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는 그의 학술논문에서 ‘무공(武功) 방면에서는 제하(諸夏)가 비록 승리를 획득했으나 文化 방면에서는 東夷에 동화되었다. (중략) 대저 東夷는 과연 어떠한 사람들인가. 곧 화목 자상하고, 무력보다 예술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대표적 인물을 들면 순(舜)임금이다(孟子는 舜임금을 東夷人이라고 말했다). 지인(至仁) 지효(至孝)해 남에게 천하를 양위하고 또한 천하를 다시 남에게 양위함은 참으로 고금 중외에 다시 없는 지극히 성스러움인 것이다. (중략) 우리나라(中國) 문자는 東夷人이 다 창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설(契)이 널리 보급했기 때문에 조자의 공이 설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
동토와 서토의 고문을 대략 비교해 보면 곧 東夷가 문자의 지혜에 대해서는 서하(西夏)보다 우수하고, 東夷人이 먼저 교육권을 장악했으므로 제하(諸夏)가 모두 東夷의 文化를 받아들였다’고 논급했다.
결국 중국문화는 東夷文化를 받아들여 이룩되었으며, 이른바 한자는 東夷族이 창조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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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고 하자 임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중국의 역사학자인 서량지는 그의 저서 <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1. 회색 질그릇의 문화는 東夷문화이다. 2. 배와 노, 활과 화살은 東夷가 창시했다. 3. 중국의 역법은 東夷에서 창시된 것이다. 4. 역법은 실제로 東夷에서 창시되었다. 5. 東夷 음악교육은 중국 역사 이전에 있었다. 6. 황제족은 부족연맹시대 東夷로 스며 들었다. 7. 전욱은 東夷에서 출생하였다. 8. 우순은 맥족 및 東夷 도자기의 개량자이다. 9. 순(임금)은 제풍에서 출생하여 명조에서 돌아가시니 東夷사람이다. ... 은나라 주나라 이전 내지 은.주 시대의 東夷는 그 활동면이 실제로 오늘날 산동성 전부를 포괄하였고 하북성 발해연안. 하남성 동남. 강소성 서북. 안휘성 중북. 호북성 동쪽 모퉁이. 요동반도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임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