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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자료실 스크랩 김환기 작품
김삿갓 추천 0 조회 57 06.10.09 23: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리로 오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저 달이 유난히 빛나면서
고인 듯이 흐르는 푸른 강 위에
자욱한 빛이 꿈처럼 풀려 오른다.

물 속에 고기와 산 속에 새와 언덕조차
취한 밤이니 너와 나를 새겨놓고
말없이 저 달을 보낸 뒤에
문을 열고 너는 내 가슴에 불을 켜라.







이제로부터 나는 너를 붙잡고 가리니
자연에 편만(遍滿)한 사랑과 함께
너와 나 사이에 다시 뜨는 달을 보며
우리는 이루어 새것을 열리라.

아 드디어 돌아갈 날 함께 누우려나
팔을 베개로 알지 못할 표상이 시작되리니
그립다 서울 복판에 걸린 한 조각 하늘을
이름 새기고 갈 낯익은 종이로 삼을까.


시 : 김광섭 ' 사랑 '

畵 : 김환기 ' 수화(樹話) 김환기 (金煥基) 추상화 '







저렇게 많은 별들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되어 다시 만나자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되어 다시 만나자






싯다르타부처님이 6년 동안의 고행끝에 보리수 아래서
처음 깨달은 것은 연기(緣起)였습니다.
'말미암아서(緣) 일어난다(起)' 는,
곧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관된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조건 없이 존재하는 것,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무조건적인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이 '연기의 이론' 이 바로 불교의 근본사상인 것입니다.

우리네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온갖 형태의 인연으로 얽혀져 있다고 불가에서는 말합니다.
그 인연은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한 것으로도 나타납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인 김광섭은 '저녁에'라는 이 작품에서
인간사에 있어서의 인연을 이렇게 읊었고,
또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간 김환기화백은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을 화제(畵題)로 하여
이민생활의 고독 속에서 그리운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찍어나간 점(點)들의 모임으로 구성을 한 그림을 그려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김광섭의 시에서나,
김환기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의 사상이요,
인과(因果) 혹은 연(緣)의 철학입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각별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인연' 들이 소재로 돼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연이 되길 바랍니다.





수화 김환기 화백은 1974년 작고하셨고
아산 김광섭 시인은 1977년 작고하셨습니다.

수화 김환기님의 아내 김향안님에 관해 주목할 만한 글이 있어
곁들입니다. 글이 좀 기니 관심있는 분들만 보십시요.






지난달 29일 뉴욕에서 타계한 김향안(金鄕岸) 여사의 사망 소식이
일주일 뒤 이곳 신문에 보도되었다.

나는 수필가 김향안을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의 아내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주로 파리를 소재로 글을 쓴 수필가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상(李箱)의 아내였던 변동림이라니.

두번째 각혈을 하게 된 이상은 1936년 여름,
변동림과 돈암동 흥천사에서 혼인했다.
생활은 궁핍했고 몸은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그는 도약을 위한 탈출로 일본행을 결심했다.

궂은 비가 축축히 내리는 플랫폼에서 결혼한 지 반년도 못된
어린 신부와 동생,그리고 몇 사람의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헙수룩한 가방을 들고 그는 기차에 올랐다.
6개월 뒤,이상은 고국 땅 미아리 공동묘지로 와서 묻혔다.
그의 아내가 일본에 달려가 임종을 지켜보았다.

화장된 남편의 유해를 안고 돌아온 변동림을 나는 남달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 필명 김향안으로 수필을 계속 써왔고
8년 뒤인 1944년 김환기와 결혼했다.
소르본느대학 및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고
김환기 그림의 지평을 전 세계로 넓힌 ‘김환기 미술’의 완성자이기도 했다.

천재 시인의 어린 아내로,그리고 천재 화가의 반려자로서
예술적 영감을 그들에게 전해 준 우리 예술계의 뮤즈였다.
이에 또 한 사람의 *뮤즈*가 떠오른다.
시인 알프레드 뮈세와 음악가 쇼팽을 사랑한 조르주 상드.

일찍이 자유 연애를 구가하며 문필가로 이름을 날린 이 남장 여인,
조르주 상드는 연하의 이 두 남성을 극진히 사랑하고 돌보았다.
상드와 사랑에 빠진 동안 쇼팽의 창작의 샘은 넘쳐흘렀다.

뮈세도 의욕적으로 글을 썼다.
하건만 그녀에게 버림받은 뒤 쇼팽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음악의 샘도 말라 버렸다.
뮈세도 상드와의 어긋난 사랑으로 무절제한 퇴폐에 빠져
비참한 생애를 마감했다.

몇 해 전, 공교롭게도 나는 뮈세와 쇼팽의 동상이 마주 바라다 보이는
페르 라셰즈 무덤 안에 서 있었다.
쇼팽의 죽은 나이는 39세. 뮈세는 44세였다.
상드와의 파국은 이 천재 예술가들의 심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김향안 여사는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건립하면서
마루 한쪽 한쪽에까지 환기 그림의 느낌과 결을 맞추느라고
애썼다는 일화는 우리를 감동스럽게 하고 있다.

88세의 천수를 누리다가 3월 3일 뉴욕 근교에 있는
김환기 화백의 무덤 옆으로 돌아간 김향안 여사.
30여년 만에 만난 수화와 다시는 이별 없는
‘수향(樹鄕)산방’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빈다.


<김향안과 조르주 상드 : 맹난자 / 수필가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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