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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66호【특집】『 특집 - 무속신앙, 어떻게 볼 것인가? 』 | - 편집부 - |
<<특집 좌담 - 들어가며>> 특집 - 무속신앙, 어떻게 볼 것인가? 무속을 한국문화의 원형질이라고 한다. 고대 사회의 중심 종교에서 시작하여 이후 주변종 교, 신앙으로 전락하면서도, 실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 이다. 무속을 종교 용광로라고도 한다. 불교, 도교, 유교 등 제도종교의 유입에도 불구하 고 그들의 사상과 교리, 신앙을 끌어안아 그 속에 용해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각 종교의 신앙양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 서구의 기독교조차 무속의 신명이나 신앙 풍속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정리되고 있다. 무속은 삼국 이래 기층신앙으로 자리 잡으면서, 끊임없이 제도종교나 국가권력의 탄압을 받아왔다. 특히 조선 시대 무속의 존재는 마을 신앙과 더불어 음사로 규정되면서 척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삼국, 고려, 조선 전 시대에 걸쳐 무속의 종교적 기능이 작동되지 않 은 적은 없었다. 일반 백성의 종교적 귀의처이자, 신앙대상이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공식 적인 기우제에 무당이 참여하는 등 무속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였다. 오늘날도 무속은 미신이나 하급대중들의 신앙으로 치부되고 있다. 현재도 약 20만 내외 의 무업 종사자가 활동하고 있는 영향력에 비추어보면 매우 기이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 다. 이는 불교, 기독교 등 제도종교의 종교적 헤게모니 장악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그러 나 그보다는 무속이 제도화하거나 조직화되지 못하는 태생적 성격에 기인하는 바가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대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다종교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불교, 기독교의 세 계종교, 구한말 이래의 수백여 신종교, 일본, 미국 등지에서 유입된 다양한 해외 종교, 그 리고 무속이 있다. 무속은 이러한 다종교 상황에서도 아직 끈질기게 생존하고 있다. 오히 려 민족문화의 원형으로, 민족문화재로, 각종 예술 창작의 자양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무속의 현실적인 위상은 매우 낮다. 무당들이 아직도 미신의 본산으로 질시의 대 상이고, 무속적 신앙은 음지에서 은밀하게 수행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 의한 무속의 질 타는 각 지역에서 각종 분쟁을 낳는 소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무속의 현대적 위상과 기능은 그리고 전망은 어떠한가? 어떤 종교학자도 아직 정답을 제 시하고 있지 못하다. 한국의 주류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성직자들을 모시고, 좌담을 여 는 것은 그 일단을 보고자 함이다. 그러나 무속에 적대적인 성직자보다는 무속을 포함한 한국문화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의 성직자들을 모셨다. 인천가톨릭대학 종교 미술학부에 계시는 조광호 신부님, 양평 성실교회 담임인 이정훈 목 사님, 불교계에서 종교간, 불교간 대화와 협력활동에 전념하며 대중포교 일선에서 노력하 고 계시는 법현 스님을 모셨다. 더불어 경기도 용인에서 오랫동안 무업을 하면서 지역공 동체 축제를 이끌고 계시는 유성관 무당(님)을 모셨다. 네 분의 소탈하고 솔직한 대화는 현대 무속의 기능과 전망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할 수 있 게 할 뿐 아니라, 제도종교의 앞날에 대해서도 유용한 거름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편집 자> |
각자의 신앙현장, 생활의 현장에서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대했으면
참석자
조광호 :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종교미술학부 교수
법 현 : 스님,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 사회부장, <열린선원> 원장
이정훈 : 목사, 양평 성실교회 담임
유성관 : 무당, 할미성 대동굿보존회 회장
진철승 : 공동선 기획위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사회: 먼저 이 대화의 자리에 참석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공동선의 기획위원
으로 있는 진철승입니다. 또 현재 종교학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
원으로도 있습니다. 오늘 좌담회 자리를 주선하고 사회를 보는 기쁜 기회를 갖게 되었습
니다.
공동선은 재 창간 이래로 한국 사회의 여러 종교들의 현황과 자기 성찰, 그리고 상호대화
등의 주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한국 사회의
주류 종교 중심으로 다루어왔던 점이 많습니다. 이에 2006년 1, 2월호 특집으로 “여러 종
교의 지도자들이 보는 한국 무속”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종교라 하면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중심 종교인 가톨릭, 개신교, 불교고 이 세
종교의 지도자들을 모시면 대강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으니까 신부님, 스님,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또 직접 무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무당 한 분을 모셨습니다. 제도종교의 일방
적인 이야기만을 듣는 것보다는 무당의 직접적인 이야기와 체험담을 들으면서 대화를 풀
어나가는 것이 상호이해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네 분을 모시고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보는 한국의 무속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좌담회의 성격상 특별히 순서나 세부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사회자가 상황에 맞
춰 간단한 소주제를 말씀드리면 그에 관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고, 또 대화 중에 필요한
주제가 설정되면 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가는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
다.
먼저 이렇게 모이는 것이 굉장히 특이한 경우 같습니다. 이런 주제로 여러 종교 지도자들
이 같이 모인 경우도 드물고, 공식적인 심포지엄이나 공부 모임이 아니라 자유롭고 편안
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좌담회로 같이 모인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모신 네 분 모두 종교, 신앙 현장에서 남다른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로 알고 있
습니다. 각 종교 내부에서 여러 분들이 추천을 해주셔서 초청을 했습니다만 네 분의 경력
이나 활동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견례를 겸해 특히
무속과의 인연이나 관심의 배경 등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먼저 조광호
신부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 신부님(이하 신부님): 저는 원래 무속을 연구했다든지 종교학을 연구한 사람은 아닙니
다. 그냥 신부로서 일반적인 신학을 공부했고, 본래 제 전공은 물론 신학 철학입니다. 그
러나 실제로 부전공이 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주 전공이 될 수 있는 사실 제가 그림을 그
립니다. 독일 미술대학에서 공부했고, 현재 인천가톨릭대학 종교미술학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저를 이쪽에서 오라고 한 이유 중에 하나는 공동선에 ‘조광호신부의 그
림이야기’라 해서 연재를 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제가 ‘문화와 영성’
이라는 주제로 <들숨날숨>이라는 잡지를 창간해서 한 5년 동안 발행을 했는데, 문화영성
과 관련하여 무당 되시는 분을 초대해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일영 교수라
고 가톨릭대학교의 무속 전문가인데 그분이 무당 분을 모셔왔고, 그래서 얘기를 나눠봤는
데 제가 소문으로 듣기만 하다가 실제로 만나보니까 그분들이 평소 생각과 다르더라고
요. 그때의 충격도 있고, 호기심도 있고 그래서 오늘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고, 공동
선에 한 번도 안 와 보고 글을 내고 해서 겸사겸사 이렇게 왔습니다.
사회: 고맙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무속과 보통 인연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법현
스님께서 소개 말씀을 해주시지요,
법현 스님(이하 스님): 저는 현재 태고종 사회부장을 맡고 있구요. 종교간 대화 교류, 불
교 안에서는 종단 간에 교리 섭렵,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또 ‘한국불교종단협회’
의 사무국장을 맡았고, 지금은 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종교인 평화회의’에서는
감사를 맡고 있습니다. 동국대에서는 지금 박사과정, 응용불교학을 하는데, 민속이나 무
속 쪽 전공은 아닙니다. 다만 한국인들은 다 신명이 넘친다고 하고, 대개 다 관심들이 있
는 것 같습니다. 또 어찌 보면 무속하고 불교하고는 인연이 많은 듯합니다. 인연이 많으니
까 가끔씩 부딪히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 싶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부딪칠 일도 없
고, 싸움도 크게 나려면 알아야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웃음). 어쨌든 그러나저러나 무속
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오늘 여러 선생님들 말씀을 듣고 같이 이야기할 수 있
어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회: 잘 모르신다는 건 겸양의 말씀이신 것 같고, 스님이 신행현장에서 많은 활동을 하
고 계시고, 다양한 경험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
시면 아주 재밌는 대화의 실마리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이정훈 목사님.
이정훈 목사님(이하 목사님): 저는 사회를 보고 계시는 진철승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고, 예전에 굿 공부 할 때 몇 년 같이 공부해서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이 방면
에 더 전문가가 있어 추천을 했습니다만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말은 많이 안하고 와서
듣기만 하면 어쩌나 해서 걱정이 많습니다만, 많이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사회: 우리 목사님들이 거짓말을 잘 하시는데 정말 잘하시네요. 옛날 황해도 큰 무당 선생
님한테 직접 사사도 하고, 굿하고 무속뿐 아니라 민속 일반과도 인연이 깊고, 공부도 많
이 하고, 탈춤도 잘 추고, 소리도 잘 하고, 농악도 잘 치고, 감리교 출신이신데, 의례 토착
화, 절기예배를 개신교 목사님으로서는 드물게 강조하고 실천적으로 선도하고 계신 분입
니다. 겸양이 지나치면 거짓말이 되지요(웃음). 다음에 오늘 주제의 주인이십니다. 어떤
면에서는 객이시기도 하죠. 분석, 비난, 칭찬의 대상이고. 무속 현장에서 무업을 하시고
지역 현장에서 무속과 지역 축제를 결합시킨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계신 유성관 회장
님이십니다.
유성관 회장님(이하 회장님): 저는 처음에 연락받고 사실은 걱정이 많았었어요. 뭐 저는
이쪽에서는 나름대로 지금 한 24년 무업을 했습니다. 현장감은 많으나 이론적으로 얼마
나 대답을 해 드릴 수 있을지, 저보다 경력도 많으시고 배움도 많으신 분들하고 어떤 대화
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습니다. 다만 몇 년 전에 용인대학에서도 이번과 비슷한 좌담
을 한번 했는데, 그때처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이 들더라
구요. 저는 아까 팸플릿 드린 대로 경기도 용인에서 ‘할미성 대동굿’을 재현하여 14년째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이제 굿을 굿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동
체의 어떤 축제로 보자. 그래서 굿에다 예술제란 타이틀을 붙여서, 무 굿만 하는 것이 아
니라 국악공연, 또 우리 전통 예술을 결합시켜 제 나름대로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사회: 고맙습니다. 이 자리 참석하신 인연이나 까닭하고 무속에 대한 공부의 정도나 관심
을 여쭈어 보았더니 다들 겸양이 심하십니다. 한 대여섯 정도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기획안 보내드릴 때 신부님, 목사님, 스님에는 ‘님’자 존칭이 붙
는데, 무당만 ‘님’자가 안 붙는 것도 논의주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당님이란 호칭
은 실제 없습니다. 일반 종교와 민속의 일부인 무속의 위상이나 성격이 다른 탓도 있겠습
니다만, 이러한 호칭에서의 차별을 화두로 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
을 것 같습니다.
스님: 신부님이나 목사님, 스님은 신자들이 존칭으로 부르는 것이지, 스스로 부르는 지칭
이 아니란 말이죠. 무당이라는 지칭은 애매하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있기도 하죠?
회장님: 지금 현재, 방송에서는 무속인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잘못된 용어입니다. 무당이
맞는 거죠. 무속인은 기독교인, 불교인, 천주교인처럼 그 밑에 신령을 믿고 따르는 신도
가 무속인이지 저희가 무속인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런데 아까 스님, 신부님, 목사님은 되
는데 왜 무당님은 안 되냐는 말씀을 하셨죠. 자연스럽게 그렇게 스님이나 목사님, 신부님
한테 부르듯이 무당을 편안하게 종교적으로 부르면 되는데, 지금까지 사용된 무당이라는
용어가 어딘가 멸시하고 깔보는 듯 한 용어로다가, 무당들? 그렇지 ~ 이런 톤으로다 많
이 썼기 때문에 저희 무속인들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예를 들어 저는 한 14년 전부터 <한국민속예술연구원>이라
는 단체 지부장을 하다가 작년 7월에 내놨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지사신문사도 갖고 있
고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면 당신 직업이 뭐예요. 이러면 “예, 본업은 무당이고 부업은 신
문사 지사장입니다.” 그러면 주변 분들이 깜짝 놀라서 저를 쳐다봐요. 당연히 당당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는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죠.
1970년 말에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에 연계된 미신타파라 해서 무속인들을 탄압했
잖아요. 그럴 때 예를 들어 사찰 등록증이나 이런 것이 있으면 무허가 건물이 산속에 있어
도 안 건드렸어요. 그랬는데 허가 난 건물인데도 신령을 모시고 있는 산사이면 다 때려 부
쉈다는 얘기지요. 그 당시에 그러니까 무속인들 생각은 어땠느냐. 아 그러면 부처님을 모
시면 신분이 상승되는구나, 그래서 그때서 없던 말이 생긴 것이 보살이고 법사죠. 선녀보
살 무슨 보살, 이거 정말 잘못된 얘기죠. 한 20년 이상 30년 이상 된 선배님들은 예를 들
어 파출부를 하다가 무당이 됐으면 빨래만신, 일종의 호칭이죠. 또 예를 들어 저희 지역에
서 63년 무당 하시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그분 아버님이 간수를 하셨고 그분이 17살
에 무속인이 되었다는 거죠. 이 양반 호칭은 간수쟁이 딸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게 좋
은데도 불구하고 이것보다는 보살이라는 용어가 더 좋고, 남자들 경우에는 박수나 무당이
란 용어가 맞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법사님 한단 말이예요. 거꾸로 주객이 전도
되서 불교용어가 들어와서 좋은 줄 알고 사용하고 있다는 거지요. 첫째는 저희 무속인들
의 반성도 많아야 하죠.
사회: 재미 난, 생생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호칭과 관련해서 근래에 변한 것을 설명해주셨
습니다. 불교식 호칭의 유입이 주된 쟁점이 되겠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보충설명을
해주시죠.
스님: 글쎄 무당이나 이런 직책, 직위에 ‘님’자를 붙이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닌 듯합니
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대로 보살님, 법사님 그렇게 많이들 부르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돼버려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합니다. 또 불교는 오랜 세월 한국문화에 녹아들었기 때
문에 이런 일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이런 호칭을 쓰지 않을 때 저희 무업 계통에서는 선생님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죠.
사회: 제자들을 많이 거느리시니까 그 제자들이 선생님이라고 많이 부르기도 하죠.
스님: 또 일반적으로 호칭이 마땅치 않으니까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회: 보살이나 법사나 하는 명칭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1970~80년
대 박대통령이나 전대통령이나 소위 정화 과정에서 산내의 굿 당이 대거 철거를 당하는
과정에서 유래한 것 같습니다. 그때 제도종교, 법인의 틀거리 내에 들어가면 굿 당 철거
를 안 당했어요. 계룡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북한산도 마찬가지였고. 대각회나 선학원과
같은 종교법인의 소속이 되면 철거를 안 당했습니다. 그렇게 제도권력이나 종교의 우산
속에 편입되다보니까 굿 당인데 사찰이 된거죠. 재단법인 어디 어디 소속 산내 암자가 된
겁니다. 그러면서 무당들의 칭호가 보살이나 법사로 대개 많이 바뀐 과정을 볼 수 있습니
다. ‘님’자 관련된 이야기는 대충 나오긴 했습니다만, 신부님 목사님께서 잠깐 각 개신교
나 천주교 내부에서의 무당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잠깐 말씀해주시죠.
신부님: 일반적으로 저희들이 세미나를 할 때 나중에 끝나고 나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데 “사실 우리가 다 사제란 의미에서 무당 아닙니까?”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실제로 그런 접신으로 사람을 치유한다든지 하는 분을 만났을 때 “아 직업
이 무당이십니까?” 질문하기가 곤란한 입장이 있어요.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 용
어 자체가 굉장히 통념적으로 그것이 비하되고 탄압된 과정에서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거
죠. 그래서 무당이다 얘기하기가 곤란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모두 말씀하시듯이 그런 역사적인 과정에서 큰 제도 밑에, 불교라는 그늘 밑으로 들어갔
다 그럴까요, 법사님이라든지 보살님이라든지 이렇게 되었다고 하시는데, 그런 면에서는
저희가 부를 때 ‘님’자 붙이고 안 붙이고 이런 것을 사실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고, 부르는
명칭이 매우 애매하다고 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무당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안 써야
할지 굉장히 망설였죠. 무당 한 분 모셔 와서 질문을 했다 하는데 그 다음에 쓸 때 그것이
막상 비하되는 용어가 아닌가 하고 신경 쓰이는 요소가 있습니다. (회장님: 아 신경 쓰지
말고 부르십시오(웃음)) 용어 자체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님’자를 붙
인다고 하면 보살님이라든지 천진보살이라든지 그렇게 부르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장님: 보살이나 법사라는 명칭은 최근 생긴 것이고, 예전에는 피리 등 장단 치던 사람들
은 여자는 기대, 남자는 박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박수무당이라고도 부르
게 되었죠. 또 전라도 등에서는 당골네라고도 했고, 경기도나 동해안 지역에서는 화랭이
라고도 했죠. 당골네는 한 지역을 담당하는 무당을 일컫는데, 다른 무당이 그곳에 들어가
굿을 하려면 그 지역 당골네의 하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신부님: 그 점은 천주교의 본당하고 비슷한 측면이 있군요. 다른 신부님이 어느 본당에 가
서 강론하거나 하려면 본당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거든요.
사회: 무당이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것은 공통되지만, 기타 명칭의 유래나 지역적 분포는
정확하지 않은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당의 다양한 명칭의 역사적 유래나 변천 및 지역
적 분포 등은 아직 학계에서도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
실마리를 풀려고 무당만 왜 ‘님’자가 안 붙냐를 화두로 제기했습니다. 그러다 무당의 명칭
에 관한 논의로 접어들었습니다만, 이쯤해서 정리하고, 목사님 아직 말씀이 없으신데, 개
인적 경험도 많으시고, 무당 일반에 대한 개신교의 시각이나 대응방식 등을 정리해주셨으
면 합니다.
목사님: 제가 개인적으로 예전에 민족문화 공부할 때 무속도 돌아다녀봤고, 기타 기예도
배우고 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이지만요. 오랫동안 한문도 배우고 강주로 모시는 오세
종 목사님이라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한학자이시기도 합니다. 제 호가 원래 성경의 야고
보서를 읽다가 잠시 있다 사라질 안개니라 해서 새벽 서자, 안개 ‘무’자 해서 서무라고 했
습니다. 그러다 오 목사님께서 그 호는 나이가 들어서 쓰라고 하시면서, 서녘 ‘서’자 무당
‘무’자 해서 서무라고, 즉 서양무당이라고 쓰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웃음, 감탄). 제 개
인 경력을 잘 아시는 분이라서, 그런데 제가 어머니 아시면 큰일 나겠다 싶어 어려워 하니
까 농막 서자 춤출 ‘무’자 해서 따로 서무라는 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제가 굿도 배우고 춤
추기도 했습니다만 태생이 뿌리부터 기독교라서 집안도 그렇고, 제 통이, 그릇이 작아서
그런지 서양무당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고요. 기독교 일반의 무당에 대한 선입견이나
미신시하는 경향도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지금도 그렇고요. 민족문화로서
무속을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태생적 거부감이나 반발이 있지
않나 고백해야겠습니다.
한편 또 아까 회장님과 스님이 잠깐 말씀하셨는데 무속인이라는 명칭에 얽힌 사연을 조
금 이야기해야 할 듯합니다. 무속과 같이 민속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공
통점이 속이라는 글자가 사용된다는 점이죠. 속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만, 기본적으로 이에는 정악이나 정통과 다른 비속한 문화라는 깔보는 인식이 밑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무속 대신에 무교巫敎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고, 민
속악 대신 민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교라는 명칭은
연세대 풍류신학을 하시는 유동식 선생님이 처음 사용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 유동식 선생님이 1970년대에 선구적인 무속 연구를 하셨는데, 『한국무교의 역사
와 원리』라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1980년대 이래 ‘무’이즘 이라고 해서 시베
리아의 샤머니즘과 다른 우리의 고유한 무속을 지칭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한양대의 조흥
윤 선생도 있습니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상은 그대로 무속에 대한 편견과 오해, 혹은 역사
에 대한 무지, 그리고 제도종교와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무속의 특징을 나름대로 규
명하려는 노력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합의가 아직
없고, 많은 논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용어 문제를 정리할 수는 없으니까
용어, 명칭에 대한 논의는 그만 접어야 하겠습니다. 실질적인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으니
까요.
오늘 논의의 핵심주제는 사실, 종교 현장에서 여러 종교와 무속의 갈등에 대해 살펴보자
는 것이었습니다. 무속에 대한 탄압은 무속이 국가종교에서 사적인 종교로, 혹은 기층신
앙으로 전환하면서 천 오륙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또 최근 일이백 년
사이에는 주로 기독교와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무속과 기성종교의 갈등, 다툼을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갈등과 탄압을 먼저 짚어보아야 나중에 덕담도 할 수 있을 터이니까요. 유 회장님께서는
용인 지역에서 ‘대동굿’ 하시면서 개신교인들과 갈등을 많이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먼저 그 사례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회장님: 원래 용인의 ‘할미성 대동굿’이라는 것은 삼남대로 서낭당에서 해야 하는데 모두
없어져 재현할 때는 공설운동장에서 했습니다. 3회 때부터는 용인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학부모 등 여러 사람들이 무속에 대해 꺼려하는 것을 눈치 보면서 장소
를 빌려주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국악공연 등을 함께 해서 무속 굿이라는 면을 약화해서
행사를 치렀습니다. 용인의 국악공연 단체와 함께 하는데, 부채춤 출 사람 대부분이 나오
질 않아서 제대로 진행이 되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하나님 믿
는데, 어떻게 무속 굿을 하는 데 나가서 공연하느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내 신
령 앞에서 굿을 하지만, 당신들은 참석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니까, 효도 공연한다고 생각
하라고 설득을 했죠. 그래서 다음부터는 지역 공동체 축제 차원에서 함께 ‘할미성 대동굿’
을 같이 치르게 됐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굿 청에 기독교인들 제일 많이 모으는 사람
이 저일 겁니다(웃음). 지금은 종교다 무속이다 하는 차원을 떠나서 지역의 축제로 정착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대로변 지역 서낭굿(대동굿)은 관민과 광대와 무당들이 모두 함
께 하는 지역의 가장 큰 축제였습니다.
사회: 유 회장님이 지역에서 실제 무속과 기독교의 갈등 사례를 얘기해주셨습니다. 불교
는 기독교와 달리 무속과 그다지 큰 갈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불교와 무속
의 갈등 사례를 말씀해주시죠.
스님: 워낙 서로 다르면 갈등이나 충돌도 적은 것 같습니다. 불교와 무속은 다르다 보니
까 큰 갈등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등 다른 종교의 직능자는 기본적으로 사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만 불교의 승려는 사제로서의 역할보다는 수행자로서의 성격을 강
하게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포교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기층신앙과 충돌하는
면모도 다소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에서 이차돈이
순교하는 것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신라에는 풍월도든 무교든 단군도든
고유 신앙이 있었고, 신앙도 강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불교와 기본적으로 교리
도 다르고, 신앙방식도 달라서 이차돈이 왕권강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산신각을 모시는데, 대웅전이 사찰의 중심이면
서도 산신각은 대웅전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불교가 기층신앙
을 존중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근래 불교 승려도 사제의 성격이나 선 수
행자의 역할이 강화되다 보니까 무속이나 기층신앙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절마다
괴목, 신목 등이 있는데, 무당들의 기도처거든요, 이를 사찰 승려들이 절대 안 된다고 하
고, 자연보호 명목 등으로 무당출입을 금지하며 갈등을 빚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비교해볼 때 불교는 무속과의 친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
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 경우는 워낙 전투적이다 보니까 불교 측에서도 그래도 무당이 개
신교인, 예수쟁이보다는 낫다고도 말하죠(웃음).
사회: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얘기가 잘 풀릴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목사님이 갈등 사례
를 중심으로 말씀 이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 무속과 가장 첨예한 갈
등을 빚는 종교는 개신교라고 할 수 있으니까, 좋은 덕담은 나중에 하시고 갈등의 원인이
나 양상을 중심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법현 스님 말씀대로 가톨릭하고 개신교는 뿌리가 같으니까, 오히려 더 갈등이 많
은 것 같습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차치하더라도 지금도 아일랜드 같은 지역에서는
서로 죽이고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개신교를 빗나간 형제들이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을 ‘마리아 숭배교’라 해 질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부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보다 차라리 불교가 낫다고 하기도 하죠. 거꾸로도 마찬가지
긴 합니다만(웃음).
목사님: 개신교인의 무속에 대한 거리감은 뿌리가 깊습니다. 집안마다 친인척 간에 무속
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더러 있음에도 무속과의 관련을 쉬쉬하고, 금기시하는 모습을 종
종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성가대 청년이 집에서 굿을 해 교회를 안 나오게 됐는데, 청년회
원들이 그 집에 가서 무당을 때리고 굿 당을 때려 부수고, 그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경
우도 봤습니다. 그만큼 전투적이죠.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성경에 근거가 나오거든
요. 구약에서도 박수를 죽이라는 예가 여럿 보이고, 신약 사도행전에서도 마술사, 박수 이
런 표현이 여럿 나옵니다. 좋게 쓴 경우는 없습니다. 쫓아 내거나 저주를 하거나 몸에 깃
든 귀신을 쫓는 사례들입니다. 성경에 근거가 있으므로 기독교인들이 무속인과 싸울 수밖
에 없는 당당함이 있는 겁니다.
한편 같은 기독교지만 가톨릭은 통일된 교리가 있고, 연옥이라는 중간 단계가 있는데, 개
신교에는 그런 단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은 다음 어디로 가느냐, 어떤 존재가 되
느냐, 귀신은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대해 목사마다, 교단마다 다릅니다. 제가 모시던 우옥
주 선생은 가톨릭 신자입니다만, 사람이 죽으면 조상반으로 간다고 하시고, 왜 개신교를
미워하시냐고 물으면 조상을 안 모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개신교에서는 조상은 인정
하지만 조상신 개념은 인정하지 않죠. 이단으로 치부되는 김기동 목사 같은 경우 예수 믿
지 않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떠돈다고 보고, 그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와 해코지도
한다고 합니다. 제가 겪은 사례로는 정신대 할머니 귀신인데, 이름이 황금년 씨인지 황금
주 씨인지 하는 분이셨는데 강원도 하조대 근처에서 돌아가셨거든요. 어릴 적부터 이 할
머니 무릎에서 자란 여관 집 딸 처녀한테 할머니 귀신이 들었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
보면 목사는 귀신 쫓는 엑소시스트고, 무속의 입장에서 보면 달래서 보내야 할 존재인데,
그렇게 보았을 때 갈등이 생기게 되겠죠. 귀신이니 쫓기는 쫓아야 할 텐데, 정신대 할머
니 귀신이라니 쫓기보다는 달래서 보내야할 것도 같고… 그런 겁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런 갈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조상귀신이 깃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론가 가는 거고, 사람에게 깃
든 귀신은 이를테면, 정신대 귀신은, 그 정신대 할머니를 흉내 내는 악령의 장난, 마귀의
장난이므로 무조건 쫓아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이것이 개신교의 전통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개신교인의 눈높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회장님: 저도 군대 가서 겪은 일 한 토막 말씀드리죠. 제가 방위를 갔는데, 군종참모가 목
사님이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마다 단군전 건립반대라고 시뻘겋게 써 붙였죠. 군종참모하
고 왜 그렇게 반대하냐고 대화를 했는데 “이놈아, 그러면 우리가 곰의 자손이란 말이냐”
하고 대뜸 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급장 떼고 대화하자 해서 얘기를 하는데, 그 분이
첫 번째 얘기가 뭐냐 하면 한국 사람들은 짐승을 숭배하는 사상이 있다 이거지요. 예를 들
어 업業이라는 게 있잖아요. 돼지업, 구렁이업, 족제비업 이런 거를 제일 먼저 말하면서
단군신앙이 거기에서 나온 사상이라 이거죠. 웅녀설화도 단군설화도. “인간도 아닌 짐승
이 어떻게 너희를 부자를 만들어주고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고 거기다 떡을 놓고 비냐
이 무식한 놈아.” 그렇게 욕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릴께요 하고
설명을 했죠. 저희 무속에서 그 짐승 자체가 업이 될 수는 없단 말이죠. 사람이 죽어서 저
희 무속에서는 아주 구천을 넘어서서 극락을 가든 지옥을 가든 어디 가기 전에 떠도는 단
계를 갖는데, 이건 신이 아니라 영靈 단계란 말이죠. 영 단계에 있는 이 혼령들이 사람 몸
에는 못 실리고 무당 같은 사람에게도 신으로는 못 실리는 겁니다. 그런 등급은 신은 안됐
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주파수로 얘기하면 묵은 짐승들 주파수랑은 맞는 거죠. 그래서 사
람의 껍데기가 아닌 짐승의 껍데기를 빌려서 그 혼이 계속 살아 있기 위해서 묵은 짐승의
몸을 빌리는 거란 말이죠. 그 개념을 설명하다 많이 싸웠어요. 나중에 한다는 말이 무식
한 사람이랑 얘기하다 보니 도저히 얘기가 안 된다고 가시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그분한
테 미움을 받아가지고 아파트 근무를 하다가 부대장한테 심부름 다녀오느라 간 사이에 경
계 근무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실컷 두드려 맞기도 했습니다.
사회: 목사님하고 회장님의 생생한 체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좋은 구체적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업 얘기까지 재밌게 해주시고. 목사님의 여러 교리적 근거나 죽은 이후의 세계
에 관한 개신교의 여러 가지 견해들도 잘 들었습니다. 교리적인 근거를 혹은 성경, 경전
내에 있는 여러 가지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것 말고 하나 중요하게 짚
어야 할 것이 개신교에서 구한 말 이래 주로 미국의 보수적인 신학을 갖고 있던 선교사들
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는지를 언급해야 할 텐데요. 굉장히 복잡하고 미묘한 사항이
긴 합니다만 간단하게 정리 좀 해 주시죠.
목사님: 개신교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오셨는데 대부분이 아주 보수적인 교파에서 많이 한
국을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혈기도 많으시고. 그래서 연결이 될지 모르겠지
만 종교적 이질감으로 따지면 오히려 불교의 탑이라든가, 사리라든가 이런 것이 더 확실
한데, 그것보다는 장승이라든가 나무에 칭칭 감은 그런 것에는 아주 적대감을 가졌고, 오
히려 탑이나 이런 것은 공부의 대상으로 하셨습니다만 때려 부순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
죠. 그런 이율배반이랄까요? 그런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무를 얕잡아보고 좀 더 섬
뜩하게 여기고 그랬던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무속을 포함한 민간의 여러 가지 신령에 접하는 것에 대해 섬뜩하다 표현하셨는데
젊은 선교사분들이 느끼셨을 때 그러셨을 것 같아요. 굉장히 적대적이고 파괴적인 요구
도 신자들에게 했던 것 같습니다. 불교라는 제도종교보다는 약한 대상을 먼저 쳐야 하기
때문에 선교대상으로 약하고 무지한 백성들, 불교, 민간신앙, 무속을 같이 공유하고 있었
던 대중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선교의 주요 포인트를 장승이나 무속
같은 민간신앙으로 잡았던 것 같습니다. 선교정책의 일환이었죠. 그런 것이 일반적인 설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제가 알기로는 여러 신부님 수녀님들, 수도자들
이 무속에 대한 이해를 깊게 연구하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서 상대적으로 무속과의 갈등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무속과의 갈등사
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
을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 조직 성격상 본당이나 신부님들이나 조직 내부에서 커버를 하
기 때문에 안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만 신부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신부님: 글쎄요, 구체적인 예를 들 수는 없고 기물을 부순다든지 사람을 폭행한다든지 그
런 것은 없지만 보이지 않게 가톨릭이라는 제도 종교 안에 아까 스님 말씀대로 무속 혹은
무교와 가톨릭이 굉장히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딪힐 일이 없다고 봅니
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부딪힐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구조가 상당히 비슷해요.
예를 들어 무속에서 혼령에 대한 개념은 물론 가톨릭과 다르지만 시스템이 좀 비슷합니
다. 가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깨끗하면 바로 천당으로 가든지, 아니면 연옥
이라는 곳에 가서 정화 과정을 거쳐야 되요. 그 정화 과정을 거쳐서 그 영혼이 짐승의 몸
을 혼백이 빌린다든지 이런 것은 없지만, 그 영혼이 정화가 되는 걸 거친 다음에 천당에
가거든요. 그런데 죽은 그 사람들 본인이 기도를 하지는 못하죠. 이런 구조는 무속에서 말
하는 것과 아주 비슷해요. 말하자면 혼령을 풀어주고 한을 풀어주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갈등구조가 좀 약하긴 하지만 실제로 가톨릭 교리에서 보면 미신이라든지 무속을
죄악시하죠. 그래서 신도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거예요. 무속인들에게 또 자주 가요.
많은 신자는 아니지만. 통계를 보면 일반적으로 손금을 본다든지 하는 것 하고, 실제로 무
당을 찾아가서 큰 굿은 안 해도 뭘 묻는다든지 이런 건 많이 하거든요. 점은 많이 보러가
고. 그런데 그것에 죄의식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제도 교회에서 집단적으로 훈
련해야 한다라든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별로 문제가 부각 되는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갈등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선교사들이, 베네딕토 선교회 등 초창기에 그
시대 신학에서도 신학적으로 앞선 분들이었죠. 그리고 1960년대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는 민속이라든지 무속이라든지 장승이라든지 이런 것을 굉장히 문화적인 측면에서 바
라봤던 거죠. 신령, 서낭당, 귀신 이런 측면에서 보지 않고. 그래서 갈등이 없었죠. 그러
나 1900년대 초에는 갈등사례가 있지요. 뭐냐면 1867년 한불조약이 맺어지면서 100년 동
안 박해에서 천주교가 벗어납니다. 포교가 가능해진 거에요. 그래서 포교가 가능해지니
까 신학교에서 신부를 만들어서 파견을 하고 그랬는데, 그 신부 중에 예를 들면 제주도에
김원영이라는 신부님이 말하자면 무속을 반대하고 그 민간의 민속을 타파하고 미신을 타
파하는 책을 쓴 거예요. 수신영약修身靈藥, 몸과 마음을 닦는데 영약이다 그런 말을 썼어
요. 구체적으로 보면 미신이라든지 무속에 관한 것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천주
교에 비교해서 그렇게 나오는데, 그 후에 제주도에서는 ‘이재수의 난’처럼 천주교 신자들
하고 교안敎案이 붙는거죠. 이러한 사건들이 저희가 보기엔 제주도뿐 아니라 그 당시에
상당히 이런 갈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제를 넘어오면서부터 그런
갈등구조가 굉장히 없어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신사참배를 천주교에서 묵시적으로 허용하기도 해요. 그런
그 당시 상황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요. 이것이 상당히 아이러니인데, 천주교는 제사 문제
때문에 조선 후기에 무려 십만이 죽었잖아요. 그런데 제사를 지내게 되요. 제사 지내는 방
법이 지방을 쓴다든지 이런 것은 아니지만 조상을 빌어주고 이런 제사를 지내게 한단 말
이죠. 천주교에서. 그런 걸 보면 상당히 무교와 색깔이 다르면서도 뭔가 좀 전체적으로
안 부딪히는 방패막이가 된 거에요.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서로 굉장히 다르지만 우
리가 부드럽게 지나가는 거죠. 그런 이유에서 현대에 와서 무속과의 구체적 갈등사례가
없습니다. 사이가 좋다 라고 하기보다도 그 쪽으로 눈을 돌릴 여유 없이 그냥 가고 있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사회: 갈등사례는 충분히 얘기를 들었으니까 내용은 대강 파악한 것 같습니다. 무속과 한
국의 제도적인 종교 상호 관계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로는 신명, 귀신, 혹은 영혼, 신
령 여러 가지 용어가 굉장히 다양한데 통틀어서 이런 신의 세계, 영혼의 세계나 죽음 이후
의 세계나 이런 것과 관련된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가톨릭의 영성기도나 개신교
의 통성기도 등은 한국의 무속적 전통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먼저 이해를 위해서 무당님(처음으로 무당님이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웃음)이
무속의 신 내림이 뭔지 굿하시면서 경험했던 것을 살아 있는 얘기로 해주신 다음 가톨릭
이나 개신교에서 다양한 종류의 신앙운동이랄까 이런 것과 연결시켜서 이야기가 나왔으
면 좋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경험하고 연구한 결과로는 사람, 그 다음이 영, 그 다음이 신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세 분류로 구분이 된단 말이죠. 그런데 영 단계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신
이 돼야 반드시 뭔가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예를 들어서 신 그러면 어떻게 알고 계신
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하늘엔 옥황상제, 바다엔 용왕, 산엔 칠성, 이런 신들을 모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그 분들은 가끔 도와줄 수 있는 역할이지, 실제 핵심
적으로 저희 용어로 불리는 것을, 불려주는 것은 바로 저희 조상신. 조상 분들이 영 단계
를 넘어서서 신이 된 분들입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연옥이란 곳을 들어가서 영혼을 맑
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희는 신의 세계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신단 말이지요, 조상님들
이. 말하자면 신으로서 충분히 역량이 갖춰졌을 때 저희 몸에 실리는 신이 되서 온다는 말
이죠. 그런데 말을 안 들어요. 제가 오늘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다시 무당해요. 대
통령도 장관도 안하고 무당해요. 그런데 보통 사람 중에 백 중 아흔아홉은 때려 칠 수 있
다면 오늘이라도 무당 안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첫째로 대우를
못 받기 때문에. 그리고 좋은 일을 수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천대를 받다 보니까 안 하려고
한단 말이죠. 그러다보니 신이 할 수 있는 건 중병이 들게 하거나 쪽박을 쳐서 거지를 만
들어서 도저히 갈 수 없을 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다는 거죠. 그러다보니 더더욱 어
떤 사람들은 사주를 풀다보면 몇 백억 부자로 살면서도 신기가 있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
은 어떻게 커버를 하냐. 저희 무속인들에게 그 기운을 넘겨주면서 그 대가를 금전으로 답
례를 하는 거죠. 일 년에 한 번씩 큰 굿을 한다든지. 아니면 자기네 신들이 입을 의복이라
던지 무구巫具 이런 것을 해다가 저희들한테 줘서 대신 불린다고 하죠. 이런 형태로다가
하는데 저는 지금 물론 흔히 하는 말로 큰 굿을 나랏굿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많이 했지만
내림굿도 많이 했어요. 굿 스케일이 제가 좀 커요.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엎어버리
는 성질이고. 그래서 저한테 내림굿을 받으면 좀 잘 풀린다, 돈벌이 관계없이 맑게 손님
을 봐 점을 잘 본단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게 있다 보니 제가 점을 안했어도 다른 곳에서
점을 보고 내림굿을 할 때가 있을 때 저를 말하자면 청배를 하죠. 저를 모셔가는 거죠. 그
럴 때 보면 왜 만신이라는 말이 있죠. 신이 똑같은 걸 하나도 못 봤어요. 똑같이 내리는
건 하나도 못 봤어요. 제가 한 백이삼십 명 내림굿을 해줬는데, 경향이 다 달라요. 예를 들
어 이런 경우도 있어요. 김씨 성 가진 만신이 있는데 그 만신집에 있으면서 그 사람 쭉 보
다가 그 사람 밑에서 내림굿을 할 경우 김씨 만신의 일부를 흉내 내는 경우는 있어요. 그
렇지 않을 경우 내림굿을 하고 쪽박 차고 갈 곳이 없어서 저희를 찾아와서 내림굿 할 땐
100명이면 백 명 다 색깔이 달라요. 내리는 과정은 같은데 모양은 분명히 다 다르다는 거
죠. 그리고 가장 쉽게 내리는 예가 울음이 먼저 터지는 것이에요. 울음이 잘 터지면 신의
말을 할 수 있는 말문이 쉽게 터지고, 울음이 적으면 그만큼 크게 못 불리는 것 같아요. 가
장 공통점은 운다는 것이에요. 어떤 때는 자기 설움에 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울음이 가장 먼저 터질 때는 가장 성공률이 높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애먹이는 거죠. 어떤
때는 똑같은 조건으로 시작해도 사흘을 애써도 결과적으로 못 내리는 경우가 있단 말이
죠. 그건 내림받는 사람의 성격에도 많은 영향이 있더라구요. 왜냐하면 제아무리 용한 신
이 와도 제자가 미련하니까 아무 능력도 발휘를 못해요. 그러나 신은 능력이 적으나 제자
가 영특하면 점점 큰 영력으로 파고 들어가서 스스로 큰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기도
합니다.
사회: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논의할 한국 무속과 기독교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기본
적인 자료가 될 말씀인 듯합니다. 가톨릭하고 개신교 등의 신앙운동을 설명하는 데 중요
한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까 무속 신 내림 과정의 울음이랄지 울음을 잘 울어야 많이 신
과 교통을 하고 잘 모신다거나 하는 것은 개신교의 통성기도와도 상통하는 바가 있을 듯
합니다. 용어는 종교마다 다르겠습니다만 그런 격렬한 신앙, 신비 체험 같은 것이 개신교
가 제일 강하고 가톨릭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종교적 심성이나
격렬한 신앙, 이런 것이 무속과 같은 한국 민간 기층신앙의 관련성에서 한국인의 종교심
성과 연결이 된다고 학자들이 얘기를 하고, 심지어 개신교의 상당부분 신앙양식에 대해
무속기독교라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만, 그에 대해 개신교 쪽에서 먼저 말씀해 주시죠.
목사님: 교회 내부에서는 전혀 다르게 봅니다만, 스타일 양식은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통성기도는 꼭 울면서 하는 건 아니구요. 다시 태어난다는 체험을 한다고 중생重生한다
하거든요. 중생의 체험을 할 적에는 제가 아는 바로는 99%로 예외 없이 웁니다. 왜냐하
면 자기 죄가 드러나기 때문이죠.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만. 어
떻게 해서 그것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코드가 딱 통한다고 할까요? 그런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성경 말씀 구절에서 그럴 수도 있고, 찬양하다가, 기도하다
가 할 수 있지만 예외 없이 자기 죄가 생각나서 통곡을 합니다. 콧물, 구멍마다 다 쏟아내
고. 그런 면에서 아까 말씀하신 신 내림과는 다른 것일지라도 양식은 비슷하다고 생각됩
니다. 통성기도는 한국에서 유일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런 형식이 생겼는
지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제가 감리교 목사이기 때문에 ‘미연합감리교’라고 미국에서 제
일 큰 교단이죠. 거기 두 번째 예배서에 보면 통성기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코리아의 특
이한 기도양식이다 하고 설명이 반 페이지가 나옵니다. 공식 예배 때 “통성기도 합시다”
하면 막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런 기도 양식을 말하는 겁니다. 독특한 양식이죠.
스님: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신가요, 안 받아들이면 계속 혼내고(웃음).
목사님: 선교사들 보고서에 100년 전 한국 예배에 참여하고 희한한 걸 보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신자들이 통성기도에 참여한 걸 보고는 처음엔 카오스를 느꼈다, 그러나 가만
히 보니까 하모니를 발견했다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시나위를 좋아합니다. 시나위
음악을 보면 제각각인 가운데 각각 색깔이 있거든요. 시나위도 무와 관련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통성기도와 양식 면에서 통한다고 느껴집니다. 신접이라든지 그에 대해서는 이따
이야기하겠습니다.
사회: 통성기도에서 카오스와 하모니를 느꼈다는 얘기 굉장히 재밌네요, 시나위하고. 전
라도 같은 경우에 옛날 무당들이 당골로 여러 군데 흩어져 있었습니다. 시집가서 시어머
님 모시고 지역별로 당골판 형성하다가 정월 대보름 같은 때 집안들이 한번 다 강변에 모
였다고 합니다. 각 지역마다 약간씩 음도 차이나고 춤도 차이가 나잖아요. 무당들이 모여
가지고 맨 처음엔 그냥 치는 겁니다. 처음에는 다 각자인데, 중천에 보름달이 떴을 때는
기가 막힌 화음이 돼서 대동굿이 됐다고 합니다. 장단도 딱딱 맞아떨어지고 그 신명으로
밤새 놀다 가는 거, 그게 무속의 유명한 대동굿인데 사오십 년 전에 사라져서 지금은 전
혀 볼 수가 없다는 증언만 들었습니다. 그러한 한국문화의 기층문화와 통성기도와의 유사
성 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연구 과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 신학자들도 상당히 많
은 연구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목사님께서 두어 가지 더 새벽기도나 수요예배나 이런
쪽 특성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목사님: 교회에 2000년 전통을 보면 수도회라든가 밤을 새면서 몇 번씩 깨어나서 기도하
는 전통이 있죠. 개신교만의 전통이 아니구요. 세계 교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보여 집니
다. 특히 농경문화 속에서 새벽 한 4시 전후해서 일하러 나가기 전에 깨가지고 기도하는
모임을 가진 것은 한국에서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는 못 봤구요. 요
사이 도시 교회에서는 새벽기도를 고집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도시 직장생활 하는 신
자들 싸이클에서는 새벽기도보다 저녁기도가 어울린다고 해서 최근에 들어와서 새벽기도
를 하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사회: 주로 통성기도에서 한국 기층문화와 종교 심성과의 연관을 살펴 볼 수 있다는 설명
이셨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경우에도 요즘 십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영성 신앙회복 운동이
전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부님께서 정리해주시죠.
신부님: 가톨릭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도를, 목사님 말씀대로 아침기도, 저녁기도 이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보면 시간 자체를 성화해야 한다는 교회 전통이 있는 거죠. 말하자면
시간경이라고 합니다. 세 시간마다 한 번씩 기도하는 수도사들이 있고, 이렇게 해서 24시
간 동안 성화하고, 이것이 또 계절별로 부활시기, 성찬시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
위 말해서 접신되는 통성기도라든지 이것을 우리는 통성기도라기보다는 성령기도라고 표
현을 하죠. 그보다 앞서서 우리 교회 전통에서는 접신하는 그런 문제를 구약시대 때부터
그런 전통이 있다고 믿어요. 믿는 게 아니라 인정을 합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이 엑스터
시를 하고 말하자면 접신이 돼서 접신이 된다는 것은 무속에서 말하는 혼백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받는 거죠. 유일신이니까. 삼위일체 성령의 기운을 받아서 자기
가 말하자면 자기 의지를 초월한 신의 성령 파워가 와서 예언을 하게 된 거죠. 어떤 때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을 우리는 구약시대 때 접
신하는 것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럼 신약시대 와서 그런 것이 있느냐? 근데 그런 것을
지금도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릴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가 진짜
다 아니다 하는 것은 다른 문제고, 분별해야 하는 것이고. 무조건 그런 것을 없다고 얘기
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조심스럽게 그런 것이 현재에도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거예
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재 어떤 방언을 한다든지 아니면 특별한 기도, 성령기도 이런 차
원에서 교회에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컨트롤하는 거죠. 말하자면 자기가 지어내는 기도인
지 아니면 제대로 된 영의 기도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또 분별하는 그런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교회에서는 그걸 굉장히 컨트롤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경우를 보면 어떤 문제가 있냐 하면, 잘 아시겠지만 기층적인 종교심
성 그 자체가 그런 요소가 많잖아요. 굉장히 신 끼가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성
령기도를 하는 데를 갔는데, 사람들이 보통 기도와 달리 살아 있는 기도를 하는 거예요.
같이 찬양하고 율동도 하고. 그 후에 말하자면 분위기가 고조되면 성령기도를 하는 거예
요. 방언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것도 굉장히 컨트롤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
기의 내면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 놓더라구요. 굉장히 좋은 체험을 했지요. 개인적으로 그
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야! 기도를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 후배 신부님한테 천주교 기도를 바꿔야 되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근
데 이게 뭔 얘기냐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심성이 로마 가톨릭의 제도화된 미사라든지 그
런 것이 그 안에 굉장한 의미가 있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쉽게 토착이 잘 안됐
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 쪽으로 굉장히 고심하고 있고 한 발짝 한 발짝 가고 있는 거죠. 그
래서 제 생각에는 그 요소를 정통 가톨릭의 관점에서 한국에 토착화하고 적응시키는 기도
방법을 많은 연구를 해야 되고, 그 쪽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약 30년 전에 신학생일 때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성가를 부를 때 손뼉 치면서 노래하는
데 이상한 기도를 한다, 이랬는데 그게 우리 심성에 맞는 겁니다. 그것이 무슨 죄도 아니
고. 말하자면 과거의 가톨릭 전례를 보면 초창기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4세기 이후 로마
에서부터 이것이 가부장적인 우리 교회 전통, 언어라든지 이런 것들이 로마라는 중세기
를 거쳐서 구라파 서구의 전래가 굳어지죠. 사실은 굳어있는 전례에요. 기도하는 사람이
몸도 좀 흔들고 노래할 때 손뼉도 치고 말하자면 예를 들면 흑인영가 같은 것들은 바로
와 닿잖아요. 미국의 흑인영가 같은 것들을 하면 우리 속으로 바로 들어온다고요. 그런데
이것이 앞으로 가톨릭의 과제에요. 그리고 그런 것이 들어와서 소위 대중들, 교인들이 맘
대로 통성이라도 좋고 성령기도도 좋고 이런 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다른 데
로 이상하게 비약되어 빠져나가는 것을 교회에서 두려워하죠. 변질될까봐. 그러나 지금
그 쪽으로 굉장히 많은 연구가 되고 그런 것이 교회 안에서 요구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조
심하죠.
사회: 신부님 말씀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지만, 사실 지금 굉장히 급진적인 것 같거
든요. 좌담회 정리 때 말씀 그대로 쓸 건데 괜찮으실는지요?
신부님: 쫓겨나면 무당 되지요(웃음).
사회: 불교에서도 유사한 기도 전통이 있는지요? 스님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님: 불교에서 밤낮 없이 낮 6시간, 밤 6시간 기도하는 것이 비슷할 터입니다. 3분, 4분,
6분 정근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불교가 중국을 거치면서 자축인시 개념이 도입되는데, 각
기 하늘, 땅, 인(사람)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벽 예불을 새벽 3시에 합니다. 근래
에 신체리듬학적으로 보면 인시가 그때가 감성, 이성에 대한 욕구가 가장 많이 발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컨트롤을 잘 하면 좋은 에너지로 간다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
런 것이 새벽기도로 가기도 합니다.
사회: 불교에서도 간혹 보살님들이나 거사님들이 기도 정근하다가 신비체험을 하는 경우
가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불교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들
을 듣는데, 한두 가지 사례만 말씀해주시죠.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겠습니까(웃음).
스님: 일본 천태종 같은 경우에는 굶어가면서 계속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합니
다. 그 친견한 게 진짜를 본 건지 헛것을 본 건지 먼저 본 사람이 또 검증을 해줍니다. 그
게 있고 한국 천태종에서는 밤에 기도를 해서 신비체험을 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
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게 무당이든지, 귀신이든지, 가톨릭이든지, 불교든지 일
정한 소리와 박자를 반복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정근한다는 게 부처님,
보살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거거든요. 거기 박자를 맞춰요. 일반적으로 박자를 맞춰요. 일
반적으로 하는 게 또르르르딱 또르르르딱 이건데, 그러다가 나중에 신명이 나면 일자로
가거든요. 딱딱딱딱. 이거 많이 넘어 갈 때 터지는 겁니다. 그런 것은 교회 가서 직접 많
이 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운영하고 있는 포교당 인근의 교회에서 하는 것을 보면 비슷한
것 같아 보이더라구요. 그것은 우리 심장을 울리게 하는 어떤 문화 원형이랄까 싶기도 하
고, 그것이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회: 해외에서는 종교 심리학자나 음악, 체육학자들이 같이 함께 연구하는데, 종교적 신
비체험이 어떻게 오는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이려는 노력도 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연구 성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신명은 우리 한국인의 것만이 아니라
인류보편의 심성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 심성이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난 현상들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회장님이 무속과 한국 종교의 연관
에 대해 다시 정리를 해주시죠.
회장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무속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기독
교 같은 경우 우리 교회가 최고 영검(험)해, 우리 교회가 최고 소원 잘 들어준다고 하죠.
절 같은 경우에도 그렇거든요. 우리 절 부처님이 최고 영검하다고. 무속적 사고방식이거
든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전 세계 어디로 가도 우리나라 밖에 이건 없을 거예요. 아니 하
나님은 분명히 유일신이라서 한분이고 부처님도 분명히 한분인데 어딘 더 영검하고 어딘
덜하고 이러면 어딘 가짜 절이고 어딘 가짜 교회란 말이에요? 이게 무속불교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무속인들은 그 지역에 따라서 어떤 힘을 통하느냐에 따라서 더 능력을 많
이 받을 수 있고 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간 것이 그 영
향을 미친 것으로 봅니다.
사회: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맨 처음에 우리 한국 사회에서 왜 무당만 ‘님’자가
안 붙느냐를 가지고 꽤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 다음에 주로 여러 가지 갈등사례를 중
심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살펴봤고, 그리고 세 번째 신 내림 영성 부분에 관련하
여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속과 연관해서 무속뿐 아니라 자유롭게 한국 전
통 종교나 신앙들이 더불어 어떻게 나아가야 될는지, 굳이 화해하라 상생하자 이런 주문
은 하지 않겠습니다.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각자의 신앙 종교 전통 속에서
덕담으로 생각하시고 한마디씩 마무리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간 역사 속에서 우리가 진리라는 것을 볼 때 모든 인간이 신
이라든지 절대자라든지 아주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고 하면 모든 종교에는 그 안에 진리
의 이면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내 안에 내가 진리를 모두 사
수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고, 그 자체가 말하자면 심하게 보면 죄스러
운 것이죠. 그것 때문에 전투가 일어나고 서로 파괴가 일어나고 그러는데 일단 그 점은 전
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내가 믿는 가톨릭 입장으로 보면 내가 믿는 하느님이 진
리라고 믿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고 다른 진리를 찾는 자도 서 있을 것이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를 들어 무속이라는 것을 꼬집어서 얘기하
자면 무속에 있어서 그 기능에 전부 역기능만 있느냐,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무속인들
도 사람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고 봅니다. 심하게 나간 얘긴 것 같습니다만 무속도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을 수천 년 동안 치유해왔고 또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게 병만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치유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무속에도 하나의
종교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무속을 우리 민족의 영성적인 측면, 영성문화적
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한계라고 할까요? 분별
이라 할까요? 이런 것들을 오늘날 기성종교에서 잘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를 들
어서 우리가 기성종교에서도 사람들을 잘 부리기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
가지로 무속에 있어서도 사람들을 잘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말아
야 할 것이고, 또 그렇다고 해서 우리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그쪽에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투적으로 막는다든지, 전투적으로 그 존재
를 없앤다든지, 이런 것은 굉장히 반종교적이고 반인륜적이고 반문화적인 것이 아닌가 합
니다. 나를 지키고 나의 진리를 고수하되 타의 것을 인정하면서 그런 면에서 화해와 상생
이 존재하는 것이지 섞어서 어떻게 해보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또 뭘 포기하는 것도 아
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스님: 경기도 이천에 오비맥주 부지와 관련된 전설이 있어요. 열심히 교회에 새벽기도 다
니던 아저씨가 있는데, 교회까지 가는데 중간에 절이 있는 겁니다. 지나가는데 꼭 중이 목
탁을 치면서 어쩌고저쩌고 하거든요. 어휴 저거 안 들려야 되는데 하면서 그게 한 달 가
고 일 년 가고 삼년 가니까 그놈의 경전을 다 외워버렸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
마치고 사탄의 집 앞을 지나는데 애가 울고 있는 거예요. 눈은 왔는데. 강보에 애가 쌓여
있어서 애를 데리고 집에 온 거에요. 그래서 집에 와서 먹을 것도 주고 그러는데 집안사람
들은 보니까 애가 헛것이 쓰인 거야. 아무것도 안 들고 저 혼자 업 데리고 온 겁니다. 결국
은 어쨌든 그 애를 한 6개월 키워주고, 나중에 애가 나 갈 테니까 내일 새벽에 제일 처음
오는 사람을 무조건 잘 접대해라 하더랍니다. 새벽에 그 집에 검은 세단이 와서 물만 달라
는데 밥까지 주고, 나중에 땅 사달라고 하는데 중간에 안 떼먹고 값 다 쳐서 사주니까 나
중에 얼마 팍 떼어서 주더랍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짓고 이 사람은 부자 된 거죠. 거기에
기독교, 불교, 무속 다 걸려 있는 겁니다(누가 복을 줬는지는 모르겠지요. 웃음).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도 그렇고 저는 요즘 배아줄기 세포니 성체줄기 세포니 이런 거
할 때 불교적으로 어떠냐 묻곤 하는데, 다른 종교는 모르지만 불교적으로는 그게 윤리적
으로 맞든 안 맞든 할 건 다 한다, 그건 자연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교리적으로
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이럴 때 불교적으로는 생명과 비생명이 둘이 아니다, 윤리적인
행동과 비윤리적 행동이 시각과 위치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이런 생
각을 갖습니다. 기독교하고 천주교하고 무당하고 잘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는 그들끼리가
아니라 거기 현재 사는 사람들이 잘 어울리면 잘 살고 아니면 뒤지게 싸우는 겁니다. 그것
은 아까 말씀하신대로 교리적으로 딱 정리가 되서 만나야 된다, 안 만나야 된다,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어떤 현장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잘 해 가느냐 그런 것이지 않느냐 싶습니
다. 제가 지금 선원 포교원을 열었는데 거기에 교회가 두 개가 있어요. 건물 안에 예수교
장로회 교회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여 목사고 하나는 여 전도사고, 또 그 옆에 가면 교
회가 더 많은데 적당히 어울려 삽니다.
목사님: 저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가깝게 지낸 무당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선배도 있습니다만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근데 그게 해결이 안 될 건 안 되
더라구요. 제 지론은 너무 가까이도 가지 말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말고, 아까 진리 말씀하
신 것처럼 진리를 교리로만 접하려니까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같이 풀
어야 할 숙제들이 많은데, 특히 종교 지도자라면 더 책임이 있는데, 같이 일 풀어가는 과
정에서 같이 대화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런 게 생길 적에 좀 자신을 좀 낮추
고 너무 드러내지 말고 옷차림새 하나부터 조금 낮추고 만나서 대화하고 하면 크게 부딪
히지 않으면서 좋은 일, 대중적인 일 풀어나가다 보면 진리가, 아니 진리라는 표현보다
는, 사랑이 서로 겹겹이 쌓이고 묶이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너무 감상적 표현입니다만 그
런 생각을 합니다.
사회: 마지막으로 회장님, 오늘의 주인이신지, 풀이를 하러 나오셨는지, 아무튼 속이 편안
하신 것 같은데.
회장님: 예.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어느 종교든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종교가 무속
적인 것을 일부분 안 떼어갔다고 할 수가 없단 말이죠. 그러면서도 배타를 한단 말이예
요. 자기네들이 사용을 하면서도 그것을 수천 년 동안 해온 저희를 배타하는 경우가 많아
요. 무속은 첫째로는 치유요법이고, 둘째로는 불교나 기독교나 천주교처럼 어떤 그 말하
자면 성경이나 불경 같은 책자나 이런 게 있어서 거기 틀에 맞춰서 가르쳐서 배워서 배출
이 된 것이 아닌, 말하자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백이면 백 다른 색깔을 가진 무당이 나와
서 선생이 가르치다 보니까 그 선생이 뭔가 머리에 들은 것도 있고 기본적으로도 갖춰진
제자 같으면 계보가 제대로 지켜져 나가는데요. 그렇지 않을 경우 소위 말하자면 다른 종
교인들이 볼 때 꼭 사기꾼 같은, 저희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 그래
서 뭐랄까 가장 그 동안 배타도 많이 당하고 차별도 많이 받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
요. 그냥 어울려서 살아가면 좋은데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냥 무속인이 다른 종교이기
때문에 배타를 한다기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수천 년을 이어왔는데도 지금 정부나 다
른 단체를 보면 무속을 단순히 세습적인 풍습으로만 밀고 간다는 말이죠. 국가정책도 그
렇고 모든 것이.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우리나라의 샤먼이라도 좋고, 종
교적 단체로 인정해도 좋고, 그들이 있다는 것만 인정이 된다면 저희 무속인들은 부처님
도 받아들이고 하나님도 받아들이고 성모마리아도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다른 종
교는 그게 안 된단 말이죠. 그래서 적어도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도 아까 신부님 말씀하
셨듯이 그동안 저희가 해온 거 좋은 것도 많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정도 선에서라도 인정
을 해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지금 무속인만 우리나라에 40만 명이랍니다. 어
마어마한 숫자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동안 성당이나 교회 가는 건 대표적인 힘센
종교이기 때문에 어깨에 힘을 주고 들어갈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걸 뭐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고요, 절에 가는 건 그것보다 약간 떨어지기 때문에 약간 수그리고 들어가
고, 무당집 들어가는 것은 아예 누가 볼까봐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다는 그런 말이 있다는
거죠.
사회: 예. 긴 시간 좌담에 임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 번의 좌담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나아갈 방향이 분명하게 설정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무당(님) 한 분
을 모셔놓고, 신부님, 스님, 목사님과 더불어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보는 한국 무속”에
대해 많은 좋은 말씀을 나눴습니다. 이런 모임 자체가 앞으로 각자의 신앙현장에서, 그리
고 생활의 현장에서 더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
시 한 번 좌담에 임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진철승 / 공동선 기획위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첫댓글 장시간 토론하심에 우선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미련한 사람이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 서양에서는 치킨! 한국에서는 통닭!... 산에서 뜨는 해와 뱌댜에서 뜨는 해는 무엇이 다른건지...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는데 지구의 무게가 좀 가벼워졌나요?... <질량불변의 법칙> 낙동강, 한강, 섬진강, 대동강... 백두산, 태백산, 마니산, 한라산... 무엇이 다른지요? 모든것이 그냥 노친네의 말씀처럼 산은 산! 물은 물이로다! 입니다. ^^~ 게으른 자리를 털고나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개울물에 세수하고 모든이에게 편안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구봉 두손모음>
반갑습니다. 구봉스님! 잘 지내시지요? 한 번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