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1. 보령의 밤 <대천해수욕장-우유창고>
지난 여름휴가의 만남을 미루고 우리가족은 오랜만에 보령에서 만나 추석을 맞았다. 일상처럼 수시로 통화를 하며 소식을 나누지만 아이들은 목소리보다 훨씬 자라버렸다. 내 자식들의 사랑스럽고 순한 모습들이 아직 말랑말랑하게 가슴에 남아 있건만 결혼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두 손주에게 따로 따로 귓속말을 하며 너를 가장 사랑한다는 할머니의 말도 통하지 않고 울면 달래던 까까도 효능을 잃을 만큼 자라서 이제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사랑이나 달램이 아닌 서로의 합리적인 소통이 중요한 아이들로 훌쩍 커버렸다. 명절이라 고속도로가 많이 밀렸던 탓인지 서로 비슷한 거리에서 달려왔건만 그들은 해질녘에서야 도착하였다. 도로위에서 점심도 건너뛰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저녁식사부터 서둘렀다. 집에서 맞이했더라면 추석음식이라 준비하고 나는 내 새끼들의 입맛을 챙기고 내 새끼는 또 그의 새끼를 챙기며 맞이했을 밥상이 모두가 새로운 여행의 분위기를 느끼며 낯선 곳에서 새삼스럽지 않게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질펀하게 술도 따르고 권하며 다소 부산한 밥상이었건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술도 멀어지고 그다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줄어들고 다만 기다리던 어린시절의 명절이 어른 되어 부담스럽다가 이제는 소중해지는 것이 내 맘 내가 들여다보아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남아 있는 명절이 얼마나 될지 벌써 이렇게 지나가는가? 하는 아쉬운 마음까지 생기는 것을 보면 세월이 많이 흘렀지 싶다. 하기야 내 자식의 머리에 가끔씩 희끗 희끗 흰머리가 반짝거리고 단출하던 밥상머리에 둘러앉은 새로운 꽃들이 몇 개던가. 풍성하면서도 허전하고 기특하면서도 그지없이 안쓰러운 것이 늙어가는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어른들은 운동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은 불꽃놀이와 폭죽을 기대하며 숙소에서 가까운 대천해수욕장으로 나섰다.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만 3.5km나 될뿐더러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머드광장과 노을광장이 나뉘어 있을 만큼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밤에 도착한 우리는 불꽃놀이를 위해 편의점에서 폭죽을 준비했다. 모래위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와 불꽃이 터져나가는 아름다움에 아이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뿌듯한 어른들의 가슴은 아이들의 몇 배나 더 행복했다. 특히 어른들끼리 모여들어 줄줄이 폭죽을 꼽고 제법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에 주변 관광객들의 함성은 마치 축제분위기이다. 또한 잠깐의 틈새에도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시작했고 그곳 모래위의 아이들은 땅파기만으로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무한 체력과 집중력을 보이는 듯하다. 가족이 함께 해변을 걸어보는 일과 밤바다의 밤 풍경을 바라보며 가슴이 트이며 좋아지는 이 감정이 참으로 소중한 연휴 첫날이었다. 다음 날은 계획했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거쳐 우유창고를 들렀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아이스크림 만들기 체험과 어른들끼리 카페 우유창고에서 차를 마시며 힐링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우유창고에서 즐기는 동안에도 하루(작은아이)는 아직 어제 해변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으로 체험을 포기하고 다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쓸 만큼 지나온 곳곳마다 신나는 기억이었다. 가족여행이란 함께 움직이며 같은 느낌으로 즐기는 것이 우리스스로 만들어가는 매력이 아니던가. 명절이 시작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고향을 찾느라 몸과 마음이 바빠진다. 예전에는 뭔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여야 명절 분위기가 들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집안의 대소사와 가족모임도 간소화되면서 우리의 명절 문화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젊은 세대들의 생각도 유교의 틀에서 벗어나 합리적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어딘들 어떻겠는가? 명절이라는 특별한 명분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음덕을 기리며 평온한 일상을 기원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가족끼리의 대화는 참으로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이다. 입에서 목구멍까지가 천리라 하지 않던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상대의 마음을 내 맘 쓰듯이 쉽게 생각하는가 하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의외로 민망해서 못하고 또는 이 참 저 참 미루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을 맞는 자세는 비단 조상을 찾고 생각하는 의식보다는 그보다 먼저 가족이 모여 화목을 최우선 덕목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듯하다. 시절에 맞는 정서에서 어디서나 차고 넘치는 맛있는 음식으로 식정을 나누며 표현하고 서로를 안아주면서 가족이 모인 자리에는 모든 사람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유쾌하지 않은 명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라건대 우리 고유의 명절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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