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5:1-14
▣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비추어 본 봉사사역-베드로전서 5장-
베드로는 그의 격려 편지를 마침에 있어서 성도들에게 세 가지로 권면한다. 본장에서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던 때의 복음서에 나타난 경험들을 몇 군데 참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하였으며(1절), 양을 돌보라는 사명을 받았다(2절/ 요 21:15-17). 그리스도께서 친히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겸손하게 씻기신 것을 보았으며(5절/ 요 13장), 사단이 배회하고 있었을 때 그는 깨어 있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8절/ 막 14:37).
이는 마치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증거하시기 위해 베드로의 기억을 더듬어서 과거의 이런 경험들을 사용하시는 듯하다(12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적절했음을 발견하였고, 하나님의 은혜가 또한 그들도 보존하시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1. 충성하라(5:1-4)
이 권면은 일차적으로는 목회자들에게 준 것이다. 목사(목자), 감독(감찰하는 사람), 장로(성숙한 지도자)가 모두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것임은 앞에서 보았다(행 20:17/행 20:28/딤전 3:2/딛 1:5-7). 베드로는 자신을 교황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함께 장로된 자“라고 부르며, 의도적으로 권면을 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있다. 베드로는 왕국에서 자기의 지위 문제로 염려했던 때가 있었다!
베드로는 목회자들이 사람들의 지도자들로서 보다 큰 고난을 통과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면으로 그들을 격려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들을 보존하실 수 있다고 상기시키는 것과, 영광은 언제나 고난에 뒤따르는 것이라고 상기시킨다. 사실 이 두가지 주제가 베드로전서를 수놓고 있다.
그들의 사역-“양무리를 치라.“ 이 일은 먹이는 일, 인도하는 일, 격려하는 일, 징계하는 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을 포함한다. 목자는 감독을 하며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양이 목자를 인도한다면, 또는 양들이 각기 제 길로 간다면 양떼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동기-“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 목자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양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직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봉사하여서는 안 된다. 결코 돈이나 명성이나, 권력이나 이기적인 소득이 되는 “더러운 이“를 위하여 봉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일에 열심(준비된 마음)이 있어야 하며 의욕이 없거나 게을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자비-지도력이란 독재권을 뜻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감독자이지 대군주가 아니다! “맡기운“이란 문자적으로는 “당신에게 부과된 몫“이란 뜻이다. 일정 지역에 사는 모든 신자들은 교회에 속했지만 그러나 다른 장로들의 지시에 따라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양무리는 거의 없었다. 신약에는 한 성읍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대교회를 이루기 위해 연합한 예는 한 경우도 없다.
제도적 일치를 갖지 않아도 신령한 연합은 가능하다. 목회자들은 본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것은 결국 사람들을 따라오게 할 최선책이 그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은 존경을 요구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경건한 생활과 희생적인 봉사 사역으로 얻는 것이다.
그들의 상급-땅에서는 많은 영광이 없을 것이나, 하늘에서는 영광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목자는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벧전 5:5-7
2. 겸손하라(5:5-7)
“젊은 자들“은 문자 그대로 교회의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영적 지도자들을 따르는 모든 회원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겠다(히 13:17).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날 저녁을 언급한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겸손한 정신으로 통제받는다는 것, 곧 종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거만한 자, 이기주의자들을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잠 3:34/약 4:6).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고 그는 권고한다. “이 고난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그 준비됨을 보시고 그가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는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라고 요청했던 배 위에서의 밤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예수님이 돌보신다! 사단은 “불 시험“이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한 한 증거라고 믿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말한다."
벧전 5:8-11
3. 깨어 있으라(5:8-11)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는 것을 베드로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은 몇 번이나 사단이 그를 따라 다닌다고 베드로에게 경고하셨으나 이 경고를 마음에 간직하지 못하였다. “잠에 빠짐으로써“ 사단에게 역사할 기회를 주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다(마 13:25/마 13:39).
사단은 “대적“이라고 불리워지는데, 그것은 “법정에서 참소하는 자“란 뜻이며, “마귀“라는 말은 “비방자“란 뜻이다.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참소한다(욥 1-2장/ 슥 3:1-5/계 12:10). 사단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의 입을 사용하여 거짓되이 우리를 비방한다(벧전 2:12/벧전 3:16/벧전 4:4/벧전 4:14). 사단은 속이는 뱀처럼(창 3장), 또는 삼키려는 사자처럼 다가온다. 사단은 거짓말장이요 살인자이다(요 8:44).
그리스도인이 사단을 무찌르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경계하라-눈을 크게 뜨고, 경계를 느슨하게 풀지 말라. 다윗이 이완되어 전선에서 물러나자 죄에 빠져버렸으며, 베드로가 자신감을 갖자 그는 잠에 빠져 사단의 함정에 떨어졌다.
대적하라!-이것은 모두가 적을 향해 대진하고 서 있는 군대의 모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을 대항하는 데에 연합해야 한다(빌 1:27-30). 이러한 행렬에 끊어진 곳이 있으면 사단은 공격할 기회로 삼는다.
믿으라!-우리는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한다. 즉, 그리스도의 승리를 신뢰하는 것이다. 사단은 거짓말을 제일의 무기로 사용하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진리로 사단의 거짓말을 대결해야 한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성령의 검을 사용하셨다(마 4장).
기억하라!-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시련들을 통과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사단이 우리에게 오직 우리뿐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만 뽑아내셨다고 믿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실의에 빠뜨려 패배시킬 것이다.
베드로의 주제는 은혜였는데(5:12), 따라서 성도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킴으로써 끝을 맺는다! 그리스도인은 “은혜에서 은혜로“ 향하여 간다(요 1:16).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구원하시는 은혜로 시작한다(엡 2:8-10). 그리하여 그것은 봉사하는 은혜로 계속되고(고전 15:9-10), 다음으로는 성결케 하시는 은혜로 이어지는데(롬 5:17/롬 6:17), 하나님은 희생적인 은혜(고후 8:1-9), 노래하는 은혜(골 3:16), 말하는 은혜(골 4:6), 강하게 하시는 은혜(딤후 2:1), 그리고 고난받는 은혜(고후 12:9)를 주신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약속하고 있다.10절은 은혜가 생활의 훈련을 통하여 공급된다고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로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심으로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으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한계에 이르고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은혜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에게만 공급된다. 먼저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다음에는 고난당할 때에 무장하게 하시며, 확신을 주시며, 우리의 터를 견고히 세우고 계신다.
“온전케 하시며“라는 말은 마태복음 4장 21절에서 베드로가 “그물을 깁고“ 있을 때에도 사용되었다. 이 말은 “봉사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다“라는 뜻이다. 고난은 신자를 성장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미래의 봉사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게 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물을 깁게“하시는 최선책이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받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결론지으면서(5:12-14) 실라와 마가가 그와 함께 있음을 시사한다. 실라는 바울의 조력자 중의 일인이었으며(행 15:22-), 우리가 추측한대로 바울이 로마에 없었다면 베드로와 실라가 함께 일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가 요한이 있었다는 것은 바나바와 마가, 그리고 실라가 연루된 “과거의 불화“가 용서받고 잊혀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벨론“은 아마도 로마를 칭하는 다른 이름일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베드로가 고대 바벨론에서 편지를 쓰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