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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으로 등교한다-덕포진 교육박물관 (김포) 글/사진: 이종원
추억속으로...덕포진 교육박물관 학교 건물이라기 보다 낡아 빠진 공장건물 같았다. 하긴 깔끔하고 번듯한 건물을 가졌으면 어찌 과거로의 여정을 떠날 수 있을까? 차댈 곳도 변변치 못해 근처 덕포진에 세우면 주차비를 박물관에서 대신 내준다. 정면이 출입구가 아니라 건물 뒷편 외딴 철문이 유일한 출입구다. '오늘 문을 여는 것인지..닫은 것인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슬며시 문을 열어본다. 과거로의 회귀. 일단 문을 열게 되면 여지없이 과거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아픈 과거가 아니라 예쁜 동심이 있는 학창시절로..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수천점의 전시실 중에서 단연 인기를 끄는 곳이 3학년 2반 교실이다. 단순히 보는 교실이 아니라 직접 학생이 되어 낡은 의자에 앉아 수업을 받게된다. 벌겋게 달구어진 갈탄난로와 양철 연통, 찌그러진 양은주전자는 연신 수증기를 내품는다. 주전자의 습기처럼 훌륭한 가습기가 어디있단 말인가? 뜨거운 난로 위에는 도시락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진다. 맨 아래도시락은 난로와 함께 익어 누릉지가 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부모님의 따사로운 정이 전해진다. 아마 절반쯤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이미 도시락을 까먹는다. 막상 점심시간이 되면 포크 하나 달랑 들고 이리저리 교실을 돌아다니며 낚시질을 한다. 그냘 쏘세지 반찬이 보이면 쿡 찍어 입에 구겨 넣는다. 야속하게 처다보는 시선도 한마디만 하면 넘어간다. "임마. 친구끼리는 나눠먹는거야." 그 한마디면 OK.
6학년때 우리 반에는 올갠치는 학생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도 올갠을 칠줄 몰라....음악시간이 되면 옆반 여학생이 원정을 와서 올갠을 쳐준다. 반 마다 올갠이 다 있는 것도 아니라...이반 저반 옮겨다녀서....자주 이사다니 뒤주마냥 긁혀 있었고 십지어는 건반이 없는 것도 있었다. 우리반에 원정온 여학생의 별명은 아줌마였다.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가슴도 불쑥 나와 있어....호기심의 대상이자 놀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 오늘 30년만에 삐그덕 거리는 걸상에 앉아 '나의 살던 고향은'을 듣다보니 과거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기어코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라는 동요가 내 심금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던 그 똘망똘망한 친구들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올갠소리야 말로 과거를 끄집어 내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인숙선생님. "저를 3-2반 교실로 안내해주시겠어요" 아뿔사..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시다. 김동선관장님, 이인숙선생님은 부부 교사출신이다. 1992년 부인 이인숙선생님은 교통사고를 당해 시신경을 다쳐 교단을 떠나야만 했다. 20년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하루아침에 교단에서 내려오는 것은 더없는 아픔이었다.
남편이자 관장님이신 김동선 선생님. "여보..내가 다시 학생들을 만나게 해줄께" 시력을 잃고 아이들을 더 이상 가르칠수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꼈던 아내를 위하여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하여 주겠다는 김동선 선생님의 약속이 현실로 나타났다. 전재산을 바쳐 학교를 만들고 아내가 가장 사랑했던 3-2반 교실을 재현해 놓고 오늘도 변함없이 수업을 진행한다. 남편은 학교종을 치면서 학생들을 모으고...아내는 올갠의자에 걸터 앉아 동심을 일으키게 한다.학생이 많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수업은 예서 멈출 수 없다. 반장을 뽑고...동요도 부르고..역사도 배우고....가끔 회한에 젖은 노인들이 삐드덕거리는 걸상에 앉아 눈물을 흠뻑 쏟아낸다고 한다.
공부방이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저 주판으로 빡빡 민 머리를 긁으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문방구다. 연필지우개....색종이...등등....연변에 갔을 때 이런 좌판을 보고 무척 반가웠던 적이 있었다.
국어, 사회, 자연...교과서다. 국민학교 1학년때다. 부모님을 졸라 생전 처음으로 샤프를 샀는데...하루가 못가서 고장이 난 것이다. 엄마한테 혼날까봐..고장났다는 소리도 못하고..잃어 버렸다고 했을 때... 몽둥이로 무진장 맞았다. 왜 그때 고장났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연필, 크레용을 1회용처럼 쓰는 정수를 보면 왠지모를 분노가 치민다. 밥을 남겨도 그렇고... 부모의 심성은 이렇게 대물림되나 보다.
작년에 돌아가신 김메리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학교종이 땡땡땡'의 작사, 작곡가다. 이 유품은 전시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쥐잡기 포스터. 추억의 교복, 지긋지긋한 성적표, 교련복도 보인다. 향토애 교육실에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 대한 역사 자료, 전통문화 교육실에는 인두, 다리미, 화로, 담뱃대등 선조들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교육자료 100년의 전시관이며 멸공, 승공등 구호들과 교육자료 그리고 축음기,타자기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중국교육문화전이 열리고 있으며 중국의 교육제도, 인물, 서예, 도자기,의상등 중국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가 곁들여 진다. 짜장면은 '장을 볶는다' 라는 뜻이다.다라서 짜장면은 춘장을 볶아서 만든 국수라는 뜻이다.
3층은 옛날 농업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탈곡기, 메기틀, 도리깨, 망태 달구지등 관장님의 설명을 듣다보면 농가의 어느 창고에 들어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모으셨어요?" "하나 두 개 모으다보니 이렇게 많아졌어요.구경온 사람이 강제로 맡기는 경우도 있어요. 저기 있는 자개장은 관람객이 강제로 맡겼어요. 앞으로 자개장이 없어진다고 하면서.... "
구국의 흔적-덕포진 서해에서 한강을 따라 서울로 거슬러 올라가려면 강화도 바깥쪽을 거쳐 교동도를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데..그곳은 거리상 멀리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에 주로 강화도와 김포사이 해협을 통해 한강에 닿는다. 그 초입에 덕포진이 자리잡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 요충지이다. 건너편으로는 강화 초지진과 덕진진, 광성보가 자리잡고 있어 적들이 이곳에 들어서면 양쪽에서 협공을 펼칠 수 있다.덕포진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에 의해 구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영조때 종 삼품의 수군첨사가 주둔하는 한양 주변에서 가장 큰 수군진지가 되었다. 역사속에서 덕포진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사건은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서양배의 진입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수전을 치뤘던 곳이 바로 덕포진이다. 일제를 거치면서 땅에 묻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덕포진이 발견된 것은 1980년. 그로부터 10여년에 걸쳐 옛 모습대로 복원이 되었다. 발굴 당시 탄약고 및 포대에 불씨를 공급하기 위한 불씨보관장소,파수청지가 발굴되었고 소포, 중포, 포탄 및 상평통보가 출토되었는데, 이때 발견된 대포 6문중 1문이 덕포진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덕포진에는 현재 학생들의 야외수련장과 야영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포대와 포대사이를 연결하는 성벽위로 산책로가 아주 잘 꾸며져 있다. 굳이 역사의 현장이 아니어도 바다를 내려다 보며 거니는 재미가 있고 경치마저 훌륭한 곳이다.
덕포진에서 만난 뽀뽀바위. 곰 연인이 키스하는 것 같다.
덕포진 건너편 강화도 덕진진의 남장포대다. 신미양요때 미군이 덕진돈대를 점령하여 환호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남장포대와 덕진포대에서 동시에 포를 발사한다.
바가지를 따라가소- 손돌공묘 강화도에는 손돌목 돈대가 있다. 강화도 동쪽 돈대 중 가장 고지대에 있어 사방이 한눈에 들어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손돌목이란 이 곳 앞바다를 말하는데, 고려 고종이 몽고군 침입으로 강화를 향해 피신하는데 '손돌'이란 뱃사공이 뱃길을 안내했다. 예나 지금이나 워낙 물살이 강해 배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피신 길의 왕인지라 무슨 계략이 있는줄 알고 그를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손돌은 죽기 전에 뱃길 앞에 바가지를 띄우고 그 길로 따라가라고 일러주고 기꺼이 칼을 받았다. 왕은 할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 준대로 하여,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그걸 보고 왕이 큰 실수를 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손돌은 이미 죽은 몸이었다. 그 뒤로부터 그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도 10월 20일경이면 큰 바람이 불어 손돌의 넋이 아직까지 살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덕포진 언덕배기에는 손돌의 무덤이 거센 바닷 여울목을 지금도 지켜주고있다. 몽고때나 구한말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군사 요충지다. 북한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철조망이 그어졌다. 언제 어느때 되면 그 흉물덩어리가 사라져 우리 손돌공이 편안히 쉬게 될까? 한적함을 즐겨라.- 대명포구 쌉쌀한 갯벌 내음이 그다지 싫지 않다. 밤새 등불을 밝히며 고기를 잡았던 배는 피곤했던지 한쪽으로 몸을 기운채 편안히 쉬고 있었다. 조용한 포구의 적막을 깬 것은 다름 아닌 갈매기였다. 어찌나 수다를 떨던지.... 이곳에 고기가 잡히지 않아 2시간이나 남쪽으로 내려가 고기를 잡아 온다고 한다. 그래서 물 때만 잘 맞추면 갓 잡은 어류들은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특히 횟집마다 어선을 가지고 있어 여느 횟집촌보다 저렴하게 회맛을 즐길 수 있다.
한적한 갯벌...저 너머가 강화도다.
수산센타. 어른 다리통 만한 농어가 자꾸만 발목을 잡은다. 저것이 어떻게 자연산이지...소금기에 절여진 시장통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5천원어치면 새우와 오징어 튀김을 실컷 맛 볼 수 있다. 바삭바삭...씹히는 새우맛 ^^ 붉은 온천수 약암온천 김포 약암온천은 대명포구와 불과 5분 거리다. 지하 400m에서 끌어 올린 온천수는 소금기가 섞여 있어, 짠맛이 난다. 온천수에 섞여 있는 각종 무기질이 공기와 만나 붉은 빛으로 산화된 빛을 띠지만, 인체에 스며들어 피부 미용과 함께 각종 성인병에 특별한 효능을 보여 준다. 입 욕 료 : 대인기준(대중탕) 1인 5,000원시 설 : 남녀 각 500여명 수용 개장시간 : 06:30 ~20;30 문의: 031-989-7000 초지대교 건너기 전 좌측에 있다. 대평포구에서 5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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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시간 만들어서 함 가 봐야 겠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하고 어렸을때 생각이 나서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가서 잘 놀았습니다.
저도 애들 데블고 꼭 가보겠습니다. 좋은정보 감사 합니다
교육박물관 가실 때 덕포진 이정표를 따라 가세요.
교육박물관 지나서 2분 외길이 덕포진입니다.
단체로 가시면 아무래도 행사가 많아져 좋다고 안내하더군요.
어린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담긴 곳이죠.
초지대교 바로 직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