示兒 (시아)
정포(鄭誧:1309~1345)
본관은 청주. 자는 중부(仲孚), 호는 설곡(雪谷)
저서로는 『설곡시고』 가 있다
먹을 게 없어 배곯다 보면 거친 콩잎도 맛있고
乏食甘藜藿 핍식감려곽
입을 옷 없이 헐벗다 보면 칡옷(葛布)도 좋아지네
無衣愛葛絺 무의애갈치
만약 따뜻하고 배부른 즐거움만 구한다면
若求溫飽樂 약구온포락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해로움만 먼저 따라온다네
不得害先隨 부득해선수
*
즉석 단상
바깥이 한바탕 요란스럽다
사람들은 옷이 젖을까 뛰어다니고
비는 세차게 창문을 두드린다.
37세에 요절한 정포(鄭誧)의 기구한 삶을 보는 것 같다
자식에게 써 준 한 편의 시는
시대를 뛰어넘어 많은 울림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시대를 불문한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풍족하게 살아도
30여 년 전만 해도
밥상 물림· 옷 물림· 책 물림이 있었다
그만큼 의식주에 있어서 곤궁한 삶을 살았다
지금은 별미로 먹는 보리밥도 뽕잎도 콩잎도 그렇다
오죽하면 칡을 캐 먹고, 소나무 여린 가지를 꺾어서 속피의 송진을 빨아먹고
나무의 어린 새싹으로 국을 끓여 먹었다
초근목피(草根木皮) 보릿고개를 우리 부모님은 넘어오셨다
요즘 옷이 해어져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싫증이 나서 유행이 지나서 버린다
만족을 모르는 세대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잉의 시대에 자족해야 한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모든 게 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손만대 살아있는 자연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하나하나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