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도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는 강화읍으로 나왔다. 먼저 월곶돈대와 그 안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을 둘러보았다.
먼저 '월곶'이라는 명칭을 찾아보면 행정구역상으로는 김포시 '월곶면'과 시흥시 '월곶동'이 '월곶'으로 표기되어 있어 별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강화읍은 '월곶리'가 아니라 '월곳리'이다. 여기만 ㅅ받침이다. 이해가 안간다. 즉, 연미정의 주소는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이다.
연미정을 감싸안은 돈대는 월곶돈대이다. 여기서 월곶(月串)은 바다로 비죽이 나온 달 모양의 땅을 말하고, 돈대(墩臺)는 평지보다 좀 높은 감시초소를 말한다.
조선 중기 때 왜군과 여진족을 물리친 황형장군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다.
위 지도를 보면 동쪽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합친 후 유도(留島)를 지나 교동도 앞에서 북에서 내려오는 예성강과 합쳐져 대한강이 되어 서해로 흐름을 알 수 있다.
2019. 9. 7.에 불어닥친 링링태풍으로 500년 넘은 느티나무 2그루 중 한 그루가 부러져 넘어진 모습의 사진이다.
나오다보니 월곶진의 문루인 복원된 조해루(朝海樓)가 보인다.
갤러리카페 조양방직
오늘의 마지막 구경 차례이다. 강화읍 신문리의 구 시가지 안에 있는 방직공장이 갤러리카페로 변신한 조양방직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냄새 나고 지저분하기 마련인 오래된 공장을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추억이 주렁주렁 매달린 멋진 공간으로 꾸며놓다니!
조양방직은 1933년 최사열(1899~1982)이라는 분이 이곳 강화에 공장을 설립한 이래 1970년대까지 직물산업이 번성한 고장이었다. 이후 1970년대 중 후반 이후 합성섬유 생산시설이 대구에 대거 들어섬으로써 이곳이 쇠락하였다.
조양방직은 설립 이후 10여년 뒤 경영이 어려워지며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1958년에 문을 닫은 후 단무지 공장, 젓갈 공장을 거치며 폐허가 되다시피하였다.
그러다가 2017년 새주인을 만나 이름을 그대로 살리고 기존 시설을 재활용하여 다져서 주말이나 휴일이면 추억과 골동품을 찾아 몰려드는 인파로 강화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와 빵을 주문한다.
조양방직을 채 30분이 되기도 전에 후딱 돌고 나와 바깥에 대기중인 버스에 올랐다. 차 막히지 않는 시간에 빨리 귀갓길에 오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다음 기회에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별도로 짬을 내어 여유롭게 구경하고 차 한 잔 마시고 나오면 아주 멋진 시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이 차가 막히기 전이라 양재역 인근의 식당에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하였다. 저녁 먹기 이른 시간이지만 천현주 동기회장이 백두산악회원들을 격려하느라 거금을 내놓아 식당으로 향하였다.
천현주회장 백두산악회 격려하다
동기회 천현주회장이 지난 주의 이공기우회에 이어 오늘은 백두산악회 회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회원들 앞 인사와 함께 거금을 찬조하여 감사의 박수를 받았다.
채석강의 칼국수와 맛있는 치즈감자전에다 소주와 막걸리를 반주로 들며 오늘의 강화도 나들이 일정을 마무리하다.
이날 멋진 행사 진행하신 임세호총무님 수고하셨고, 행복한 시간 함께 즐겨주신 회원 여러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