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이서원의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
이근후·이서원의 『어디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던가요』는 우선 제목부터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듯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유행가 구절처럼 그저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 이런저런 일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하고, 더러는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힘듦이 특별히 어느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일반적인 것이라 일깨우며, 너무 낙담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다독인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모두 정신과 의사다. 그러므로 수도 없이 많은 환자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병의 경과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들은 나름대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주제로 수개월에 걸쳐 매주 수요일마다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두 저자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농축되어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모두 여덟 꼭지로 되어 있다. 자존, 관계, 위기, 욕망, 확신, 비움, 성장, 행복이 그것이다. 그 각각에 다시 소주제로 짧은 두 사람의 대화가 펼쳐진다. 대화는 늘 스승의 화두에 제자는 스승의 아우라 속에서 길을 더듬어 열어준다.
읽고 보니 여덟 꼭지 가운데 특별히 더 눈길이 가는 꼭지가 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그 꼭지에 들어 있는 글들이 내 삶에서 가장 어설프게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이 가진 치유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 구도이다 보니 작은 꼭지 글의 제목도 이중적이다. 스승이 묻는다. “내 삶을 모아 태우면 어떤 향이 날까?”(246쪽) 제자가 답한다. “삶은 순간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다.”(246쪽)와 같은 식이다
스승은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고 있고, 제자는 이에 대해 젖은 종이 타는 냄새가 날 것 같다는 답을 낸다. 우리 인생이란 게 마른 듯 젖고, 젖은 듯 마른 게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자는 혹여 스승의 마음을 다칠까 대답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그 만의 혜안을 담아낸다.
그래선지 이 책은 우리에게는 피로를 씻어주는 단비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하기도 한다. 깊은 삶의 지혜가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스승의 회고에 대해 제자는 스승의 말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며 자기 의견을 보태는 형식이다. 그래서 책은 마치 선문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의 농익은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분명 한 줄기 빛이 되기 충분하리라.
책을 읽다보면 두 사람의 사제지간이 얼마나 돈독하면 서로의 마음을 저리도 잘 읽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넘침이 없다. 독자들이 알아들을 정도의 적당한 높이를 유지함으로써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 문득 두 사람이 어느 고택 대청마루에서 찻잔을 두고 마주 않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각박한 세상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쉬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면 행운일 것이다. 그때 이 책이 옆에 있다면 제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두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는 푹 고운 곰탕 같다. 여덟 꼭지의 이야기들은 모두가 한번쯤 번민에 시달렸음직한 것들이 스승의 농익은 방향 제시와 제자의 농밀한 이야기는 정말이지 푹 고아낸 곰탕 국물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희망으로 귀결된다.
두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는 그 동안 사는 일에 바빠 잊고 있었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그들처럼 편안하게 묻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내 주변은 텅 비어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부럽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책은 한국판 탈무드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갈피갈피마다에는 두 사람의 지혜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펼쳐들면 삶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2페이지로 간략하게 요약해 놓았기 때문에 첫 장부터 끝장까지 꼼꼼하게 읽을 필요도 없다. 그날그날 목차를 훑어보고 마음에 와 닿은 곳을 펼쳐들고 읽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이 책은 머리맡 책으로 적당하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산책길에도 옆구리에 끼고 가면 좋을 듯싶다. 산책을 하다가 어디쯤에서 벤치에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