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로 젖어 드는 빗소리
김경준
시간까지 깜깜해진 한밤중
장대같이 굵은 가을 소낙비 휘몰아쳐
양철지붕 부서질 듯 두들기는 빗소리에
선잠을 깨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온 세상을 다 묻어버린 시끄러운 빗소리,
-가난한 이의 얇은 양철지붕을 달달 볶는 빗소리.
-창가 가까운 곳 몇 잎이나 남았을 나뭇잎 떨구려고 재촉하듯
-거친 박자로 북 치는 빗소리, 천둥소리.
-한 움큼 몰려가는 바람이 후두둑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
-갑자기 불어난 낙숫물 용추에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
-그 바쁜 소리들 중에 유난하게 초침을 재듯 천천히 떨어지며
머리맡에 내려놓은 내 잠결을 가지런히 빗어 내리듯
작은 물방울로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기억에도 없을 듯한
(먼발치 어린 시절에도 이만한 기억이 있는 듯)
아련히 되살아나는 꿈길
희미한 꿈 자락을 밟고 오는 기억들도 선잠의 한편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칭얼대는 그 어둠의 중간쯤
서둘러 깬 잠에서 멍하니 그 모든 빗소리를 세어가며 듣노라면
요란스레 살아 온 날들을 저절로 돌아보게 되지요.
크게 눈 떠도 깨알만한 밝음조차 없어 더 순수한 어둠
그 속에서 '후회 없는 삶을 꼭 살아야지' 생각하다가
잠든 아내가 누워 있을만한 거리와 방향으로
가만히 손을 내밉니다.
이 아름다운 인생과 생명을 함께 나누고 누릴
하나님이 주신 배필을 무의식중 확인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
그 자리에 곤히 잠든 아내가 손에 닿듯-
우리 삶의 그 방향, 그 어림이라고 짐작되는
[곳]과 [것]들을 향해 손을 뻗으면 잡힐
하나님이 주시는 내 삶의 희망가득한 선물꾸러미
한밤중에 수 많은 빗소리를 가만가만 세고 있노라면
지나온 삶의 첫 마디부터 마무리할 매듭까지
정말 내 인생은 예쁘게 세공하는 예쁜 보석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