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고를 때 우리는 흔히 ‘이 수박 달아요?’를 묻는다. 크기나 모양이나 색보다 그 안에 담긴 단맛 즉 당도(Brix)가 선택기준이 되었다.
수박은 원래 맛있던 과일이 아니었다. 수 천 년 동안 인간이 더 달게, 더 크게, 더 예쁘게, 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진화시킨 결과물이다.
고대의 수박은 달지도 않았고 쌉쌀했다. 수박은 허옇거나 희미한 노란색이 일반적이었다. 12세기 페르시아 의사 이븐 부틀란은 ‘시원하고 연한 과육의 맛’을 지녔다고 표현하였고 17세기 이전의 유럽 식물도감에도 수박이 희미한 노란색이나 흰색 과육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풍경 속의 수박, 복숭아, 배 및 기타 과일’
(17세기 이탈리아 지오반니 스탄치의 정물화로 흰색 과육이 많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후기 문헌에도 달다는 표현은 드물고 갈증을 해소하는 ‘시원한 과일’로 표현되고 있으며 18세기 이갑의 《연행기사》에는 ‘속이 누렇고 씨가 검다’ 고 하였고 19세기 이구의 《부연일기》의 연행록(1828)에 ‘속이 노랗다’고 기록되어 있다.
붉은 과육의 수박은 14∼15세기 중세 유럽 건강지침서인 《타쿠이눔 건강지침서(Tacuinum Sanitatis)》의 그림에 처음 등장한다.
‘타쿠이눔 건강지침서’의 수박 그림
(사마르칸트(현재 우즈베키스탄)산 수박을 최상품으로 묘사하였다.)
지금의 붉은 과육의 수박은 18세기 이후 돌연변이와 인위적인 선택교배를 통한 품종의 개발 때문이다. 과거에는 당도가 오늘날처럼 중요한 평가기준이 아니었고 맛 보다는 기능성에 무게가 실렸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기술발전은 급격하게 수박을 변모시켰다. 품종개량, 비료사용, 재배기술의 발전은 더 달고 더 큰 수박을 탄생시켰다. 왜 인간은 단 것을 원할까 ? 단맛은 본능적 생존신호이며 신경계의 쾌락과 연결된다. 현대에 들어와 단맛은 생존을 넘어 ‘소비’와 ‘쾌락’의 영역으로 확정되었다. 소비자는 ‘더 달다’는 가치에 현혹되고 생산자나 유통시장은 상품성의 핵심으로 당도를 내세운다. 이 과정에서 맛의 표준이 향이나 식감, 영양소가 아닌 ‘단맛’으로 고착화되었다. 이는 사람의 미각 다양성을 축소시키고 단맛이 결론이라는 소비기준을 탄생시켰다. 당도가 높은 수박은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그 가치는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감과 연결된다. 맛의 단순화는 풍미의 다양성이 없어지고 향과 식감이 포함된 입체적 맛을 감소시키고 고유품종이 사라진 획일화된 고당도 상품 수박만 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비료, 당도증진 조절제, 기후변화에 취약한 문제점을 유발한 고당도 수박이 고급 수박이라고 가격경쟁을 유도하여 결국은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단 맛 뒤에 숨겨진 건강과 생산성 그리고 소비자 윤리에 대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