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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라 호스피스(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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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자료실 스크랩 간경화, 간암, 폐 전이암, 아토피까지 난치병과 사투 저 유익현 체험고백^^
편안한 마음 추천 0 조회 250 14.01.18 10: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간경화, 간암, 폐전이암, 중증 아토피와 싸웠던 투병기이니 읽어보시고 모든 분들도 희망을 얻고 완치를 기원합니다."

 

 저는 젊어서 예비군 훈련장에서 헌혈을 했는데 헌혈 후 혈액검사 결과표가 집으로 배달되었는데 B형 간염 보균자이니 관리 잘하라는 의사의 소견이 쓰여 있어서 간염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염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가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격렬한 운동(테니스), 등산을 줄기면서 운동 끝나고는 동료들과 2차 3차로 말술을 마시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간은 망가지고 어느 날 퇴근길에 동료들과 간단히 맥주 한잔하는데 속이 메스껍고 도저히 마시질 못할 정도로 속이 괴로워 일찍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동네 내과에 들러 진찰과 혈액검사를 했는데 활동성 만성간염으로 중기가 지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검사가 의심이 되어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했지만 똑 같은 결과를 받아보고 그길로 술을 완전히 금주하고 병원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도 B형 간염에 좋다는 약이나 건강식품, 유명하다는 곳을 전전하면서 많이도 약을 먹었던 것이 간을 더 혹사시키지 않았는지 지금도 많이 후회를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만성간염 중기 진단을 받고 금주는 했지만 격렬한 운동을 계속 하고, 마음의 안정도 찾지 못했던 것이 40대 중후반에 간경화가 된 것이 확실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정기검사를 하면서 간염 때와 같이 입으로 먹어서만 병을 고쳐보겠다고 좋다는 약을 마구잡이로 구해서 먹다가 효과가 없으면 온 집안에 쌓아놨다가 버리기를 반복하면서 금전적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2001년 초 검사에서 간암초기(1.8~2.0Cm)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암환자라는 자리에 등극한 셈이 되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도 모르고 암에 대해 아주 무식한 저였습니다.

 이때 저는 솔직히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제 아내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고 몇 년이 지난 세월에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대학병원에서 절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나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일 입원하는 날인데도 오늘 회사 출근해서 열심히 일을 마치고 무슨 배짱인지 퇴근해서 예나 다름없이 테니스 코트에 나가 동료들과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다음 날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하기위해 모든 검사를 다 했지만 간수치가 최악의 상황으로 너무 떨어진 상태라 수술을 할 수 없게되어 수술 예정 전날 저녁7시에 수술주치의가 병실로 올라 오셔서 유익현씨 때문에 고민이 많다면서 가족을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불러놓고 하신 말씀은 간수치가 최악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강행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수술을 할 경우 피가 응고가 잘 안되어 개복과 동시에 다시 닫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또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약 20시간 앞두고 1시간가량을 가족과 주치의와 얘기를 하면서 만일 당신이나 가족이라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가족들은 진지하게 주치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주치의 왈 “저라면 안하겠습니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 나도 안하겠다.” 라고 말씀드리고 수술을 포기한 저는 차선의 치료를 선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주치의께서 색전술을 권하더군요.

 저는 그때만 해도 색전술만이라도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이 병에 대한 문외한이었습니다.

 색전술을 받고 다음 날 퇴원해서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제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회사에 출근해서 항상 같은 생활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정기 검사 결과를 보는 날 저는 회사에 출근하고 제 아내가 결과를 보는데 주치의가 애들이 몇이냐 나이가 몇이냐는 등 심상치 않는 질문을 했답니다.

 검사 결과는 다른 곳에 암이 또 재발해서 색전술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눈이 퉁퉁 부어있고 말을 잊지 못하더군요.

 제 아내는 이번기회에 서울 큰 병원에서 색전술하고 이식을 생각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서울 큰 병원을 수소문하다가 아산병원(당시 중앙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치의는 간 이식의 대가로 알려진 아산병원 이승규박사님이었습니다.

 입원해서 색전술을 하고 간이식을 수소문 했지만 간이식이란 쉽게 되는 일이 아니기에 소득 없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하는데 주치의께서 약이라곤 한 알도 처방해주지 않고 집에서 관리나 잘 하라는 말씀만 하더군요.

 약 한 알도 없이 어떻게 관리를 하라는 거냐고 물으니 간암에는 약이 없다는 말씀이니 정말 한심할 일이라는 것을 이때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솔직한 심정은 주치의를 원망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주치의 선생님이 정말 양심있는 분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심각함을 깨우치게 해 주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퇴원하고 귀향해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입맛이 떨어져 매끼 식사 때마다 2~3수저 먹으면 많이 먹었던 생각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차려 주어도 모래알 씹는 입맛 때문에 먹지 못하니 한 달에 14Kg이 빠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완전히 해골 그 자체가 되니 보는 사람마다 걱정과 안쓰럽게 처다 보는 눈초리가 너무나 부담스럽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때 제 아내는 제가 잠들면 제가 숨을 쉬고 있는지 자기 귀를 제 코에 대어 보는 것도 모자라 저를 한 번씩 흔들어 깨우느라 밤잠을 설치는 날이 연속이었다고 너무나 힘들었다고 훗날 웃으며 저에게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끔 저를 흔들어 깨우면 제가 인상을 쓸 때가 가끔씩 있었다는 기억이 나서 미안해서 그냥 웃고 넘겼죠.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제 아내는 저를 살려보겠다고 좋다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기 시작하다가 바보식이요법을 열심히 하고 있는 문효진님(저와 같은 지역거주)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 요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효진님께서는 간경화, 간암, 담도암, 문맥암 말기에 복수, 황달, 흑달까지 도달해 병원에서 2개월 선고를 받고 집에서 바보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제가 문효진님을 만난 시점은 그분이 바보식이요법을 시작한지가 3개월쯤 되었을 때였는데 흑달이 어느 정도 벗겨지고 눈가에만 까맣게 조금 표시가 남았고, 간암 크기도 거의 암이라는 진단이었는데 7Cm로 많이 줄었다는 말을 듣고 바보식이요법에 믿음을 얻었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정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이 아~ 이제는 살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바보요법과 첫 만남-

 

 문효진님을 만나고 나서 바보식이요법을 지도해 주시는 전남 화순군 소재 화성약국 정용재약사님을 알게 되었고 간암진단 받는지 2~3개월 후 식이요법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이요법을 시작할 당시를 회상해보면 정말 암이 죽는 것이라는 심각함을 몰랐기에 정약사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회사를 다니면서 1년여 가량을 나름 한다고 했습니다.

 진수성찬도 먹지 못했던 이때 100% 무염 바보죽 먹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생각납니다.

나는 못 먹겠다. 제 아내는 먹어야 산다. 정말 제 아내와 많이도 싸웠던 생각이 지금도 새롭고 제 아내께 미안하게 생각했지요.

 처음에 죽 한 숟가락, 물 한 모금을 그렇게 10일정도 먹으면서 계속 설사만하니 항문이 헐어서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내 아내의 지극정성과 그래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악착같이 먹으면서 견뎌내니 설사가 멈추면서 입맛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죽을 맛있게 먹을 수가 있어서 많이 먹고 기력을 찾았던 기억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바보죽과 더불어 녹즙(미나리+사과), 붕어즙(붕어+표고버섯), 영양제(분지아미노산), 알부민(1주일에 1개씩)을 맞으면서 치료를 하니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 듯했는데 약 5~6개월이 지날 즈음 온몸이 가려워서 피부과 의사께 보였더니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것입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너무 괴로워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방송을 보면서 정말 이해가 되고 저 역시 죽고 싶은 심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괴로움을 참아내면서 바보요법 시작한지 1년이 되어갈 즈음 간수치나 간암수치(afp)는 거의 정상에 도달하게 되니 이제는 아토피를 고쳐보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등 좋다는 양 한의원을 전전하다가 2002년 즈음 B모 식이요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B모 식이요법이 신문 방송을 접수하다시피 유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토피를 진정시켜보겠다고 약사님께 상의도 드리지 않고 B모 식이요법으로 바꾸어 시작했었죠.

 그렇게 B모 식이요법을 꾸준히 했지만 간암이나 피부병은 차도가 없고, 이 식이요법을 시작한지 1년이 되어갈 즈음 회사에서 건강검진이 있어 검진(당시2003년)을 했는데 간암수치(afp370)가 확 올라있는 것입니다.

 황당해서 곧바로 대학병원에서 ct 검사를 해본 결과 간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이 나온 것입니다.

 그길로 또 색전술을 하고 한 달 후에 검사를 했지만 암수치(afp)는 떨어지지 않고 두 배수로 엄청나게 뛰는 것이 아닌가!

대학병원에서는 다시 색전술을 권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간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면 간암수치(afp)가 폭등을 한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2번째의 힘든 투병-

 

 암수치(afp)는 계속 상승하고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또 다시 색전술을 하자는데 이번에도 2차 때와 같이 서울에서 색전술을 하고 이식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자고 서울로 올라갈 계획을 잡았다.

하루가 급했던 저는 간이식수술을 상담하기 위해 서울 유명병원 여러 곳에 진료예약을 했는데 가장 빠른 진료를 일주일만에 할 수 있었던 곳이 서울대 병원이었습니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지금까지의 검사자료를 다 떼어다가 서울대 병원 진료시 주치의께 보여드렸습니다.

 이렇게 색전술을 여러 번 했고, 간암수치가 계속 올라서 찾아왔다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또 한 가지 지금까지 없었던 증상, 선뜻 선뜻한 불편함이 겨드랑이에서 나타난다는 호소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치의께서는 당장 입원을 권했고, 저는 입원수속을 마치고 전주 집으로 내려와 생활하다가 입원허가를 1주일 후에 받아 입원 할 수 있었다.

 입원연락을 받고 회사 조퇴하고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싫었다.

 저녁 6시에 입원실에 들어갔는데 간호사께서 지하에 가서 엑스레이 가슴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찍고 비몽사몽 하루 밤을 지냈다.

 다음 날 주치의께서 출근하자마자 지방 대학병원에 예전 가슴 사진하고 최근에 찍은 가슴사진을 빼서 가져오라고 해서 전화로 가족에게 연락 고속버스 편으로 당일에 보내왔습니다.

주치의께 전달하니, 늑골과 폐에 전이가 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날부터 서울대 병원에서 다시 모든 검사를 해본 결과 간암보다 폐와 갈비뼈 전이암(5Cm)이 문제라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희망이 있는 수술이 아니라는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 상태인지라 걱정이 되었고, 그 걱정은 바로 의사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수술이 가능한지? 수술이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 물어봤지만 당시 주치의가 말하는 치료는 도저히 감당할 만한 상황이 되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갈비뼈 2개를 끊어내야 하고,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 등의 굉장히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치의께서는 수술 후에 깨어날지에 대한 우려마저 가지고 있어, 선뜻 수술을 하자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주치의께서 “수술이 잘 될 확률은 30%이하라면서 50%만 되어도 제가 강권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수술을 하라는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담당 주치의는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고, 이후의 고민은 고스라니 저에게 전달이 되어 제가 다 짊어지게 되었다.

 

 제 경우 지금 생각하면 간암의 원인은 간경화인데 병원에서 간암만 때려 잡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수술은 할 수 없어 못하고 색전술을 수회 했지만 계속 재발하다가 폐로 전이되어 희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던 것이 무척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간경화때 치료를 철저히 해야 하고, 암 진단 후에도 간경화까지 나을 수 있는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침대에 누워 3~40분을 고민고민하다가 상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술에 대한 결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서 제 아내를 붙들고 나는 절대로 이 병으로는 죽지 않을테니 더 도와 달라고 맘가짐을 새롭게 하고 애원하며 많이도 울었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결국 차선책을 선택하였고, 차선책은 방사선이 되었고, 한 달 열흘 정도를 입원해서 18회 방서선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이때가 정말 길고 긴 세월인 것만 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새로운 시작-

 

 한 달 열흘을 입원해서 방사선 18회의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내려와 바보식이요법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 내려온 다음날 모든 것을 내려 놓고싶어서 30여년 세월의 정들었던 회사에 가서 마지막 정리와 인사를 하고 그 다음 날 정용재약사님을 오래간만에 찾아뵈었습니다.

 퇴원한지 3일이 되는 날 2003년 7월 30일부터 다시 바보요법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야 정신을 찾았다! 진짜 죽는 병이란 것을 알았다! 이제 매달릴 곳은 정약사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정약사님만 믿고 열심히 했고, 정말 미쳤습니다.

 바보요법을 시작한지 1달이 지나 검사를 하러 다시 서울대 병원으로 갔습니다.

 퇴원당시 방사선과 주치의께서 하신 말씀이 “한두 달 만에 검사하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한다고 곧바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줄어들지 않은 상태를 확인 하시게 되면 오히려 낙담을 하시게 될 것이고, 투병하기가 더 힘드실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방사선과 주치의께서 저렇게 말한 데는 18회를 하고 난 뒤의 결과가 겨우 1~2mm 정도 줄어든 것이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사선과 주치의는 근 시일에 검사하는 것을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내과 주치의는 한 달 후에 혈액, ct검사와 가슴사진 찍는 것까지 검사 처방을 내렸었다.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결과를 확인하기위해 방사선과 주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보자마자 박수를 치며 자신의 일 인양 아주 기뻐하시면서 이제 간만 때려잡으면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당시 가장 문제가 되었던 "폐에 5cm 짜리의 종양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당시 방사선 치료를 받기 전에 암수치(afp:5,000)가 엄청나게 올라가 있었는데, 퇴원시에 간암수치가 afp: 910으로 암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방사선치료 효과는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방사선과 주치의 진료를 마치고, 내과 주치의를 찾아갔다. 주치의는 간에도 암이 보이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하신 말씀이 앞으로는 3개월마다 검사하면서 관리 잘해보자라는 말씀입니다.

 식이요법하면서도 면역력을 올려야 한다기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해서 복용하면서 정말 "바보가 되고, 미쳐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정말 미쳐서 열심히 식이요법을 했기에 주치의께서 2004년 2월 정기 검사결과를 보시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니 계속 검사하면서 관리를 잘 하라는 말씀하시면서  “처음에 올 땐 정말 절망이고 심난했는데… 유익현님과 같은 상태에서 이렇게 좋아진 사람은 만명중 1명 있을까 말까”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005년 10월 2일에는 검사결과가 아주 흡족하게 나왔다면서 이번에 하신 말씀은 “이렇게 좋아진 예는 십만명중 한명 있을까 말까한다” 라고 하시면서 정말 기뻐해주십니다.

 그 뒤로는 주기적으로 혈액검사만 했고, 2009년부터는 지방병원 내과에서 혈액검사만 하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토피는 암이 없어지고 간수치도 정상이 되면서 정용재약사님께서 조심스럽게 치료약(?), 요(소변)료법 등 여러 가지 관리를 철저히 해주시고, 당시 일산명지병원 염창환박사님(현재는 염창환가정의학과의원 운영중임)을 소개해 주셔서 비타민C 요법도 병행하면서 관리를 했더니 어느 날부터 조금씩 차도가 나타나더니 지금은 아토피도 깨끗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암은 통증까지는 아니어서 겉으로는 힘들지 않았지만 아토피가 전신에 퍼져 말도 못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정용재약사님께서 간암 때 회사 다니지 말고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고민도 많이 했으며, 회사에 가면 죽을 싸가지고 다녔고, 다른 동료들은 식당에서 오손도손 이야기하면서 먹는데 혼자 사무실에서 먹으면서 한심한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정말 식이요법을 작정하고 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에 제가 있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 우리 인간은 왜 낭떠러지에 도달해서야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많은지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지금 이 때가 아무리 힘들어도 빠르다는 생각을 우리 환우님들이 빨리 깨닫고 열심히 관리하시고 치료도 철저히 했으면 해서 말씀드립니다.

 

-희망의 전당-

 

 첫째 겁내지 말자!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이제 나는 죽었구나 생각하는 사람은 2~3개월을 못 넘기고 빨리 죽는다고 합니다.

 간경화나 암은 못 낫는 병이 아니고 조금은 힘들뿐이지 낫는 병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많이 웃고, 좋은 생각만하고, 줄겁게 치료하세요.

 서울대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 시 일화 한 가지를 소개드리면, 병실에서 항상 웃고 즐겁게 바보같이 지내는가 하면, 아침 9시쯤 제 아내와 차트를 가지고 지하 방사선실로 내려가면서 둘이서 낄낄대고 장난을 치면서 바보같이 웃고 또라니 짓을 하고 다니니까 하루는 수간호사께서 하신 말씀이유익현님은 지금 그렇게 웃고 다닐 때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데 안쓰럽고 걱정이 되어 저를 생각하고 그런 말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암환자가 되면 가장 힘든점이 있다면 의사, 간호사, 약사, 주위 모든 분, 심지어 가족까지도 죽는다고 생각하고 대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바로 약사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을 뿐인데... 전이되어 희망이 없는 상태인데도 병원에서 바보죽을 먹고, 항상 바보같이 웃고, 병실 생활하면서도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다니는 등 의사나 간호사들로서는 이해하지 못 할일을 한 것이다.

 사실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도 상황은 좋질 않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에도 항상 바보가 되자! 라는 생각으로 어느 누구 앞에서나 바보같이 웃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간단한 혈액검사만 5~6개월마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각 방송에도 출연을 하고 지금도 많은 방송 작가님들이 연락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 암환자들은 병원에서 어떤 치료든지 치료가 끝나고 완치가 되었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고 해서 나는 암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안되고 평생 관리를 철저히 하시고 조금이라도 소홀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을 게을리 하시면 절대로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환우 분들이 읽어보시고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투병이지만 완치는 꼭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굳은 의지로 이겨내셨으면 해서 간단하나마 제 투병기를 적어 블로그에 올리니 참고가 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의 행복-

 

 지금도 힘들게 투병생활 하시는 환우님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치료할 때는 가능하다면 직장, 가족, 돈 등등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지 말고 모두를 내려놓고 치료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것 제가 겪은 크나큰 교훈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돈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대충 식이요법을 했기에 재발 전이가 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병을 고치고 나서 더 좋은 일이 생길 수 있고 경제활동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리라 확신하고 저는 지금 조그만한 사업도 즐겁게 운영하면서 건강하게 잘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암환자 이전보다 더 행복합니다.

 

 환우님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꼭 당부드릴 말씀이 있다면 치료하는 기간만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한다는 것 제가 투병 생활하는 동안 겪었던 쓰라린 경험을 선배로써 말씀드립니다.

병을 고치고 나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꼭 믿습니다.

제가 그 장본인이라고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환우님들 꼭 완치 성공하셔서 온가족이  항상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암 치료 12계명-

 

1. 무조건 웃어라. 억지로 웃는 웃음도 항암제가 된다. 바보가 되는 것이 지름길이다.

2. 낙천적인 생활습관으로 바꾸어라.

3. 암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친구로 삼아라.

4. ‘나는 살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초기에 적극 대처하라.

5. 암과의 싸움을 장기전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대처하라.

6. 무슨 치료든지 나에게 맞는 치료방법을 찾아서 100% 믿고 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7. 가급적이면 내가 하려고 하는 치료법으로 완치된 환자를 한두 명이라도 만나보고 100% 신뢰를 가지고 결정하고 시작하라.

8. 밥 한 수저를 먹더라도 10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어라.

9. 암이 좋아하는 마음, 생각 등을 만들지 말라. 즉 스트레스를 만들지 말라.

10. 암이 좋아하는 음식을 절대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기름지고, 동물성 지방이 풍부하고 화학적인 것, 인공적인 음식은 되도록 멀리하라.

11. 암환자는 최대한 많이 자 두어라.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것은 완치의 지름길이다.

12. 모든 것에 감사하라. 가족, 친척, 친구 등 심지어 사물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감사합니다.♡♡♡

유익현 올림 H.P : 010-9877-7501

 

행복은 마음이 부른다

 

마음은 생각을 부르고.. 생각은 현실을 부른다..

아무리 작은 마음이라도.. 반드시 현실로 일어난다..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한 생각을 가져라..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의 마음만 가져라..

눈물은 슬픔을 데려오고.. 웃음은 행복을 초대한다..

밝은 곳을 바라보고.. 희망의 노래를 불러라;..

사랑은 소망을 부르고.. 소망은 현실을 완성한다..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 행복은 마음이 부른다..

                                 좋은글 중에서..

 

 읽어보시고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미안해 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면 제 경험을 가감없이 말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유익현 올림  010-9877-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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