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홍은명
서기: 한다익
기원문 결어: 조여주
대종사님과 구인선진님의 역사가 어린 영산원! 아름다운 가을 2학기 첫번째 조불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대산종사님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기원문 결어로 조여주 교우가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1.강연: 대종사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반갑습니다. 조여주입니다. 기원문 결어에 대한 강연을 하기에 앞서 음성 하나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일심으로 들어주세요. (대산종사님 성음) 대산종사님께서 원기 80년대 이후로 쭉 병상에 누워계실 때 목소리도 안 나오시고, 기력도 쇠하신데도 기원문 결어를 계속 외시는 성음입니다. 우리도 한번 기원문 결어 원문을 성심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기원문결어 원문) 대산종사님은 30대 때 얻으신 폐결핵으로 한 쪽 폐가 없으셨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신 후 대산종사님께서는 평생 밤에도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셨습니다. 몸이 너무도 편찮으셨기 때문에 대산종사님의 방은 한 여름에도 불을 활활 땠습니다. 그 방에서 열반을 몇 년 앞두고 제자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면 대산종사님께서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뜻은 기원문 결어를 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기원문 결어 일상원 중도원 시방원” 하고 외우기 시작하고,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 하고 다 외우고 나면, 아무 말씀 없으시면 그만두라시는 거고, 또 대산종사님께서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니”라고 하시면 제자들은 또 외우고 또 외우고, 이렇게 두 번, 세 번, 많게는 백 번까지도 외우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제자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말 마시오 나는 세 시간 외웠소” 하면서요. 저는 그 때 제자분들께서 젖은 것은 몸뿐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때 대산종사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셔서 가르쳐주신 그 지극한 성자의 정신이 제자들의 골수에 깊게 박혀 수십 년이 지나도 맥맥히 흐르고 있어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대산종사님 시자 중 한 분께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기원문 결어를 읽게 하신 뜻을 모르고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였다”라 하시고, “하지만 지금도 의두인양 풀리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원문 결어를 입으로만 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품고 궁글리고 실행하고 공부해서 대산종사님의 그 지극한 마음과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학기 동안 공부할 기원문 결어가 어떤 법문인지 간략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평생 네 가지 기원문을 올리셨습니다. 그런데 원기 77년에 이 기원문들을 하나로 뭉치어 대산종사님의 사상과 경륜이 모두 담긴 기원문 결어를 만드셨습니다. 기원문결어는 대산종사님께서 평생 올리신 기원문을 총 집결한 결론이고, 대산종사님의 마음이고 염원이자, 우리 각자와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일원대도 삼동윤리 실현의 설계도이자, 우리 교법의 결론입니다. 이 기원문 결어와 우리의 염원이 하나가 되고, 기원문 결어 정신으로 나아간다면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무슨 일이든 결국 성공을 거둘 것이고, 여기에 등을 지면 그 앞날에는 허망과 실패만 남을 것입니다. 우리가 스승님과 한 마음 한 뜻 한 글 한 법 한 삶 하나로 살기 위해서는 스승님께서 어떤 염원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시는지 알아서 스승님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스승님께서 무슨 깊은 고민이 있으신지 마음으로 느껴져 그것이 나의 고민이 되면 됩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이 기원문 결어를 어디서 천명하셨을까요? 네, 바로 하와이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여든이 넘으신 노구에 병환이 드신 몸으로, 주치의, 시봉진, 교단에서도 모두가 가시면 안 된다고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원기 81년, 그러니까 열반하시기 2년 전 하와이에 가셔야겠다 하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실 수 없으셨던 대산종사님은 영모 묘원에 도착하시면 꼭 그 근처를 차로 뱅뱅 도시며 차 타는 연습을 하셨다 하십니다. 그렇게 힘들게 서울에 도착하셔서 일주일 쉬시고 기력을 회복하시고 나서 비행기를 타시는데, 그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 야전용 침대를 달아서 8시간 동안 꼼짝 않으시고 누워서 하와이에 가셨다고 하십니다. 그 부처님께서 무엇이 그토록 간절하셔서 목숨을 걸고 그렇게까지 먼 하와이까지 가셨을까요?
제가 2012년에 좌산상사님 앞에서 전무출신 서원을 하고 그 해 8월에 하와이 새삶국제훈련에 참가했습니다. 그 때 하와이에 가서 참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산종사님께서 하와이에 오신 뜻이 무엇일까. 대산종사님께서 목숨을 걸고 하와이에 오신 뜻은, 대종사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과 하나였습니다. 전 세계 만방에 대종사님의 정전심인을 전하여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셨던 지극한 성자의 정신이었습니다. 그 지극한 마음으로 한 데 뭉쳐 세계의 단전인 하와이에서 기원문 결어를 발표하셨던 것입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원래 미국 본토에까지 가고 싶으셨는데, 건강상 그러지 못하셨다고 해요. 하와이에 가실 때 나무 목판에 붓글씨로 쓰신 기원문 결어를 20개 이상 가지고 가셨는데, 그 기원문 결어를 밤낮으로 읽게 했고, 그것을 미 본토와 아메리카 일대에 보냈다고 합니다. 기원문 결어가 성자의 원력으로 하와이에서 다시 뭉쳐 세계 각국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대산종사님의 지극한 뜻을 사량으로 알 수가 있을까요? 저는 매일 구간도실에 가서 기원문 결어를 외우는데 그때마다 대산종사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원기 83년 9월에 열반하시기 전, 원기 82년 1월에 기원문 결어에 대한 부촉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의 핵심적인 요지는 이렇습니다. “세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세계를 놔두고는 안 된다.” 이 세상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열반 직전에 고열에 시달리시면서도 수도 없이 기원문 결어를 외우시는 대산종사님의 마음 속에는 병들어가는 이 세상, 고통에 빠진 전 인류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성자의 마음이 있으셨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너희들이 이 세계를 개벽시키고 부활시켜야 한다고 간절히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계를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모시고 그 뜻을 실현하려는 서원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계부활 도덕부활 회상부활 성인부활 마음부활은 기원문결어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화두를 마음에 품으면 무엇이 자연히 화두가 될까요? “나 자신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게으른 나, 어리석은 나, 불신에 빠진 나, 상에 찌든 나, 울에 갇힌 나, 주인을 기분 좋으면 하고 나쁘면 마는 나, 일원대도의 영겁법자를 남에게 미루는 나, 무등등한 대각도인 될 책임과 의무를 남에게 미루는 나를 이대로 두어도 될 것인가 하는 깊은 자각으로 깨어나 일원회상의 영겁주인이 되고 일원대도의 영겁 법자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하나의 세계 개척의 주인이 되고 스승님 대경륜 실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산종사님께서 열반 전 뜨거운 방안에서 수십 수백 번을 외게 하시고, 당신께서 고열에 시달리시면서도 끝끝내 외우시며, 당신이 외우실 수 없으시면 주변 시봉진에게 외우게 하시고, 목숨을 걸고 하와이에 가셔서 천명하시고 미국 곳곳에 보내셨던 이 법문, 대산종사님의 마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우리의 마음에 다시 살려내고, 이 세상 곳곳에 살려내서 세계를 살려내고 도덕을 살려내고 회상을 살려내고 성인을 살려내고 마음을 살려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도 먼저 기원문 결어를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모시다’라는 것은 ‘가까이에서 받들다’라는 뜻입니다. 청년 때 대산종사님을 30년간 곁에서 모신 장산 황직평종사님을 모시고 마음공부를 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원불교도 하나도 모르고 스승이 뭔지도 모르던 그 때 어르신을 안전하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얼마나 조심조심하며 모셨는지 아직도 그 손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 후 장산종님 방에도 찾아가고 저를 따로 부르시기도 하시며 모시는데, 설해주시는 말씀 속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졌지만 장산종사님의 지극한 눈빛과 기운 속에서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다 살려주시려는 그 정신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산종사님의 정신이라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일상원 중도원 시방원의 뜻, 부활의 뜻, 다 배울 텐데, 아무리 기원문 결어의 뜻을 논리 정연하게 다 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가까이, 스승님 손을 잡을 때 느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스승님이신 우산 최희공 종사님께 원기 83년 9월에 대산종사님께서 열반하실 때의 당신의 마음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산 종사님께서 열반 직전 일요일에 위독하셔서 삼성병원에서 총부로 이동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우산님께서는 월요일 고려대 수업을 휴강하고 총부로 내려가셨다고 합니다. 의식이 없으신 대산 종사님을 모시고 하루를 지내고 월요일이 되었는데 다음날은 강의를 위해서 영산으로 떠나야 하는데 마음이 하도 답답해서 속으로 기원문 결어를 외우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산 종사님께서 눈을 뜨셨다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때 우산님은 큰 자각이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계 한 모퉁이에서라도 기원문 결어를 외우고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대산 종사님은 언제나 우리 옆에 계신다는 자각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강의를 위해서 영산으로 떠나셨는데 수요일 밤에 대산 종사님께서 열반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원문 결어를 늘 외우고 실현하려 노력하고 계시면 대산종사님은 살아계신 것이고, 우리가 기원문 결어를 수만 대에 실현할 책임을 방기하고 게을리 한다면 대산종사님은 가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대산종사님께서 살아계십니까 가셨습니까? 제 생각에 여기에는 살아계신 것 같아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으로 모시면 가까이 있는 것이고, 바로 가까이 있더라도 마음에 안 모시면 떨어진 것입니다. 이번 한 학기, 스승님들을 마음에 모시고 스승님들 대경륜 실현의 주인을 다른 사람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되어보자는 말씀 드리며 강연을 마칩니다
2.회화
명심: 대산종사님을 더 마음으로 가까이 모시고 싶어서, 방학중한달 구간도실에서 기원문 결어를 매일 외웠다. 그렇게 많이 외워도 마음에 아무 느낌이 안났다. 어떤 뜻인지 잘모르겠더라. 근데 이렇게 강연을 들으니 좋았다. 나도 선진님들의 곁에서 사심 없이 무아로 살고 싶다.
은명: 기원문 결어를 마음으로 모셔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스승님을 얼마나 모시고 있는가? 반성이 되었다. 모신다는 것은 자력이 필요한 것 같다. 누가 모셔주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내가 모시려고 해야한다.
여원: 성자께서 아무리 모든 원력을 뭉치어 큰법문을 내려 주셔도, 진실로 그 법문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면, 성자께 배은이 되는데, 배은을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나 자신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스승님 간절하신 염원을 마음에 모시고 살겠다.
현진: 열심히 공부도 활동도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핵심이 빠져있던 것같다. 경계마다 공부거리로 알고, 동정간에 마음을 챙기면 되는 것인가 했는게 그정도가 아니라 큰 서원과 핵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순수한 마음인 것같다. 그 순수한 마음이 빠지고서 내가 뭐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것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냥 부처되는 비슷한 공부를 하는 것 아닌가? 진짜 스승님들과 한길로 가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그 마음을 더욱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원문결어를 더 진심있게 감상있게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 기원문결어를 찾아보니 대산종사님의 일원상서원문 같은 것이라 했다. 쉽게 말하면 대산종사님의 서원문인데, 이번 추석때 감상이 하나 있었다. 스승님들서원을 매일 듣고, 서원문도 매일 독경하는데 내행동은 왜 그서원문과 다른것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계속 보니 나도 모르는 나만의 서원이 있는 것같았다. 그래서 3~4일 동안 막 생각을 하다보니 발견을 했다. 발견을 했는데 완전 다른 것이였다. 발견을 했으니까 합일을 해야겠는데 금방 될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고서는 경계를 대해서 서원 반조를 해보니 경계가 사르르 녹는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아 내가 모든 순간에 이렇게 서원으로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런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키워나가면 되겠다 조급하게 할 것 없구나, 꾸준히 해야겠다는 감상을 얻었다.
앞으로 10년 20년 하다보면 서원이 커가겠지 하는 감상이 있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서원문을 만난것같아 아주 소득이 있었다.
현성: 내가 왜 이공부를 하고 있고, 영산선학대학교에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마음 살리자는 것도 있었지만, 스승님과 이길을 먼저 걷고 있는 도반들을 도와야겠다는 것이 내 초심 서원이었는데 그 마음을 잊고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지고에 가면 이 아이들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작 하루하루를 보면 나는 나를 방치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나를 바로 잡히지 않으면 어떻세 세상을 바로잡을 것인가 그것은 당연히 말도 안된다. 내가 그정신을 놓치고 살았구나하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기원문결어 정신이 무엇인가를 다시 내마음에 세우고 하루하루 그것을 놓지않고 살아가야겠다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원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원문 결어를 마음으로 모시고 있으면 대산종사님은 내곁에 계신것이고, 모시고 있지않으면 가신 것이다 했을 때. 제게 (대산종사님이 곁에 계신다는) 확신이 없었던것같다. 믿는 다는 마음 모실려고 한다는 것도 있었는데 실제 경계에서 그 마음을 챙기지 못했다. 내 평상시 마음을 생각해보면 (대산종사님이) 곁에 계신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계시지 않을 때가 더 많았던 것같다. 그 순간 순간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믿음이 굳어지고 세워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비가오면 산사태가 나듯이, 버틸수 있는데도 경계에 그냥쓸려가 버렸던것같다. 경계 대하면 쓸려가고, 또 좀 지나면 돌아가고, 그런것을 생각하니, 믿음, 서원, 정성 모두 잘 못하고 있던 것같아 반성이 많이 되었다.
내가 많이 힘들고, 괴로워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 그저 나에 갇혀서 그랬구나. 나만의 고민 나의 경계 나의 문제에만 매몰되어서 , 그런 나를 보는 스승님들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워 하셨겠다.
어떻게하면 마음에 모실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대진 교무님: 나도 이자리에 와서 반성이 되었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일원상서원문이든, 기원문결어든 또 심고도 하고 설명기도 하는 것이 그때 뿐이고 (물론 그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실지 생활에서 내 마음이 기도와 만나고 있는지 또 그 기도가 실지 경계속에서 살아있는지, 성현교우가 정말 대조를 잘한 것같아요, 생각으로 가지고 있는 서원문하고, 진짜 내 마음에서 욕구하고 있는 것하고 헷갈릴때가 있다. 실지 경계에서는 마음을 다르게 쓰고, 실지 경계에서 서원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
아까 여주교우가 부활이라는 말도 했는데, 저는 그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진짜 죽어야지 내 사심이 죽어야 정말 시원하게 내가 살아나지.." 근데 우리가 공부한다고 하면서 자꾸 욕심으로 할때가 있거든요, 내가 안다거나 뭐, (물론 그 기운마저 꺾이라는 것은 아닌데) 정말 시원하게 내가 비워지고 경계에서 그 마음이 되어야 겠다. 저도 한번 다짐을 해봅니다.
다익: 저도 반성이 너무 되었습니다. 중요한 마음을 잊고 있던 것 같아 반성이 되고, 성자의 씨앗 법문이 생각이 났는데, 성자의 씨앗을 심지 않으면 썩어버리고,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 했는데, 성자의 씨앗이 마음에 들어온 적은 있었는데, 마음 깊이 심고, 늘 가꾸고 하는 것을 하지 않았구나. 정말 (법으로) 기쁜 마음도 들고 그랬는데, 마음이 자꾸 까라지고 괴로웠던 것이 제가 그마음을 놓쳐서 그렇구나, 일원상 서원이 없이 신앙도 수행도 없는 것이고, 정정요론에서도 지극히 큰 서원을 품고 그것을 잊지 말아야 정정이 된다 했는데, 내가 그겋 놓쳣구나
정말 제가 마음으로 느끼고하는 공부가 이번학기 내내 안되고 있었고, 자꾸 마음이 법을 떠난 것도 느끼고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서원을 잊고 있었던게 원인이구나, 기원문결어 공부를 통해서 정말 마음에 심고 가꾸는 것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다익교우 멋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