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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삼국지 246
(소설삼국지)
제2권 군웅쟁패
제24장 서주공방전
5) 여포의 죽음
식량이 점점 떨어져 가자 여포는 성중에서 술 빚는 일을 중지시켰다. 양식을 아끼기 위한 조치였다. 여포 자신도 금주를 선언했다.
여포의 기병대장 후성(侯成)은 명마 열다섯 마리를 애지중지 키웠다. 말을 돌보던 아랫사람이 후성의 말을 다 몰고 성을 나가 유비의 군영을 향했다. 그는 패색이 짙어지자 유비에게 귀순할 작정이었다. 후성이 직접 기병을 거느리고 추격에 나서 도로 다 되찾아가지고 왔다. 여러 장수들이 함께 후성을 찾아와 축하를 했다.
후성은 모처럼 찾아온 장수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에게는 금주령이 내리기 이전에 이미 빚어놓은 오륙 섬의 술과 사냥해서 잡은 십여 마리의 멧돼지가 있었다. 후성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술을 치고 주안상을 차렸다.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먹고 마시자니 괜히 뒤가 켕겼다. 어찌됐건 금주령 치하가 아닌가.
손님들과 먹고 마시기 전에 후성은 먼저 돼지 반 마리와 다섯 말의 술을 가지고 직접 여포를 찾아뵈었다. 후성이 궤배를 한 채 말했다.
“장군의 은혜 덕에 잃어버렸던 말을 쫓아가 잡아왔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서로 축하하기에 제가 이미 담가 놓았던 약간의 술과 사냥해서 잡은 멧돼지를 가지고 상을 차렸습니다. 감히 먼저 먹고 마시기 전에 먼저 주상께 작은 성의를 바칩니다.”
여포가 버럭 화를 냈다.
“이 여포가 금주하고 있는데 경은 술을 담갔단 말인가. 여러 장수와 함께 먹고 마시며 의형제라도 맺고 공동으로 이 여포를 죽일 음모라도 꾸미겠다는 것인가?”
후성은 크게 두려워하며 물러나와서는 빚어놓았던 술을 다 내다버렸다. 여러 장수들에게는 말로만 사례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들은 다 속으로 불만스러워 했다.
여포가 비록 날래고 사나웠지만 무모하고 시기심이 많았다. 여포는 휘하의 무리들을 잘 제어하지 못했으며 단지 그때그때 여러 장수들에게 믿고 맡길 뿐이었다. 여러 장수들은 각자 의견이 달랐고 서로 의심했다. 그러므로 매번 싸울 때마다 자주 패했다. 조조가 참호를 파 포위한 지 삼 개월이 지나자 위아래가 서로 마음이 이반했다.
성중에서 절대로 항복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은 진궁뿐이었다. 또 여포에게 항복을 못하게 하는 장본인도 바로 진궁이었다. 진궁이 대장이 되어 성안의 모든 군사 일을 관장했지만 그는 원래부터 여포의 장수가 아니었다. 여포가 무관을 빠져 나올 때부터 그를 수행했던 사람은 고순, 장요, 송헌, 위속, 후성 등이었다. 여포와 진궁에게 불만을 품은 후성(侯成)은 그와 친한 장수 송헌(宋憲)과 위속(魏續)과 공모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먼저 진궁(陳宮)을 기습해 포박한 후 자신들의 병력을 이끌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성이 무너지고 성중에는 조조의 군대가 가득했다. 여포가 그 휘하의 측근들과 백문루(白門樓)에 올랐다. 조조군의 포위공격이 매우 급박했다. 여포가 측근들에게 말했다.
“경들은 나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가져가시오. 그가 후사할 것이오.”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여포는 곧바로 성문에서 내려가 항복했다.
조조의 장수들은 여포를 산채로 잡아 조조에게 데려갔다.
여포가 조조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명공은 어째 수척해지신 것 같소!”
조조가 물었다.
“그대는 어찌 나를 알아보는가?”
여포가 답했다.
“지난 날 낙양에 있을 때, 온씨(溫氏)의 후원에서 만난 일이 있소.”
조조가 말했다.
“아. 그런가. 나는 잊었었네. 내가 수척해진 이유는 서로 빨리 싸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서라네.”
여포가 계면쩍어 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에 여러 장수들을 후하게 대접했는데 장수들이 위급함을 당해 다 이 여포를 배신했소이다.”
조조가 비아냥거렸다.
“경이 마누라를 배신하고 여러 장수의 부인을 사랑했다던데 어찌 이것이 후하게 대접한 것이오?”
여포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여포는 여색을 탐해 수하 장수의 부인이라 하더라도 미인을 보면 건드리지 않고는 못 배겼었다.
여포가 말머리를 돌렸다.
“포승줄이 너무 빡빡하니 좀 늦추어 주시오.”
조조가 대답했다.
“호랑이를 묶는데 아니 빡빡할 수 있나.”
조조는 지금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잡은 파리를 가지고 놀고 있는 고양이처럼 이 여포라는 인물을 찬찬히 살려보고 있었다. 단순무식하고 다소 엉뚱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포는 이제 승부수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제 딴엔 조조를 설득해 일단 이 위기를 모면해 볼 생각이었다. 여포가 어깨를 쭉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이 왔으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다 할 수 있겠소.”
조조가 물었다.
“뭔 소린고?”
여포가 그 뜻을 설명했다.
“평소에 명공의 걱정거리 중에 이 여포를 능가하는 것은 없었소. 지금 내가 이미 항복했으니 이제 천하에 걱정거리가 없어졌소. 명공이 직접 보병을 이끌고 이 여포에게는 기병을 이끌게 하신다면 바로 천하를 평정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조조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포가 한마디 더 했다.
“제환공(齊桓公)은 자신의 혁대고리를 쏜 관중을 자신의 국상으로 만들었소. 지금 여포로 하여금 고굉지력(股肱之力)를 다하게 하시오. 공을 위해 선봉에 서서 말을 달리겠소. 가능하겠지요?”
조조는 묵묵부답이었다. 잠시 어쩔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워낙이 사람 욕심이 많은 조조였다.
여포는 포승이 점점 옥죄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유비에게 말을 건넸다.
“현덕(玄德). 경은 상좌에 앉아있는 빈객이 되었고 나는 사로잡힌 포로가 되었소. 서로 관대하게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오?”
조조가 웃으며 말했다.
“어찌 서로 말이 없는가. 사군을 위해 호소하시겠소?”
조조는 유비를 바라보면서 여포를 살려줄 뜻을 슬쩍 내비쳤다. 조조가 명을 내려 여포의 포승을 조금 늦추어 주게 했다. 단하에 있던 주부 왕필(王必)이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
“여포는 억센 포로입니다. 그의 무리가 밖에 가까이 있습니다.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은 불가합니다.”
조조가 말했다
“본인은 완만하게 해주고 싶으나 주부가 안 된다 하니 어찌 하리오?”
이윽고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조조에게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공께서는 정건양(丁建陽)과 동태사(董太師)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가 유비를 향해 외쳤다.
“저 귀 큰 아이야 말로 최고로 못 믿을 놈이로구나!”
조조는 결국 여포를 교수형에 처하라 명했다.
여포가 형장에 끌려 나가기 전 진궁이 잡혀 들어왔다.
조조가 진궁에게 말했다
“공대는 평생 스스로 지혜가 넘친다고 자부해 왔는데 지금 어찌하여 이지경이 되었는가?”
진궁이 여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소. 만약 그가 내말대로 했더라면 반대로 그대가 포로가 되었을 것이오.”
조조가 물었다.
“경의 노모는 어찌 할 것인가?”
진궁이 대답했다.
“이 진궁은 효(孝)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사람의 부모를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소. 노모가 살고 죽는 것은 다 명공에게 달려있지 이 진궁에게 있지 않소.”
조조가 또 물었다.
“경의 처자는 어찌할까?”
조조에게는 그를 굴복시켜서 다시 쓰고자 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진궁은 조조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동군에서 수하에 데리고 있을 때 조조를 위해 연주의 종사들을 설득해 연주를 통째로 손에 넣게 해주었던 일등 공신이었다. 조조가 그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었다. 그럼에도 진궁은 자신을 배반해 여포를 끌어들임으로써 조조를 무척이나 곤경에 빠뜨렸던 죄과가 있었다. 너무 자신의 지모를 믿고 책모 꾸미기를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조조는 일단 사람 욕심이 앞섰다. 진궁이 굴복하면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
진궁은 굴하지 않았다.
“진궁이 듣기로 어짐(仁)으로 천하에 정치를 펼치는 자는 사람들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고 했소. 처자의 살고 죽는 것도 다 명공이 결정할 일이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오.”
지은 죄가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을까. 진궁은 한 번도 살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조조도 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 진궁은 스스로 형장으로 데려가 줄 것을 요청했다. 나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조조는 눈물을 흘렸다.
조조는 진궁의 모친을 불러들여 죽을 때까지 보살폈고 진궁의 딸은 시집을 보내주었다. 그의 집안 식구들을 다 잘 돌보아 주면서 이전과 같이 후하게 대했다.
고순도 끝까지 항복을 거부했다. 여포와 진궁, 고순은 다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머리들을 허도에 보내 다 저잣거리에 효수했다. 그런 후에 장사를 지냈다.
일찍이 전 상서령(尚書令) 진기(陳紀)와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여포의 군중에 있었다. 조조는 그들을 다 예로써 맞이해 임용했다. 장요(張遼)는 자신의 병력을 이끌고 제발로 찾아와 항복했다. 조조가 그를 중랑장에 임명했다. 장패(臧霸)는 스스로 도망쳐 숨었는데 조조가 찾아내게 해 잡아들였다. 조조가 장패에게 명해 오돈(吳敦), 윤례(尹禮), 손관(孫觀) 등 소위 태산적의 수령들을 초무하게 했다. 이들은 다 장패를 따라 조조에게 항복했다. 조조가 이들을 받아들여 후하게 대우했다. 조조는 마침내 낭야(琅邪) 군, 동해(東海) 군, 북해(北海) 군에서 땅을 떼어내 성양(城陽) 군, 이성(利城) 군, 창려(昌慮) 군을 만들고 장패 등을 다 새로 만든 군의 태수자리에 앉혔다. 청주와 서주 인근에서 바닷가까지의 땅을 다 이들에게 맡겼다.
일찍이 조조가 연주에 있을 때 서흡(徐翕)과 모휘(毛暉)를 장수로 삼았다. 연주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서흡과 모휘도 반란에 가담했다. 연주가 이미 평정되자 서습과 모휘는 장패에게 망명했다. 조조가 유비에게 명했다.
“한때 장패는 장군의 휘하에 있었소. 장군이 장패에게 명령을 내려 서흡과 모휘 두 놈의 목을 가져다 바치도록 하오.”
유비가 장패를 찾아가 조조의 명을 전하자 장패가 유비에게 말했다.
“장패가 굳이 자립하고자 했었던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장패는 주공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게 해준 은혜를 입었으므로 감히 명령에는 위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왕패지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군주라면 의(義)로써 충고하는 것이 가능한 법이니 장군께서 조공께 잘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장패는 차마 조조를 배신할 수는 없으나 그 명에는 따를 수는 없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유비는 장패의 말을 조조에게 아뢰었다. 조조가 감탄하며 장패에게 말했다.
“이는 참으로 옛사람들이나 행했던 일인데 그대가 지금 이를 능히 행하다니! 바로 내가 원하는 바이다.”
조조가 장패의 기개를 높이 평가해 그의 청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흡과 모휘도 다 용서하고 태수로 임명해 주었다.
또 일찍이 조조가 처음 연주자사가 되었을 때 동평(東平) 출신의 필심(畢諶)을 별가종사에 임명했다. 장막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장막이 필심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처자를 인질로 잡고 협박했다. 조조는 필심을 보내 주려고 했다. 조조가 필심에게 말했다.
“경의 노모가 저쪽에 있으니 가도 좋소.”
필심은 머리를 조아리며 두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조는 필심의 충성을 기쁘게 생각해 눈물까지 흘렸다. 필심은 군문 밖을 나가기가 무섭게 여포에게 도망쳐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여포를 격파하고 필심을 산 채로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필심을 걱정했다. 조조가 말했다.
“그 부모에게 효도로써 섬기는 사람이 어찌 나라에 충성하지 않겠는가! 이는 내가 구하는 바이다.”
필심을 용서하고 노국상(魯國相)에 임명했다.
건안4년(199년) 2월 조조가 회군해 창읍(昌邑)에 도착했다. 조조를 위해 장양을 죽인 양추를 죽이고 원소에게 투항한 휴고(眭固)가 그 무리를 이끌고 사견(射犬)에 주둔했다. 여름 4월 조조는 전군을 황하까지 진군시킨 후 사환(史渙)과 조인(曹仁)에게 명해 황하를 건너 휴고를 공격하게 했다. 휴고는 장양의 옛 장사 설홍(薛洪)과 하내태수(河內太守) 무상(繆尚)을 사견에 남겨 수비하게 하고 자신은 병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원소를 찾아갔다. 원소에게서 구원병을 얻고자 했다.
휴고의 부대는 사환과 조인이 이끄는 군대와 우연히 견성(犬城)에서 서로 마주쳤다. 사환과 조인이 교전을 벌여 대파하고 휴고의 목을 베었다. 조조가 드디어 황하를 건너 사견을 포위했다. 설홍과 무상 등이 병력을 이끌고 다 항복했다. 조조는 이들을 다 열후에 봉했다. 조조는 이 일을 마친 후 군대를 오창(敖倉)으로 회군시켰다.
일찍이 조조가 위종(魏種)을 효렴으로 천거했다. 연주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조가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위종만은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 위종마저 도주했다는 소식을 듣자 조조가 분노했다.
“위종. 남쪽으로 월(越)나라로 도망치던지 북쪽으로 호(胡)족에게로 달아나지만 말아라.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위종은 도주해 휴고에게로 가 의탁했다. 사견이 함락되었을 때 위종 역시 조조의 포로가 되었다. 조조가 위종을 보고 말했다.
“오로지 그 재주가 아깝다!”
조조는 손수 위종의 포박을 풀어주고 그를 하내태수로 임명했다. 위종에게 하북의 일을 관장하게 했다.
조조는 여포를 사로잡음으로써 그동안의 은원관계를 모두 다 청산했다. 끝까지 저항한 자는 죽였고 성문을 열고 항복한 자들은 열후에 봉했다. 한 번 배신했었지만 용서를 구한 자들은 다 용서해주고 그들의 능력을 사용했다.
유비는 조조를 도와 하비(下邳)에서 여포를 포위했다. 여포를 생포하고 유비는 다시 처자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유비는 조조를 따라 허도로 돌아왔다. 조조는 표를 올려 유비를 좌장군(左將軍)에 임명하고 더욱 극진히 대접했다. 외출할 때면 유비에게 자신과 한 수레를 타고 자리에 앉을 때는 한 좌석에 앉게 했다. 진등(陳登)은 조조에게 내응한 공로를 인정받아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었으며 광릉으로 돌아가 계속 임지를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