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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바라보이는 산세와 풍광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은 산을 닮는다고 하였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어디서건 산과 마주하게 되는데, 봉우리 형상은 그 터의 부귀빈천을 좌우하게 된다.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수려하고 반듯하면 귀한 인물이 나고 반면에 산봉우리가 밋밋하거나 기울고 험하면 인물 또한 볼품없어 천하고 비루한 것이니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는 그에 걸 맞는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풍수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산이 수려하면 사람이 귀하고 산이 산만하면 사람도 천하고
산이 살찌면 사람이 부유하고 산이 야위면 사람도 가난하고
산이 순하면 사람이 온화하고 산이 거칠면 사람도 난폭하다.
이는 집, 묘, 사무실 등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적용되기 때문에 터를 정하거나 집의 좌향을 정할 때 주변 산세를 살피는 것은 풍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좋은 봉우리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하는데, 尖·圓·方正한 형태를 말한다. 첨은 문필봉이니 학자가 많고 원은 노적봉으로 부자가 나며, 방정함은 중후한 모습이니 큰 인물이 난다고 해석한다.
영주 부석사
봉황산(818m) 자락에 자리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676년)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를 흠모한 여인이 용으로 변해 이곳에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준 뒤 절을 짓고 난 후에는 바위로 변해 무량수전 뒤에 자리했다고 하니 이 바위가 부석이다.
부석사 본당인 무량수전은 고려 때 한 번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376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는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제18호이다. 650년 간 원형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큰 건물이다.
가람배치를 보면 무량수전 좌향은 부속건물 등과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은 단아한 안산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데, 이런 봉우리를 귀봉이라 한다. 혈처와 안산은 부부가 마주 앉은 형상으로 안산은 사랑스런 부인에 비유한다.
이곳에서는 백두대간의 수많은 봉우리가 펼쳐져 보이는 화려한 조망이지만, 무량수전은 오로지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모습이니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습이다. 그리고 귀부인은 무량수전을 대한민국 최고의 사찰이 되게끔 내조하고 있으니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만약 무량수전이 단아한 안산을 바라보지 않고 화려한 조망을 보았다면 지금과 같은 국보급 사찰은커녕 평범한 사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부석사 무량수전의 현재와 같은 고귀한 품격은 오로지 귀봉의 덕분이니 새삼 좌향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안동 봉정사
봉정사는 2018년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 7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7곳 사찰은 공주 마곡사, 보은 법주사, 순창 선암사, 안동 봉정사,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해남 대흥사로 천 년 넘게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능인대사가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렸는데, 종이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봉정사(鳳停寺)다.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국보 제15호이고 대웅전 또한 최근에 극락전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어 국보 제311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이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으며, 1999년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방문한 바 있다.
봉정사는 천등산(575m) 줄기 끝에 자리하였고 좌청룡 우백호가 물샐틈없이 감싸준 모습이다.
봉정사 대웅전의 좌향은 전면의 반듯한 안산을 보고 자리했다. 안산의 형태가 역시 단아한 모습인데, 부석사 무량수전 안산과 매우 닮은꼴이다. 이것을 보면 부석사와 봉정사는 풍수논리에 의해 터를 정하고 좌향을 정했음을 알 수 있다.
양동마을 서백당
경주 양동마을은 월송손씨와 여강이씨가 500년 동안 지켜온 유서 깊은 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중에서도 월송손씨 종가댁 서백당은 특히 손꼽히는 명당으로 최초에 이곳에 터를 잡아준 풍수가 이 집에서 3명의 현인이 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 후 실제로 손중돈과 이언적 두 분이 이곳에서 출생했기에 가문에서는 또 한 명의 인물이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서백당 사랑채는 성주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성주산은 부석사와 봉정사에서 보았던 봉우리와 닮았다. 산봉우리가 중후하고 반듯한 형상이니 이언적과 손중돈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땅이 인재를 키운다는 지령인걸은 이곳에서 여실히 입증되고 있다.
참고로 서백당이란 당호는 하루에 참을 인(忍) 백번을 쓰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도피안사
도피안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철불(비로자나불)을 만들어 다른 절에 봉안하기 위해 암소 등에 싣고 운반하는 도중 불상이 없어져 사방으로 찾아보니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어 도선국사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절의 이름은 철로 만든 불상이 彼岸(모든 번뇌를 벗어난 이상적인 세계)에 이르렀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의 철조불상은 6.25전쟁 때 절이 파괴되면서 땅 속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1959년 이곳을 관할하던 육군 제5사단장 이명재 소장의 꿈에 철불이 나타나 답답해하는 꿈을 꾼 뒤 수소문 끝에 이곳을 발굴하여 철불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후 국보 제63호로 지정되었다. 대적광전 앞 3층석탑(보물 223호)에는 금와보살(金蛙菩薩)로 불리는 금빛 개구리가 살고 있다하여 TV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도피안사 지형은 마치 제비둥지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어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아늑한 곳이다. 이곳의 안산 또한 우뚝 솟아 반듯한 모습이니 국보급 사찰의 공통점이다.
도피안사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는 해방 이후 공산정권에서 지어졌는데, 역시 반듯한 안산을 바라보며 자리했다. 풍수는 이념을 떠나 터 잡기의 기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근에는 태영그룹(SBS) 선영이 자리하고 있는데, 저수지 너머로 웅장한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山高人貴, 水深人富라는 말에 걸 맞는 묘 터이다.
음택 사례
강맹경 묘
강회백의 손자로 영의정을 지냈다. 묘는 양평군 신복리에 있으며 동쪽의 백운봉을 바라보는 형태다. 이런 봉우리를 문필봉이라 하며 뛰어난 학자나 문장가를 배출한다.
김생해 묘
이 묘 이후로 김상용과 김상헌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신안동김씨의 번영을 이끈 곳이다. 빼어난 봉우리가 묘 좌측에 있다.
민기 묘
묘는 전면의 문필봉을 향하고 있으며, 이 묘 이후로 9대 연속 문과급제를 배출하면서 구한말 최고의 명문가를 이루게 된다.
박소 묘
멀리 빼어난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 묘 이후에 127명의 문과급제와 5명의 정승을 배출한다.
윤관장군
파주에 자리한 윤관 장군 묘는 앞쪽의 단아한 안산을 바라보고 자리했다. 안산이 예쁘면 여자가 귀하게 되는데, 파평윤씨는 조선시대 4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이석형 묘
이석형의 직계후손에서 정승 8, 판서 42, 문과급제자 129명을 배출한다. 역시 전면의 안산이 중후한 모습이다.
정동영 조부 묘
정동영 장관의 조부 묘 안산은 기가 막힌 꽃봉우리 같은 형태다. 그러나 장관의 부모 묘는 가파른 계곡에 위치하면서 길흉이 전혀 상반된 곳이다. 그러한 관계로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다.
최진립 장군 묘
경주최씨 최진립 장군 묘는 노적봉을 바라보는 형태다. 이 묘 이후로 400년간 영남지방 최고의 부자를 유지할 뿐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오정방 고택
안성 양성면 덕봉리에 자리한 해주오씨 오정방 고택은 우뚝한 앞산을 바라보며 자리했으며, 이후로 오상(이조판서), 오두인(형조판서)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문 고택이다. 참고로 덕봉리에는 해주오씨들 묘가 많은데, 여러 유형의 묘가 있어 풍수인들이 즐겨 답사하는 곳이다.
유기방 가옥
충청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유기방 가옥은 드라마 『직장의 신』과 『미스터 선샤인』 등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산세를 보면 좌우측 산이 집터를 포근하게 에워싸고 있으며, 멀리 수려한 봉우리를 정면으로 마주보면서 자리했다. 풍수에서 말하기를 터가 좋은 곳은 사방의 산들이 저절로 응대한다고 했는데, 이곳의 집터가 꼭 그러하다.
이곳은 4월이면 수선화 꽃밭으로 장관을 이루면서 고택과 꽃밭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필자는 이곳 집 터 뒤편의 동산을 그윽한 솔내음이 불어오는 파워스팟이라 소개한 바 있다.
조지훈 생가
경북 영양 주실 마을은 한양조씨들 집성촌으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을 비롯해 많은 학자와 문인이 배출되었다. 조지훈이 태어난 호은종택은 정면의 문필봉을 바라보고 자리했다.
주실마을 앞으로는 장군천이 흐르는데, 물줄기가 마을 앞에서 가장 굽이침이 많은 형태다. 이것을 보면 물길의 굽이침이 많은 곳은 좋은 명당 터를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을 지나서는 장군천이 곧고 길게 빠져나가는 결함이 있다. 이것을 비보하고자 숲을 조성했는데, 마을의 좋은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장군천 하류에서 부는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이다.
참고로 청록파 시인은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세 사람을 말한다. 이들에게는 재미 있는 일화가 있는데,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조지훈이 항상 맨 앞에 걷고 그 뒤로 박두진과 박목월이 걸었다고 한다. 걷는 모습을 보면 조지훈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걷고, 박두진은 정면을 바라보고 걸으며, 박목월은 땅을 바라보며 걸었다고 한다.
걷는 모습처럼 세 사람의 성격과 시의 세계가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문필봉의 형태가 끝이 뾰족한 것으로 보아 조지훈의 필설 또한 예리하고 날카로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홍명희 생가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1888-1968)는 괴산 동부리에서 태어난다. 홍명희 부친 홍범식(1871-1910)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강탈하자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으로서 항거하였다.
홍명희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렸다. 광복 후에는 1948년 월북한 뒤 북한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부수상을 지냈다.
그가 월북한 이유는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였고 남한정부의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명희는 월북자라는 신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최고위직을 지내다 79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생가는 동진천변에 남향으로 자리하였다. 산줄기는 집터 뒤편에서 주산을 형성하고 마치 구슬을 꿴 듯한 모습으로 집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형태가 마치 구슬을 꿴 듯한 모습이니 連珠佩玉 혈이라 부르기도 한다. 연주패옥이란 고관대작의 옷에 달린 영롱한 옥구슬로 지극히 귀한 신분을 뜻하며, 구슬이 많을수록 고귀한 것이니 극품의 벼슬을 이룬다는 명당이다.
집은 전방의 우뚝한 남산(393m)을 바라보는 남향으로 자리했으며, 성황천 물길이 집터를 향해 앞에서 들어오는 물길이 되었다.
홍명희는 생가 터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고 태어난 인물인 것이다.
이상 보았듯이 바라보이는 산세는 인재를 양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집터에서 바라보이는 산봉우리가 좋으면 절반의 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에서 집을 정할 때는 수려한 봉우리가 바라보이는 곳이 좋다. 또한 전원주택을 새로 지을 때도 빼어난 봉우리를 바라보는 형태로 좌향을 정하는 것이 좋은데, 이때는 반드시 정면이 아니어도 된다.
만약 거주하는 곳에서 수려한 봉우리를 볼 수 없다면 부석사와 봉정사 등으로 여행을 하면서 수시로 바라보는 것도 좋다.
사람은 자주 바라보는 산을 차츰 닮게 되면서 넉넉한 인품을 기르게 된다.

첫댓글 지교수님께 문의드립니다. 형기적인 요소야 보는 눈에 따라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에 우문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1. 강맹경 묘소가 혈적하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부부 묘 사이에 작은 혈이 있다고 보는데요. 질문은 전방에 보이는 백우산이 특립한 탐랑봉이긴 하나 살기를 가득 머금은 듯 보이는데 과연 길한 사격이 될까요? 오히려 정노겸 묘소에서 보이는 백은산은 좌청룡이 여러 겹으로 기운을 막아선 후에 특립해서 보기 좋다고 보이는데요.
2.김생해 묘소가 혈적하다고 보아도 청룡방의 사격이 잘 보이지 않는데 좋은 작용을 할까 싶은데 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혈적하지 않지만 조안의 화려함은 김상용 묘소도 만만치 않습니다.
1. 강맹경 묘에서는 문필봉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것일 뿐 그곳 묘가 穴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2. 김생해 묘에서 청룡방에 있는 검단산이 비록 보이지 않지만 暗拱하여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용 묘는 전방이 화려하지만, 이미 혈처가 부실하니 특별히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지종학 답변 감사합니다!
1. 강명경 묘에서 보이는 백운봉은 살기가 너무 감해서 섬칫할 정도로 무서운 느낌을 받앗습니다.
2. 김생해 묘소를 저는 혈적하지 않다고 보기에 금체봉에 옥대사 조안도 외청룡의 우뚝한 산도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그 용맥 끝의 김광찬 묘를 김수항부터 4대에 걸친 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