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 TV방송을 80년 광주에서 보았다는 개소리.
일단 TV에서 북한방송 자체를 봤다는 개소리는 자유게시판 내 글에서도 이미 설명한 바 있고, 역사학도 너도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방송 표준과 북한의 방송 표준이 다르기 때문에 개소리라는 걸 너도 이미 알겠다만 다시 설명한다.
우리나라 티비 송출 방식은 NTSC방식 방송이고 북한의 티비 송출 방식은 PAL방식 방송이다. 따라서 NTSC방식의 티비로 PAL방식의 방송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동안 잠깐의 간섭으로 볼 수는 있긴하나 정상적인 시청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럼 북한에 있는 TV방송국 전체를 한 번 살펴보자. 조선중앙티비, 조선교육문화티비, 만수대티비, 개성티비. 총 4개의 방송이 있다. 개성티비를 제외한 모든 방송은 PAL방식으로 송출을 하니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성티비는 1971년 4월 15일 개국한 대남전용 TV방송국으로 북한의 TV송출방식인 PAL방식이 아닌 한국과 같은 NTSC방식으로 전파를 송출한다. 그럼 이 개성티비를 한국에서 시청할 수 있느냐?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간섭(방해)전파를 쏘기 때문에 정상적인 시청이 불가능하단다. 개성티비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티비 채널(케이블 방송 채널이 아님)로 10번(서울지역 MBC 채널11번)에 가까운데. 10번이란 채널은 아예 나오지를 않는 채널(방해전파 덕분에)이란 말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방송을 보는 것은 불가하다.(물론 북한과 가까운 강원도나 서울,경기 일대는 흐릿한 화면으로 잡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 전라도 광주에서는 절대 불가하다)또한 쉬운 예로 서울에서 위성안테나 없이 일본방송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거리상 제약에 의해서 80년 5.18당시 광주에서 북한 방송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지금은 위성안테나로 북한 방송을 시청할 수는 있다. 물론 이 경우에 국가보안법등과 관련한 문제가 있을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결론적으로 북한 TV방송을 80년 당시 광주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2. 북한 라디오방송을 80년 광주에서 들었다는 개소리.
라디오 방송에 관한 아주 짧은 상식부터 공부하고 들어가자.
라디오 채널에는 중파, 단파 채널이 있는데 중파채널은 단파에 비해 음질이 낫고 가청권이 짧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면서 부산지역방송의 라디오를 들으면 일정 지역 범위를 넘어서면서 들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FM방송의 가청권은 서울까지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며 이것은 시사용어사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양FM방송은 주파수 92.5MHz나 105.2MHz로 방송을 하고 있어 서울까지 가청권에 들어간다." 따라서 광주에서는 평양의 FM방송을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단파 채널을 알아보자 단파 채널의 경우 음질은 떨어지지만 가청권이 넓어진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단파채널의 북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허나 "한국 라디오의 변천사"라는 것을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먼 곳의 방송까지 들을 수 있는 단파 라디오의 시판은 북한의 대남 단파방송에 따라 시판이 금지되었다가 1993년에 허용되었다." 즉, 단파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대한민국에서는 1993년에서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북한 방송을 80년 광주에서 들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80년 광주에서 티비나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들었다는 개소리는 불가능하다. 원천적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한 것은 아니나 거리의 제약상 말을 알아먹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도 니가 인용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합리적으로 유추하여 보건대 당시 광주에서 아마추어 무선사 즉, HAM의 라디오 통신을 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대학의 동아리(써클) 부서에 무선통신 동아리 "HAM"이 존재한다는 것은 대학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3. 북한에서 80년 5.18당시 광주를 생방송 중계 했다는 개소리.
일단 공부부터 하자. 당시에 SNG(Satellite News Gathering, 인공위성을 이용한 TV중계 시스템)를 북한에서 이용했을리 만무하니 M/W방식의 중계에 대해 알아보자.
TV방송의 프로그램 중계는 주로 지상파 마이크로 웨이브(M/W)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단다. 1㎓이상의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M/W 중계방송의 가장 큰 단점은 송신기와 수신기간 일직선상에 장애물이 없어야 송수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이나 건물 등 장애물이 있으면 마이크로웨이브망과 지상에 설치된 중계안테나를 이용해 2-3단계, 많게는 5단계까지 릴레이식 방송을 하는데 그러다보니 화질과 음질이 많이 떨어지고 도서지방, 산간오지에서는 중계방송을 하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광주에서 북한까지 생방송 중계를 하려면 방송 중계차 뿐만 아니라 북한과 광주 사이에 적어도 5개 이상의 중계 안테나가 있어야 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에 중계가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단 말이란다. 그러니 앞으로는 제발 북한 생방송 이런 개소리는 집어치워주라.
4. 역사학도가 제시한 탈북자들의 증언 내용
(아래 인용한 내용은 역사학도가 댓글로 써서 붙인 http://blog.naver.com/bookclub/40013523914 이곳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나저나 혐오스러온 꽃장식 니 얼굴 좀 어떻게 하면 안되겠니?)
[80년 5월 18일 북한 방송은 저녁 7시와 9시 뉴스 말미에 갑자기 "남조선에서 광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광주폭동' 소식을 싣고 사진들을 실었다. 시내회관에서는 조총련을 통해 입수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무료로 방영했다.]
===> 위 증언은 명백하게도 5.18 광주의 북한 간첩 침투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첫째, 이 탈북자들이 5.18일이라는 정확한 날짜의 북한 방송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며(일반인들은 자신들과 무관한 타국의 어떤 뉴스를 그것도 20년이 넘은 뉴스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북한의 핵보유 선언이 우리나라 뉴스에 몇년 몇월 몇일에 있었는지 물어본다면 자료를 찾아보지 않고 몇월 몇일이다라고 즉각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둘째, 북한 입장에서라면 지극히 환영해야할 뉴스를 뉴스의 말미에 소개하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셋째, 북괴 자신들이 개입되어 만들어진 상황이라면 절대 폭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특수부대 요원들이 북파되어서 일개 지역을 소요상태로 만들었다면 뉴스에는 어떤식으로 소개가 될까? 오히려 그러한 군 작전이 국가안보상 기밀 사안이므로 방송이 되지 않거나, 방송되더라도 폭동이란 늬앙스의 단어는 절대 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남조선 인민들이 폭정에 항거하여 봉기하다" 이런 늬앙스로 북한에서는 방송을 해야하지 않을까?
넷째, 결정적으로 이 사실을 증언한 당사자들이 북괴의 간첩 침투설을 괴상한 유언비어라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위 증언자들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괴상한 유언비어들도 나돌았다. 유언비어 중에는 "북한의 특수부대 한 개 여단이 잠수함을 타고 서해로 들어가 무장 봉기군과 합세했다. 특수부대는 남한 사람들과 같이 장발도 하고, 말씨도 서울말로 고쳤다", "계엄군을 지휘한 사람은 평북 정주에서 월남한 대지주의 딸인데, '폭도들은 빨갱이다, 시민들은 흩어지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작원들이 주동이 되어 대열을 정리하고 계엄군과 싸웠다"는 등등 믿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 증언 당사자들까지 괴상한 유언비어라고 하는데 이것을 마치 증거인냥 들이미는 역사학도의 정신상태가 다시금 궁금해 진다.
내가 보기엔 이준형 니가 걍 병신인듯...ㅋㅋㅋ
내가 보기엔 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 대꾸도 못 하고 욕만하고 쳐 웃고가는 니가 진짜 병신인듯. 쯧쯧
http://cafe207.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6pwh&fldid=DVlE&contentval=0000Mzzzzzzzzzzzzzzzzzzzzzzzzz&nenc=elG-wjTaG8HTXr3R35mH3g00&dataid=22&fenc=IRtZoOlTWXE0&docid=16pwh|DVlE|22|20080518032547&q=%B1%A4%C1%D6%C1%F8%BE%D0%BB%E7%C1%F8&srchid=CCB16p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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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도님은 불리하면 도망가는 습성이 있는게 눈에 보입니다..
윗글은 맞습니다. 내가 바로 개성에 가까운 곳에서 개성방송국과 엠비씨를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로 케이비에스는 안보이고 개성방송국과 엠비씨만 보였던 것이군요. 역사학도님이 전파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지만, 광주에서 단파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들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시 내가 광주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전파는 가시권,가청권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당시는 휴대폰도 없던 그런 시절이라 통신수준이 열악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 글쓴이나 역사학도님같은 분들이 아닌, 특수한 통신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특별한 장비가 있었다면 그건 이야기가 틀려진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