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쿠반 재즈(Afro-Cuban Jazz)'란 '아프리카의 정열(리듬)과 남미의 관능(정서)이 만났다'는 표현처럼, 일반적으로 남미와 아프리카의 음악적 요소들이 '즉흥성'이라는 재즈의 바운더리 안에 녹아든 음악을 이야기한다. 라틴 재즈(Latin Jazz), 쿠반 재즈(Cuban Jazz)라는 말과 동일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라틴 재즈는 보사 노바나 브라질리언 재즈, 그외 다양한 라틴 음악적 요소들을 새롭게 해석한 것들까지 포함하는 보다 넓은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며, 쿠반 재즈 또한 훨씬 다양한 범위를 포괄한다. 예컨대 그 유명한 곤잘로 루발카바(Gonzalo Rubalcaba)의 음악은 단순히 쿠바 음악에 재즈를 도입하거나 비밥에 남미 리듬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음악언어적 특징을 획득하고 있으며, 쿠바 현상을 타고 라이센스 발매된 쿠바 재즈 뮤지션 오마 소사(Omar Sosa)의 음악은 좀더 흑인 음악의 뿌리에 다가선 음악을 들려주는 등 최근 들어 쿠바 재즈 뮤지션들의 다양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은 아프로쿠반 재즈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 이름 아래 한정하기에는 너무 많은 쿠바 음악의 요소들이 섞여있다. 그들의 음악에 재즈적인 요소들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지만, 쿠바의 전통음악인 손(Son)과 볼레로(Bolero)의 영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들의 음악이 지난 한 세기동안의 쿠바 음악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음악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혁명 이후 사교클럽들이 문을 닫아 음악을 포기한 채 구두닦이 등 생업에 종사하다 미국 뮤지션 라이 쿠더(Ry Cooder)에 의해 발굴되어 전세계를 쿠바 음악으로 흥분시켰다는 그들의 절절한 사연이나, 월드 뮤직의 불모지일 뿐만 아니라 '쿠바=북한'처럼 생각하는 미수교국 남한에서 '쿠바현상'을 일으키며 매진 사례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사실까지, 어쩌면 공연에 간 모두는 이미 준비된 감동을 확인하러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의 반응은 여든이 넘은 몸으로 부축을 받으며 입장하는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의 모습에서 이미 정점으로 솟구쳐 버렸다. 피아노 앞에서 다섯 곡을 연달아 뽑아낸 그는 나이 때문인지 강한 리듬이나 파워있는 타건보다는 얼마 안남은 인생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듯 한없이 편안했다. 하지만 하비에르 살바(Javier Zalba)의 플루트나, "Chanchullo"에서 보여준 색소폰 솔로에 이어지는 후반 타악 진행 같은 부분에서는 세련된 현대음악적인 요소도 보여주었다. 속칭 '클럽' 음악이 사실은 현대 재즈의 시작이였다는 걸 증명해주듯이 말이다.
시종일관 훈훈한 음악을 선사하던 곤잘레스가 빠진 채 "Over the Rainbow" 같은 곡을 즉흥으로 섞는 등 밴드가 두 곡의 연주를 들려주더니, "Donde Estabas Tu"를 시작으로 오마라 뽀르뚜온도(Omara Portuondo)가 등장했다. 그녀는 하얀 무대 의상에 붉은 립스틱을 하고 나와, 발차기 안무까지 보여주며 가장 카리스마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The Man I Love"의 스패니쉬 버전과 "Quizas Quizas" 같이 한국 관객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멜로디로 관객들을 흥분시키더니 결국에는 그 다양한 사람들을 일으켜 음악과 함께 몸을 흔들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공연장은 모두 선 채 클럽 한가운데서 음악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쿠바의 에디뜨 삐아프'로 불린다는 그녀지만, 그녀의 음색에는 삐아프의 염세적이고 폐쇄적인 아름다움보다는 고단한 삶 속에서 체득한 여유로움과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 가운데 쿠바와 쿠바인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정서를 발견했다면 무리인가.
"Quizas Quizas"가 끝난 후 등장한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 그는 가장 깊고 보편적인 감동은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듯했다. 한없이 평범한 듯한 보컬,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노래에 대한 열정은 감동을 잔잔히 지속시키기엔 충분했다. 특히 그날 공연 내내 말썽을 부렸던 베이스가 문제를 또 일으키자, 다른 멤버들의 즉흥연주를 뒤로 하고 공연 중에 직접 베이스를 같이 손보던 모습은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자신을 소외시킨 채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설명해주었다. 철저히 대중에게 소비되기 위해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는 음악산업의 부속품이 아닌, 음악의 주체인 자신들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그런 태도였다. 음악산업에서 (음악 자체에서마저) 배제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음악과 태도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가장 폐쇄적인 공간에 있었기에 가장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다"는 외국 매체의 평가도 일맥상통하는 얘기인 것 같다.
평소 아끼던 곡들이 많이 연주되지 않은 채 끝났다는 아쉬움은 앵콜곡으로 나온 "Dos Gardenias"와 이브라임과 오마라의 듀엣곡 "Silencio"에서 녹아버렸다. 앨범에서도 깊은 여운을 얻었지만, 그들의 표정과 감정을 읽어가며 직접 곡을 듣던 순간은 개인적으로 그날 최고 감동이었다.
공연장의 열광적인 분위기, 그리고 음반매장마다 전진배치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CD를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부에나 비스타 현상'은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열대 지방 특유의 여유로움과 혁명 전의 순수함이 담겨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은 부드러우면서도 향수가 어려있다. 바깥세계와의 단절은 이 섬나라를 고립시켜 마치 타임캡슐처럼 만들었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바깥세계에 대하여 쿠바가 어필하는 힘은 바로 지나친 상술의 범람으로부터 특유의 스타일을 지켜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뉴욕타임스]). 일반적인 관점은 이렇게 (의도적인) '곡해'를 내포한다.
그러나 (혁명 후의 '타락함'과 대비되는) 혁명 전의 순수함이나 열대지방 특유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게 쿠바 음악의 정체성인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그들은(우리는) 그저 낯설고 신기한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더 낯설고 신기한 것이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태도가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 '배제'와 '포섭'이라는 음악산업의 기본적인 생리를 넘어서 이들의 음악이 많은 이들과 지속적인 공감을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 혹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보다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가깝다'는 생각을 한 내가 문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