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의 사회-정치-경제적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는 토론회 <386, 반성과 모색>이 오늘(17일) 오후 2시부터 6시 현재까지 서울 을지로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 서경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 토론회의 제2부 <386과 정치>의 토론자로 나선 서경석 목사(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는 토론을 시작하면서 "나는 오기 싫었는데 주최측에서 강권을 해서 왔다"면서 "나는 386에 대해 싸가지 없고 일찍부터 발랑까져 어른말도 안듣는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386세대를 향해 강도높게 비난했다.
이어 서 목사는 386세대에 대해 "균형감각과 소신이 부족하며 좌파이데올로기적 감성을 벗어나지 못한 세대"라고 비판했다.
서 목사는 386을 "좌파이데올로기세대"로 규정한 후 "현재는 좌파이데올로기의 이념은 벗어났지만 감성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중동 등 거대언론을 무조건 비판하고, 미국은 비난하면서 김정일에는 침묵하는 행동이 이러한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386은 동료의식이 강해 떼지어다니며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도 했다. 서 목사는 이어 "386세대가 노무현 정부를 돕는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은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이러다가는 우리나라가 큰일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그래서 5060으로 불리는 우리세대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행동에 나서고 있다"면서 "그 한 예로 (보수적) 인터넷신문을 창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 목사는 "386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했고 시민운동에 들어와서 헌신적으로 일을 했다"는 등 386세대의 공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곁들였다.
서 목사의 이런 발언은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386세대의 시민운동에서의 역할>을 주제발표한 직후에 나왔다. 서 목사의 발언에 대해 하승창 사무총장은 "'386의 행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단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면서 "그것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사무총장은 또 "좌파적 감성은 80년대의 이분법적 사고가 있었기에 그런 점도 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시민사회의 다원화와 함께 그것을 극복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단순화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 토론회에는 하승창 사무처장과 김방희(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 전영기(중앙일보 기자), 이두원(연세대 교수)씨 등 각 분야의 386세대들이 발제를 했다.
또 토론자로는 386세대뿐 아니라 문정인(연세대 교수), 김근태(민주당 의원), 서경석(우리민족서로돕기집행위원장) 등 선배세대들이 참여했다.
이날 정치부문 발제에서 전영기 중앙일보 기자는 노무현 정권의 핵심참모그룹이자 핵심지지그룹인 386세대들이 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우선 본인들이 도덕성과 경영능력에서 흠을 잡히지 않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전씨는 "노 대통령 권위의 거의 유일한 원천은 깨끗함과 도덕성"이라면서 "이런 환경에서 청와대 보좌진이나 신주류의 일부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사건 등이 발생하면 권위의 근거가 흔들리고 야당과 언론의 혹독한 집중공세를 피할 수 없을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의 실패는 권위의 실패로 연결되고, 이는 운동권 세력의 확산에 제동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영기씨는 또 386세대들이 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경제이슈에서 대안세력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경제이슈에 실패하면, 정치개혁이나 안보위기 극복, 이상주의적 순수성같은 가치들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선거에서 유권자들한테 외면 받기 십상이라는 것은 국내외 정치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특히 35세 미만의 정치성향이 향후 관찰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나 선거기록을 유심히 관찰하면,35세 미만을 구성하는 90년대 이후의 입학 학번들은 경제와 고용을 중시하고 개인주의적,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386핵심측근들이 이끄는 '운동권 정권’이 경제 이슈에 대비하지 않으면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의 권력의 추는 386세대에서 현재 35세 미만 세대의 ‘397세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근태 의원의 짧은 충고
김근태 의원은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열린 정치부문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정치부문 발제가 시작되기 전인 오후 3시경 "당에서 회의가 급히 잡혀 토론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면서 짧은 인사말로 대신했다.
김 의원은 "386세대가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런 흐름이 전문직 386을 흐트려뜨려서는 안되며 정치와 전문직간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나는 그동안 합리성과 돌파력을 균형적으로 배합하려고 노력했다"면서 386후배들도 그런 균형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전영기 중앙일보 기자의 발제문 전문.
<386 정치: 386 혹은 운동권 정치세력>
지금은 <오마이뉴스> 사장인 오연호씨는 1999년엔 <말>지 취재부장이었다. 그는 5월호 별책부록으로 “21세기 한국의 희망,386리더”를 기획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4월 총선을 준비하면서 ‘젊은 피 수혈론’을 정치권에 화두로 던진 시점이다.
오연호씨는 1천명의 해당 세대 인물들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처음 출현한 ‘386 세대’란 개념에 구체성을 부여했다.386 세대의 인재풀이 공론화 되면서 여야 정치권과 언론은 이들을 정치권 수혈의 원천으로 주목했다.
이 별책에서 386은 “1980년에서 89년 대학입학 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했고, 지금도 개혁적이며, 해당분야에서 일정한 능력을 검증받았으며,21세기에도 그 분야를 리드할만한 촉망받는 기대주”로 규정됐다.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거나, 보수적 성향이라도 이 기준 중 일부를 충족하면 포함시켰으며,국정원·검찰·군·경찰 등 특수조직과 행정부 인사는 생략했다.
386세대의 정치적 특성은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 있겠다.
“386세대는 광주의 아들들이다. 그들은 광주의 비극을 통해 분노했고, 꿈을 접었고, 인생을 바꿨다. 그리고 일도 많이 저질렀다.”(별책부록 17쪽)
“선배,87년을 기억하십니까.종철이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은 그 겨울이 있던 해, 언제 끌려가서 권인숙씨처럼 성고문을 당할지, 백골단의 군화에 피투성이가 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선배의 손을 꼬옥 잡고 길거리로 나섰던 겁 많던 후배를 기억하십니까. 최루탄 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누군가 던져준 빵과 우유를 먹으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우리의 푸른 역사를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서면, 남포동, 부산역···아니, 온 나라가 하나 되어 외쳤고 싸웠고 마침내 6·29라는 소중한 역사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군화도 결국 국민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준 우리들의 힘, 말입니다.”(문성근 외 지음,『노하우에 리플 달기-노무현 공식홈페이지 베스트뷰 모음집』,2002년 11월13일)
이 네티즌은 스스로를 “스무 살 영롱한 꿈을 꾸던 우리가 이제는 아줌마 소리가 익숙한 학부형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자신을 386세대에 동일시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정치의식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80년 광주와 87년 6·10민주화 항쟁에서 찾는다. 반미 자주화와 반독재 민주화, 그리고 참여투쟁이 그들의 이념이자 행태였다.
양김씨 후보 단일화 실패(1987년)→3당 합당의 절충 권력(90년)→YS의 집권(93년)→DJP공동정권 성립(98년)→DJ의 지역·부패정치의 한계, 햇볕정책의 시련 등을 거치면서 386정치세력은 좌절하면서도 반보씩 전진해 갔다.
후보 단일화문제에선 ‘자기 희생’,3당 합당과 공동 정권에선 ‘민주세력의 순혈성’의 가치가 부각됐고,YS에게선 ‘국가경영 능력’을 의문시했다.YS·DJ정권에선 공히 지역주의 정치와 보스-가신 정치, 이와 밀접한 부패문제가 386세대를 좌절시켰다.
햇볕정책은 DJ집권 때는 국면적으론 평화무드를 가져왔지만, 지금은 안보 위기 속에서 민족우선이냐, 동맹우선이냐를 놓고 386 세대에서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96년과 2000년의 두 차례 총선을 통해 386정치세력은 국회 진입에 큰 성과를 거둔다. 재선의 김민석 전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한나라당엔 김영선·김영춘·남경필·오세훈·이성헌·원희룡 의원이 민주당엔 김성호·송영길·원유철·임종석 의원이 자민련엔 정진석 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나이와 대학입학 연도만 따진 것이고, 위에서 말한 386운동권의 정치적 특성을 갖춘 정치인은 김민석(민주당-국민통합21-탈당)·김영춘·이성헌·원희룡(이상 한나라당)·송영길·임종석(이상 민주당)의원 정도일 것이다.이렇게 보면 엄격한 386정치인은 2백73명 국회의원 중에서 한줌 밖에 안 된다.
‘386 정치인’은 특정 세대이면서 동시에 정신·이념·성향·경력·스타일 등에서 일정한 특성을 공유하는 운동권 출신을 상징하기도 한다.386은 때로는 세대적으로 좁게, 때로는 운동권적으로 넓게 이해되곤 한다.
<주류세력의 혁명적 교체-노무현 정권>
앞에서 선배에게 ‘87년을 기억하느냐’고 물은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이어 적고 있다.
“선배, 저는 87년 6월 그때로 돌아가려 합니다. 돌을 집어드는 대신 이젠 인터넷이란 무기를 들고, 국민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 썩어빠진 정치꾼들과 한판 싸워보려 합니다. 냉소적으로 대하거나 욕만 해서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이제 모른 척 비겁해지지 않으렵니다. 반부패,국민통합,참여민주주의,인터넷정당인 국민개혁정당에서 나 스스로 주인이 되어 힘껏 싸워 볼랍니다.”
이 386네티즌의 염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으로 현실화됐다.‘운동권 대통령’의 탄생은 몇몇 386정치인의 국회 진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사실상 혁명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주류 세력의 인적교체가 범 운동권 중심으로,386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61년 5·16이래 노태우 대통령시기까지 30여년간 육사출신 군부인맥이 권력의 중심을 차지했다. 군인출신 파워 엘리트와 유능하고 잘 훈련된 관료계층이 결합해 이른바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다.
YS시절부터 DJ때까지 10년은 정치권에서 오랜 기간 단련된 민간정치인들이 정권을 이끌었다. 민주화세력이 득세한 기간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신주류 역시 민주화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적으로 그들은 직업적인 민간정치인으로 보기 어렵다.386으로 상징되는 범 운동권 출신의 진보 성향 전문직이거나 국회의원 보좌관, 사업가 등 아마추어 정치세력이다.
DJ-노무현 10년 정권, 혹은 YS시기까지 합쳐 15년 정권이 확립됨으로써, 한국은 좌우의 날개가 균형 잡힌 새가 되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두 바퀴가 이끄는 안정되고 발빠른 수레가 된 것이다.
앞으로 5년 권력을 담당할 세력은 ‘운동권’사람들이다.DJ때 이미 들어갔던 수혈 운동권 출신보다 훨씬 광범위하다.DJ는 운동권을 흡수했지만,‘노짱’은 아예 운동권에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수직적 관계라면 후자는 동지적 개념이다.
지역세력은 과거처럼 기승을 부릴 것 같지는 않다. 양김 시대의 특징적 정치현상인 ‘가신그룹’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수식으로 표현하면,‘노무현 지지세력’=‘DJ세력’+‘범 운동권 세력’-‘가신그룹’-‘지역집착 세력’쯤 되지 않을까.
우선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동심원엔 송기인 신부,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이 있다. 모두 부산출신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상고를 겨우 마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이제 막 배부른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던 노무현을 험난한 재야 운동가, 고집스런 비주류 정치인의 삶으로 안내한 세력은 바로 부산출신인 이들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극한의 위기를 맞았을 때 흉금을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원자핵 같은 존재들이다. 송기인 신부같은 사람은 대놓고 “노무현은 돈을 밝히지 않는데 가족들이 문제다.5년간 가족들을 감방에라도 보내놓으면 좋을텐데”라고 얘기하는 인물이다.
386 측근들은 부산 출신 3인방의 다음 동심원에 위치해 있다. 이광재(국정상황실장)·안희정·서갑원(의전비서관)·천호선(국민참여기획 비서관)씨 등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인사들이다.
이들은 80년대 주사파·전대협 시대의 학생 운동권이다. 노 대통령의 국회의원·정치인 시절 그를 보좌했다. 그들은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시절 생일 선물로 편지를 썼는데,“우리의 도구로서 변함 없이 나아가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적혔다고 한다.이 386 측근들은 ‘보스’에게 ‘도구’가 되길 요구할 만큼 ‘당돌한’측근들이다.
지난 시절 보스한테 정치자금을 받는 대가로 무조건적 충성을 받친 가신들과는 전혀 다르다.오히려 안희정씨 같은 이는 야당시절 노 대통령을 돕기 위해 스스로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 다음 동심원엔 문희상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같은 불우했던 정치인들, 경북대 교수출신인 이정우 정책실장 같은 지방대 출신 학자들이 있다. 이전 정권에서 청와대를 대부분 메웠던 정부 부처 출신 관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내각도 마찬가지다. 정통 외교 관료의 두터운 벽을 뛰어 넘은 학자출신의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해 강금실(40대·여성·민변출신)법무·김두관(군수출신)행자·이창동(영화감독 출신)문화관광 장관은 과거엔 장관 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 인물의 공통점은 ‘이념적 성향’에서의 진보성이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 진보적 성향이 얹혀진 것이다.70년대 이래 학생·노동·문화 운동권과 90년대 이래 여성·시민운동의 중심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다. 대체로 민족문제를 중시하고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외교 행태에 비판적이다. 경제성장 보다 분배적 정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권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노무현 정권 사람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버려야 할 것, 지켜야 할 것, 만들어야 할 것/권력의 속성과 가치>
명실상부한 운동권 정권이 들어섰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386,혹은 운동권 출신의 국가 경영 능력은 실망스러운 쪽에 가깝다. 세대가 다르고 성향과 이념이 다르고 행태가 다른 세력이 집권했다고 해서 권력자체의 속성까지 바꾸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긴 권력의 속성,권력의 마성 앞에선 장사가 없는 법이다.
권력은 스스로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 사람을 챙기려 하며 자기를 변호하려는 속성이 있다. 권력 집단은 집권자의 다른 주변세력들을 제거하려 한다. 권력투쟁은 이래서 생긴다. 대통령은 스스로 이런 경향을 견제하고 주변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조정해야 한다. 필요하면 한쪽 세력을 칠 수도 있어야 한다.
권력은 집권자의 이념과 철학의 실현수단이다. 하지만 권력은 그에 앞서 이념의 전제가 되는 국가·국민의 안녕과 질서와 번영,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는 의무도 지고 있다. 따라서 권력엔 공권력의 권위, 법의 엄격성, 이해조정의 중립성, 집행 체계의 일관성이 내재해 있다. 이게 권력의 가치이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의 보람이다. 권력의 공공성은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계약의 근거이기에 훼손되어선 안될 가장 소중한 가치 중의 하나다.
권력과 싸우는데 익숙했던 운동권이 권력의 속성에 유혹되고, 권력의 존엄한 가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다.
이들이 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넘어야 극복해야 할 몇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본인들이 도덕성과 경영능력에서 흠을 잡히지 않아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기존 정치 엘리트 사회에서 횡행했던 특권과 반칙, 기회주의와 뚜렷이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권위의 거의 유일한 원천은 깨끗함과 도덕성이다. 따라서 노무현의 사람들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 수준은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높다. 이런 환경에서 청와대 보좌진이나 신주류의 일부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르는 사건 등이 발생하면 권위의 근거가 흔들릴 것은 불 보듯 환하다.
노 대통령의 정권은 도덕성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야당과 언론의 혹독한 집중공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도덕성의 실패는 권위의 실패로 연결되고, 이는 운동권 세력의 확산에 제동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있게 되면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있던 운동권 인맥들은 하나둘씩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건평·이기명씨 땅 의혹사건은 노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더구나 의혹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부산파’인 문재인 수석과 ‘386세력’인 안희정씨 사이에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는 시각은, 집권 초기에 그런 시각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노무현 권력의 취약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이 권력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파와 386측근은 노 대통령의 권력을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이다. 이 대목을 정리하고 나서야 노 대통령은 진정한 권력과 권위의 행사자가 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YS·DJ때 보다 나아진 것은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로와 졌고 이념적 지향이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의 국정 경험이 대체로 전무하다는 것은 여간 불안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이 지적돼 왔다.
YS는 국정경험의 취약성을 3당 합당에서 얻은 관료 인재 풀로 보충했고,DJ는 산업화 세력의 주요 축이었던 김종필·박태준씨 등과 공동 정권을 형성함으로써 국정의 안정을 기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정치의 어떤 세력에게도 빚을 지지 않아 독자적인 순혈의 운동권 정권을 구축했다.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 무경험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권력과 정치권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서의 노무현이라는 의식이 선명치 않아 생기는 문제들은 ‘권력의 가치’에 대한 공동체의 믿음을 약화시켰다. 운동권식의 언행과 처신은 권력을 공격할 때는 가치가 있었으나, 권력의 가치를 지켜내야 하는 국가 경영자로선 어울리지 않는다.386 운동권의 권력은 이런 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또 하나 386 운동권의 진보 성향·평등주의적 가치가 8년째 멈춰있는 소득 1만달러 시대를 전진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일본은 1만달러 시대 진입 후 3만달러로 전진하는데 10년(81년-92년)이 걸렸다. 1만달러 시대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경우,‘평등주의 가치의 확산’→이익집단의 격렬한 표출→포퓰리즘 정치→시장경제의 불투명→투자·고용의 저조→저소득→‘실질적인 불평등 심화’라는 모순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점은 구조조정 작업에 나름대로 성공한 DJ정부와 달리 ‘노무현-운동권 정권’이 이념적 순수성을 추구하다 범할 가능성이 있는 경제 실패의 악순환 모델이다.
경제이슈에 실패하면, 정치개혁이나 안보위기 극복, 이상주의적 순수성같은 가치들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선거에서 유권자들한테 외면 받기 십상이라는 것은 국내외 정치의 교훈이다.
여론조사나 선거기록을 유심히 관찰하면,386세대와 비교할 때 인구 분포상 35세 미만을 구성하는 90년대 이후의 입학 학번들은 경제와 고용을 중시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며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0년 내지 15년 지속된 민주화·진보 성향 정권이 이번이 마지막일수 있다는 두려움을 ‘운동권 정권’이 자각하고 경제 이슈에 대비하지 않으면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의 권력의 추는 386세대에서 현재 35세 미만 세대의 ‘397세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첫댓글 에구~~~ 내는 서경석 그래서 코미디언 서경석 인줄 알았당...ㅋㅋㅋ
나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