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면,
( 섬,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그리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 영화가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쯤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항상 있다. " 무엇인가 말하고자 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복선과 메세지 등이 여기저기 있는 거 같은데... 그저 우울하고 리얼리티한 영화만은 아닌 거 같은데...
이 애매모호한 느낌은 도대체 뭘까? " 그래도 [나쁜 남자]는 예전 작품인 [섬]과 [수취인 불명]보다 대중성을 조금 더 추가한 듯 싶다. 예전처럼 영화 보고 나서 " 이게 도대체 뭔 소리지? " 같은 반응이 아니라, 어느 정도 스토리를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나쁜 남자]는 " 남자 주인공이 나쁜 놈인가 아닌가? " 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가 던져주는 한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다양하게 낸다. 그 남자는 정말 나쁜 놈일까 아닐까? 당신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좋아하는 여자를 창녀로 만들고, 그 여자의 인생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남자. 죽어서도 저주할 것처럼 미워하더니만, 어느덧 그 감정이 연민으로 변해버림을 느낀 여자. [나쁜 남자]에는 선악의 구도가 명백히 구분 지어진 것일까? 냉정하고 폭력적이며 온갖 악의 요소를 다 갖춘 듯한 남자 한기. 과연 그는 진정한(?) 나쁜 놈일까? 거울 뒤에서 선화를 바라보다가, 첫 손님이 들어오자 정태를 시켜서 쫓아낸 남자, 남자 친구와 첫 경험을 하고 싶다는 선화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준 남자, 어쩔 수 없이 손님을 접대하는 선화의 모습을 보고 울분에 받쳐 지나가던 취객을 때려눕힌 남자, 방안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부하들의 잘못을 마구 꾸짖는 남자, 집안 사정으로 돈이 궁한 정태 아버지의 수술비를 선뜻 마련해 주는 남자, 정태 대신 살인죄를 덮어쓰고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남자, 선화와 삼각 관계였던 명수에게 칼로 찔려서 죽어 가는데도 증거물인 칼을 땅속에 숨기는 남자, 선화가 자신의 여자가 결코 될 수 없음을 느낀 뒤 그녀를 보내주는 남자... 이런 모습들을 감안해보면,
한기는 말 그대로 " 나쁜 남자 " 라고 보기 어려울 듯 싶다. 그렇다면 선화는 착한 여자일까? 혹시 나쁜 남자에 비해서 착해 보인 것은 아닐까? 서점에서 사진 화보집 일부분을 자기 마음에 든다고 남몰래 뜯은 여자, 우연히 습득한 지갑 속의 많은 돈을 못 본척하고 가지려는 여자, 돈 주인의 추격에 순순히 자수하지 않고 도망치다가 잡힌 여자... 몇 가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선화 역시 한기에 비해 그리 착한 거 같진 않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인 [나쁜 남자]는 왜 한기를 지칭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좋아하는 여자를 사창가에 넘겼다는 사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 저 남자는 나쁜 놈이야!!! " 라며 손가락질한다. 여기서 한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왜 한기는 선화를 사창가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단지 길에서 당한 모욕을 갚아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쉽게 말해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옆에서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대학생과 깡패 두목,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관계이다. ( 사랑은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 문제를 간과할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본다. )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몇마디 없었던 주인공 한기. "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 " 명수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내뱉은 말이다. 이건 대학생 여자와 사귀어 보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명수에게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창녀로 만들어서라도 선화를 바라보고 싶었던 자기 자신에게 호통치는 말이었을까? 결국 그가 " 나쁜 남자 " 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다. < 사랑하는 여자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것!!! > 나 역시 한기가 " 나쁜 남자 " 라는 의견에 동감하는 바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한기를 본다면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항상 지켜볼 수 있는 사창가에 데려오고 싶었던 것은 그만큼 사랑하기에 그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욕을 당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다보니 그럴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아파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특유의 폭력성과 선정성과 사실성은 [나쁜 남자]에서도 계속된다. 예를 들어, 한번 맞았다 하면 최소한 멍 들고, 최대한 피투성이가 된다. 그렇다고 곱게 맞는 것도 아닌 비참하고 불쌍할 정도로 맞는다. 종이를 날카롭게 접어서 상대방의 목을 찌른다던지 큰 유리창을 들고 오다가 난데없이 배를 찌른다던지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놀라운 장면이 있으니, 그건 바로 선화의 방에서 벌어지는 오바이트 사건이다. 술 취해서 잠자던 선화, 어느새 그녀 곁에는 한기가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나서 게슴츠레한 얼굴로 두리번 거리더니,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김기덕 감독이 아니면, 김기덕 감독 영화의 배우가 아니면, 쉽게 해낼수 없는 장면이다.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그 장면을 재현한듯한, 말로 형용할수 없는 리얼리즘의 극치그렇게 지저분한 장면을 보면서도, " 우오~~~!“ 라며 괴성을 지르면서도, 그럭저럭 별탈 없이(?) 넘어갈수 있는 것은 김기덕 감독만의 개성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왠만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현실감 100%의 장면들, 난 그런 장면들 때문에 김기덕 감독 영화의 실재감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한두마디의 대사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눈빛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조재현. " 조재현은 깡패 연기가 적격이다! 눈빛만 봐도 무시무시하다! " 등의 말을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을수 있을 정도이니... ^^;;; 아무 말 없이 관객에게 캐릭터를 표현할수 있는 능력, 그것 또한 연기력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왠지 모르게 [섬]의 희진(=서정)을 많이 닮은듯한 선화(=서원).
이름도 비슷하군. ^^a 영화 초반, 조금 어설픈듯한 연기력... " 아~!! 신인 배우라서 그런가? "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창가에서 일하게된 뒤부터 눈에 띄게 달라지는 그녀의 모습.
어리숙한 대학생 역할은 연기력과 관계없다고 해도 별 문제없었지만, 몸을 파는 창녀로 본격적인 돈벌이에 돌입(?)하면서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변하기 시작했다. 가벼우면서도 무거운듯한, 싸게 보이면서도 비싼듯한 선화의 모습은 신인 여배우 서원의 캐스팅이 Good 이라고 평가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혹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여자 주인공들의 전통이 생겨나는건 아닐까? " 신인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 작품에 출연하면 뜬다~ " 같은 전통 말이다. 한기의 부하였던 명수와 정태역을 맡은 배우들도 큰 무리없이 잘 했고, 사창가 왕마담역을 맡은 배우도 잘한거 같다. 어눌한 캐릭터 설정이 오히려 적격인듯싶다조금 아쉬운 것은 영화 초반, 한기와 선화의 첫 만남 장면에서 시민들도 그렇고 한기와 싸웠던 군인들도 그렇고 너무 어설프지 않았나 생각된다. 섬뜩한 느낌의 눈빛을 지닌 조재현에 비해서 다른 사람들이 너무 비교된거 같다.
[나쁜 남자]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두가지 있다.
첫째는 바닷가에서 자살하는 여자이고,
둘째는 길에서 방황하는 선화에게 외투를 입혀주는 여자이다.
첫번째 등장하는 여자는 영화 후반부에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설명되는 것보다, 관객이 그 여자에 대한 어떤 이미지와 설정을 느끼게 해준다. 이 여자에 대한 종문이의 견해는 조금뒤에 쓰기로 하고... 두번째 등장하는 여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걸까? 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봤다. 결과야 어쨌든 이제 그녀는 실패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게 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망연자실 + 자포자기한 모습의 선화를 김기덕 감독은 감싸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혹시 그녀를 그렇게 만든 한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선화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럴수 밖에 없었던 한기의 안타까운 마음이거나, 또는 앞으로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게될 그녀 모습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이 아닐까? 더 넓게 봐서, 어쩌면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는 관객 시선을 대변한 것이 아닐까? 그 주체가 누가 되었던지간에 그녀에게 외투를 덮어준 여자는 그런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의 내용에서 언급했던 자살녀의 등장. " 음, 역시 이 바닥(=사창가)의 끝은 자살인가 보다.
자살녀가 남긴 얼굴없는 2장의 사진은 자기 인생에 대한 부정 또는 과거를 잊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는가 보다. "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화는 다시 사창가로 붙잡혀오고, 사형장 문턱에서 한기가 살아서 돌아오고,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벽거울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러던중 우연히 벽거울에 붙은 사진의 빈 자리에 선화와 한기의 눈빛이 교차된다. 사진속 남녀는 다름아닌 선화와 한기의 모습.이부분에 대해서 난 이렇게 해석했다. 자살한 여자는 삶을 포기한 선화의 모습이다.
그 당시, 죽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었던 그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속의 여자는 새로운 인생을 찾은 선화의 모습이다. 그것이 한기를 사랑하게된 변화를 표현했다던지, 다른 어떤 것에서 삶의 희망을 찾았다던지간에 죽음과는 정반대인 삶의 모습.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닌 되찾은 모습의 선화라고 본다. 그렇다면 사진은 왜 거울에 붙여져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선화의 갈등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한기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어느덧 연민으로 바뀐 것을 선화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사진속 두 남녀의 얼굴이 없는채로 남아있는 사진, 선화와 한기 또한 그런 사진처럼 자신의 마음을 정하지 못한채 + 표현하지 못한채 떠도는 모습을 대변하고 있던게 아니었을까...
처음 만났던 길거리 벤치에서 재회한 두 사람. 이제 선화는 한기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기가 어색하다는 표정을 짓는데, 선화는 슬그머니 한기에게 손을 내민다. 한기에 대한 선화의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결정되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그들은 떠난다. 짐칸을 침대방으로 개조한 트럭을 타고, 바닷가에서 매춘을 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누군가 그것은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고 말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렇지 않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그 삶을 평가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제 3 자의 입장일 뿐이다. 선화와 한기에게는 그렇지 않을수 있다.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게 바로 선화와 한기의 삶이다. 이젠 더이상 선화와 한기의 만남 + 사랑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왈가왈부할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삶이고 운명이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당사자가 바로 그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