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나만의 상상력을 키우는 겨울폐사지 답사 글/사진: 이종원
겨울엔 폐사지를 거닐어 보라. 잡초가 무성한 여름보다 황량한 겨울에 거닐어야 제 맛이 난다.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건만 황량한 폐허로 전락한 것을 보고 세상에 영원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발부리에 채이는 돌은 탑의 부재나 건물의 초석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 속에서 나만의 돌을 찾아보자.
충청강원의 물산은 이 곳에...흥원창 정태춘이 부른 '북한강'이란 노래는 참 구슬프다. 강이 산을 배경으로 흘러서 그런지 북한강을 거닐면 늘 한이 느껴지고 슬픔이 밀려온다. 그 대신 남한강은 풍요롭다. 비옥한 평야를 뚫고 유유히 흘러서 느끼는 감흥인가보다. 그래서 강뚝에 올라 남한강을 보기만 해도 편안하고 넉넉한 생각이 든다. 문막에서 섬강 뚝길로 따라가면 부론면이 나온다. 남한강이 나오는 첫머리에 흥원창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올라가면 온갖 시름을 잃게 할 정도로 비경이 연출된다. 산그림자가 강에 비추인 모습이 참 아름답다. 서남쪽에서는 충주에서 흘러온 남한강이 여주로 흘러가고 있고 서북쪽에서는 강원도 땅을 적신 섬강이 이 곳에서 합류하여 한강에 흐르기 때문이다. 강원도를 적신 섬강 물과 충청도를 비옥하게 만든 이 남한강물이 합쳐서 여주땅, 이천땅을 적시는 그 곳 쌀맛이 좋지 않을 재간이 없다.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어 고려시대부터 수운창이 자리잡게 되었다. 각지에 올라온 조세 물품을 보관했다가 , 수로를 통해 서울로 날랐을 것이다. 결국 수운창은 조세품의 집산지이자 운송의 거점인 것이다. 흥원창은 쌀 200섬을 싣는 큰 배가 무려 21척이나 있어 그 옛날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흥운창은 주로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울진등 강원도 물산의 총집결지다. 강원도 내륙의 물산들은 대개 말이나 소에 싣고 왔고 이곳에서 선적하기 때문에 이 곳엔 그들이 머물 객주와 주막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시끌벅적한 시장도 형성되어 흥정하는 소리가 남한강을 울렸을 것이다. 그 활기찬 모습...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흥운창은 쓸쓸하지 못해 적막하다. 다리가 놓이고 기차와 자동차가 운송을 대신하면서 할 일을 잃은 셈이다. 왕년에 날렸던 사람이 한번에 실업자로 전락했다고 할까? 이곳을 찾았을 때 그 옛날의 영화를 찾을 수 없다. 민가의 개 한 마리가 이방인을 보고 짖어댈 뿐이다. 주인집 할머니가 나와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 따뜻한 아랫목을 찾아 들어간다. 그 적막함을 깬 내가 미안할 정도다. 사람은 배신했지만 풍광만은 여지껏 지조를 지켜왔다. 두 강물도 어김없이 한몸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벤치에 앉아 마음껏 풍경화를 감상하자. 산책로도 예쁘게 꾸며 놓았다. 연인과 함께 팔장을 끼고 거닐면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 곳은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니까...
나만의 상상력으로 건물을 세워보자.-거돈사지 한강의 젖줄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부론면이 나오고 힘겹게 고개를 넘으면 거돈사지가 나온다. 큼직한 폐사지에서 유일하게 숨쉬고 있는 것이 바로 천년 된 느티나무다. 천년동안이나 사찰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다.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을 때는 가지를 힘차게 뻗었으며 절이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는 그 앙상한 가지마저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높다란 석축 가운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드넓은 절터가 펼쳐진다. 큼직하게 펼쳐진 풍경을 보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절터 가운데 금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금당중앙엔 부처님이 앉았을 불좌대가 놓여 있다. 어떤 건물이 이 빈 공간을 차지했을까? 지붕도 올려보고 2층 누각도 세워본다.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폐사지 답사의 재미다.
금당 앞엔 전형적인 신라 삼층석탑(보물 제750호)이 서있다. 세련된 장식 하나 없는 소박한 탑이건만 왠지 탑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 폐허 속에서 간신히 버티어온 생명력 때문일게다.
절터 오른쪽 원공국사 부도비(보물 제78호)는 귀부와 비신 그리고 이수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그 온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은 고승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공덕을 찬양한 글이 적혀 있다. 고려시대 비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글씨이며 단 한 자의 결자도 없이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이수에는 꿈틀거리는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거북은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히죽히죽 웃고 있다.
거북등에 새겨진 귀갑문 역시 예술이다. 이중의 육각형의 안쪽은 닫혀 있지만 바깥은 다른 육각형과 이어져 있다. 안쪽의 육각형엔 연꽃과 '卍'자가 번갈아 새겨져 있다.
화려한 조각의 백미-법천사지
오로지 지광국사부도비(국보 제 59호)를 만나기 위해 법천사지를 찾았다. 처음 부도비를 접하는 순간 묘한 전율이 온몸을 감싼다."세상에나! 하늘이 만든 조각물이야."
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상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강인한 얼굴에 목을 쭉 빼고 튼튼한 치아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밍크코트를 입은 귀부인마냥 목 부위 가죽은 살짝 말아 올려졌다. 거북의 발밑은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북이었다. 거북의 등껍질은 바둑판 문양처럼 사각이다. 가운데에는 '王' 자가 새겨져 있다. 지광국사가 왕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신의 측면에는 타오르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으며 비신 상단부 전액 좌우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둘레에는 당초문과 비천상․산․나무․해와 달이 빈틈없이 묘사되어 있다. 종이나 천에 그린 것처럼 정교하다. 고려인들이 돌을 떡 주무르듯 했다는 말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이수도 눈 여겨 봐야 한다. 보통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조각을 새겨 넣는데 이 곳은 왕관 같은 모자를 얹어 놓은 것이 색다르다. 연꽃과 구름문양, 귀꽃까지 빽빽하게 조각되어 있고 그 꼭대기엔 보주까지 얹어 놓았다.
지광국사 부도비 주변에는 절터에서 옮겨온 광배 탑의 부재 등 여러 석물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 온전한 모습은 하나도 없지만 남아 있는 석물들은 하나 같이 명품이었다. 그 중 제과점에서 갓 구워낸 빵처럼 부푼 꽃 모양 석물이 예쁜데, 그 바깥에 새겨진 이파리는 실물처럼 보여 자꾸만 손이 간다. 양쪽 테두리에 새겨진 꽃문양도 놓칠 수 없다. 나뒹구는 석물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온전한 법천사의 모습은 얼마나 화려할까? 얼음장처럼 차가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하염없이 돌을 어루만졌다. 아- 법천사 돌무더기여.
법천사지 당간지주
목아불교박물관
마징가제트를 연상케하는 고달사지 비
고달사지 부도의 지붕돌 아래에 새겨진 비천상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