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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 “관징 스님을 만나 도움을 받아라”
홍셴(宏仙, 仁仙, 중국 仙遊縣 香山寺 住持)
1) 관징 스님과의 만남
나는 1929년 11월 9일 이곳 쫑산진 줘췐촌에서 태어났다. 관징 스님께서 1924년 태어났으니 5살이 위다.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49살 때인 1979년이다. 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셔서 지금의 터에 절을 지으라고 하셨다. 이곳은 옛날에 절이 있던 터이지만 폐허가 되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1979년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였다고 해도 아직은 이런 불사를 하는 것이 어려울 때였지만 관세음보살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고 혼자서 이곳에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절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겨우 집 두 칸은 지어놓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 때 모든 절이 다 파괴되어버려 참고로 할 절도 없고 절에 대해서 아는 분도 없어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저 집만 두 칸 지어놓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다시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관징 스님을 만나 도움을 받아라.”
’관징 스님이 어떤 분이고 어디에 계시는 스님인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스님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으나 이름만 가지고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1980년 관징 스님이 7일간 선정에 들었다는 소문이 전 현에 퍼졌다. 그때 서야 나는 관징 스님이 산휘사에 계신 것을 알고 지체 없이 찾아가 보았다. 정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는 이러한 이적을 보기 위해 산휘사로 몰려들고 있었다. 관징 스님이 선정에서 나와 다시 일상 업무를 하실 때 찾아가 조용히 말씀드렸다.
“저는 종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관세음보살의 지시대로 집을 두 칸 짓고 어떻게 할 줄을 몰랐는데, 관세음보살이 다시 나타나셔서 스님을 찾아뵈라고 하여 왔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출가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만나 뵌 지 10일 만에 머리를 깍고 출가하였다. 이때 18명이 증인을 서고 10명 남짓 함께 계를 받았다. 나는 당시 49살이었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점, 내가 50이 다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바로 그때 관징 스님이 일주일 선정에 드는 이적을 보여주셨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출가하도록 관세음보살이 점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관징 스승께서 남새밥만 먹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셔서 한평생 지금까지 33년 동안 철저하게 계를 지키고 있다.
그 뒤 관징 스승께서 몸소 우리 절에 와서 이틀 동안 아침저녁 예불하는 법, 염불하는 법, 제자를 받는 삼귀의 의식 같은 것을 직접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당시 문화대혁명으로 모든 절이 폐허가 되어 아무도 이런 의식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정도만 아는 것도 남보다 빨리 입문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관징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대로만 하는 제한된 지식이지만 승려 생활을 시작하였다. 관세음보살과 관징 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나는 완전히 붇다의 제자가 되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2) 쉬지 말고 참선하고 염불하여라.
1년쯤 스승님의 지도를 받고 지냈는데 1981년 갑자기 미국을 가신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서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여쭈어 보았다.
“미국에 갔다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 동안 날마다 1시간씩 참선하고 매달 1일과 15일은 염불하여라. 염불은 ’나모아미따불‘을 2번 큰소리로 하고, 2번은 쉬면서 들어라.”
이때 가르쳐 주신 수행법은 30년이 된 지금까지도 하루도 빼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몇 년 뒤 관징 법사께서 미국에서 돌아오셨다. 미국에서 돌아오시면 늘 이곳을 찾아오셨고 그때마다 이 절을 잘 운영하도록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관징 스님은 처음부터 이 절 주지나 마찬가지고 내가 모든 것을 맡아서 하는 감리 역할을 한 것이다. 오실 때는 타이완이나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함께 데리고 오셨는데, 한국 스님에게 투자하라고 하였으나 그 스님이 입적하셔서 도움이 될 수 없었다.
3) 샹산사 재건: 1985년 2월
1985년 미국에서 돌아오셔서 몇 천 위옌을 주시면서 샹산사를 격식을 갖춘 절로 지으라며 자세한 지침을 주셨다. 새 절의 위치, 방향, 그리고 전체적인 설계까지 직접 그려서 주신 것이다. 나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1985년 지금의 샹산사를 세웠다. 관징 스승께서는 자기가 관여하는 10개가 넘는 절 가운데 풍수지리적으로 보아 가장 좋은 터라며 좋은 절을 만들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다. 이 절을 중수하는데 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였고, 당시 50대인 나는 마을 사람들과 모든 일을 맡아서 해냈다. 우리 마을은 모두 1,000호쯤 되는데, 이 절을 짓기 위해 쌀을 모았다. 마을 공동체인 생산대대에서 200근을 내놓고, 촌주가 앞장서서 집집마다 5~10근의 쌀을 내거나 노동으로 거들었다. 석공, 목공, 시멘트공 같은 기술자들이 모두 와서 자기 일처럼 도와 어려움 없이 절을 지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절은 내 절이 아니라 위 마을의 절이다.
관징 스승께서 직접 와서 주재하신 점안식 때는 정말 많은 분들이 와서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하느라 1,500위엔 빚을 져, 그날 들어온 돈은 모두 그 비용으로 다 들어갈 정도였다. 관징 스승께서는 “가장 적게 받아 가장 큰 일을 했다.”고 칭찬해 주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4) 道場을 열어 가르치시고, 구족계를 받게 해 주셨다(1993년).
미국에서 중국을 드나들며 여러 군데 절을 일으켜 세우시던 관징 스승께서는 1993년 당시 여러 절에서 절을 책임지고 있는 제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道場‘을 열어 갖가지 경전과 천도재 같은 의식을 가르쳐 주셨다. 당시 64살이었지만 어린 학생처럼 정말 열심히 배웠다. 나는 10년 넘게 마을 사람들과 부처님을 모셨지만 너무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다 절실한 것들이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3개월간 열심히 공부하고 나니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것 같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으며 붇다의 말씀이 가까이 와 닿았다. 교육이 끝나자 관징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들에게 계를 주어 법사가 되었지만 앞으로는 국가에서 주는 공식 계첩이 꼭 필요하다. 내가 가르쳐 준 것만 충실하게 몸에 익혔으면 충분하니 큰 절에서 시행하는 계단에 가서 구족계를 받도록 하여라.”
그래서 그 해 11월 14일 정식으로 푸저우 린양사에서 열리는 삼단대계를 받았다. 그리고 1993년 12월 3일 중국불교협회 푸졘성 분회에서 발행하는 공식적인 계첩을 받게 되었다. 이때 나 말고도 함께 공부했던 도반들이 몇 명 함께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런 것은 모두 관징 스승께서 미래를 위해서 제대로 공부하고 공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모두 갖추도록 배려하여 얻은 결과였다.
스승께서는 늘 나를 높이 봐주시고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너무 순진하다고 걱정하시면서 항상 절을 잘 관리하라고 당부하셨다. 한때 스승께서 나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눈이 좋지 않고 위도 좋지 않아 포기하였다. 실제 나는 출가한 뒤 국내에서도 이 절을 떠나 다른 곳을 가본적이 거의 없이 이곳에서만 일하고 수행하고 하였는데, 스승께서는 그런 나를 많이 좋아하셨다.
5) 「극락세계 유람기」와 「정토선 정의」
이 두 책을 주셨지만 모두 읽지 못했고, 지금 어디 두었는지 찾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극락다녀오신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들었다. 말씀하신 것을 모두 믿기 때문에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토선은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전수한 염불법에 따라 지금도 매달 초하루와 보름, 10명쯤 되는 신도들과 계속하고 있는데 모두 열심히 한다. 책을 모두 읽지 않았지만 미국 가시기 전에 일러주신 염불과 선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몸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비한 체험이었다. 이런 체험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몇 사람도 그런 경험을 했는데, 그 가운데 금년 70살이 넘은 장슈위란 거사는 가장 뛰어나다. 비록 학교에 가서 공부한 학력은 없지만 믿음이 강하고 열심히 염불하여 남다른 체험을 하고 있다.
6) 극락에서도 바쁘신 관징 법사
스승께서 원적하신 뒤 다비식에 참석하고 마지막 탑에 사리를 모시는 식전에도 참석하였다. 스승께서 원적하신 뒤 얼마 안 되어 꿈에 나타나셨다. 아주 젊은 스승께서 붉은 가사를 입고 나타나셔서 내가 물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극락에 있는 절에 있다. 이 서방세계에서도 회의하고 법회 하느라 나는 아주 바쁘다.”
이 꿈을 꾸고 나서 나는 스승께서 극락에 왕생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83살인 나는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내 자리를 이어갈 후계자 문제 때문에 많이 걱정하고 있다. 10명쯤 열심히 하는 제자들이 있지만 모두 나이가 들어 내 자리를 이을 수가 없다. 관세음보살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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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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