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강병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한강(漢江)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내린 강
서울의 젖줄이면서 한반도의 젖줄, 나아가 우리 민족의 젖줄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강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린 강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중국의 위나라와 진나라 때의 지리지에서는 이 강을 대수(臺水)라고 하였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로 올라 있다.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에서는 이 강의 이름을 욱리하(郁里河)라 불렀고, 신라는 상류를 이하(泥河)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다.
고려 문헌에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내린 긴 강이라는 뜻의 열수(列水)라 불린 기록이 있으며, 모래가 많기 때문에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도 불렀다. 한강의 명칭에 한(漢)이라는 글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중국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조선시대에는 한강 및 한수 또는 경강이라 불렀는데, 한강은 본래 우리말인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아리’, 즉 ‘알’은 고대에 크다거나 신성하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한’도 이와 비슷한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제사를 올렸던 네 강, 즉 4독에 들었는데(동독은 낙동강, 서독은 대동강, 북독은 용흥강, 남독은 한강) ‘독(瀆)’이란 바다로 직접 들어가는 긴 강이란 뜻이다. 외국의 기록에는 ‘서울강(Seoul river)’이라는 이름도 있다.
또한 서울 부근의 한강은 여러 이름으로 나뉘어 불렸다. 팔당댐은 ‘도미진’, 광장동 앞은 ‘광진’, 뚝섬 앞쪽은 ‘동호’, 한남동 앞쪽은 ‘한강’, 동작동 앞쪽은 ‘동호’ 혹은 ‘동작강’, 노량진동 앞쪽은 ‘노들강’, 원효로동 앞쪽은 ‘용호’ 또는 ‘용산강’, 옛날에 마포나루가 있던 서울대교 언저리 쪽은 ‘삼개’ 또는 ‘마포강’, 송파 부근은 ‘삼전도’, 양평동 부근은 ‘양화도’, 가양동 앞은 ‘공암진’, 오늘의 제2한강교가 있는 쪽은 ‘서호’ 또는 ‘서강’이었다. 그와 더불어 서울 밖의 한강도 오늘의 경기도 여주시 언저리는 ‘여강’이었고, 임진강과 합하여 서해로 빠져드는 경기도 김포군 북쪽은 ‘조강’이었고, 행주 부근을 ‘왕봉하’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그곳 주민들은 이들을 쓰고 있다.
조선 성종 때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강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강(漢江)은 도성 남쪽 10리 지점 곧 목멱산(남산) 남쪽(한남동)으로, 옛날에는 한산하(漢山河)라 하였다. 신라 때에 북독(北瀆), 고려조에서는 사평도(沙平渡)라고 하였는데 민간에서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근원이 강릉부의 오대산 우통(于筒)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충주 서북쪽에 이르러 안창수(安倉水, 섬강)와 합하고 양근군(楊根郡) 서쪽에 이르러 용진(龍津)과 합하며 광주 지경에 이르러 도미진(渡迷津)이 되고 광진(廣津, 광나루)이 되고 삼전도(三田渡)가 되며 두모포(豆毛浦, 두뭇개)가 되며 경성 남쪽에 이르러 한강도(漢江渡)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흘러서는 노량이 되고 용산강이 되며 또 서쪽으로 가서 서강(西江)이 되고 시흥현 북쪽에 이르러서 양화도(楊花渡)가 되며 양천현 북쪽에서 공암진(孔巖津)이 되며 교하군 서쪽에 이르러 임진강과 합하고 통진부 북쪽에서 조강(祖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하늘공원 © 이혜민난지도는 한강 하구 섬에 제방을 쌓아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쓰레기가 태산같이 우뚝 솟아 있던 이곳에 지금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조성되었다.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사독(四瀆)
한강은 조선시대에 해마다 제사를 올렸던 네 강, 즉 사독(四瀆)에 들었다. ‘독(瀆)’이란 바다로 직접 들어가는 긴 강이란 뜻이다. 동독은 상주의 낙동강, 서독은 평양의 대동강, 남독은 서울의 한강, 북독은 영흥의 용흥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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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2024-06-29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