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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김 성 한
한천옥(韓天玉)은 서울 거리를 활보하였다.
자기를 보고 양갈보라 손가락질하는 위인들이 도리어 고리타분했다.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결코 먹을 것이 없어 며칠을 굶다가 할수 할수 없이 검둥이의 미끼가 됐다는 따위 고리타분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아버지는 뚜렷한 무역회사 사장이요, 삼촌은 무슨 국장이요, 오빠들도 마카오 양복을 못 입읕 주제는 아니다. 더구나 자기는 우수한 성적으로 여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도 손을 꼽는 대학의 학생이다. 천하 박색이라 50 노처녀가 될까 미리 두려워 날뛰는 것도 물론 아니다. 천명을 넘는 여학교에서는 미인이라는 평이 자자했고 이름도 듣지 못한 남자들의 간절한 편지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어두운 거리를 걸을 때 귓속말같이 ‘천옥씨’ 하고 속삭이듯 꽁무니를 쫓아오는 낯선 친구도 결코 적지 않았다. 애인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일찌기 여학교 2학년 때 첫사랑을 시작한 이래 대학 2학년에 이르기까지 7년 동안에 남자를 여섯 번 바꿨다. 그러면 무엇이 부족해서 이 길에 들어섰는가?
일언이폐지해서 ‘고리타분’이라는 것이 유일충전(唯一充全)의 이유였다. 한국 남자들은 고리타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엎어지면 코가 닿을 손바탁만한 땅덩어리 위에서 고린내 나는 양말을 구멍이 열 개나 뚫어질 때까지 벗을 줄 모르고 굼벵이같이 꿈지락거리는 그네들에게 재색이 겸비한 한천옥을 내맡긴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었다. 자의식이 머리를 쳐들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이 관념은 마지막 애인 걍철수(姜哲洙)를 버릴 무렵에는 그 절정에 달하였다.
1·4후퇴로 부산에 피난한 때였다.
제2국민병 때문에 한강을 넘을 수 없다는 철수를 서울에 팽개치고 단신 부산으로 내려왔다. 한강을 넘을 때, 천옥은 이미 철수에 대해서 정이 떨어졌다.
―사내 자식이 요런 것두 제손으루 어쩌지 못하다니, 불출이지, 불출이야. 사람이 우굴우굴하는 부산에서 천옥은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다방치고 안 들어간 데 없고, 영화라면 안 본 것이 없었다. 하루는 광복동을 걷고 있노라니까 못 온다던 철수가 꾀죄죄한 옷을 입고 저쪽에서 이리저리 곁눈을 살피면서 오다가 천옥을 보자마자 사람을 막 헤치면서 달려왔다. 눈에는 눈물까지 핑 돌았다. 그러나 천옥은 마음 속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반가운 감정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고, 귀찮고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못 온다더니만……?”
“군대 있는 친굴 우연히 만나서 가까스루 왔죠.”
“가까스루?”
철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천옥을 들여다보다가,
“천옥씰 찾느라구 이렇게 날마다 헤매고 있는 판인데.”
하였다.
천옥은 철수를 보면 볼수록 데데했다. 때묻은 옷이 비는 몇번이나 맞았는지 쪼글쪼글하고 텁석한 머리와 거머직직한 수염은 흡사 거지였다. 이 따위를 데리고 다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어도 못할 노릇이다. 큰길을 피해서 골목길에 마주선 채 빨리 헤어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부티 어떡힐라우?”
“글쎄…… 취직은 해야겠는데 이 판에 취직이 될 리두 없구. CAC에 있는 친구한테 부탁두 하구, 수차 가 보기두 했지만 지금 같아서는 막연한데.”
천옥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하늘만 쳐다보면서 소위 애인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 자를 떼어팽개칠 궁리를 하였다. 시굴띠기 처녀 총각과 달라서 덮어놓고 싫어졌으니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싸울 껀덕지를 만들어야겠다. 껀덕지만 생기면 불이 나게 싸워서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야지.
“참 나 요새 좀 궁헌데 우선 삼십만 원만 만들어 주세요, 네?”
“삼십만 원! 지금 내 주제에 어디서 삼십만 원이 나오겠우?”
“아이 고만 돈두 못 만들어요? 그럼 좋아요.”
천옥은 새침하고 팽 돌아섰다. 철수는 앞을 막아서면서 붙잡았다.
“하여튼 만들어 보지요, 지금 어디 있죠?”
“어디라구 일정한 데가 있나요. 동무네 집을 이리저리 다니죠.”
“그럼 어떻게 연락할까요?”
“낼 세시에 시청 앞에 오세요. 시간 어기지 말구. 그리구 옷두 좀 갈아입구요.”
말을 마치자 천옥은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천옥은 피할까말까 하다가 타다 남은 동정의 찌꺼기가 동해서 세시 쯤, 지나가는 김에 시청 앞에 눈을 돌렸다. 외투두 얻어입지 못한 철수가 여전히 꾀죄죄한 꼬락서니로 층층대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렇게 늦게 오시우? 난 세시 이십분 전부터 기다렸는데.”
“좀 볼일이 있어서요. 참 돈은 마련됐나요? 나 좀 급한데.”
외투 호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천옥은 말뚱말뚱 철수를 쳐다보았다.
“며칠 있으면 됨 직두 한데…… 이리저리 다녀보았으나 모두 피난민이라 뜻대루 안 되누먼. 가지구 온 책가지를 두루 정리해서 가까스루 오만 원 만들었는데 급한 대루 우선 이거락두 쓰시우.”
철수가 안호주머니에서 언 손으로 꺼내는 것을 그는 거들떠보지드 않았다. 또 ‘가까스루’야? 데데하다.
“일 없어요, 걸 가지군 턱두 없어요.”
그는 톡 쏘았다. 철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돈을 도로 집어넣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
“어떻게 됐단 말이야?”
“이게 어느때 라구……”
“흥 때가 안 돼서 큰 탈 났군. 고리타분해요!”
“고리타분?”
철수는 상을 찡그렸다.
“그래요, 고리타분해요!”
철수는 그를 노려보다가 온 낯이 새빨개지면서 그의 얼굴에 가래를 뱉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천옥은 어쩔 줄을 모르다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나서 이빨을 악물고 철수를 노려보았다. 철수는 다시 입속의 가래침을 모조리 모아 힘껏 그의 얼굴에 내뱉어 버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영도’ 쪽으로 가버렸다.
아버지도 서울서 회사 일을 정리해 가지고 내려와서 대신동에 큰 집을 샀다. 며칠 동안은 자기 방을 꾸미느라고 물건도 사들이고 단장도 하였으나 그것 이 끝나니 할일이 없어졌다. 천옥은 다시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광복동을 지나다가 여학교 단짝이던 옥남이를 만났다. 원체 집이 가난해서 납부금 말썽만 나면 틀림없이 눈물을 짜면서 쫓겨가던 그가 희한한 옷차림으로 미국 사람과 나란히 걸어왔다. 천옥을 보자 난데없이 손을 불쑥 내밀면서 영어로,
“하우 두 유 두우?”
하였다. 시대의 첨단을 걷노라고 자신만만하던 그도 이 눈부신 변화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마나?”
한마디 감탄사를 내친 다음에는 내민 손을 잡은 채 다음 구를 잇지 못하다가,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안 해도 다 아논 질문을 해 버렸다. 옥남이는 코쟁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마이 허 ―트 (애인이야).”
했다. 영어도 유창하거니와 몸을 다루는 폼이 아주 돼먹었다. 이 서슴지 않는 대답에 그는 또 말문이 막혔다. 의미 없는 웃음을 띠우고 서 있노라니까 옥남이는 두 손을 헤벌리고 소개를 시작하였다.
“디어, 마이 클래쓰메이트 미스 한(여보오 동창생 미스 한이야).”
“오 하우 두 유 두우? 아임 글랫 투 노우 유(참 뱐갑습니다).”
하면서 노랑 털이 담뿍 난 손을 내미는 바람에 천옥의 손은 이 세상에 나서 치음으로 양인의 손에 쥐여 보았다. 그것은 어떠한 한국 남자의 손보다도 큼직하고 힘차다고 생각했다.
“옥남아 너 그래 지금 어딨니?”
“쌉 아메리칸 트레이딩 캄파니 (어떤 미국 무역회사에 있어).”
우리말로 물어도 영어로 대답했다. 학교 다닐 땐 그다지 신통하지 못하던 그의 영어가 혓바닥을 꼬부리는 폼이 본바닥 미국 사람의 발음 같다. 천옥은 어딘지 모르게 열등감을 느꼈다. 옥남이는 미인(美人)의 팔뚝을 껴안다시피 하면서 또 지껄였다.
“우이 아― 리 ― 빙 포어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쑈 ― 틀리(우리 곧 미국으루 떠나).”
하면서 놈과 년이 맞붙은 채 발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얼마쯤 가다가 옥남이는 돌아서서 ,
“빠이 빠이.” 하고 손을 흔들었다.
천옥은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네 발의 걸음걸이, 값진 옷차림, 유창한 영어 ㅡ 어느 모로 보나 그럴듯하다. 곧 미국으루 떠난다―그것은 더구나 근사했다.
돌아서서 오는 길에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더러운 년, 이름이 좋아 미국 회산가? 기껏해야 양갈보지.
사회의 관례에 따라 이렇게 비난함으로써 자위하려 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속이 시원하지 않다. 입으로 비난하면 할수록 마음 속에서는 그들의 근사함을 찬양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드러누운 후에도 혼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어느 모로 보나 자기만 못해야 할 옥남이가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근사했다. 더구나 어깨를 걸고 가는 미인 남자는 코가 우똑하고 하야말쑥한 것이 한국 남자와 댈 것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그는 키가 후리후리 크고 예쁘장하게 생긴 양인을 가슴에 그리기 시작했다.
―코는 알맞게 크고 입은 그다지 크지 않고·…·대머린 싫어, ……양복은 곤색이 근사해, 머리칼은 부론즈―길마닥에서도 코쟁이를 만나기만 하면 유심히 뜯어 보았다.
어느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서울 가논 증명 맡으러 CAC에 들어가다가 문간에서 어떤 남자와 부딪쳤다. 쳐다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옥남이 하고 몇 달 전에 나란히 걸어가던 바로 그자였다. ‘아임 쏘리’ 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그냥 나가 버렸다.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점심 시간이니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삼십분이나 기다린 뒤에야 직원이 하나 둘 들어왔다. 맨 나중에 미인 남자도 들어와서 윗목 책상에 앉았다. 천옥은 가슴이 떨렸다. 그는 애인을 여섯 번이나 바꿔치던 감회가 되살아났다. 낡은 것을 팽개치는 맛도 어지간하거니와 새로 맞이할 때의 감격이란 이만지 만한 것이 아니었다.
가슴은 떨지 말려고 해도 지절로 떨리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과거의 그 어느때보다도 가슴이 떨렸다. 이렇다 할 말을 한 것도 아니요,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았건만 가슴의 고동은 벅찬 바가 있었다. 이것은 결코 심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진정시켜 가지고 계원 앞에 가서 서류를 내놓았다.
“도강증명? 이건 안 됩니다.”
하고 서류를 밀어 버리고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왜 안 되나요?”.
“민간인은 안 돼요, 명령입니다.” 어째볼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어려운 일만 있으면 언제나 그를 시켰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열에 아흡은 성공해 가지고 돌아와서 어깨를 으쓱했던 것이다. 관청이건 은행이건 그가 가기만 하면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드물었다. 한번 웃고 몸을 비스듬히 비틀면 만사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그는 미소의 가치를 자신하고 있었다. 계원한테 바싹 다가가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 네?”
한번 쳐다보고 계원은 단박 누그러져 서류를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글쎄올시다. ……저기 앉은 저 미인헌테 직접 한번 말씀해 보시죠. 우리가 가지구 갔댔자 퇴짜맞는 건 빤하니깐요. 되건 안 되건 해보시오.”
했다.
서류를 손에 든 천옥은 가슴이 또 떨리기 시작했다. 미인 옆에 간 때는 떨리는 도를 넘어 울렁거렸다. 온 낮이 새빨개지면서 그의 책상에 서류를 조용히 놓은 채 아무말도 못하였다.
타이프를 치고 있던 미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곁눈으로 한번 서류를 힐끗 보고는 ‘노우’ 하고 밀어 버리고 다시 타이프를 쳤다. 천옥은 어쩔 줄을 모르고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다시 집었다. 영어나 능통하면 아양이나 떨어보겠지만 토끼꼬리만한 자기 영어로는 어림도 없다. 가슴이 더욱 울령거렸다. 무어라고든 해야겠는데……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고 있는데 미인이 얼굴을 들었다. 천옥은 온몸이 화끈했다.
“오!”
하면서 미인은 기억을 더듬는 눈치였다.
“미스 김옥남.”
하고 천옥은 그의 추억을 도왔다.
“오―아이 씨, 아이 씨 (알았어 알았어).”
하면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고 의자를 권했다.
미인은 그 자리에서 싸인을 하고 나서 담배를 붙여물고 얘기를 꺼냈다.
“유―미쓰 리 오어 미쓰…….”
“한.”
“오―미쓰 한.”
하고 원래 잘 아는 이름을 깜빡 잊었다는 표정이었다. 천옥은 아는 범위 내의 단어를 줏어모아 가지고 되건말건 진땀읕 흘리면서 의사를 통했다.
“요새 옥남이는 어딨는가요? ”
“몰라요. 미스 한을 만난 얼마 후부터 통 보지 못했읍니다.”
“그럼 미국 간 모양이군요.”
“미국?”
하면서 미인은 입을 삐쭉하고 어깨를 미국식으로 쳐들었다 내렸다. 갔다는 소린지 안 갔다는 소린지는 몰라도 하여튼 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천옥은 일종 쾌감을 느꼈다. 남자는 천옥읕 바라보면서 연방 미소를 띠웠다. 그 생김생김은 전에 보던 때보다도 더욱 매혹적이었다.
“여긴 일이 많은 데 미쓰 한 도와주실 수 없읍니까?”
이것은 기다렸던 말이다. 안 나오면 청을 드릴까말까 하던 바로 그 말이었다.
“글쎄요. 도와드리군 싶지만 영어두 시원치 않구 타이프두 서툰데.”
“괜찮아요. 미쓰 한은 곧 잘하게 될 거야. 오우케이?”
“예에쓰.”
남자는 악수를 청하였다. 천옥은 매우 기뻤다. 승리감에 가슴은 다시 뛰놀았다. 생각하면 철수는 못난이 중에서도 으뜸가논 못난이다. 발바닥이 닳도록 다니고 애걸복걸해도 요따위 취직 하나 못하다니. 자기는 몇 분 사이에 해제끼는 취직을. 더구나 해달라는 청을 한마디 드린 것도 아닌데 모셔 가다시피 하잖았나…… 그것도 그렇지만 옥남이란 년 꼴 좋다. 그 주제가 미국 간다구 뻑시긴 또 육실허게. 못났으면 고스란히 틀어박혀 있을 것 이지 ‘마이 허―트’구 어찌구, 메스꺼워서 나 참…….
개선장군치럼 의기 양양해서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부터 그는 신바람이 나서 출근하였다.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에 타이프를 몇 장 찍으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서툴러서 오자 투성이었으나 찍어만 놓으면 칭찬이 자자했다. 무엇이든 해만 놓으면 오리발을 그려도 ‘베리 나이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봉급 봉투를 받아들기만 하면 따로 불러다가 코미손을 주는 것이었다. 미쓰 한은 무엇이든지 잘하니까 ― 퇴근만 하면 으레 다방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양정식을 먹고 가끔 땐스하러 갔다. 자기는 레이디(귀부인)요 코쟁이는 나이트(기사)였다. 숨가쁜 세상에서 천옥만은 광활한 숨을 쉬고 청춘을 혼자 구가하였다.
진해에 벗꽃이 만발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코쟁이는 꽃구경을 가자고 권유하여 왔다. 천옥은 두말없이 승낙했다.
진해까지 단둘이서 드라이브하였다. 단둘이서 하는 드라이브란 별맛이다. 따분한 한국 남자 상대로는 열번 죽어도 이런 경험은 못할 것이다. 길가에 옹기종기 걸어가논 농부들은 불쌍하고 버스 탄 인간들은 데데하고 택시 탄 자들은 구역질이 났다. 먼지를 피하느라고 비켜선 인간들을 만나면 빨간 보자기로 싸맨 머리를 돌리고 손을 흔들면서 ‘익스큐즈 미’ 했다. 가끔 지나가던 국민학교 아이들이 힐끔 쳐다보고는 침을 턱 뱉고 ‘양년’―소리지르면서 뛰어 달아났다. 자기를 몰라보는 아이들이 괘씸도 했으나 그건 ‘무지’의 탓이라고 무시해 버렸다. 한군데서 보따리를 걸머지고 가는 대학 동창생을 만났다. 그는 차를 세우고 보자기로 싸맨 머리를 내밀면서 외쳤다.
“할로 미스터 킴, 웨얼 아―유 고우잉 (어디 가는 길이에요).”
그는 주춤하고 서서 빤히 쳐다보다가,
“진해 가는 길이야 왜?”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 덴 죠인 아쓰(그럼 같이 타구 갑시다).”
이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언제부터 양년 됐어? 응, 더―러워서.”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면서 가래침을 큼직하게 뱉는다.
―한국 남자들은 걸핏하면 가래침을 뱉는 버릇이 있다. 국민학교 애들부터 대학생까지. 이건 미개한 탓이다. 더구나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른다. 비문명인이지
―울화가 치밀었으나 체면상 더욱 쾌활하게 웃고 까불면서 진해까지 갔다.
여관방에 들어 머리에 걸쳤던 보자기를 벗어 못에 걸고 있는데 뒤에서 코쟁 이가 지긋이 껴안았다. 천옥은 자동적으로 눈을 감고 턱을 치밀었다. 입술과 입술이 부딪쳤다, 붙이 났다. 맞붙은 입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메리카 대륙과 대한 반도가 자기를 매체로 녹아서 한덩어리가 된 것이다. 키스의 의의는 중대하였다.
밤중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것은 용광로 같은 정열이었다. 과거에도 소위 애인이라는 작자들을 상대로 이런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모두 소꼽장난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까지도 따분하구나. 그는 자기의 취사 선택이 옳았음에 새삽스러이 만족했다.
진해의 한주일은 꿈속에서 지났다. 낮이면 거리를 싸다니고 땐스하고 밤이면 용광로가 뒤끓었다. 코쟁이는 그를 애무하다가도 감격한 듯이 ‘한국에도 미쓰 한 같은 여성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감탄하였다. 천옥은 더욱 의기양양했다.
그때부터 천옥의 일거일동은 눈부신 바가 있었다. 남이야 보건말건 미인의 어깨를 툭 치기는 예사요, 팔을 엇걸고 대로를 활보하고 며칠이면 한 번은 반드시 동침하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미국 물건 아닌 것이 없고, 금은 야하다고 백금 패물을 번뜩이고, 한국말은 너지분하다고 영어만 지껄여댔다. 간혹 충고하는 한국인 직원이 있으면 ‘참견이 무슨 참건이야’고 핀잔을 주었다. 미인이 출장에서 돌아와 현관에 나타나기만 하면 ‘오―’ 소리를 지르면서 사무실 바깥까지 불이 나게 달려가서 목에 매달렸다. 천옥은 그것이 미국식이요 따라서 가장 현대적이라고 믿었다. 사방에서 보내는 한국인 직원들의 눈총은 문제시할 것이 못 되었다.
그것이 마치 문명인의 개화된 모습을 보고 웃는 남양 토인의 그것과 같이 자신의 미개성을 폭로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한국인 직원들은 그를 멸시하고 말을 건네도 대답도 안할 만큼 되었으나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선구자가 수난을 참는 갸륵한 마음씨와 통하는 점이 있었다. 적어도 천옥 자신은 선구자로서의 자신이 만만했다.
발바닥의 흙만치도 생각하지 않던 한국인 직원들은 마침내 폭발하였다. 그것은 그가 옥시풀에 머리를 적셔 노랗게 만들어 가지고 출근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자기만 빼놓고 쑥덕공론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빌어지더니만 점심시간이 되자 한 사람도 나가지 않고 뒷마당에 몰려서 나오라고 외쳤다. 심상치 않은 기세였다. 공교롭게 이 야만종들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문명인은 출장읕 가고 없었다. ‘제까짓 것들이 하면 얼마나 하겠다구’ 그는 뱃심좋게 나가서 두 손을 양허리에 뻗치고 섰다. 남녀 직원들은 지마다,
“이 양갈보년아!”
“이 도둑년아!”
“이 양년아!”
“저년 죽여라!”
천옥은 이 무지한 군중의 발악에 치가 떨렸으나 빠질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손을 못 댈 것만은 확실했다. 자기한테 손을 댔다가는 모가지가 당장에 도망갈 것을 누구보다도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허리를 한번 굽혔다가 쑥 펴면서 소리소리 질렀다.
“그래 어떻단 말이야, 이 돼지 같은 것들아! ”
눈알이 팽글팽글 도는 것이 앙칼지게 생긴 사나이가, 팔을 걷어부치고 덤벼드는 군중을 제지하면서 앞에 나섰다.
“얘 너 뭣이 부족해서 양갈볼 허니?”
“양갈본 누가 양갈보란 말이야!”
“양갈보가 따루 있나? 너 따위가 양갈보지.”
“눈깔이야? 뜸자리야, 응? 내가 그래 거리에 뒹굴리 댕기는 양갈보와 같다 이 말이야, 응?”
“같다니, 더 하지.”
“난 적어두 국제적이야 국제적, 고리타분한 너따위들과논 유가 달라!”
“요것이 아직두 정신 못 차리구.”
사나이는 꼬불꼬불한 노랑머리를 잡아채었다. 천옥은 강아지같이 모로 쓰러졌다.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구 응, 이 미개한 야만종들아!”
천옥은 쓰러진 채 발버둥치면서 악을 쓴다. 발길로 차려는 군중을 다시금 막으면서 사나이는 그를 잡아일으켰다.
“너 같은 건 여성은 여성이라도 돼지 여성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구 할 수 없이 나오구 굽신거린다마는 창피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천옥은 입을 삐죽했다. 그는 이런 놈들은 협박공갈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두구 보자. 그이가 돌아오면 없다 없어.”
돌아서려는 천옥을 사나이는 뒷통수를 잡아 뒤로 채었다. 쓰러져서 사지를 버둥거리는데 모두들 덤벼들어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였다.
“말이라는 약으로 고쳐줄 생각이었는데 약으로는 안 되겠다. 우리 공동의 결의에 따라 수술을 시작할 테니 꼼짝 말구 있어!”
사나이는 협낭에서 가위를 꺼내 가지고 머리칼을 모조리 깎아 버렸다. 흡사 털 뽑은 병아리가 되었다.
“자, 일어서! 그이한테 고해 바치구 안 하는 건 네 맘대루다. 다만 지금부터
당장 이 자릴 떠나! 다시 우리 사무실에 얼씬대다가는 종아릴 꺾어버릴 테니 단단히 명심해 둬. 이것두 관대한 처분인 줄만 알아.”
여직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팔다리를 끌어 대문밖으로 던져 버렸다.
대문을 달아매는 소리가 그의 뒤에서 쿵하고 울려 왔다.
천옥은 인테리의 문턱까지 갔던 처지라 지성을 앞세웠다. 그리나 설익은 사과도 못 되는 그의 지성은 언제나 본능과 충동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아양을 떠는 시녀에 불과했다. 본능과 충동은 제멋대로 활개를 치고 팔삭동이 지성은 그 길을 닦고 분칠하고 향수를 뿌리며 다녔다.
몽당대가리 천옥은 아버지와 오빠한테 방치찜질을 맞고 한동안 집안에 갇혀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갇혀 있을 천옥이 아니었다. 온몸에서 웅성대는 본능을 갖은 수단으로 억누르면서 그럭저럭 한달은 참았다. 한달을 참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한국 가정이란 역시 데데하다. 말할 수 없이 데데했다. 눈을 감으면 넓고 넓은 활동 무대가 찬란하게 전개되면서 그를 부르고 있다. 헛되이 보낸 한달이 아까웠다. 그는 집을 빠져나왔다.
그 당시 서울은 빈집 투성이었다. 오고가는 사람이라고는 대개가 내외 군인들이었다. 천옥은 한강을 건너오자마자 그 길로 집에 달려가서 땅에 파묻어 놓은 물건을 모조리 파내어 헐값으로 팔아 가지고 명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층 널따란 방에 따불침대를 들여놓고 응접 셋트도 근사한 것을 마련하였다. 깨끗한 테이블도 갖추고 영, 불, 독, 각국 말로 쓰인 책자를 눈에 잘 뜨이는 데 꽃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상하고 지척인 냄새가 방안에 감돌았다.
황폐한 이 거리, 이층 창가에 걸터앉아 수심에 잠긴 얼굴로 먼 하늘을 마라보는 그의 자태는 실로 매혹적이었다. 발 아래 지나가는 외인들은 지마다 그를 쳐다보고 바른손을 들어 웃음과 더불어 호의를 표시했다. 대개 못 본 척하다가도 마음만 들면 엄지손꾸락을 까불까불하였다. 그 순간 말없는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파랑 등불 아래 엷은 나이론 슈미즈만 걸치고 긴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걸치고 남자가 녹크하면 앉은 대로 ‘캄인!’ 하고는 눈을 감았다. 남자는 밤이 새도록 이 여체가 자아내는 감격을 잇지 않고 열정적이었다. 밤마다 정욕의 폭풍이 불었다.
한가한 낮에는 가지각색 교태를 궁리하고 밤이면 이를 실천에 옮겼다.
마침내 일 대 일의 단조로움에 싫증이 났다. 더 다채로운 생활이 그리웠다. 그는 시간표를 짰다. 기계와 같이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외인 상대로 이 시간표는 다채롭게 운영되어 각국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출입하였다. 제각기 특색 이 있고 사람마다 다른 맛이 있었다. 단 한번 검둥이도 상대했다. 검둥이는 보기만 해도 이상한 생각이 들지마는, 그릴수록 기묘한 호기심이 꿇어올라 이빨을 악물고 맞아들였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 보니 그 방면에는 천하 일품이었다. 중국 사람도 경험했다. 진작부터 마음이 동했으나 호떡 장수 짱꼴로를 상대할 수도 없어서 오래 기다리던 판에 홍콩서 왔다는 무역회사 회계원을 만났다. 예쁘장하게 생겼길래 아무도 안 오는 낮시간을 이용해 불러들였더니만 노랭이 중에서도 상노랭이였다. 늘어붙는 것을 억지로 똘가보낸 후로는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정조는 봉건적이요 국경은 비민주적이었다. 국경을 무너뜨리고 자유자재로 노는 자기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세계국가적이요 위대한 바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국제적 매체(媒體)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존재 이유도 뚜렷하였다. 다만 한가지 유감된 것은 토이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일이었다. 백색인종과 황색 인종의 중간에 위치한 토이기 사람은 알맞게 조화되고 시적일 것이었다. 고대하는 시일이 길어가면 갈수록 그들은 더욱 미화되었다.
그날도 침대에 드러누워 아름다운 토이기 청년을 그리고 있는 판에 노크도 없이 휭 하니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뛰어들었다.
“이년아, 집안이 망해두 분수가 있지, 장안 한복판에서 가구오는 코쟁이는 다 찔룩거리는 양갈보라니, 우리는 이제 망했다!”
아버지는 책상 위에 있는 꽃병을 냅다 던지면서 발탕을 굴렀다.
“전 매체야요, 매체.”
“머 어쩌구? 그말 다시 해봐라, 이년아!”
천옥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나 열 손꾸락을 벌렸다 합치면서 설명 했다.
“이렇게 말이죠, 국제적 매체야요, 매체.”
“이년이 미쳤구나, 이 오그라질 년이!”
손에 들었던 개화장으로 발가숭이 천옥을 마구 갈겨대다가 숨이 차서 의자에 걸터 앉았다.
“너 좀 들어봐라. 집안이 망해두 이렇게 망할 수야 있냐. 회산가 무엔가 하누라다가 폴랑 망해서 이백만 환을 몽땅 잃어버렸지. 게다가 딸년은 양갈보라. 하아 이런 변이 있나…… 목을 매 죽든지 깡통을 들구 빌어먹든지 이젠 별수 없다아…….”
구석지에 웅크리고 있던 천옥은 생긋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이백만 환 때메 그러세요?”
이백만 환쯤 잃고 목을 맨다는 아버지가 고리타분했다. 그도 역시 한국 남자였다. 아버지는 대답도 않고 담배만 피웠다.
“네? 아버지, 이백만 환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겠죠?”
아버지는 힐끔 노려보고 소리를 질렀다.˛
“이년 듣기 싫다!”
천옥은 이리지리 서랍을 뒤져 백금팔찌, 금시계, 가락지, 본토불 등을 한보자기 가득 싸서 들고 아버지 앞에 다가섰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 것두 같아서 모아둔 거에요, 아버질 드릴라구. 아버지 제 맘 몰라 주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잔기침을 몇 번 하다가 손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 이거 소용없어요? 이거 삼백만 환은 넉넉히 돼요.”
“…….”
“증말 소용없어요?·…·그럼 좋아요.”
보자기를 책상 위에 던지고 긴의자에 가서 앉았다.
아버지는 일어서 한참이나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보자기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층층대를 내려가던 아버지는 도로 올라와 문을 반쯤 열고 모가지를 들이밀었다.
“천옥아, 나 여기 왔더란 말 아무하구두 말아라, 알았지?”
천옥은 고개를 끄떡였다.
작년 가을에 환도령이 내려서부티 피난 갔던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천옥의 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낮이면 나이론을 휘감고 거리를 쏘다니는 것과 땐스하는 도수가 는 것, 그리고 전에는 보지 못하던 오빠가 가끔 몰래 나타나서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생각할수록 한국 땅은 좁고 시시해서 살 수가 없었다. 넓은 땅에 가야겠다. 그렇다고 애꾸눈도 저마다 가논 미국은 뾰죽한 수가 없을 게다. 생각던 끝에 나온 것이 ‘콜럼비아’다. 이름도 근사하고 땅도 널찍하거니와 일찌기 한국 사람이 이 나라에 갔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파랑 등불 밑에서 그 나라 청년을 극진히 애무했더니만 단박 오케이였다. 두달이면 본국과 연락해서 틀림없이 가게 해 주겠다고 단언하였다.
요즘 와서 콜럼비아 생활 설계를 머리속에 그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토이기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다. 천옥이 토이기 사람을 기다리는 정은 실로 간절한 바가 있었다. 그래야만 국제적 매체작용이 완전무결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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