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 지어다
이것이 네 몸의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3:7-8절)
요즘 뇌 과학이 발달이 되어 사람의 생각에 따라 몸이 좋은 약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기도 하고 독약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베타 엔돌핀이니 노르아드레날린이니 활성산소나 도파민이나 하는
말을 우리가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모든 만물의 에너지와 질량의
총량이 바로 그 말씀(요1:1)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임재하시면
생명을 얻고 평강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아니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탓입니다.
구약은 여호와 곧 ‘나는 나다’ 하고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신약에서는 나는 빛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생수이다 등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잠언은 시편적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행동요령입니다. 자연산 인간들의 교훈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언을 교훈으로 윤리나 도덕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편 전체를 이끌고 있는 1편의 악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 곧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를 테면 욥이나 세 친구들과 같은 급으로 율법 아래에 있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서로 정죄를 하고 변명을 하는 일뿐 살리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아담 안에서 선악과의 독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선과 악의 기준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그 부활에 연합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사실을 모릅니다(엡2:6)
이와 같은 사실이 축도에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인데(엡2:8) 은혜라는 말을
아무데나 사용하다가 심미적으로 기쁘거나 감동이 되면 은혜라고 말하게 됩니다.
물론 넋을 놓게 하는 설교나 강의를 듣는 동안 뇌가 긍정적인 활동을 하므로 몸에
이로운 물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의 역사하심이 아닙니다.
그 순간뿐이므로 흡사 모르핀 한 대 맞는 효과 같아서 은혜를 받자하면서 길들여지고
맙니다. 심지어 목사들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자고 말을
하는 걸 봅니다. 과연 은혜를 누가 어떻게 나누어 줄 수 있는지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오늘 말씀 그대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그 자체가 인간의 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악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선을 다 끌어 모아도 참깨 씨 하나 못 만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외면하는 게 왜 악이냐
하면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망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롬8:6)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면 마음으로는 훤한데 몸이 필연적으로 따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차라리 오감대로 살아가는 육신의 사람들은 율법에 길들여진 죄책감은 없지만 욥과
같이 법정신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은 ‘말씀대로’ 라는 말을 들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따라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리스도와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어 성찬의 실재를 맛보는 그리스도인은 주를
경외하라 하면 얼른 알아듣고 무릎을 꿇고 ‘내 주를 따라 올라가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 앞으로 나아가며 주를 앙망하며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이를 두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난다 하며 영의 생각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롬8:6)
그 때에 생명과 평강이 우리 속에 역사하므로 뇌를 거쳐 온 몸에 퍼지는 걸 자각합니다.
몸이 좋은 약을 만드는 제약공장이 되어 심령으로 병을 제압해 가는 겁니다(잠18:14)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왜 구원을 받아야 하며 그 구원을 받는 과정이 무엇인가
그리고 구원 받은 결과가 무엇인가를 추적해서 그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롬5:1-2)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익숙하게 되어 죄에 대해서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로 계산함이 확고해 져야 합니다(롬6:11)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통해 자신과 그리스도를 맞바꾸는 존재교환에 능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은 보편적인 언어로 우리가 남을 가르치고 토론도 할 수 있지만 영성은
이와 같은 내면적인 비밀로 자신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생명의 능력이므로 입으로는 이 신비로움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삶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구원의 경지에
이르느냐 그 방법을 성경과 성령의 뜻을 따라 설명하지만 그렇지 않는 세상에는
소금과 빛이 되어 말이 아닌 몸짓으로 살아지는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화와 영광을
옷 입어야만 하는 겁니다(욥40:10) 만일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애프터서비스를
받으러 가는 것이 일상이고 지금도 집에 갖가지 약이 가득 쌓여 있다면 그 길들여진 회개를
하라는 소리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아담 안에 있던 우리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신기한 능력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의롭게 하셔서 그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므로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받는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으신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라가는 세례(침례)로 참 회개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주의 보좌를 향해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므로 실시간으로 구원을 받아 혼에서
영으로 다시 영에서 혼을 거쳐 뇌를 통해 양약이 만들어져 관절과 골수로 전달이
되는 양약공장이 되어 다시는 병원에서 몸의 애프터서비스를 받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