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저서 '사진의 이해'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진의 본질이 기록성이라고 하고있습니다.
기록성이란 사진이 현실의 한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로서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즉, 사진은 특정 순간을 포착하여 시간 속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듯 보이지만, 사진가의 관점과 의도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현실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특정 요소를 선택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버거는 사진이 단순한 기록 매체를 넘어서, 창의적 표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관찰자는 사진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따라서 사진가는 단순히 관찰자가 아니라,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또한 사진이 권력 관계를 드러내거나, 사회적 불평등을 고발하는 정치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상업적 성질을 띈다고도 주장합니다.
따라서 버거는 사진의 비판적 감상의 필요성 또한 주장했는데,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서,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사진이 찍힌 배경, 사진가의 의도, 사진이 발표된 시기와 장소 등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대구사진비엔날레를 다녀와서 감상한 사진들을 보면 조명 장치를 이용하여 나무 뒤의 그린자나 가상의 물결을 표현하기도 하고, 단순히 꽃이나 돌 등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찍은 것이다고 생각하지만, 촬영자는 이걸 단순히 관찰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찍은 것이 아니라 이 사진을 통해 관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순희의 <생명의나무 계림 |||>을 보면 이순희 작가가 오랫동안 나무의 생명 순환성에 대해 탐색해와서 생명체로서의 나무와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시간을 통해 자연의 순리를 작가의 내면으로 체화하고자 하였고 역사적 장소에 자리하며 일견 사람의 모습과 닮은 나무의 형상을 움직이는 기의 형상, '영靈'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그것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음을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조성연 작가의 <마른 가지, 실, 마치 거미줄처럼> 에서는 식물의 발아·성장·소멸 과정을 주목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질서를 깨닫고 삶과 예술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지속하면서 섬세한 관찰과 사유를 바탕으로 사물에 내재하는 시간의 흔적과 순환하는 생명에 대한 숭고함, 아름다움을 담아왔었습니다. 〈우연한 때에 예기치 않았던〉의 연작을 통해 작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행위와 사물을 조합하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 긴장감과 리듬감을 보여주는 조형미를 만들어내고 있고요,
또한 오늘 관람했던 섹션 중 섹션 3에서 기슬기와 안준은 인공지능(AI)과 포스트 인터넷 시대에 사진예술의 생산과 수용 방식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탐색했었는데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 (프롬프트)를 어떻게 사진 이미지로 구현하는지를 탐구하고 있는데 2020년대 들어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되는 환경에서 앞으로 사진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필요성이 있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