연산 회만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기로 유명하다. 시원한 매운탕이 입맛을 돋운다. 인근의 다콩순두부(288-2630)는 다양한 종류의 순두부찌개가 있다.
*볼거리
봉림사 정병산 아래 소목고개를 지나 자리하고 있는 봉림사는 통일신라시대의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봉림산은 정병산의 또 다른 이름)의 중심사찰이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7년(894)에 현욱과 현욱의 제자인 진경대사가 진례성 제군사이던 김율희의 도움을 받아 창건하였다. 신라 민애왕 때부터 고려 광종 때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귀의하기도 한 대찰이었다. 경상남도에서는 봉림사지를 경상남도기념물 제127호로 지정하고, 현재 봉림사지 입구에서 떨어진 곳에 1900년대 중창한 봉림사가 법맥을 잇고 있다. 277-0866.
마산어시장 마산이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마산어시장은 창원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남성동, 신포동에 걸쳐 있는 어시장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남성동 제일은행 자리에 조창이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1900년대 이후 계속적으로 발전해온 마산어시장에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횟집골목과 맛 좋기로 소문난 진동산 생선을 살 수 있는 진동골목, 젓갈골목, 건어물골목 등이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매해 마산어시장 축제를 열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글쓴이:정희영 기자
참조:정병산
참조:정병산~비음산
참조:비음산
참조:마산,창원의 산 정병산~대암산
참조:철도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