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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
휴스턴에서의 일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인야는 답답함에 자꾸만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인터넷도 안 되는 방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일 끝내고 빨리 이 귀양살이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이 끝나면 한국으로의 비행기 출발지가 뉴욕이니 좋든 싫든 K의 집에서 머물다 날짜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사이 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고민이었다.
지난번처럼 혼자 뉴욕을 돌아다니며 '뉴욕 알기'를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직 뉴욕은 수박 겉핥기도 못 해본 처지였으니까.
하지만 지난번에도 K의 집에서 한 달 가까이 신세를 졌던 터라, 이번에도 또 그런다는 게...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K 부부야 늘 잘해주었지만, 그렇게 오래 남의 집에 얹혀지내는 건... 인야로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20여 일을 다시 거기서 지낸다는 것은, 쌍방에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미국 바깥으로 잠깐 다녀오는 건 어떨까?' 하기도 했지만,
그러자면 또 그 지긋지긋한 미국 입국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미국 안에서 여행을 한다 해도, 이미 친구들이 있는 곳은 대충 다녀본 터였고(LA만 빼고), 비행기 타고 가서 며칠씩 남의 집 신세를 지는 것도 이제는 꺼려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여행하자니 경비도 만만찮을 터고, 대중교통이 변변찮은 미국에서 차 없이 혼자 움직인다는 것도... 엄두를 낼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게 있었다.
지난번 뉴욕에 있을 때 K와 얼핏 얘기가 나왔던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이었다.
운전을 못하는 인야라, 만약 둘이서 차를 갖고 여행을 간다 해도... K 혼자 그 먼 길을 몰고 다니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라, 그동안은 엄두를 못 냈던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며칠을 궁리하던 인야는... 결국 뉴욕의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근데... 너..."
처자식 있는 사람에게 불쑥 여행을 가자고 꺼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인야가, 본론을 못 꺼내고 뜸을 들이자... K가 답답한 듯 다그쳤다.
"아니 형님, 왜 그러십니까? 빨리 얘기하세요."
"너, 텍사스에 누님도 있다더니... 차 몰고 여기는 안 오냐?" 하고 딴청을 피우려다, "아니면, 내가 이 일 끝내고 뉴욕으로 비행기 타고 가서... 너랑 함께 움직여, 어딘가를 갈까? 내가 지금, 답답해 죽겠다."
하고 말을 돌렸더니, K가 기다렸다는 듯 받았다.
"그렇잖아도 서울에 있는 제 친구들한테, 제가 미국에 사는데... 한 번이라도 와야 서부까지 횡단 여행이라도 할 텐데, 왜 이리 아무도 안 오는지 모르겠던 참이에요. 다들 오고 싶어는 하면서도, 바쁘네 뭐네... 핑계만 대고요."
K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인야는 얼씨구나 싶어 말했다.
"그럼 우리 일을 하나 꾸며볼까?"
"뭘요? 어떻게요?"
"D 꼬셔서 셋이 가자."
D는 인야의 1년 후배이자 K의 1년 선배로, 셋이 연년으로 이어지는 고등학교 미술반 선후배 사이였다.
"그게 될까요?"
"그러니까 꼬셔보자는 거지. 그냥 오라고 하면 안 올 테니, D에게 미국의 대자연 풍광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며 풍경화 소재라도 얻어보라는 식으로 구슬려보면......"
"그럼 형님이 해 보세요."
"아니, 나는 인터넷도 안 되니 니가 해라."
그렇게 시켜놓고 인야는 한발 빠져 있으려 했는데, 사흘쯤 지났을까... 뜻밖에도 D에게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나 D."
"응? 그래... 근데 니가 어떻게 국제전화를 걸어와?"
"응, K 문자에... 형님 전화번호랑 '전화 요망'이라고 찍혀 와서."
인야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짐작이 갔다.
K가 D에게 문자를 넣은 모양이었다. K도 직접 D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면서, 그래도 인야가 나서는 편이 더 믿음이 갈 거라며 그 역할을 슬쩍 떠넘겼을 게 분명했다.
"아, K가... 니가 전화를 안 받는다기에 다른 방법을 써서 연락한 모양이구나."
"핸드폰에 이상한 번호가 떠서 안 받았거든요."
"응, 그랬던 모양인데... 아무튼, 너 미국 오지 않을래?"
인야가 대뜸 말을 던지자 D가 의아해했다.
"왜요?"
"우리 미국 횡단 여행 한번 해 보자고. 그저 비행기 타고 이 도시 저 도시 다니는 건 돈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만 나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죽겠거든. 근데 그러려면 차를 몰고 다닐 수밖에 없는데, 나하고 K 둘만으론 너무 벅차. 더구나 내가 운전을 못하니 K 혼자 다 하기엔 너무 힘들잖아. 이런 기회가 그리 쉽게 오는 게 아닐 텐데, 니가 와서 우리랑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너도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이 광활한 미국 대륙을 직접 달리면서 눈으로 보는 일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게 보통일이겠느냐고...... 더구나 너도 곧 방학일 테니,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래?"
D는 교사였다. 그런데 어느새 마음이 넘어온 듯 물었다.
"그럼, 며칠이나 걸릴 거 같아, 형?"
인야는 잔뜩 고무되어 대답했다.
"12~3일도 되고, 보름도 되고... 너, 한국 오가는 시간까지 잡으면 적어도 20일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 안 그래도 방학하면 한 20일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그래? 야, 정말 잘 됐다. 와라! 니가 오면, 우리 셋이서... 얼마나 신날까?"
"근데... 마누라 허락을 받아야지."
"허긴......"
"형님, 아무튼... 한번 얘기해 보고 다시 전화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 인야는 어느새 여행 준비가 다 끝난 사람처럼 들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D가 못 온다고 하면, 그대로 물거품이 될 여행인데도......
이틀이 더 지나도록 서울 쪽에서 잠잠하자, 인야는 다시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번엔 니가 직접 D에게 알아봐!" 하며 슬쩍 공을 떠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전화가 왔다.
"형님, D형이 오겠답니다."
"뭐? 와이프 허락 떨어졌대?"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 형님이 S한테도 전화해서 꼬시면... 네 명 딱 좋은데요."
"그래? 음... 해 보긴 하겠지만, 그는 힘들 거야."
사실 인야는 그사이 군산의 S에게도 슬쩍 찔러본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반색은 하면서도... 올여름엔 시기상조라며 자기는 못 올 거라고 이미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야는 다시 S에게 전화를 걸어, D가 오기로 했다는 소식까지를 전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했지만,
S는 부러워하면서도 결국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하는 수 없었다. 셋이서 가는 수밖에.
생각해 보니 셋도 나쁘지 않았다. 운전을 둘이서 나눠야 하니 기동력은 좀 떨어지겠지만, 천천히 가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미술반 선후배 삼대가 나란히 여행하는 것도 오붓하고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이 하나 더 붙으면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셋이서 화려하지 않게 아껴 다녀도 충분할 것이었다. 게다가 휴스턴에서 일을 해 돈을 벌게 될 인야였기에, 이번 여행은 자신이 주동이 된 것이기도 해서... 선배인 자신이 조금 더 부담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어두기까지 했다.
'그래, 우리 셋이서 가자.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하고 단출하게.'
그렇게,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미 대륙 횡단 여행'이 큰 무리 없이 이뤄질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K가 미국에서 나올 때마다 즉흥적으로 고향 나들이를 하곤 했던 세 사람이, 이번엔 아예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군산 0고 미술반(인야는 11회, D는 12회, K는 13회) 미주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 뒤 세 사람은 평소 인터넷을 잘 쓰지 않던 D를 다그쳐 인터넷 전화까지 설치하게 하며, 잦은 연락으로 준비와 일정을 맞춰나갔다.
인야가 휴스턴 일을 마치자마자 뉴욕으로 왔고, D도 방학을 하자마자 곧장 뉴욕으로 날아와 셋이 조우했다.
D의 시차 적응과 마지막 준비로 이틀을 더 보낸 뒤, 마침내 어느 일요일 아침... 세 사람은 '미 대륙 횡단 여행'에서 '미국 한 바퀴 돌기 여행'으로 이름을 살짝 바꿔 대장정에 나서게 된다.
몇 달을 벼르고 벼르던 여행이었다. 그런데 막상 차에 오르고 보니, 정작 인야에게는 낯익은 길이었다.
워싱턴 DC는 지난 3월에 이미 한 바퀴 돌아본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번엔 그가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갓 도착한 D에게 보여주러 가는 길이기도 하니까.
K도 마침 볼티모어에 아는 사람의 초대가 있어, 코스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잡혔다.
뉴저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셋은 그제야 실감이 나는 듯했다.
몇 주를 전화로만 벼르던 여행이 이제 진짜 시작된 것이다.
볼티모어에 닿자 K의 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게'로는 첫손에 꼽힌다는 곳(우리로 치면 영덕쯤 되려나?)이라 했다.
셋은 자리에 앉아 게딱지를 까며 포식을 했는데, 여행 첫날의 허기와 긴장이 그렇게 게살과 함께 풀려나가고 있었다.
밤이 되자 워싱턴 근처, K의 동생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대장정의 첫날이 저물었고, 그날 밤... 인야는 짧게 카페에 글을 올렸다.
첫 날 일정의 사진치고는, 찍은 게 별로 없어... 너무 빈약합니다.
그래서 둘쨋날 것도 올려볼까 했는데, 인터넷과 사진 선별 용량 작업이 수월치 못해... 하는 수 없이 내일로 넘어갑니다.
우리의 본격적인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은 내일부터......
7 . 26
둘째 날엔 유독 정신이 없었는지, 인야는 짧게 끊어지는 문장으로 그날의 기록을 남겼다.
둘째 날(7.27) 행로: 워싱턴 DC → 펜실베이니아 게티스버그 → 나이아가라 폭포
펜실베이니아 게티스버그를 지나며 잠깐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라는 이곳엔 지금은 평화만 흐르고...
한 안내원에게 길을 묻다가 사진 한 컷을 찍었습니다.
다시 출발.
오후 내내 북쪽으로 달려 버팔로를 지나, 캐나다와의 국경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서 입국 심사가 있었는데, 약간의 인종차별적인(아시아계 차량만 세워놓는) 검사에 여행 기분을 완전히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차량 전체를 검사받았고, 소지한 돈까지 신고해야 하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미국 입국 심사로 기분이 상했던 저는, 캐나다에 대한 심한 적개심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장관이라는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도 기분이 잡친 저는 관광에 전혀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아니, 지네 나라에 돈을 쓰러 왔는데...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다고? 말도 안 돼!'
후배는 유람선을 타자고 권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나질 않아,
"니네 둘만 탈래?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가 않아......"
했더니, 그들도 그만두었습니다.
상처받아 우울한 심정으로 거대한 폭포를 보는 둥 마는 둥, 어서 캐나다를 빠져나가자며 다시 미국 쪽(디트로이트 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점심을 거하게 먹은 터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또 하나의 국경 심사가 남아 있었습니다.
캐나다로 넘어간 상태였으니, 이제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야 했던 겁니다. 솥뚜껑 보고 놀란 가슴 자라 보고도 놀란다더니, 디트로이트로 향하면서도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아침에 그 일을 치르느니 차라리 오늘 끝내버리자 싶어 11시경까지 달려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예상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미국 국경에서 마치 범죄자처럼 검문을 당하고 차를 또 한 번 수색당했습니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검사를 당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흑인이거나 아시아계였습니다.
이번엔 소지한 돈의 액수까지 낱낱이 확인하더군요.
그렇게 또 한 번의 수모를 겪고, 자정이 넘어서야 자유를 되찾아 디트로이트 시가지를 벗어난 작은 마을의 모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두 번의 입국심사에 지쳐, 여행의 즐거움은 영영 사라져버린 듯했습니다.
(이건 국가적인 차원에서 뭔가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재수가 나빴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오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일을 겪는다면 이건 국가적인 모욕이자 수치일 수 있습니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나라에서, 이건 너무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여러분, 미국 여행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될지 모르니, 캐나다에 가실 때는 이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7 . 27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인야는 다시 카페에 글을 올렸다.
글을 보면 그들의 여행이 얼마나 강행군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현지 인터넷 사정도 여의치 않은 듯, 용량 이야기만 자꾸 나오는 둥......
카페 식구 여러분,
저 지금 미대륙 여행의 강행군으로 아무 정신이 없습니다.
'여행기'요?
그거 올릴 시간도 여유도 없이, 하루에 몇 백 마일을 달리느라 인터넷을 접하기도 힘들고... 사진은 더더욱 올릴 수조차 없습니다.(호텔에나 들어와야 인터넷을 할 수 있는데, 수용 용량이 작다 보니, 제가 사진을 올리려다 보면... 문서까지 다운되곤 합니다.)
그래서 우선, 여행 코스만 간단하게 올립니다. 흔적만이라도 여러분께 알리려구요.......
뉴욕 → 워싱턴 → 나이아가라 폭포 → 시카고 → 밀워키 → 미네소타 주 → 사우스다코타 주(배드 랜드, 큰 바위 얼굴) → 와이오밍 주의 '옐로우스톤 공원' → 시애틀 → 미 서부 해안 도로.......
내일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모레 LA에 들어갑니다.
그럼, 이런 식으로... 일단 간략한 행선지만을 알리겠습니다. 그런데 몇 장의 사진을 올려보기는 하겠는데, 안 올라가면 하는 수 없습니다.
여행기는 나중에 제가 한국에 돌아간 다음에나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2009년 8월 1일 밤 (현지 시간)
그로부터도 며칠이 더 지나서야, 다음 소식이 올라왔다.
어느새 '그랜드 캐년'도 지나, 지금은 '뉴멕시코'주에 도착한 상탭니다.
2~3일에 한 번 꼴로 호텔에 들어와야 인터넷과 연결이 되는데, 여기 호텔들은 용량이 작은지 툭하면 다운되고, 사진을 올리려다 보면 몇 시간이 걸리니 사람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선은 저희 행로를 알려드리고, 가능하다면 사진도 몇 장, 그 뒤에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LA에서 '네바다' 주 '라스베가스'로. 거기서 1박.
다음 날 '아리조나' 주로, '그랜드 캐년' 보고 1박.
다음 날 '세도나'를 거쳐, '재롬'을 지나, '그림 그린 듯한 사막(Painted Desert)'을 지나, 뉴멕시코 주로...
2009 . 8 . 7 밤 (현지 시간)
처음 뉴저지를 출발할 때만 해도, 여행 사이사이에 간단하나마 여행기를 올리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돼주질 않았던 것이다.
세 사람의 여행이라, 각자 분담해서 맡은 일도 있는 등... 그리고 이틀 정도는 차에서 자기도 하고, 하루 정도는 호텔에 들러 샤워도 하는 식으로 이어간 여행이라... 인터넷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설령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해도 인야에게 개인적으로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보니... 그저 그 일정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그렇게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을 정신없이 끝마치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여행을 마친 뒤, 인야는 뉴욕으로 돌아와... 미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훗날 돌아보면, 이 무렵 카페에 슬쩍 이름 한 번 스쳐 지나간 'Ch'라는 인물이 이렇게까지 인야의 삶에 깊이 들어올 줄은, 그때는 알 도리가 없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K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이 사람이, 훗날 '천 달러의 여행'의 주인공이 되고, 이 이야기의 첫머리를 여는 '세상 끝 여행'과도 직접 이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어젯밤은 열대야였다.
몸이 피곤해 잠에서 깨어나진 않았지만, 어찌나 덥고 후텁지근한지 잠은 설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꿈은 어딘가로 계속 여행하는 내용이었다. 찍은 사진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꿈. 산티아고 길을 걷고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어딘가를 걷는 꿈을 꾸었던 것처럼, 이번엔 2주째 차를 몰고 달렸던 기억이 밤마다 그런 꿈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끈적끈적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감각이었다. 한국도 요즘 푹푹 찐다는데, 이제는 그 시절을 피할 도리 없이 그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어제 Ch 선생님과 마신 술은 독하긴 했지만, 오늘 보니 뒤끝은 깨끗했다.
멕시코 떼낄라의 '빠뜨론(Patron)'이라는 상표였다.
좋은 술이라더니,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오늘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제 뉴저지로 건너가면서 버스 안에서 보았던 맨해튼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나는 가보기로 마음먹어 두었다.
뉴욕의 상징이랄 수 있는 맨해튼을 겉에서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밤늦게 돌아오면서 보니 그곳이 전망이 좋아선지, 몇 대의 관광버스가 관광객을 풀어놓고 야경을 즐기게 하는 풍경도 보였다.
그 전에도 가고 싶었던 곳인데, 늘 다른 곳으로만 발길이 향했었다. 이제야 자신의 의지대로 그곳을 찾아가 보려는 것이었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나에게도 나라가 있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내 나라. 미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 어디에서보다도 내 나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뒤집어 보면, 여기서 그만큼 그런 생각이 들게끔의 대우를 받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오늘 저녁, 나는 Ch 선생님과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손님이 유난히 많아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마침 PGA 선수권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고... 식당 TV 앞에서, 나는 한국의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우승하는 장면을 그대로 지켜보게 되었다.
절로 흥분이 됐다.
양용은이 우승의 순간 두 손을 들어 환호할 때, 나도 함께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야, 멋지다. 세계 정상에 서기 위해, 저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였을까?'
그에게도 뜻깊은 날이었겠지만, 미국에 왔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 한국 선수의 우승을 생중계로 지켜본 나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8 . 17
이제, 한국에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이 인야
2009 . 8 . 17 새벽 (현지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