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중앙시장통 돼지국밥집에서 만났습니다.
돼지머리편육이 맛있는, 돼지국밥도 무난하고 값싼,
누구나 부담없이 들러 요기할만한 서민적인 돼지국밥집.
나와 벗의 취향에 딱 맞는 집이었습니다.
돼지머리편육, 국밥, 소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 뒤 계산하려하니
카드 사용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이 친구와는 최근 몇번의 술자리에서 계속 얻어먹었기에
이번만큼은 제가 술값을 지불해야하는데
재래시장에 갈 때는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하였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날도 얻어먹어야 했습니다.
문득 수개월 전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공단 직원과 업체 실사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신평시장 돼지골목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시장님과 수행비서 등 7~8분이 이 식당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바쁜 일정 때문인지 잠시 식당 내 손님들과 인사 나누고 식사 후
우리보다 먼저 나가시는데
시장님이 나가시고 난 후 주인아주머니와 수행비서간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비서는 카드결제를 하려하고
주인아주머니는 카드결제기가 없다고 현금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난감해진 비서는 카드결제가 안되면 나중에 주겠다하고
주인아주머니는 시장님 모시고 이 정도의 일행이 재래시장 오면서
현금 준비를 안한다는게 말이 되냐며 따졌습니다.
결국 10만원 정도의 밥값은 뒤에 현금으로 주기로 하고 일행이 떠났습니다.
생각해보면 재래시장의 특성을,서민의 생활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면
비서들은 당연히 재래시장 방문 시 현금을 준비하여야 했습니다.
물론 영주증 처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재래시장에서 카드결제는 쉽지않은 일이지요.
사실 그 식당, 카드결제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20년 넘은 우리 단골들은 요즘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기에
미리 현금을 준비하고 가지요.
어려운 사정이란 재래시장 전반이 침체되면서, 금오공대가 이전하고 나서,
LG전자 고참들이 평택공장으로 전근가면서 단골손님이 많이 준데다
고기 사올 때는 현금을 주어야 하고
돼지파동 이후 재료값이 2배 이상 올라 원가압박을 받는 등의 현실이지요.
원래 시장 갈 때는 현금을 들고 가긴 합니다만
그날 실랑이를 지켜본 이후로는 현금을 조금 여유있게 가지고 갑니다.
헌데 지난번 제가 살 술자리에는 깜빡하고 현금을 준비해가지 못한 것입니다.
장을 볼 때 농축수산물과 공산품을 한꺼번에 살 수 있다는 편리성에 길들여져
요즘은 마트를 자주 이용합니다만
가끔씩은 재래시장, 5일장을 일부러 찾아다닙니다.
행상에 내놓고 파는 나물, 한 웅큼의 덤, 주전부리거리 등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활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0여개 돼지국밥집이 늘어서 있는 돼지국밥골목, 닭발집,
구미에서 흔치 않은 닭곱창전골식당 등
제 20년 넘은 단골식당이 여럿 있는 신평시장에서는 지금
불법건축물 철거 등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공사기간 동안은 이용객의 불편함도 따르겠지만
정비사업 완료 이후 더욱 찾고싶은 시장으로 거듭나
제 가족이, 벗들이 20년 넘게 이용한 시장과 맛집들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를 기원합니다.
참.
며칠 전 도의회에서 원평 중앙시장 주차장 설치 소요 예산 30억원 중
18억원을 확보하여 주차장 설치가 가시화됨으로서
향후 중앙시장 이용 편의성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되어
더 많은 시민들이 시장을 찾을 것을 기대해 봅니다.
삶이 따분하거나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재래시장을 찾아보십시오.
시장에서 느끼는 활기로, 정으로 .
값싸고 푸짐한, 그러나 맛있는 한끼 식사로 활력을 충전하십시오.
단, 꼭 현금을 충분히 준비해서 가셔야 합니다.
국화빵을 굽는 사내(모셔온 글)=================================
당신은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정호승 시집 <그 짧은 시간동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