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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 시 여성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건달바가 아니라 정자라는 유전자이다. p.140
2,000년 전 일부 불교 승려들은 건달바(일종의 영혼)가 女體(여체)에 들어와야 임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21세기의 인간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다, 수태 순간에 여체(난자)에 들어가는 것은 건달바가 아니라 정자(精子)라는 것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정자와 난자의 조우(遭遇) 순간을 보라. 거대한 공같이 생긴 난자를, 몹시 길고 가느다란 꼬리를 단 조그만 올챙이같이 생긴, 정자가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라. 이 어마어마한 순간에 왜 건달바라는 얼토당토않은 미개한 시대의 발명품이 끼어들어 '순수한 신비'를 때려 부수고 오염시키고 어지럽히는가.
과거에 서양인들은 사람 모양으로 생긴 조그만 영혼이 정자 안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림도 남아있다. 이 작은 인간이 여체 안에 들어가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갓난아기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단세포 수정란에서 출발하여 세포분열을 거듭해서 100조 개 세포 무리인 인간이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인간은 수태 순간부터, 몸집은 극히 작을지 몰라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2억 개나 되는 그 수많은 정자마다 각각 하나씩 영혼이 들어 있다는 말인가? 아마 옛날 사람들은, 정액(精液)이 들어가야 임신이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자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영혼은 2억 개 정자 중에 특정한 하나에만 존재하고, 그놈만이 난자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2억 개 정자의 난자를 향한 달리기 시합(다카르 경주)은 처음부터 조작된 경기이다. 나머지 정자들의 경주는 다 쓸모없는 들러리 경주이다. 설마 그들이 페이스 메이커일 리는 없으리라. 아니면 뒤늦게 자궁에 진입하려는 다른 수컷 정자들의 전진을 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초기 기독교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55년경~230년경) 는 여성이 구강성교 중에 정액을 삼키면 식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아마 이분도 정액 속에 들어있는 '사람 모양으로 생긴 조그만 영혼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잠깐만! 이란성 쌍둥이는 영혼을 가진 정자가 두 개나 된다는 말이 아닌가? 정말 괴이한 일이다. 영혼 이론은 정말 문제가 많은 이론이다. 난자는 하나만 배출되어 있는데 영혼을 가진 정자가 두 개라면 둘 사이에 영혼 터지는 싸움이 일어나겠다. 가만! 그 경우는 準(준) 일란성 쌍둥이에서 약속한 듯이 맨 앞으로 나와 사이좋게, 더 빠르지도 더 늦지도 않게 보조를 맞추어, 같이 행진해서 동시에 같은 난자에 진입해야 한다. 다른 난자에는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난자는, 정자가 한 마리라도 난자 안으로 들어오면, 문을 걸어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혼 이론은 괴이한 이론이 아닐 수 없다. 이 이론의 결정적인 오류는, (일부) 정자에는 영혼이 있다고 하면서도, 난자에는 영혼이 없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여기서 심각한 두 개의 불합리한 점이 발생한다. 첫째로 여성 차별주의적인 이론이며, 둘째로 여성도 태아 DNA의 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왜 2억 마리 들러리 정자들에도 DNA가 있다는 말인가? 2억 개의 여분의 DNA라니, 이 무슨 (조물주의) 어리석은 설계란 말인가? 만약에 영혼이 정자를 타고, 난자로 달려가다 정자가 고장이 나는 경우 갈아타려고 여러 마리 정자를 준비했다손 치더라도, 2억 마리는 너무 과하지 않은가? 몸집 비율을 고려해도, 정자보다도 어마어마하게 더 먼 거리를 달리던 몽고 기병들이 몽고 초원에서 유럽의 반까지 2주 만에 달려가는 데도 각자 네 마리 정도의 말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정자는 이동 효율이 몽고 기병의 500만 분의 1이라니, 어마어마하게 비효율적인 정자이다!
앞에서 소개한 정자로 에워싸인 난자(卵子) 사진을 보시라. 수많은 정자가 난자로 진입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한두 마리만 영혼이 있다고 하는 것보다는, 모두 예외 없이 영혼이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난자가, 정자 한 마리가 난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껍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다른 정자들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DNA를 가졌다고 해서 영혼이 있다면, 난자도 체세포도 모두 영혼이 있어야 한다. 한 사람 몸의 100조 개의 체세포에 존재하는 100조 명의 영혼! 한 영혼 안에 '바글바글' 거주하는 100조 명의 영혼들! 정말 기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없이 세포가 탄생하고 죽으니, 그에 따라 세포들의 영혼들도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더욱더 기괴한 현상이다.
이리저리 아무리 따져봐도 영혼이론은 허점투성이이다. 그냥 버리는 게 낫다. 그래도 계속 쓰고 싶으면, 고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제대로 된 것을 새로 사는 것이 낫다. 불교 제품을 사시라. 수태 시 영혼이 들어온다는 불교이론이 그나마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다.
힌두교에 따르면 당신은 2억 개가 넘는 영혼을 지니고 있다. p.144
매우 놀랍게도 힌두교에 의하면 2억 개 모든 정자가 각기 영혼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사로서는 한때, 수십 년 전 뉴에이지 시대(20세기 말엽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인 운동 및 사회활동, 문화 활동, 뉴에이지 음악 등을 종합해서 부르는 단어이다. 기존의 사회, 문화, 종교에서 영적 공허를 느낀 사람들이 이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에, 미국에서 대단히 유행한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운동(1966년 미국에서 A.C. 박티베단타(A. C. Bhaktivedanta Swami Prabhupada)가 시작한 종교 운동. 옛 이름은 '크리슈나 의식을 위한 국제협회’의 교주 프라부파다(Srila Prahupada)가 있다.
힌두교는 모든 것에 아트만(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난자의 영혼과 정자의 영혼이 합쳐져서 (수정란이라는) 하나의 영혼을 만들어낸다. 이 이론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 정자의 영혼 유무에서, 윤회론을 주장하는 불교와 힌두교 두 종교가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통상, 불교는 정자에 영혼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는 정자를, 스스로 움직이는 백혈구와 같은, 일종의 생물학적 기계(bio-machine)로 보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에 영혼(아트만, 我)이 있다는 힌두교와, 그 어디에도 영혼이 없다는 불교, 두 종교는 극과 극이다!
2,000년 전, 그때는 그 누구도 정자와 난자의 개념이나 존재를 몰랐다. 그래서 건달바나 중음신(中陰身)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수태의 순간에 몸에 들어가는 영혼. 정보를 소지한 존재. 과거의 업과 과거에 대한 기억을 짊어지고 옮기는 존재, 피부색, 광대뼈 유무, 파상모, 직모, 길고 짧은 하체와 사지, 크고 작은 골반, 째진 눈, 동그란 눈, 좁고 넓은 미간, 비굴함, 용감함, 너그러움, 총명함, 인자함, 도벽, 폭력성, 우울증, 조증, 언어능력, 음악성, 미술성, 통찰력, 공간 감각, 산술 능력, 추리력, 분석력, 논리적 사유력 등 각자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과 성격을 담지(擔持)해서 새 몸으로 옮겨주는 존재이다.
정보를 나르는 것은 건달바나 중음신이 아니라 유전자이다. p.145
그런데 현대과학은, 다윈이 예측한 대로, 그런 존재를 발견했다. 유전자이다! 그 기하학적인 모양과 화학적 구조와 작동 방식도 밝혀졌다. 모양은 이중나선이고, 구조는 네 종류의 염기인 AㆍCㆍGㆍT (아데닌ㆍ시토닌ㆍ구아닌ㆍ티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동 방식은 자기 복제이다. 마침내, 그런 정보의 담지(擔持)자가 발견되었으므로, 더 이상 건달바나 중음신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정자는 정보를 가득 담은 생체 usb이다! 게다가 고객을 향해 스스로 움직여 정보를 배달하니 서비스 만점이다. 주문을 받은 적도 없는 2억 마리의 올챙이들이, 고객의 필요 사항을 미리 파악해서, 무한 경쟁을 벌인다. 교미 후 더 큰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사마귀처럼, 정자는 거대한 난자와 교미 후 유전정보를 전해주고는 난자 속에서 해체된다. 불쌍한 수컷들은 올챙이 시절이건 개구리 시절이건 죽도록 경쟁해야 하는 운명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왜 그리되는지는 몰랐다. 식물의 각기 다른 모습은 유전자 때문이지 영혼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에 의하면 식물은 식(識)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물은 의식(意識)이 있다. 뇌(腦)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뇌변연계(邊緣系)에 손상이 오면 감정이 없어지며, 해마(海馬, hippocampus)에 손상이 오면, 기억하지 못한다. 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하고,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적인 능력 역시 신체 기관(뇌)의 작용이며 영혼의 작용이 아니다.
의식이 있는 동물을 잡아먹는 의식이 없는 식물을 보라.
진공묘유(眞空妙有)와 팔불중도(八不中道)의 근거는 유전자이다. p.146
★眞空妙有 : 참된 空이 별도로 분리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존재 양상, 곧 다양한 因緣의 조합인 緣起라는 불교 교리.
★八不中道 : 生·滅ㆍ斷·常ㆍ一·異ㆍ出·來 앞에 不을 붙여 中觀 思想을 정의하는 불교 용어.
만약 영혼의 작용이라 고집한다면, 식충식물인 파리지옥(Venus flytrap)의 잎이나 통발(bladderwort)의 오므림 역시 '영혼의 작용'이라고 억지를 부려야 한다. 생물계에 관한 한, 용수의 八不中道는, 진단은 옳았으나 그 원인은 모른 것이다. 팔불중도를 성립시키는 근거는 다름 아닌 유전자이다. 上記 두 식물은 (불교와 기독교에 의하면) 영혼이 없어도 지성적으로 작동하는 경이로운 생물의 예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 위대한 스승 '자연' 앞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言行을 삼가야 한다. 특히, 뭐든지 다 안다고 교만하게 큰소리치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망하는 수가 있다. 뭐든지 다 아는 존재(신이나 초인)를 잘 안다고 큰소리쳐도 안 된다. 이런 말은, 코흘리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 기죽이려고 하는 "우리 아버지와 형은 엄청나게 힘이 세고, 모르는 게 없다"라는 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유치한 말이기 때문이다.
★ 통발 : 통발은 수중식물이다. 통발은 식충식물로서 稚魚(치어)나 올챙이를 잡아먹는다. 둥글게 보이는 부분이 동물을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 잡는 도구인 통발처럼 생겼다. 이 통발은 먹이가 들어오면 순식간(0.01초)에 닫힌다. 이 식물은 통발 안에 있는 물을, 끊임없이 퍼냄으로써 통발 내부를 眞空으로 유지한다. 먹이가 통발에 달린 털을 자극하면 통발 입구가 열리면서 진공의 힘으로 통발 주위의 물이 통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이때 먹이도 같이 휩쓸려 들어간다. 그러면 문을 닫고 소화액을 분비해서 잡아먹는다. 물리학적 원리를 이용하는 대단히 지능적인 식물이다. 그런데 불교에 따르면 이 식물은 識-의식-이 없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므로 자연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지만, 통발은 적어도 수천 년 동안 말없이 진공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불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더 똑똑한 이 식물은 영혼이 없다!
★ 파리지옥 : 곤충이나 거미를 잡아먹는다. 곤충이 잎 표면의 돌기를 20초 내로 두 번 건드리면 두 번째로 건드릴 때 잎이 닫힌다. 닫히는 속도는 0.1초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자극 사이의 시간차를, 움직이는 곤충이 발생시키는 것으로 판단하는 메커니즘이다. 놀랍게도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할 줄 알아서, 빗방울 같은 무생물의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생물 간의 정신적인 능력의 차이는 유전자 때문이다, p.147
침팬지나 돌고래나 개가 인간과 같은 지능ㆍ사유ㆍ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다. 영혼 때문이 아니다. 영혼은 존재한다 해도 영혼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능력을, 윤회를 통해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인 능력을, 개로 환생하면서 잃어버렸는데,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면 갑자기 그 능력이 회복되는가? 처음으로 인간으로 환생한 개라면, 개로 사는 동안에 새로 획득한 정신적인 고등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인간이 지닌 정신적인 고등능력이 생겨나는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 능력을 제한하고 가둬놓는 것인가? 육체는 정신(영혼)의 감옥이란 말인가? 개라는 육체에 갇힌 테르툴리아누스(기독교의 교부이자, 평신도 신학자이다.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이로 알려져 있다)의 영혼! 필시, 그는 연기법에 무지한 무명업보(無明業報)로 지금까지 40번이나 줄곧 개로 태어나고 있으리라.
신이나 마음처럼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p.148
사물은 그대로이건만, 현미경의 배율에 따라, 그리고 현미경의 종류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이 점에서 현미경이란 측정 도구에 갇힌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물과 현상은 우리 인식능력ㆍ수단에 갇힌다. 아마 이런 식으로 영혼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 본래 가진 무한한 능력을 회복하는 것뿐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메바도 원생동물도 무한한 능력을 지닌 영혼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임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이런 類(류)의 이론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칼 포퍼가 말했듯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을 보고 제기한 '어떻게 그런 현상이 가능하냐?'라는 물음에, '신이 했다. 즉 신이 그 현상이 일어나게 조처했다.'라는 답은 실질적으로 아무 답도 주지 못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발달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농업기술 혁명이나 과학기술 개발이나 정치제도ㆍ경제 제도 발전이나 의학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신이 했다.'하고 '무한한 신비(감)'에 빠져들면 그만이다. 그런 신비는 일종의 정신병(정신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중학교에서 수학 시험 문제를 받은 중학생이 문제를 푸는 대신에 '심오한 수학과 그런 오묘한 수학 시험 문제'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 신에 관한 깊고 깊은 신비감에 빠져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시험시간 내내! 그런 학생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종교적 신비주의자들은 유치원 입학부터 대학 졸업까지 그리하는 이들이다. 심하면 죽을 때까지 그리한다. 외부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고 종교적 엑스터시에 빠져 산다. 위험에 처한 타조가 머리를 흙에 처박고, 위험을 못 느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과학의 발달로 그 존재가 밝혀졌다. 몸과 마음의 특징을 전달해 만들어주는 존재가 마침내 만천하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난자와 정자라는 성세포에, 2m 길이로 접혀 들어앉아 있는 이중나선 DNA이다. (2m라는 길이는 세포 크기에 비해서 엄청나게 긴 길이다. DNA의 길이는 세포 지름의 100만 배 정도나 된다!)
그러므로 (만약 건달바가 존재한다면) 건달바는 둘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육체적인 특징이 유전자에 의해서, 즉 난자와 정자 양쪽의 유전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정신적인 특성 역시 난자와 정자 양쪽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인간에게 영혼, 즉 건달바가, 즉 중음신이 있다고 인정해도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영혼, 즉 건달바는 '부의 영혼'과 '모의 영혼'의 합이다! 즉 수태 시 두 개의 건달바가 합체를 해서, 하나의 건달바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쌍둥이는 몸도 마음도 서로 비슷하다 p.150
유전자 기능의 확인에 있어서, 일란성 쌍둥이의 예가 결정적이다. 이들은 육체적인 생김새(외모와 내부장기)가 같을 뿐만 아니라, 성격 취향 생각까지 매우 유사하다. 출생할 때 헤어져서 각기 다른 가정에서 양육되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경우에도 동일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오랫동안의 공간적ㆍ물리적 격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비슷한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배우자나 직업이나 인생경로까지 비슷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건달바나 영혼이나 중음신 이론이 성립하려면, 아주 비슷한 업을 가진 놈들이 복수로, 수태될 때 수정란으로 들어와야 한다. 다분히 억지스럽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문화 유전자도 있으므로 일란성 쌍둥이가 정확히 같은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체 유전자도 그 발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이 점에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은 참이 아니다. 즉, 생명은 필연과 우연의 협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은 유전자와 (시공간적인) 환경의 협주이다. 정보와 환경의 어우러짐이다. 불교적 표현으로는 생명은 정보와 환경의 연기(緣起)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돌연변이를 한다. 그래서 공ㆍ가ㆍ중 삼제 (空ㆍ假ㆍ中 三諦-세 가지 진리)가 성립한다. 유전자의 변이는 空이고, 유전자의 존재는 假이고, 생명체의 진화는 中이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무언가가 고정불변한 상태로 유지되지 않으므로 '空'이고, 무언가 있으므로 '假'이며, 결국 진화(進化)라는 '假'도 아니고 空도 아닌 생명의 존재 양태'는 '中'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유전자의 발현과 진화는, 앞서 언급했듯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연기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생명과 환경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즉 不一不二이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나와 우주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장자의 거대한 세계관을 상징하는 붕새는, 바로 이 점에서 호소력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며, 우주와 동일한 화학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이자 우주이다.)
출처 : 강병균 교수 역저. 어느 수학자가 본 기이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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