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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능허스님과 행복한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운수납자
이 글은 고경(古鏡) 창간호에 실린 소림선원 주지 동진스님의 글을 전재(全載)한 것입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수행하는 것은 성불(成佛)을 하기 위함이다.
이 오탁악세(五濁惡世) 중생들은 애욕(愛慾)과 명리(名利), 허영(虛榮)과 재물(財物)에 집착하여 눈이 가리워져 어둡고 험한 길로 치달으며 나를 위해 남을 해쳐 불꽃 속을 헤매이니 흡사 지옥(地獄)아귀(餓鬼) 벗을 삼듯 독사 굴(窟)을 내 집같이 밤낮으로 드나들어 빠져 나올 줄을 모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칠 줄 모르는 굳고 굳은 망상에 사로잡힌 무지한 중생들…. 성인(聖人)들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이러한 죄업(罪業)에 형태나 모양이 있다면 한사람이 평생에 지은 업장(業障)으로 이 허공(虛空)을 다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라고 했다.
또 비유하시기를, 칠통(漆桶)같이 검은 업장이라 하시기도 하고, 혹은 무쇠 철판같이 무거운 업장이라고도 하시면서 수좌(首座)가 부처가 되고자 참선수행을 하는 것은 마치 모기가 침(針)으로 무쇠 철판을 뚫고자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중생이 다하고 중생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고 허공이 다할지언정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나의 원(願)은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현보살님의 대원(大願)이 생겼을 것이다.
또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님도 지옥중생이 다 성불하여 지옥이 비어야 내가 성불할 것이라는 원을 세웠을 것이고, 극락에 태어났더라도 극락세계에서 또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성불할 수 있다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세존께서는 중생들이 이러한 줄 아시면서도 한 가닥 선근(善根)의 끄나풀을 휘어잡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소굴에서 중생을 건져내고자 입이 쓰도록 무상심심미묘법(無上深深微妙法)을 베푸신 것이다.
이와 같은 불보살님의 대원력(大願力)은 칠통(漆桶)같고 철판(鐵板)같은 무쇠업장을 뚫었으니 그 어찌 갸륵타 아니하겠는가.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약하여 이 몸을 제도하리오"
이러한 서원(誓願)이 이루어진 것은 중생들의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은 한가닥 선근(善根)의 발로(發露)에의(依)함인데, 하물며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최상승(最上乘)의 미묘법(微妙法)을 만남에 있어서야….
금생(今生)에 이 몸을 제도할 수 있는 최상승 수행법 중의 하나가 바로 선문일송(禪門一誦) 가운데 있는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의 독송(讀誦)이다.
그렇다면 어떤 까닭으로 성철큰스님께서는 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受持讀誦) 하게 하였을까?
첫째는 중국에서 불조(佛祖) 혜명(慧命)의 대(代)를 잇기 위해 수백 수천명의 스님들이 모여 총림(叢林)을 이루고 수행하는 가운데, 그 생활의 일과(日課) 중에 능엄주의 독송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음도량(觀音道場)으로 유명한 중국 보타낙가산 총림의 주지이신 진헐 대화상밑에 사천명 청정(淸淨) 비구(比丘) 대중이 정진하고 있었다.
어느 날 피부 돌림병이 발생하여 온 대중이 병마(病魔)에 휩쓸리게 되었다.
진헐스님은 부전을 시켜 병의 쾌유를 비는 백일 관음기도를 시켰다.
백일기도 회향날, 주지스님 꿈에 관음보살이 화현(化現)하여
"주지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나를 찾으시오?" 하셨다.
주지스님은 "대성(大聖)이시여, 보시는 바와 같이 총림대중이 돌림병에 걸려 수행에 지장이 있사오니 대의왕(大醫王)이신 대성의 위력(威力)으로 대중의 병을 거두어 주소서" 하시니 관음 보살님은 "주지스님이시여, 청정대중의 병고(病苦)는 이 관음의 힘으로써는 거둘 재간이 없사옵니다. 오직 대불정능엄신주의 위력(威力)만이 이 청정대중의 병고를 거둘 수 있사옵니다"
라고 하셨다.
다음날부터 진헐스님의 분부로 대중스님들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한지 불과 몇 주만에 온 총림 대중의 병이 일시에 완쾌되었다.
당시 진헐스님께서 능엄주 독송의 공덕을 회향했던 글이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에도 실려 있다.
둘째로는 이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함으로써 얻는 영험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능엄주를 독송하면 온갖 죄업(罪業)이 남김없이 사라져 청정(淸淨)한 본래(本來) 근본(根本)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즉 계(戒)를 얻지 못하더라도 계를 얻게 되며, 계를 파(破)하더라도 도로 계가 청정으로 되돌아서며, 정진을 하지 못하는 이라도 정진을 하게 되며, 지혜가 없는 이라도 지혜를 얻게 되며, 재계(齋戒)를 갖지 못한 이라도 재계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불정능엄신주의 맨 첫머리를 보자.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이 주문의 신비한 말은 오직 지극히 염송하여야 아는 것이지만, 그 말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대여래(大如來)께서 정수리의 육계상(肉髻相)에서 그 어떤 자도 능히 미칠 수 없는 대지혜광명을 놓으시어 광명의 큰 우산을 만드시어 그 우산 안으로 끌어안으셨습니다."
즉, 이 말은 여래께서 이 다라니를 수지독송하는 수행자를 보호하시되 안팎으로 이들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완전히 조복시켜서 어떠한 위신력이나 신통력도 미치지 않아 일체의 방해를 안 받도록 보호하여 주신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능엄신주 전체를 5회로 나눌 수 있는데, 각 회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회의 내용은 "나맣 사르바붇다보디사트베뱧"부터 "쿠르반투 마마샤"까지이다.
시방에 계시는 부처님, 보살, 아라한, 천신, 그 밖의 모든 선지식과
성현들에게 귀의(歸依), 정례(頂禮), 공양(供養), 기원(祈願)을 해서 수호(守護)하여 줄 것을 발원(發願)하는 부분이다.
둘째, 2회의 내용은 "옴 리시가나 프라사스타"부터 "옴 스바스티르바바투 마마"까지이다.
제1회에서 귀의 ,정례, 공양, 기원을 올린 시방 부처님, 보살, 아라한, 천신, 성현, 선지식들께서 나에 대하여 좋은 일이 있게 해달라고 발원하는 부분이다.
셋째, 3회의 내용은 "라자비야"부터 "랔사랔사맘"까지이다.
시방세계 및 삼계(三界)에서 나의 수행을 방해하려고 오는 모든 고난과 재앙과 주력의 힘을 거룩하신 세존의 불정계(佛頂戒) 대지혜 광명으로써 금지시키고 차단시키고 파괴해서 나에게 방해가 되지 못하게 해줄 것을 발원하는 부분이다.
넷째, 4회의 내용은 "바가밤 시타타파트라"부터 "예케칱타 사트바 마마"까지이다.
백산개(白傘蓋;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오는 위신력) 아래 세존에게 귀의함으로써 백광(白光)이 분명하고 빛이 밝고 밝아 석가모니 부처님 이외의 모든 부처님, 보살, 신장, 아라한, 천신, 선지식 등이 사용하는 다른 주력의 힘을 파괴하여 주기를 기원하는 부분이다.
다섯째, 5회의 내용은 "두스타칱타"부터 "반트라파다 스바하" 까지이다.
시방세계 내(內)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나쁜 씀씀이와 모든 귀신(鬼神;악귀, 선귀, 일체의 귀신)의 장난으로 일어나는 고난(苦難)과 재앙(災殃), 재난(災難) 그리고 병고(病苦)를 백산개(白傘蓋) 아래 ‘대금강불정계(大金剛佛頂戒)’가 자연히 조복(調伏) 후퇴시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재난, 고난, 재앙, 병고 등의 장애를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들쳐내어 대불정계 백산개 대지혜 광명의 위신력으로 소멸시키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아무리 무쇠철판같이 두터운 업장(業障)일지라도 뚫리지 않을 수 아없으며, 무리 검은 칠통(漆桶)일지라도 희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수보살 말씀에, "정법(正法) 500년, 상법(像法) 1000년을 지난 말법시대(末法時代)에 사는 중생들에게 있어서 자력신앙(自力信仰)은 뗏목을 만들어서 타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인 피안(彼岸)에 이르고자 하는 것과 같고, 타력신앙(他力信仰)은 순풍(順風)에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저 언덕인 피안에 이르고자 하는 것과 같다.
말법시대에는 자력(自力)의 고승(高僧)도 불보살의 애민보호(哀愍保護)를 입지 않으면 뗏목을 만들어 타고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것과 같도다" 하셨다.
3. 능엄주가 설해진 배경
능엄주는 「능엄경(楞嚴經)」 제 7 권에서 설(說)해지고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능엄주가 설해진 배경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한 분인 아난(阿難)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서 어릴 때 출가한다. 뒤에 부처님의 시자(侍者)가 되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까지 24년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시봉을 한다. 훗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뒤를 이어 불교 교단을 이끄는 2대 조사(祖師)가 된다.
아난존자는 기억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 탁월한 기억력 덕분에 부처님을 수행하고 다니며 들은 부처님의 법문을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점은 훗날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를 중심으로 경전을 결집(結集)하게 될 때에 크게 공헌을 하게 된다.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아난존자지만 장애(障碍) 또한 많았다.
그 중에서 특히 여난(女難)을 많이 겪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아난존자의 체격이 당당하면서도 용모(容貌)가 수려하며, 피부(皮膚)는 맑고 부드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난존자는 점심때가 다가오자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나갔다.
어느 마을의 우물 곁을 지나다가 마침 목이 말라 우물가로 다가갔다.
그 곳에는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아난존자는 그 처녀에게 물 한 그릇을 떠 줄 것을 정중하게 청하였다.
처녀는 잘생긴 수행자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이미 가슴이 쿵쿵거리고 있던 터였다. 거기에다 아주 정중한 태도로 부탁을 하는 것을 보고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재차 물을 떠 줄 것을 청하는 수행자에게 그 처녀는 물을 떠 줄 수 없노라고 말했다.
이유는 자신의 신분이 사성계급 중에서 가장 미천한 '수드라(노예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난존자는 자신은 세속의 모든 차별에 의미를 두지 않는 수행자이기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고 대할 뿐이라고 말을 하며 재차 물 떠 주기를 청한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려(美麗)한 사람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청하는 모습에 그 처녀는 그만 그 수행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그 처녀는 앓기 시작한다. 상사병이 생긴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며 앓기 시작하는 딸을 보다 못한 엄마가 그 까닭을 추궁하였다.
그 엄마는 마등가라는 이름의 주술사(呪術士)였다.
딸로부터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마등가는 딸을 위해 옳지 못한 줄을 알면서도 그 수행자를 유혹하기로 한다. 평소에 아난존자가 탁발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주술(呪術)을 걸어 아난존자의 정신을 홀리는데 성공을 한다.
주술에 걸린 아난존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처녀의 집으로 가게 되고, 그 처녀는 엄마의 지시대로 자신의 방을 신방(新房)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마침내 아난존자는 그 처녀의 방으로 들어서게 된다.
때마침 선정(禪定)에 들어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신통력으로써 보시게 된다.
급히 제자들을 불러 아난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려주고는 가서 구해오라고 지시를 하게 된다.
부처님으로부터 명을 받은 제자들은 무엇으로써 아난에게 걸린 주술을 풀어서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잘 들으라고 하시고는 다시 선정에 드신다.
부처님께서 선정에 드시자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한줄기 큰 빛이 뿜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빛 속에서 무수히 많은 선정에 드신(좌선의 형태로) 부처님들이 출현하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많은 부처님들이 한결같이 무언가를 암송(暗誦)하고 계셨다.
이 외우고 계신 내용이 바로 '능엄주'였다.
제자들은 이 능엄주를 듣고 외우고는 급히 가서 위기일발의 순간에 처한 아난존자를 주술을 풀어 데려올 수 있었다.”
이렇게 능엄주는 설(說)해졌다.
이 능엄주가 부처님의 정수리에서 나왔다고 해서 '정수리 정'(頂)이 들어간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라고 명칭이 붙여졌다.
능엄주는 능엄경에 그 설해진 배경과 주문(呪文)의 내용, 그 주문을 했을 때의 공덕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다.
혹 어떤 사람들은 능엄주가 '귀신을 쫓아주는 주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능엄주를 잘못 알고 하는 말들이다.
능엄주의 공덕 편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인용을 해보자.
"「수능엄경」 제7권에 부처님께서 대불정능엄신주를 설하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아난아, 이 부처님의 정수리광명이 모이어 된, 시타타파트라 비밀한 가타, 미묘한 글은, 시방의 온갖 부처님을 내는 것이니, 시방 여래가 이 주문으로 인하여 위없는 삼먘삼보리를 이루는 것이며...'"
여기에 분명히 언급이 되어 있다. 이 주문은 온갖 부처님을 낼 뿐만 아니라, 이 주문으로 인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다고.
따라서 단지 삿된 기운을 몰아내거나, 어떤 영험을 바라고 하는 주문이 아니라 자신을 닦아나가는 참된 수행법으로써 능엄주를 바라보고 해야 할 것이다.
4. 능엄주를 독송하는 법
능엄주를 하나의 수행법으로 받아 들여서 하고자 한다면 결국 외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능엄주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등등 어떤 상황에서도 능엄주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해야 한다.
참선(參禪)의 화두(話頭)처럼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어(語)·묵(默)· 동(動)·정(靜) 간에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참선을 함에도 좌선(坐禪)의 형태가 가장 좋은 자세이듯이, 능엄주를 함에도 좌선의 형태로 앉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능엄주를 하려 하면, 먼저 숨을 배로 깊게(단전까지라면 더 좋다) 들어 마신다.
마신 숨을 일정하게 쭉 내보내면서 보통의 소리로 능엄주를 읽는다.
원통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주력(呪力)을 할 때의 소리는 목을 통해서, 즉 성대를 통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배로 숨을 들이쉬고, 쉰 숨을 내 뿜는데 단지 성대(목)는 그냥 숨을 통과시키는 통로 역할만 하고 소리는 입과 입술로서 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성대로 전혀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과정을 100으로 본다면 성대를 통해서는 30정도, 입과 입술로는 70정도 내라 한다.
그리고 입(턱관절)과 입술을 100으로 본다면 입으로 30정도 입술로 70정도 내라고 한다.
성대를 통해서 소리를 내면 소리가 맑을 수가 없으며, 하면 할수록 힘이 빠진다고 한다.
목에 힘이 실리지 않게 자꾸 읽고 읽다보면 그 소리도 점점 맑아지고,
내 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요소는 내 입으로 내는 능엄주 소리를 내 귀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엄주를 읽는 나와 능엄주를 듣는 나, 이 둘을 하나로 움켜쥐려는 나가 하나가 되어 내 속으로 몰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삼매(三昧)'라고 한다.
능엄주를 통해서 이런 삼매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참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5. 능엄주 지송 - 자성 밝히는 힘
1일 경기도 하남시 정심사(주지 원영스님)에는 오후 2시부터 철야 능엄기도 법회가 열렸다.
매달 첫째 토요일은 능엄주력으로 철야정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자비로 중생들을 어여삐 여겨 대희대사 베푸시어 제도 하시고…”
능엄기도는 108참회로부터 시작됐다.「예불대참회문」은 시방의 여러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업장을 참회하고 그 예배공덕을 모두 일체중생에 회향하겠다는 기도문이다.
108배를 끝내자 30여 수행자들은 일제히 앉아 한목소리로 ‘대불정능엄신주(大佛頂楞嚴神呪)’라고 불리우는 능엄주를 염송하기 시작한다.
“스타타가토스니삼 시타타파트람 아파라지탐 프라튱기람 다라니…”
불자들이 빠르게 능엄주를 염송하기 시작했다. 도량은 ‘우~웅’하며 진언소리로 가득했다.
불자들은 마치 썰물과 밀물이 오가듯 능숙하고도 일사불란하게 능엄주를 읽어 내려갔다.
초보자들은 따라 하기 힘든 것은 고사하고 앉은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1편 독송에 걸리는 시간은 7분 정도. 모두 108편을 독송해야 기도가 끝이 난다.
약 13시간이 소요되는 쉽지 않은 철야정진이다 보니 2시간 간격으로 20분씩 휴식한다.
철야정진은 3시경에 끝나 새벽예불로 마무리되었다.
‘부처님 정수리에서 나온 진언’이라고 하는 능엄주, 이 진언을 마음과 입으로 외우면 온갖 죄업이 소멸되고 청정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다고 해서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일과 중에도 염송하는 진언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와 함께
가장 많이 지송되는 다라니 가운데 하나다.
성자현행(60, 서울 여의도동) 정심사 신도회장은 “능엄기도는 업장을 소멸하고 온갖 장애와 잡념을 없애주어 늘 편안한 마음으로 살게 한다”며 “진언의 위신력으로 자신감 있는 삶과 수행을 병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철스님문도회 사찰에서는 반드시 수행하고 있는 능엄기도는 ‘법신비로자나 진언’(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을 포함한 ‘아비라 기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능엄기도가 일상적으로 하는 기도라면 아비라기도는 1년에 몇 차례 결제를 앞두고 3박4일씩 기간을 정해 실시한다.
예불대참회, 법신진언, 능엄주력을 함께 하는 일명 ‘아비라기도’는 성철스님이 한국전쟁이 끝난 후 고통에 빠진 신도들에게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과 악업은 과거생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지어온 업장의 과보”라며 일러준 기도다. ‘
예불대참회’와 능엄주를 외우게 하며, 소원을 비는 불자들에게는 무릎을 꿇은 채 합장하고 법신진언을 외우도록 일러주면서 비롯됐다. 그때부터 성철스님은 열반할 때까지 40여 년을 일관되게 이 법을 지켜왔는데, 이는 중국 당대(唐代)의 총림 수행법이라고 한다.
20여 년 전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친견한 뒤부터 능엄주력을 해온 신도회 기도부장 도림윤(58, 서울 성북동) 보살은 “생활 속에서 능엄주를 하다보면 어렵거나 힘든 장애를 쉽게 극복하고 평상심으로 살아가게 됨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성철스님은 타력(他力)에 의한 기원이나 스님들에게 의뢰하는 기도와 불공을 배격하고, “자기가 지은 악업은 자신의 노력으로 참회하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맑아질 때
과보(果報)가 바뀌어지며 행복이 이루어진다”며 철저한 자기 정진을 강조했다.
또한 어떤 요행이나 사행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업장을 더하는 결과라며 남과 내가 둘이 아닌 화엄법계 보현행원으로 기도하는 것만이 부처님의 바른 법이라고 일러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능엄주력은 참선 수행자들로부터도 타력과 자력을 겸한 수행방편으로 애송되고 있는 것이다.
“능엄신주 기도는 마음을 곧게 모으고 수행의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정심사 주지 원영스님은 능엄주의 뜻이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선정을 닦는 데 힘을 돕는 주문’인 것처럼 마음의 온갖 장애를 이겨낼 수 있고 수행의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선종 사찰에서는 전통적인 수행법으로 능엄주 독송을 해왔다고 말했다.
원영 스님은 능엄경의 정수를 담은 능엄신주 기도는 아비라기도와 함께 종합수행도량인 총림의 중요한 기도법이었다고 밝혔다.
“427구로 이루어진 능엄다라니를 일념으로 지송하면 모든 마장을 물리치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모든 소원을 이루고 마침내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다고 능엄경은 설하고 있습니다.
이 능엄주를 독송하면 온갖 죄업이 남김없이 사라져 청정한 본래 근본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원영스님은 성철 큰스님께서 미망에 허덕이는 우리 불자들에게 이 능엄주를 매일의 일과로써 수지독송하도록 일러주셨다며, 큰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늘 능엄주를 진심으로 독송하여 몸과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6. 능엄주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견해
능엄주는 신(神)을 불러들이는 주문인가?
어느 백련암 문중 절에 다니고 있다는 보살님으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스님, 제가 초하룻날 그만 시간이 늦어서 다니던 절엘 가지 못해서 집에서 가까운 절에 갔었는데 그 절의 스님이 능엄주는 신(神)을 불러 오는 것이니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더라도 출가자인 스님이나 하는 것이지, 일반 신도들은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절에 다니는 주변의 분들도 능엄주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며 대다라니주를 하라고 권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 보살님은 평소에 늘 능엄주를 해 오셨다고 한다.
다른 절에 다니는 아는 분들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지만 무시하였는데, 이번엔 스님으로부터 직접 말을 듣게 되니 걱정스런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나 보다.
또 이와는 반대로 ‘능엄주는 귀신을 쫓아주는 주문이다’라고 얘기하는 스님도 있다고 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능엄주는 귀신과 관련 있는 주문이니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스님들과 불자들은 능엄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경험을 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불자들은 차치(且置)하고 왜 일부 스님들은 능엄주를 '신(神)을 불러들이는 주문'이라고 알게 되었을까?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고 출가자인 스님들만 하는 것이라면 능엄주 하는 스님들은 신(神)을 부르기 위해서 능엄주를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부처님이 기껏해야 신(神)을 불러들이라고 능엄신주(楞嚴神呪)를 설(說)하셨고, 「능엄경(楞嚴經)」은 그런 주문이나 모아놓은 경전이란 말인가?
능엄경 후반에 보면 오히려 공부 중에 생기는 50여 가지 경계에 대해서 부처님이 말씀해 놓으신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보면 공부 중에 설령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공부를 참 잘한다며 수기(授記)를 주시더라도 이는 부처를 가장(假裝)한 마군(魔軍)의 모습이니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부처님의 형상이 나타나도 속지 말라고 가르치는 마당에, 그 외에 다른 잡다한 신(神)들에게도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런 장애(障碍)를 최소화시켜 나가기 위해서라도 능엄주를 하라고 하는 것인데, 어찌 이런 능엄주를 신(神)을 불러들이는 주문이라고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능엄경(楞嚴經)」 제7권에 능엄주(楞嚴呪)에 대한 공덕이 설(說)해지고 있다.
여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난아, 이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이 모이어 된, 시타타파트라 비밀한 가타, 미묘한 글은, 시방(十方)의 온갖 부처님을 내는 것이니, 시방여래가 이 주문으로 인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듣고, 모든 마(魔)를 항복받고, 외도(外道)를 이기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타시고, 보배연꽃에 앉아 미진(微塵)같은 세계에 들어가시는 것이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따라 시방국토에서 선지식을 섬기어 공양하고 항하사 여래의 법왕자가 되며, 시방여래가 이 주문을 외우사 위없는 정각(正覺)을 이루시며...
이 주문을 여래의 정수리라고도 이름 하나니, 너희 배우는 사람들이 윤회를 벗어나는 도(道)를 얻고자 하면서도, 이 주문을 외우지 아니하고, 몸과 마음에 마(魔)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내가 열반한 뒤에 말세 중생들이 제가 이 주문을 외우거나 남을 시켜 외우게 하면 이 중생들은 불이 태우지 못하며, 물이 빠치지 못하며, 독이 해치지 못하며, 용이나 하늘사람이나 귀신이나 마귀의 나쁜 주문들이 건드리지 못하고, 마음에 삼매(三昧)를 얻어서, 독한 약(藥)과 만물의 독기(毒氣)가 이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곧 감로(甘露)로 변할 것이며, 나쁜 귀신들이라도 이 사람에게는 해(害)를 주지 못하며,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주문은 팔만사천 나유타 항하사 구지되는 금강장왕 보살의 종족들이 밤낮으로 따라다니면서 보호하나니, 설사 어떤 중생이 삼매가 아닌 산란한 때에라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이 주문을 외우면, 이러한 금강왕들이 항상 이 사람을 보호할 것이어든, 하물며 보리 마음을 결정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여래가 이 주문을 일러서, 이다음 세상까지 전하여서, 처음으로 마음을 내는 수행하는 이들을 보호하여, 삼매(三昧)에 들게 하며, 마(魔)의 장난과 전세(前世)의 업장(業障)이 방해하는 일이 없게 하느니라. 너와 이 회상에서 배우는 이들이나 이다음 세상에 수행하는 이들은 이 규모대로 수행하여 부모에게서 얻은 육신으로 도(道)를 이룰 것이니라.”
다소 길게 서술하였지만, 능엄경전에 분명히 나오는 내용이다.
경전(經典)이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인데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뜻을 우리의 좁은 소견(所見)으로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는 허물은 범할 수 있을지언정 어찌 말씀 자체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고,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갖가지 장애(障碍)들이 소멸된다고 하는데 왜 거꾸로 신(神)을 불러들인다는 등 함부로 얘기를 해서 불자(佛子)들로 하여금 혼란(混亂)을 겪게 만드는 것인지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하더라도 스님들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더라도 스님들만 해야 한다’라는 점에 대해서도 짚어보자.
내 마음을 찾고, 내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공부하는 데에 출가자(出家者)의 공부가 따로 있고, 재가자(在家者)의 공부가 따로 있다는 말인가?
출가자의 마음과 재가자의 마음은 서로 다른 마음이란 말인가?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뿐이지,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하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나 스스로도 되돌아본다.
그리고 능엄주를 하는 불자(佛子)들도 그런 말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능엄주처럼 그 출처(出處)가 명확한 진언(眞言)도 드물다.
어느 때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설했으며, 그 진언을 하게 되면 어떠한 공덕이 있는지 '능엄경(楞嚴經)'에 분명히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