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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숙 여행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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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투어 여행기 스크랩 스승의날=세종대왕탄신일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제작과정 얼마나 아시나요?(김영원작가 이태리 거장과 2인전)
호미숙 호미호미 추천 0 조회 11 13.05.15 1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제작과정 얼마나 아시나요?(김영원작가 이태리 거장과 2인전) 호미숙

 

서울 세종로에 광화문 광장에 가면 온화한 미소를 짓고 백성을 사랑으로 아우르는 모습의 세종대왕 동상을 만날 수 있다.특히 서울시 톡톡 리포터가 된 뒤로 세종대왕동상 제작홍보영상을 보면서 김영원교수님을 뵙고 싶었고 특히 동상 제작에서 어떤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었을까 궁금했는데 마침 페이스북 친구인 이종희(페미경-페이스북 미술품 경매 https://www.facebook.com/groups/eyeforart/대표)님의 스승였던 관계로 영광스럽게도 김영원교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비가 추적이는 가운데 경기도 광주 모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긴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님의 작업실로 이동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김영원교수

1947년 경남 창원 출신으로 홍익대학교 교수 및 학장 역임했다. 1994 상파울로 비엔날레, 1999년 제 3대 국새 제작하여 10년간 사용했으며, 2002년 김세중 조각상, 2009년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제작, 2010 문신조각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각가협회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 김영원은 계간조각 (현재 www.thesculpture.org), 국제조각페스타 등 한국조각의 국제화와 조각가 양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

 

 

서울시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제작 홍보영상

세종대왕 동상의 의미

광화문 세종로에 성군 세종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세종대왕 동상은 40대 후반 세종대왕의 모습으로 태조와 영조의 영정과 운보김기창화백의 표준영정과 만원권 이미지 고종과 순종의 어진 자료를 토대로 해서 백성을 자식처럼 애민정신을 복원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동상에서 세종대왕은 웅장한 이미지보다는 온화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도록 표현해 백성들과 소통을 중시했던 군주의 이미지를 살렸다.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어 한글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민족문화를 만들어냈던 대왕의 정신을 표현했다. 동상 하단 기단부 공간은 관람객들이 직접 들어가 대왕의 일대기와 업적, 한글 창제원리를 통한 과학 기술의 우수성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 벽면으로 조성됐다. 

또 동상 전면부에는 세종대왕 주요 과학 발명품인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을 가로 1.0m, 세로 1.1m 의 옅은 인공연못 안에 강화유리상자로 포장, 설치하는 경관조형물을 배치함으로써 대왕의 과학정신을 높이 기렸다. 인공연못은 대왕의 흘러넘치는 높은 덕을 상징한다고 했다.

 

세종대왕 동상 작가 선정과 제작 과정

동상 작가 선정

600년 전 고도 한양의 거리인 육조거리인 세종로, 그동안 세종로 거리엔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서울시가 세종로에 광화문 광장을 건설하면서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온오프라인 시민의견을 수렴해서 여론조사 결과 후에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같이 설치 결정을 했다.

 

서울시 조각 역사 문화분야 등 세종대왕동상 위원회를 권위적 군주가 아닌 백성을 감싸는 온화한 이미지의 동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국내작가 52명 추천받아 1차 심사 후 5인 중에 접수된 공모 작품을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모여 최종심사 후 결정했다. 뿌리 깊은 나무, 세종대왕동방의 빛, 온 누리의 빛, 창조적 시대정신과 시대적 업적, 하늘땅 사람들, 중 뿌리 깊은 나무, 세종대왕의 김영원교수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제작과정

김영원 교수는 전 현직 미대교수 대학원생 등 수제자들과 시대적 사명감으로 점토조각을 시작해서 받침과 철골과 목조로 뼈대를 만들었다. 점토를 입혀 기본 형태 만들었다. 김영원교수는 자문회의를 통해 세종대왕 어진, 태조 어진, 고종 어진, 만 원권 참고했다. 세종대왕이 54세에 생을 마감했기에 40대의 후반의 정렬적인 모습을 담았다. 특히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띤 표정으로 한손에는 책을 들고 있어 한글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민족문화를 만들어냈더 세종대왕의 정신을 표현했다. 입석관등 의복 및 의상은 조선시대 복식 자료를 정리한 책을 통해 속옷, 저고리, 곤룡포 등 모델에게 입힌 다음에 재연하여 옷고름과 소매주름까지 완벽하도록 노력했다. 용좌는 고궁박물관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연했다.

 

동상의 전면부에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 등을 설치

해시계 여주 영릉에 보관된 실물을 참고했고, 측우기도 혼천의도 실물을 참고했다. 혼천의는 고려대에 있는 실물 참고로 제작했다.

 

동상 후면부에는 6개의 열주 설치

열주에 집현전 학사도, 주자소도, 6진개척도, 대마도 정벌도, 자음도, 서운관도 세종대왕의 주요업적을 담아 표현해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을 담았다.

 

석고작업은 인자한 표현과 안전성을 위해 비싼 탄소섬유로 재료 사용 점토작업에 석고를 입혀서 석고편을 씻어 다시 조립해서 안틀을 제작하고 겉틀 석고를 제작해서 주물형을 석고상제작, 42개 조각으로 주물작업 진행했다. 마지막 단계로 내구성을 간직하고 위해서 최적의 기술진으로 이천에서 제작했다. 주물에 색을 내서 조립해서 동상이 태어났다.

 

세종이야기

대한민국의 상징인 세종로의 세종대왕 세종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인간세종 공간, 민본사상공간, 한글창제 공간, 과학과 예술 공간, 성군세종 공간, 기획전시 존을 포함해 만들었다.

백성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헌신적인 지도자, 시대의 선구자 세종대왕, 세종대왕 정신으로 2009년 10월 9일 세종로 광화문에 설치되었다.

 

그외 세종대왕 동상 제작 에피소드

하나. 최고품질의 동으로 주물을 제작당시 국내 최고 기술자가 스스로 찾아와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고 1mm의 오차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냈다고 했다.

둘.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당시 작업실 출입문 앞에 수많은 개미가 몰려와 있는 것을 보고 함께 일하던 세종대왕 앞으로 전국 백성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웃었다고 한다.

셋. 응모가 당선 된 후 6개월 만에 10.9일까지 완성하는데 어려움으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는데도 기적처럼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참고-세종대왕 동상의 사진을 찍게 되면 저작권은 작가가 원 저작자이다. 사진을 활용하여 영리 목적으로 사용을 한다면 저작권료 10만원을 위탁기관인 서울시에 내야한다.

김영원작가는 2년 전 세종대왕상의 저작권을 서울시에 무상으로 양도했다고 한다 . 그 후 서울시는 지난해 300만원의 저작권 수익으로 빈곤가구 두 곳에 150만원씩 후원했다고 한다.

 

스승의날은 세종대왕 탄신일

1965년에는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

 

김영원교수의 작품세계

인체라는 일관된 소재를 가지고 작업해 온 김영원 교수는 한국 조각의 본질과 그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김영원의 인체 조각 작품은 인간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70~80년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항거하기 위해서 은유적, 비판적인 탐색기로 중력. 무중력의 인체를 주제로 한 작품에 태동 되었다.

90년대:

작품 속에 참된 자아를 투사시켜 외부세계와 하나 되는 일체경을 얻고자 선을 수행했다. “이게 뭐꼬” 화두에 빠지며 자신 스스로를 깨고 다시 찾는 과정을 직접 선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갔다.

200년대:

일방적 작가의 소통이 아닌 관객이 작품에 관해 저마다 의미을 담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림자의 그림자를 주제로 내 안의 또 다른 무수한 나를 바라보는 작품들변형되어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김영원교수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내면의 깊은 의미를 새겨봐야 한다. 특히 리포터처럼 조각품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작품에서 느낌표를 찾기보다 물음표를 더 많이 찾게 된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보게 되면 깊은 해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김영원교수는 훗날 직접 체험한 선과 명상에서 ‘절’이란 독특한 조각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영혼으로 춤추는 조각품에서는 그 어떤 조각품보다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직접 김영원교수의 작품 설명을 들으며 선과 명상에서 얻은 것은 너와 내가 분리되지 않고 누구나 하나라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 체험한 신비한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선을 시작 하고 얼마 지나 큰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동승한 제자와 함께 그 찰나의 시간에 나눈 이야기다(사실 직접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나눈 대화로 서로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가 붕 떠서 떨어지는 시간은 무척 짧지만 놀라기보다는 너무도 편안하게 옆에 제자와 이야기를 나눈 이야기인데 일상적 식구들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 사고면 외상이나 큰 부상을 입었어야 할 테지만 전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다고 한다. 이 말을 몇몇 지인들에게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언론사 기사 안내-

삼성 이병철회장,풋내기작가 김영원의 ‘인물조각’에 반해..
김영원,‘조각의 본고장’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대규모 市초대전
조각 메카 伊, 몸에 반했다
[예술작품산책] 가정·행정법원 청동조각상, 김영원作 '길'

 

한국과 이탈리아 두 거장의 만남: <김영원-피노티 이탈리아 파도바 시 초대전>(가제)

▲ 전시명 : <한국과 이탈리아 두 거장의 만남:김영원-피노티 이탈리아 파도바 시 초대전>

▲ 장 소 : 아래 이탈리아 파도바 시 5 개 장소에서 동시 개최

1. 파도바 시청 광장(Piazza del Comune di Padova)

1. 스크로벤니 공원(Giordino Capella)

1. 에레미타니 시립 미술관(Musei civici, Piazza d'Eremitani)

1. 저크만 궁 파도바 시립 미술관 (Musei civici di Padova, Palazzo Juckmann)

1. 라 테카 화랑(Galleria La Teca)

▲ 일 시 : 2013. 6. 1 - 8. 20

▲ 오 프 닝 : 2013. 6. 1

▲ 주 최 : 파도바 시

“조각은 침묵이다! 피노티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20세기 현대조각의 거장 마리노 마리니(1901-1980)의 극찬을 받은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와 한국조각의 대부 김영원이 파도바 시의 초청으로 2인전을 갖는다.

<피에트라산타 2012 한국조각축제>에 참가한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을 우연히 접한 피노티는 “이렇게 창의적으로 인체를 다루는 조각을 보지 못했다”라며 작은 2인전을 제안한다. 이 후 김영원 조각가의 작품집을 접한 파도바 시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한국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들 두 거장의 대규모 전시로 발전하게 된다.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

노벨로 피노티는 1939년 베로나 출생으로 아르날도 포모도로, 반지와 더불어 생존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조각가이다. 1966년 제 32회 베니스 비엔날레, 1984년 제 4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이탈리아 관의 독립 전시장에 초대받은 바 있다. 주요 작품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교황 요한 23세의 도금청동 제대 제작, 역시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성녀 솔레다드 상을 제작한 것을 비롯하여, 파도바의 성 유스티나 성당의 세 개의 청동문을 비롯한 성당 정면 전체를 완성했으며,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 주요 미술관과 도시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김영원 교수(선 조각가) 작품 영상전시회

 

 

김영원교수-이태리 파도바 시에서 이태리 조각가 피노티와 2인전이 6월에 열린다.

 

스승과 제자(김영원 교수와 성남시 조각가협회장인 이종희작가)

 

김영원 교수의 작업실에서 본 1/10크기의 세종대왕 동상 공모전 1위 선정한(뿌리 깊은 나무, 세종대왕)

 

김영원 교수의 작업실 비행기 격납이라도 가능 할듯 규모가 무척 컸다.

가던날 비가 내려 민들레 꽃진자리도 담아보고 막 피어난 송화도 담았다.

 

다시 자리를 옮겨 제2 작업실에서 그동안 작업했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위의 풍경들은 작업실이 위치한 주변 풍경으로 산세가 아름다웠고 5월의 싱그러움이 더했다.

 

선과 명상 후 작품을 만들었던 것으로

온 마음을 내려놓고 춤을 추며 손가락으로 그려낸 작품

 

호미가 자전거 여행 중 본 김영원 교수의 작품

일산 호수공원 자전거 여행 중에 5년전 우연히 담았는데 김영원 교수님 작품

 

지난해 서울숲 자전거 여행 중에 역시 김영원 교수님 작품

그외에도 전국 여러 곳에 김영원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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