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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지킨 유월절/민 9:1~14, 말씀:안광복 목사님
지난 주에는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국대통령에 [40대 흑인 대통령]이 탄생되는 순간을, 세계인들은 감격과 흥분과 환호를 지르면서 그의 탄생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과거에는 흑인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오래도록 기념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월절은 유대민족에게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그럼,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봄마다 종교의식으로 지키는 절기(축제)입니다.
민수기 9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지 2년째 되는 해, 첫째 달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키게 하여라. 이달 14일 해질 무렵 곧 정해진 때에 그것을 지켜라. 그 모든 규례와 율례를 따라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민9:1~3)
이 말씀은 이집트에서 나와서 2년째, 첫째달에 하신 말씀 입니다.
인구조사를 명한 것은 출애굽한 후 둘째 달에 명령했는데, 그 첫 번째달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달 14일 해질무렵에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유월절]은 참으로 놀라운 구원 사건입니다. 장정만 60만명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는데, "그걸 풀어주라"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나라를 포기하는 것>과 같이 큰 일입니다.
그러나 10번째 재앙 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 입니다. 애굽은 맏아들이 죽었으니 바로 백기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은 사방에서 곡소리가 났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봄의 첫달에 지켜지는 의식으로 그달 10일에 흠없 고, 일년된 수컷 어린양을 선택하여 그달 14일 해질 때에 잡았으며, 그 피를 집의 문 설주에 발랐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은 그 [피]를 보고, 그냥 넘어간 거예요. 오직 어린 양의 붉은 피를 보면, "그 집을 PASS OVER했다" 는 것이 유월절의 의미 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세상의 아침을 맞이 했어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당신의 은혜로 우리를 덮어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슬픔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이번 Love sonata에 이지선 자매가 초청되어 간증을 했어요. 나가사끼는 원폭의 피해를 받은 절망의 땅으로 인식되므로 이지선 자매의 처지와 입장 이 같아서 더욱 더 공감이 갔었습니다.
이지선 자매는 14번 수술을 받았고,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서 지금 미국에 유학하여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그의 얘기의 주제는 "주님 안에서 절대로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한 것입니다. 어디서 지켜야 할까요? 그것은 "광야에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광야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거기서 지키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9장 4~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달 14일 해질무렵에 처음으로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겼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행했습니다."(민9:4~5)
유월절의 절정은 양을 잡고, 그것을 먹는 거예요. 유월절은 [피의 제전]이예요. 그러니까 사방에서 피 냄새가 가득했을 거예요.
예쁘게 생긴 어린 양을 잡는데, 어린 양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점점 느낌을 알아채고 소리지르며 슬피울 거예요. 그 어린양에게 그 때 시퍼런 칼이 목을 베는 순간, 몸을 축 늘어뜨리고 죽게 됩니다. 그러면 죽은 어린 양을 빈 제단에 뿌리며 수일동안 축제가 진행됩니다.
유월절은 처음 시작하는 날이고, 이 때에 절기는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시체를 만져 더러워진 사람이나, 여행으로 출타한 사람들은 이런 절기를 지키지 못하므 로 이들은 "한달후인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라도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을까요? 첫째,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하고, 둘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그들을 구원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깨달았을 때 나의 정체성을 바로 알았을 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 다. 그래서 하나님은<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의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 인지를 알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자의 [은총]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사회적인 직함이나, 그가 입고있는 옷이나, 그의 출신학교나, 그의 회사를 보고, 그 사 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이렇게 [나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해 엄청난 댓가를 치루신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민수기 9장 13절에서 단호하게 얘기 하십니다. "부정하지도 않고, 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예물을 정한 때에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민9:13)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첫째,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서 제거될 것이고, 둘째, 자기 죄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한 얼굴로 바라 보시는데, 우리가 그의 얼굴을 피한다면 결국은 [우리의 영혼]은 시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된 마음으로 참여합시다. 예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날>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느끼는 날>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므로 예배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
구름기둥과 불기둥/민수기9:15-23, 말씀:안광복 목사님
지난주에는 광야에서 지킨 유월절의 의미와 정신을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의 유월절은 요즘 시대의 [예배]입니다.
민수기 9장 15-17절을 보십시오.
“성막을 세우던 날 구름이 성막을 덮었으며, 저녁에는 그 구름이 불같은 모양으로 변하여 아침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런 상태는 언제나 계속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행진하고, 구름이 다시 내려와 머물면 거기서 진을 쳤습니다“ (민 9:15-17)
여기에 나오는 [성막]은 무엇입니까?
[성막]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백성들이 만들었던 이동식 구조물로, 광야생활에 하나님의 거처로 사용했습니다.
그 안에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있는 언약궤가 있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 말씀하셨rh, 요즘에는 [성전]과 같은 장소입니다.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고 했어요, 구름은 어떤 구름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구름입니다.
우리가 태양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가 있어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언제나 그 일이 계속 되었다”는 것은“하나님이 함께 동행했다.”는 징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보호하심]의 역할을 하셨어요.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더위를 덮어주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싸늘한 추위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중동지방의 낮 기온은 햇빛이 너무나 따가와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너무도 추워집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항상 지켜 주셨어요. 그러니까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았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의 앞길을 항상 [인도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에서 구름이 떠오르면 길을 떠났고, 구름이 내려와 머물면 거기서 진을 치고 머물렀습니다.
사막에는 시계도 없고, 나침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앞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삶속에서 나 스스로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알려주는 싸인은 무엇입니까?
내가 믿는 기둥은 무엇입니까? 혹시 그것은 잘 작동하고 있나요?
그것을 신뢰할 수 있나요? 혹시나 오작동으로 실수하지는 않나요?
우리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서 우리의 [성막]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성막을 세운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예배]입니다.
내가 그동안 의지했던 것을 모두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예배할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날마다 날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일들을 느끼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것을 자기 자신이 몸소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느끼고 체험했는데,
“내가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언제나 지도자를 따라 갔어요.
광야에서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결국 순종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직, 노예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공동체 의식]도 없었어요.
채찍을 맞으면 움직이고, 일을 시키면 일을 하는 수동적인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었고, 그들은 말씀에 또 순종을 했어요.
20절을 보십시오.
“때로는 구름이 성막위에 며칠간 머물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길을 떠났습니다.” (민 9:20)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이렇게 “순종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정만 60만명 이라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까지 합치면 2백만명은 됐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움직이고, 멈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예요.
어떻게 이런 순종이 가능했을까요?
그들은 겸손했어요. 그들이 겸손했으니까 가능했던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내 감정에 의지합니까? 아니면 나의 지식과 학식에 따라 움직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을 의지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고백하고, 엎드리어 구하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찾고, 그 말씀을 따라 하십시오.
참된 신앙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을 잠시 하나님의 시간에 꿰어 맞추시지는 않으신지요?
우리는 [순종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음성과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렇게 달려갈 때에 우리의 인생에 행복은 보장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 늘 [광야]와 같기 때문이지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는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비싸고 좋은 자동차일수록 브레이크가 잘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제동력이니까요.
현대인의 생활에는 도처에 맹수와 전갈이 수없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인 목마름]을 느끼고, 그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친구]가 필요해요.
같이 걸어가면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가족과 같은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런 친구가 믿음을 같이하는 [교우]들이고, 그런 울타리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광야에 살지만, 그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온전한 [믿음]을 갖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출발의 나팔소리/민수기 10:1~10, 말씀:안광복 목사님
지난 주에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시는 모습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한 가지 방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방법입니다.
구름기둥은 낮에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는 방법이고, 불기둥은 밤에 싸늘한 추위에서 보호해 주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결같이 40년을 지켜주셨고, 또 그들은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팔 2개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민수기 10장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은을 두드려서 나팔 두개를 만들고, 회중을 불러모을 때와 진을 거두고 행군을 시작할 때 그것을 사용하거라"(민10:1~2)
여기에 나오는 [나팔]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왜 나팔이 필요합니까?
첫째, 나팔은 주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드는 신호용으로 사용합니다.
둘째, 나팔은 수많은 군중들을 출발시키려고 할 때 사용합니다.
나팔의 기능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로, 나팔은 사람들을 모이게 합니다.
민수기 10장 3~4절을 보십시오
"나팔은 둘다 불면 온 백성이 성막 입구에 모이게 하고, 나팔을 하나만 불면 각 부족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의 천부장들만 너에게로 모여야 한다"(민10:3~4)
나팔을 부는 방법도 미리 정해 져 있습니다.
2개의 나팔을 다 불 때에는 전체가 모일 때를 의미하고, 1개만 불 때에는 각 부족의 지도자들만 모일 때 사용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천부장]은 무슨 말입니까?
[천부장]은 천명의 부하를 관할하는 지휘관으로, 그 밑에는 10명의 백부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가장 작은 단위의 지휘관으로, 그 밑에 100명의 부하가 있습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생활하는 사람의 숫자가 <장정만 60만명>이라고 했으니, "600명의 천부장이 있었다" 는 얘기이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할수 있는 신호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나팔은 출발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민수기 10장 5~7절을 보십시오.
"짧게불면 동쪽에 진을 친 진영이 움직이고, 끊어서 다시 두번째로 짧게 불면 남쪽에 진을 친 진영이 움직여 행진하여라. 이와같이 행진신호는 나팔을 짧게 불고, 소집신호는 길게 불도록 하라"(민10:5~7)
길게 불면 <전체가 모이라>는 신호이고, 짧게 불면 <앞으로 진진하여 행진하라>는 뜻 입니다.
그러나 "한번에 짧게 끊어서 불면 동쪽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다시 두번째로 짧게 불면 남쪽의 사람들이 움직이라"는 뜻 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3그룹씩 묶어서 분산하여, 3개 지파로 나누어 진을 쳤으므로, <아주 규칙적으로 서로 움직이라>는 싸인입니다.
행진의 대열에 맨 앞에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가 있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각 부족이 나아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팀플레이]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이런 [팀 플레이의 조직]이 필요한 겁니다.
지시와 하달은 천부장과 백부장의 조직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나팔의 소리를 듣고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조직적으로 행동하게 미리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둘째, 개인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공동체]로 함께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질서와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 [순종과 화합]을 느낄수 있어, 공동체로써 뭉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팔소리를 듣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가막힌 작전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노예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주인의식]이란 것은 별로 없어요.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내것]이 되지 아니하니까,
그들에게는 [목표의식]이 없어요.
그러나 이제 [출애굽]했으니,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이제는 그 반대로 "책임져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매여있는 [종]이 아니니까, 책임질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한 이후에 [공동체의식]이 생긴 거예요.
이제는 하나님의 열망에 따라 "책임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족단위로, 아니면 부족단위로,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를 맞아야 움직이는 노예였지만, 이제는 약속에 의해 질서있게 움직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거예요.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기고, 서로 신뢰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가 기다려야 다른 지파가 질서있게 움직일수 있다" 는 원리를 깨닫고, 나팔소리에 맞추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면서 의도한 바가 뭘까요?
첫째, 하나님의 꿈대로 그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했을 것이고,
둘째, 개인적인 움직임에서 [공동체]로 움직이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부족단위로, 각 지파가 연합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게 [꿈]이였어요.
[약속]은 서로의 조건과 수준이 맞아야 가능합니다.
여러분? 밭에서 일하는 소와 약속을 해 보셨어요?
소와 약속한 그런 약속이 잘 지켜 지던가요?
소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우리가 소와 약속을 한다"는 것은 원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를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소의 코를 뚫는 거예요.
왜 소에게 코뚜레를 합니까?
그것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니까, 소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코를 뚫은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을 받고, 그렇게 따라서 움직였어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싸인> 입니다.
둘째, 오늘 말씀하는 [나팔소리를 들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귀로 들을 수 있는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두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들을 이끌어 갔어요.
그럼, 이럴 때 부는 [나팔소리]는 누가 불었을까요?
8절에 그 대답이 있어요.
"나팔은 제사장인 아론의 아들들이 불어야 한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지켜야 할 규정이다.(민10:8)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만 불어야 합니다.
모세가 최고의 리더십이지만, 모세도 나팔을 불면 안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은 [아론의 아들]에게만 나팔을 불도록 그 역할을 맡기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어떻게 일을 하시나요?
첫째, 우리에게 주신 [은사대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재능과 열정으로, 그 은사를 활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은사가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잘 활용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안타까와 하십니다.
둘째, 은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과 질서에 따라 일을 하려고 하십니다.
"네 부모님에게 순종하라" 는 말씀도 결국은, <가정의 질서를 지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은사대로], 때로는 [질서대로] 분명히 일을 하시는 분이니까,
우리도 [은사대로], 때로는 [질서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어떤 소리를 듣고, 일어 나시나요?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 때서야 일어 나시나요?
아니면, 나같이 <알람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 나나요?
이세상에는 수 없이 많은 소리가 있어요.
아름다운 음악소리, 듣기 좋은 부드러운 소리, 교회의 종소리, 그러나 민방위의 싸이렌 소리나 경적소리와 같이 시끄러운 소리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해야 해요.
그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된 소리]인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불필요한 소리]는 차단해야 그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럼,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들려 오고, 어떤 소리일까요?
1. 하나님은 [소리]를 통해 우리를 움직이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해서 빛이 생겼고,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졌어요"
그러니까 그 분의 말씀(음성)으로 모든 것이 만들어 졌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소리는 [생명을 창조하는 소리] 입니다.
이 [생명 창조의 소리]는 너무도 놀라운 사건 입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을 찾으시고, [부르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동산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담을 향해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씀하시고, "네가 왜 나를 피하느냐?" 라면서 죄를 짓고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아담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음성으로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 타는 불꽃속에서 "모세야? 모세야?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네 신을 벗어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 말을 들은 모세는 하나님 뵙는 것이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출3: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음성으로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을 불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면서 잡아 죽이던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지금 일어나 시내로 들어 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울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떠 보니, 아무 것도 볼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울은 회개하고, 위대한 전도자 <사도 바울>로 변신했습니다.
3. 하나님의 소리는 [구원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메세지]와 [생명의 소리], 그리고 [희망의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여러분? [구원의 소리]를 가장 감명깊게 들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예수님의 옆에서 함께 십자가 달려 있던 강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순간에도 옆에 있던 강도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희망의 소리]를 들려 주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도 그런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이것은 [사명의 소리]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는 [사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런 하나님의 소리는 [생명 창조의 소리]이고, 결국 [사명의 소리] 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오늘의 말씀에서 또 한가지 [소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팔소리] 예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17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게될 것입니다."(살전4:16~17)
우리가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장이 부르는 [나팔소리]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168장을 함께 불러 봅시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때 나의 이름--- 나팔 불때 나의 이름--- 나팔 불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 하겠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100m 달리기 경주할 때에 [인간탄환]이란 소리를 듣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출발장면을 보셨습니까? 그들이 출발하는 그 소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것은 그 [소리의 감각]으로 0.001초의 좋은 성적을 낼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소리]에 따라서, 내 인생의 좌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용히 기도하며, 그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리]는 우리의 내면을 통해서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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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밥의 선택과 모세의 지혜/민10:29~36, 말씀:안광복 목사님
그러니까 [나팔]은 귀로 들려지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보여주는]싸인과 [들려주는]싸인을 이용하여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말씀에 반응하여 순종할 때에 [행복]이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모세와 호밥의 대화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을 찾아 보겠습니다.
민수기 10장 29~32절을 보겠습니다.
“그때 모세는 그의 처남 호밥에게 우리는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로 지금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꼐 같이 갑시다. 우리가 당신을 잘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호밥이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모세는 “그러지말고 같이 함께 가자”고 권합니다. “처남은 이 광야의 길을 잘 알고 있으니 우리의 좋은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처남이 우리와 함께 가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처남도 함께 누리게 될것입니다.”(민10:29~32)
모세가 처남인 호밥에게 “함께 같이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것은 호밥이 광야의 길과 노정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므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잘 안내해 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모세가 "잠시라도 이런 나약한 생각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지도자(리더)로써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생각하면, 모세가 확실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제안을 했다.” 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수 많은 군중을 이끌고 가야할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그 곳의 지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태도는 <불신앙>이 아니고, 리더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생각하는 거예요.
먼 길을 가는 동안에 예상치 않는 돌발 변수도 예상되고, 위기관리 능력을 위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했다"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런 모세의 제안은 당연한 것이지만, 결국 시기적으로 "이럴 때에 이런 제안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장로님이 공항에서 목사님을 배웅하면서 “목사님의 자제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목사님에게 신세지었으니, 이제는 제가 기꺼이 돌봐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하면서 <명함을 건네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이후에 <그 명함을 곧바로 버렸다>고 합니다.
후에 들은 얘기로 그 목사님의 생각으로는 “오로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사람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비신앙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고 생각하여 <쓴 약을 먹은 셈치고, 명함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애매한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동의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의 어려운 형편을 생각하며 그 장로님을 통해서 나를 도우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선택]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떤 결정을 내립니까?
물론, 하나님이 책임지고 인도해 주시는데,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먹고 놀아야 합니까? 그건, 아니예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메세지]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동행하겠다" "두려워 말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여호와는 모든 것을 넉넉히 채워 주신다"
저는 이런 말들을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그냥 받아 드리며, <우리에게 축복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들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본심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고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했어요.
예수님은 2 달란트를 받고 열심히 일한 [종]을 칭찬하셨고, 예수님한테 받은 1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은 [게으른 종]을 질책하셨습니다.
또 데살로니카 교인들은 주님이 곧 오시는데, "왜 일을 하느냐?" 면서 놀고 먹는 교인들에게, "일하기 싫다면, 먹지도 말라"고 사도바울이 충고했어요.
이렇게 우리 인간들이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벌칙(패널티)이기도 해요!
물론, 어떤 때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모두 다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을 분명히 요구하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세처럼 [최선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해요!
며칠 전에 미대통령 당선자 오바마가 두 사람을 임명하였는데, 그 의미가 있어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경제회복 자문 위원회 의장으로 81세의 고령인 폴 볼커(Paul Adolph Volcker)를 발탁했어요.
이 분은 일찍이 은퇴하신 분이지만, 재계에서는 미국 경제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분이므로, 미국이 경제 위기를 맞이하여 시급히 불러 들인 사례입니다.
또 사무국장에 오스탄 불빅스를 임명했어요.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 경영대학원 교수가 된 사람이고, 대학시절에는 전 미주대학 토론대회에서 1등을 한 천재입니다.
이 두 사람의 발탁은 오바마 당선자가 경제회복을 바라는 미국인들에게 "1분도 허비할 수 없다"는 의지이고, "적임자를 찾기위해 초당적으로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운동경기에도 좋은 선수와 코치가 있어야 하듯이, [전문가의 도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10:16)고 했어요.
이런 [모세의 지혜]를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는 아낌없이 노력을 다 해야 해요.
이런 모세의 제안에 호밥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호밥의 입장에서는 따라갈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러나 호밥은 모세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호밥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으로 모세와 함께 떠났어요
33절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시내산을 떠나 3일 동안 행진하면서 법궤를 앞세우고 진을 칠곳을 찾았는데, 그들이 행진할 때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들 위에 있었습니다”(민10:33~34)
하나님의 관심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40년간 씨름하면서 그들을 지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광야는 춥고 배고픈 곳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관심을 갖고 지켜 보호해 주는 것이지요.
교우여러분? 우리의 인생도 살다보면 수없이 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어요.
2008년을 보내시면서 “1년중에 가장 잘 결정했다”고 생각하신 [선택]은 무엇입니까?
반대로, 가장 후회하시는 [선택]은 무엇입니까?
혹시 당신은 그런 [선택]을 하실 때 “무엇을 근거로 선택하셨나요?”
사람들의 선택은 [편한 곳]으로 갑니다.
또 사람들은 명예와 부귀와 인기가 있는 곳을 선택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달라요! 성경은 하나님이 관심있는 곳으로 가기를 원해요.
그곳은 [하나님 말씀이 있는곳]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곳으로 가라>고 해서 그 곳으로 갔어요.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떠났어요.
그때 같이 동행했던 아브라함의 조카 = 롯은 사람을 따라 갔으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떠났어요.
사람을 보고 떠난 롯은 역사상 가장 타락한 성읍인 소돔과 고모라의 시민이 되었어요.
그 결과 그는 향락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그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굴 속에서 지내면서 두 딸과 음행을 하고, 그 자녀들은 이방 민족의 조상이 됩니다.
이런 끔찍한 역사적인 사실을 회상해 보십시오.
결국, 우리들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나게 크게 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롯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결국 롯은 그와 헤어지므로 소중한 기회를 잃어 버렸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끝이난 거예요.
이렇게 사람은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너무도 중요 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혹시나 길이 막힐 때도 있어요.
분명히 응답받은 일인데도 길이 막히면, 그 때에는 길이 열리는 방향으로 가세요.
그것도 순종이에요.
이런 갈등 가운데 있으신 분들은 그 옆에 있는 길로 방향을 바꾸세요.
창세기 24장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모든 일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2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데체 왜?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일마다 복을 주셨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인생에 어떤 비결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그 대답을 아브라함이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찾아서] 일해야 해요.
아브라함은 100세에 어렵게 얻은 아이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이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삶 속에도 그런 일들이 항상 나타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결국, 모세와 호밥은 길을 같이 떠났어요.
그들이 가는 길에 낮에는 항상 구름이 그들 위에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어요.
모세의 행렬은 겉으로는 군대와 같은 조직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오합지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그 [인도하심]을 구하는 거예요.
구름기둥은 하나님이 눈으로 보여주는 싸인이고, 나팔소리는 귀로 들려주는 싸인입니다.
그 가운데서 인간적인 좋은 동역자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작]과 [마침]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는 [모세의 지혜]를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의 원망/민수기11:1~9, 말씀:안광복 목사님
여러분은 어떤 때에 [원망과불평]을 하십니까?
자기가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때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말을 못하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죽을 때 까지, [원망과 불평]은 늘 우리에게 따라 다닙니다.
사회적인 문제이든,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데, 그렇게 원망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습관적으로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 원망과 불평을 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고,
셋째, 원망과 불평은 "하면 할수록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 11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때 백성들이 불평하는 소리가 여호와의 귀에 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불이 그들 가운데 타올라서 진의 바깥쪽을 태웠습니다.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모세에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까 그 불은 꺼졌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을 다베라로 부르게 됐고, 이것은 여호와의 불이 그들 가운데 타올랐기 때문입니다.“(민11:1~3)
오늘 말씀에 나오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랬동안 광야 생활을 하다보니, 불평하는 소리가 많아 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이 길어지고, 지치게 되어, 과거에 먹었던 좋은 음식을 생각하고, “고기좀 먹게 해달라. 생선이나 오이, 참외, 부추, 양파, 마늘을 마음대로 먹고 싶지만, 여기에는 만나 밖에 없구나“ 하면서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민11:4~6)
[만나]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먹고 살았던 <하늘로부터 온 양식>입니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뜻으로, 아무도 지금까지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보는 물건이니까,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진주처럼 희고 반짝이는 서리같이 <꿀로 만든 과자>와 같다"고 했어요.
[만나]는 크기가 고수씨만하고, 모양은 마치 나무에서 나는 투명한 <진액방울> 같았습니다.
출애굽기 16장 3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빵을 만나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코리안더씨 처럼 하얗고, 맛은 <꿀로 만든 과자>와 같았습니다“ (출16:31)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출신이므로 이런 <꿀로 만든 과자>를 먹어 보고,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그 기분은 상상할 수 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각 지파 별로 춤을 추고, 파티를 하면서 흥분하고,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으로 상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가지 않아서 [불만과 불평]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최고의 음식인 [만나]를 즐겁게 먹었으나, 오랫동안 먹다보니 그것도 질려서 [원망과 불평]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꿀로 만든 과자>라고 좋아하다가 매일 먹는게 질리고, 오래먹다 보니까,
이제는 <기름에 절인 과자>라고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급기야는 <당연시>하여, 또다시 불평을 합니다.
[감사]가 바뀌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거예요.
우리들도 [고마운 일]이 계속되면, [당연한 일]로 느껴지게 돼요.
노총각이 늘 굶거나, 라면 1개를 끓여 먹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결혼을 하면 아침마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도 고마웠는데, 사랑의 유효기간인 3년이 지나면, 그때부터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져요.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음식 투정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예요.
이것은 [감사함]이 [당연함]으로 변하는 것이고,
[당연함]이 더 지속되면 [당연함]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중에는 [요구]로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변했어요.
민수기 21장 5절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합니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지 않소? 이제 이 지겨운 만나도 신물이 나서 먹지 못하겠소?" 라고 모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민21:5)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고 있어요.
[만나]를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라고 좋아하더니, <기름 절인 과자>라고 불평하고, 후에는 <이제는 지겨워 더 이상 못 먹겠다>고 불평합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그들의 문제이기 보다, [하나님의 문제]이고,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나안 땅으로 빨리 들여 보내고 싶은게 [하나님의 마음]이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황량한 벌판에서 “왜 하나님은 그대로 놔 두느냐“라고 불평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불평과 원망]만 하고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지켜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나팔]을 만들어 수많은 군중들이 귀로 듣고 움직일수 있는 상황을 보았어요.
또 아침이면 [만나]의 맛을 보게 하셨고, 바위에서 물이 솟아 나는 것을 보았고, 메추라기 떼가 하늘을 덮었고, 불세출의 지도자인 모세가 리더로써 지휘하는 상황을 보면서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응답되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와 같이 탑돌이를 하면서, 대답없는 명상을 계속 하는 것이 아니고,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도 그렇게 불평을 했어요.
[불평]의 반대는 [감사]예요.
처음에는 [만나]를 먹으며 [감사함]을 느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덤덤해 지고, [당연시] 하게 되요.
우리들의 생활도 이와 비슷해요.
우리의 생활가운데 [카플]이 있지요.
처음에는 서로 돕고 함께 이용하는 것이 너무도 좋았는데, 오랫동안 게속하다보면 서로간에 불편한 것이 나타나서, 급기야는 서롭 불평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그럼 우리들은 이럴 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 불평이 쌓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들과 같이 불평하며 지내야 합니까?
둘째, 원래대로 처음의 생각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초심을 잃으면 안됩니다.
내가 처음에 시작할 때를 생각하고, [감사함]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은 건강할 때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 해요.
맹장수술을 받은 환자는 방귀가 나오는 순간을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해요.
그것은 “수술이 잘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지요.
그 때의 [감사]는 어쩌면 [감격]으로 바뀌게 되는 상황이지요.
교우 여러분?
[감사]를 [감격]으로 바꾸세요
원망을 하다보면, 원망은 점점 더 커지고,
원망이 커지다 보면, 공동체 식구들에게 전염이 돼요.
우리의 삶속에 불평과 원망이 있어요.
그러나 그 원망과 불평이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그속에서 [감사할 꺼리]를 찾으세요.
“피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거기서 즐기라”는 말이 있어요.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속에서 [감사꺼리]를 찾아야 공동체가 건강해 져요.
일본 나가사끼 love sonata에서 이지선 자매의 간증가운데 꼭 전해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화상을 입고서 20번이 넘도록 수술한 이지선 자매의 간증도 감동이 됩니다.
얼굴에 화상을 입고 7개월간 꺼즈를 얼굴에 덮고 살았으나, 그런 것은 "불평할 꺼리도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날 수술을 받으러 가니까 수술대 위에 눞혀 놓고 “양 손가락을 한마디씩 자르는 것에 동의 하셨지요?” 라고 간호사가 물었어요.
그 때까지 본인은 한 쪽만 일부 절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양손 다 자르는 거야?”
그랫더니 엄마의 대답은 ***********<묵묵 부답>입니다.
대답없는 엄마의 묵시적인 인정으로 그 순간 이지선 자매는 마음 속으로 <손가락 전체를 자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야!>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 다행이야! 손가락 한마디만 자르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은혜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원망과 불평]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얼굴을 하도 많이 꿰메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침만 질질 나오는데....
손가락 한마디를 절단한다는데 “하나남께 감사 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예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이예요?
언제나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고,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이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길 바라지만, 가끔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지선 자매와 같이 참혹한 화상을 입었는데, 손가락을 잘라야하는 <고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예요.
그때 우리는 “하나님? 그러면 곤란하지요!” 라고 대답하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고통을 요구하실 때, 당신은 입에서 찬송이 나올 수 있나요?
하나님에 헌신하는 사람은 [감사하다]는 말만 하고 다니고,
모든 일에서 감사해야 할 일들만 스스로 찾아서 행동을 하는 사람이예요.
오늘의 주제는 좀 어려운 말이 예요.
이지선 자매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원망과 불평]대신에 <감사를 찾아서 행동하자>는 말은 너무나 어려워요.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1. 첫째, 힘들고 억울할 때는 무조건 크게 마음껏 우세요.
2. 둘째, 그리고 너무나 속상하면, 불평도 하세요.
3. 셋째, 그러나 하루속히 그런 불평에서 벗어나서, 그런 가운데에서도 [감사꺼리]를 찾아서 새롭게 도전하세요.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그래! 하나님! 이 정도이기에 그래도 감사해요”라는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 하신다”는 거예요.
그 분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나에게 고통을 준 것은 분명한 뜻이 있는 거예요.
그 속에서 진짜 [감사함]을 찾으세요.
내가 가진 소유와 내 건강, 그리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말고,
"내가 지금까지 받은 축복은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생각하면서 늘 [감사하는 고백]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대답/민수기11:16:~35, 말씀:안광복 목사님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불평하는 소리를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민수기 11장 11~1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왜 주께서는 주의 종을 괴롭히십니까? 왜 제가 주의 은총을 받지 못하며, 주께서는 이 모든 백성의 짐을 다 저에게 지우십니까? 그들이 나의 자녀입니까? 내가 그들의 아버지라도 됩니까? 어째서 유모가 젓먹이 아기를 품듯이, 이 백성을 품고 <그들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이 모든 백성이 먹을 고기를 내가 어디서 구할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지금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이 백성에 대한 책임이 너무나 무거워, 나 혼자서는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이시고, 곤란한 일을 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이것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길입니다(민11:11~15)
첫 번째 대답은, [모세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소연하는 [모세의 심정]에 대해 이해가 되십니까?
모세의 영적 부담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짐이 너무도 무거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이들을 품고, 같이 가야 합니까?” “하나님? 나, 못해요!”
“오히려 저에게 은혜를 주신다면 저를 죽여 주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이런 [책임감] 때문에 너무나 큰 부담감을 느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고충을 이해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투정과 간구하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하나님에게 간구하세요. 그런 분들은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매달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을 보십시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시리로다“(시55:22)
마태복음 11장 27~28절을 보십시오.
“아버지 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7~28)
이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럼, 하나님이 위로와 평강을 채워 주실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민수기 11장 16~17절을 보십시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백성의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 너와 장로, 혹은 관료로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지도자 70명을 내게로 데려와라. 그들을 회막으로 데려와서 거기서 너와 함께 서도록 하여라. 내가 내려가, 거기서 너와 이야기하고, 네게 내려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눠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이 백성의 짐을 너와 함께 나눠지고, 너만 혼자 지지 않게 될 것이다“(민11:16~17)
여기서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 네가 장로, 또는 관료로 알고 있는 사람들” 이란 누구를 말합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리더십)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70명의 지도자들은 누구입니까?
첫째, 나이가 많고,
둘째, 경륜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고,
셋째, 그 시대의 지도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어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고, 기름부은 사람”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럼, 구약시대에도 성령님이 계셨습니까?
예,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분명히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개역성경의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지구는 아무 형태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흑암에 싸인채 물로 덮혀 있었고, [하나님의 신], 즉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활동하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민수기 11:24~25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모세는 나가서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고, 존경받는 지도자 70명을 불러서 성막 주위에 배치하고, 서게 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 께서 구름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와 말씀하시고, 또 모세에게 주신 [영]을 그 지도자에게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들에게 내리자, 그들은 얼마동안 예언 했으나,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민11:24~25)
25절의 끝에 나오는 “그들이 얼마동안 예언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계속해서 많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잠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이 곧바로 사라지고, 다윗을 향한 분노가 생겨서 일생을 망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쓴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하나님이시여! 주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주의 크신 자비로 내죄를 깨끗이 지워주소서. 내 모든 죄악을 씻어 주시고, 내 죄를 없애어 나를 깨끗이 하소서 .....(생략)..... 하나님이시여! 내 속에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주앞에서 나를 쫓아 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시편 51:1~12)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의 고백]은 성령이 떠나가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걱정이 되어 [무서워서] 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 만 해도<성령의 역사>는 크지 않았지만, 신약에 와서 오순절에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는 더욱 더 간절하게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첫째, 성령님을 기쁘게 생각하세요
둘째, 성령님을 내가 받아 들이고,
셋째, 성령님과 매일 교제 하세요.
넷째, 매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하세요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세요. 성령의 말씀이 [영]이므로 [말씀]과 가까이 해야 해요.
그러면 우리는 내 마음 속에 있는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수 있어요.
여러분의 삶속에도 늘 [성령님]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대답은, [백성의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광야에서 “고기를 먹겠다”는 백성들의 불평에 하나님은 한달동안 “실컷먹도록 하겠다”고 대답해 줍니다.
민수기 11장 18~20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청경하게 하고, 내일 고기 먹을 준비를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불평을 들으시고, 여러분에게 고기를 먹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고기를 하루나, 이틀이나, 5일이나, 10일이나, 20일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한달 내내 신물이 나도록 먹을 것입니다“ (민11:18~20)
"그러나 모세는 “내가 인도하는 백성이 장정만 60만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달동안 먹을 고기를 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떼와 소떼를 다 잡고, 바다의 고기를 잡아도 부족할 것입니다“(민11:21~22)
여기를 보면, 모세도 하나님 말씀에 의구심을 느끼고 있어요.
눈앞에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을 본 장본인 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불세출의 지도자인 모세, 그도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온 기적을 믿으세요?” "그런 기적을 어떻게 받아 드리나요?
세상 사람들은 그걸 믿으려 하지 않아요.
믿지않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그냥 사실인 것처럼 받아드려요.
하나님의 [행하심]은 우리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요.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어떤 [사건]에 의심이 생기면, 그런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촛점을 맞추어 보세요.
그러면, 자연히 [믿음]이 생겨서, 그 [사건]이 이해가 되기 시작해요.
물론, 죽은사람이 어떻게 살아나요? 사람이 어떻게 물 위를 걸어 갈 수 있어요?
그 사건은 묵상하면 전혀 믿어지지 않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묵상하면 믿어지게 되지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예요.
혹시나 누가 이런 것을 물으면....지체하지 말고, <가능하다>고 분명히 대답하세요.
그것은 "하나님이니까.....가능한 거예요"라고 대답하세요.
그런 기적을 체험한 모세도 의심했으나,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어요.
민수기 11장 30~31절 보십시오.
“그러고 나서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진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바람을 보내, 바다에서 부터 <메추라기>를 몰고와서 그 주변 일대를 꽉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그날 밤과 낮,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까지 메추라기를 잡았는데, 가장 적게 잡은 사람도 약 10가마 정도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말리려고 진영 주변에 널어 놓았다(민11:30~32)
고기를 먹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마어마 하게 많은 양의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방법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여 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주 [추한 방법]으로 받아 들였어요.
그들은 <메추라기를 먹느라> 정신이 빠져서, 하나님께 [감사]를 빠뜨렸어요.
그들은 [감사]가 없었고, 인간적인 [욕심]을 부렸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민수기 11장 3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이 그 고기를 입안에 넣고 씹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노하셔서, [무서운 재앙]으로 그들은 수없이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탐욕의 무덤>인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고기에 대한 탐욕을 가진 사람들을 거기에 매장하였기 때문입니다.(민11:33~34)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재앙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탐욕의 무덤]= 즉, [기브롯 핫다아와]라고 불렀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야할 곳은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그러나 욕심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들의 시대에도 종종 반복되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죄와 욕심]에 사로잡혀서 [원망과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행복]은 모두 다 그렇게 되지요!
지나친 불평은 지나친 [욕심]을 불러 일으키고, [욕심]의 끝은 [탐욕의 무덤]으로 이어져,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평과 원망]의 정도이지만, 이기적인 생각이 더 발전하면 결국은 [탐욕의 무덤]으로 빠지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구에 대답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에도 대답하셨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도 늘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멸망의 땅인 [기브롯 핫다아와]가 아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늘 대답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대답은 <언제나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대답을 기다리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순종하세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지말라>고 말리시면, 그때는 하지 마세요!
그것은 <길이 아니라>는 말씀이니까 그때는 잠시 멈추시고, 다른 방법을 찾아 보세요.
우리는 날마다 늘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스라엘 사람같이 <추한 것>으로 표현하지 말고,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에는 수없이 많은 멸망의 땅인 [기브롯 핫다아와]가 있으며, 영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의 응답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땅]을 살펴보라/민13:1~25, 말씀:안광복 목사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오늘이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을 보여 주면서, 그 곳에 대한 동경과 비전을 품게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장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너는 각 지파의 지도자들 가운데 1명씩을 뽑아 내가 너희에게 줄 [가나안 땅]을 살펴 보도록 하라.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도자들입니다"(민13:1~3)
하나님은 모세에게 40년간 생활하던 바란 광야의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으로 정탐꾼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그런 말을 하셨을까요? "가나안 땅으로 곧 바로 들어가라"고 해도 좋을 텐데, 왜? 하나님은 그 곳에 미리 <정탐꾼을 보내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생각은 두가지의 뜻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어차피 들어갈 땅이니까 <미리 답사 하고 오라>는 뜻입니다.
그 약속의 땅에 미리 정참꾼을 보내서 현지 상황을 살펴보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미리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탐]이나 [답사]의 의미라면, 12명씩이나 보낼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소수 정예]로 젊고 패기에 찬 젊은이 몇 사람만 가더라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각 지파의 리더들중 1명씩을 보낸다"는 것을 보면,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시찰의 의미]로 그들에게 미리 확인시켜 주고, 자랑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나님도 그 땅을 그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자신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약속의 땅]을 각 지파의 족장들에게 자신있게 보여 주면서, 그곳에 가서 <눈으로 한번 확인해 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각 족장들에게 풍요로움이 넘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확인 시켜 주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이지?" 미리가서 [비젼을 품고 돌아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 땅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 어떤 곳입니까? 거기에 가서, 미리 보고, <감동을 받고 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곳은 아무나 갈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적어도 각 지파의 지도자는 되어야 선택받아 갈수 있는 곳입니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땅>이고, 축복 받은 <축복의 땅>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요.
교우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며, "오늘 우리의 삶가운데 적용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가장 공평하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입니다.
며칠이 지나면, 우리는 한해를 마무리 집니다. 그리고 [새해]를 맞습니다. 그러니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들여다 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며, 다가 올 [시간]을 미리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 [싯점]입니다.
[새해]라는 의미는 어떤 뜻일까요? [새해]는 가나안 땅과 같이, 우리가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시간]이예요. 그러나 가 보지 않은 그 [시간]을 "미리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시간]이예요.
여러분은 년말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특히 새해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새해가 온다"는 것은 큰 [축복]이예요. 지나간 2008년은 이제 조용히 마무리하고, <새로 다가오는 2009년을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에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시작]과 [끝]이 없이 "그냥 12월이 지나가면 13월이 오고, 또 14월이 계속된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그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겠어요.
지나간 과거는 재야의 종소리와 함께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각오가 필요해요. 년말이 되면, 우리는 이러한 [각오]와 [다짐]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지나간 2008년의 시간들은 [소중한 시간]이고, 너무나 소중한 [기회]였어요. 그러나 2008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고, "너무나 허망한 시간이였다"고 후회해요. 그래서 과거를 [반성]하고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나를 새롭게 [다짐]하는 것과 같아요. 오늘이 1년의 마지막 주일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은 얼마나 공평해요.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을 누구에게나 다 주어진 똑같은 시간이예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자기에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오히려 자기 시간을 쪼개어 남을 돕는 시간으로 활용하기도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나님은 그 [시간]을 너무나 공평하게 각 사람에게 기회를 주셨고, 그 시간을 우리들의 삶의 방법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적용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새롭게 주시는 2009년을 감사하게 받아드리고,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설계하여, 좋은 일에 [시간]을 알차고 귀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럼,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가서 정탐꾼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정탐꾼이 가서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져 와야 합니까?
17~20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가나안땅을 살펴보도록 그들을 보내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네게브로 해서 산지로 올라가라 그 땅이 어떤지, 거기 사는 사람들이 힘이센지 약한지, 수가 적은지 많은지를 알아 보라. 그들이 어떤 땅에 살고 있는지,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들이 어떤 성들에 살고 있는지, 성벽이 없는지 튼튼한지, 토양은 어떤지 등등 말이다. 그 땅의 열매들을 갖고 돌아 오는데 최선을 다하라."(민13:17~20)
모세의 지시는 크게 4가지 입니다. 1. 그 땅이 어떤 땅인지, 그 땅에서 생산되는 나무와 열매는 무엇인가? 2.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큰지? 힘이 강한지? 3. 그 곳의 성읍은 성벽이 있는지, 성벽이 튼튼한지? 4. 그 곳의 토양은 어떤지? "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상당히 지혜가 많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가서, 그 곳을 보고,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머리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그 가나안 땅을 예측해서 그렇게 지시한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생각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합한 타이밍을 알고 계시고, 그 [시간 = 타이밍]에 맞추어 일을 진행 하시는 분입니다.
방송국 PD의 [큐]라는 <싸인>은 "이제! 모든 상황의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곳의 무대장치, 사람(배우), 조명, 음향이 <완벽하게 준비 되었다>고 판단될 때에 자신있게 [큐]싸인을 줄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도 전체를 보면서 <완벽하게 셋팅되었다>고 판단하여 40년을 기다렸다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모세야? 이제! 정탐꾼을 보내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고생시키고, 때를 기다려 온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최고의 연출가이고, 그 분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므로 우리는 그 분을 믿고 따라야 해요. 그분은 무슨 일을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빠르게 일을 이루는 분이 아니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 모세가 그 곳에 들어가서 [살땅]을 미리 계산하여 분배해 주고 있는데, 그러나 그 시간에도 요단강 건너 편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행복하게 그냥 지내고 있어요.
그것은 그 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에요. 거기에 들어가서 살 사람에게 미리 준비를 시킨 거예요.
정탐꾼들은 아주 정확하게 그곳을 보고 왔어요. 12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보고 왔어요.
모두들 그곳은 "비옥한 땅이라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보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강할뿐만 아니라, 그들의 도시는 아주 크고, 성곽으로 둘러 쌓여져 있는 요새 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갔다온 정탐꾼들이 그곳에 다녀와서, 좋은 말만 한게 아니예요. 그 곳에서 긍정적인 것만 보고 온게 아니라, 거대한 힘을 느끼면서 주눅이 들었고, 겁을 먹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주변이 전부 사막지형이지만 그 가운데 비옥한 땅인 [가나안 땅]을 누구나 탐을 내고 있으며, 그 곳에 애착을 갖는 것은 당연하므로 계속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그 보고 내용과 두려움에 떨고있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 집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이런 [장애물]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이지 않은 말에는 일일히 반응하지 마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비젼이라면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받아 드리세요.
결국에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일인데, 왜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었는데, 왜 우리가 미리 걱정을 하십니까?
2008년을 보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년초에 숭례문 화재사건이 벌어져서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어요. 그리고 바로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집회>가 이어져 상반기를 허송 세월로 보냈고, 정부는 10년 좌파정권의 연장선에서 꼼짝도 못하고 요지부동이예요. 하반기에는 연애인들의 <자살사건>으로 나라가 어지러워 졌고, 국회는 매일 매일 싸움만 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2009년에도 힘들꺼라"고 얘기 하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내년은 오지 않았어요. 아직 열려지지 않은 2009년을 너무 염려만 하지 마세요. 남은 시간을 철저히 준비하고, 2009년의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세요.
교우여러분? 이럴 때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요. 힘든 <한해>가 지나가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힘을 내고 나가세요!
지금까지 살고 왔던 것도 하나님 은혜이듯이, 2009년의 새해에도 감사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세요. "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그분이 나를 책임져 주고 나를 지켜 주실 것"이라는 여러분의 고백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人生에 최고의 한해가 되실 것을 기약하면서 준비하고 기도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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