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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혁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덤프트럭 운전자 이형길(42·가명)씨가 흙을 싣는 동안 대기하고 있다. | |
◆수주액의 절반만 받는 하청업체들=턴키나 대안입찰 방식의 경우 대형건설사는 정부가 제시한 설계금액의 평균 93% 에 공사를 따낸다. 표준품셈에 근거해 시장가격보다 많이 부풀려진 정부 설계가격을 거의 다 받는다는 얘기다. 반면 하청을 줄 때는 철저히 시장가격에 따른 최저가 방식으로 계산한다. 전체 공사비의 절반 정도만 하청업체 몫인 셈이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부풀려진 표준품셈에 의해 세금의 상당 부분이 대형 건설업체에 돌아가고 하청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건설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며 “표준품셈을 없애고 과거 비슷한 공사의 계약금액을 바탕으로 한 시장단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강태경 실장은 “표준품셈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2006년 이후 매년 현실에 맞게 개정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2006년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는 품셈기준을 한차례 대폭 개편했다. 강 실장은 “표준품셈이 국가가 획일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여건에 맞춰 적용하고 있어 과거에 지적됐던 문제들은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탐사1·2팀 김시래·진세근·이승녕·강주안·고성표·권근영·남형석 기자, 이재동 인턴기자(고려대 4학년), 이정화 정보검색사
◆표준품셈=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의 공사비를 산출하는 정부고시가격.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표준품셈을 처음 사용한 일본에서는 1993년 ‘실적공사비 적산제도’가 전면 도입됐다.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란 정부의 표준화된 규정에 의해 일일이 가격을 매기는 대신 비슷한 공사 종류의 시장단가를 이용해 공사비를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80년대 말 ‘거품경기’로 인해 공사 예정가격이 부풀려지고 이에 따른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표준품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단가제’로도 불리는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를 도입한 뒤 일본의 건설물가는 급속도로 안정됐다. 좋은 예가 철근 공사가격이다. 건설공사비가 시장단가로 매겨지기 전인 90년대 초 일본의 철근 공사가격은 t당 12만 엔 수준이었다. 그러나 토목공사에 시장단가를 도입한 뒤 그 비용은 6만~7만 엔대로 떨어졌고, 이후 4만 엔대까지 값이 내렸다. 품셈을 시장단가로 바꾼 뒤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도 국가 표준품셈을 쓰지 않고 철저히 발주자가 시장단가에 의해 계약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낙찰업체가 비슷한 공사를 한 경험이 있을 경우에는 당시 계약금액을 적용해 공사비를 산출한다. 새로운 공법이나 기술이 도입됐을 경우에는 민간 원가 계산회사에 용역을 줘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게 한다.
영국은 미국처럼 유사사업 계약단가를 활용함과 동시에 ‘실적공사비 정보’를 통해 계약금액을 매긴다. 실적공사비 정보는 건설잡지 등의 기술자료와 가격정보지, 정부 발행자료, 적산정보시스템 기관을 총 망라해 산출한 정보를 뜻한다. 이를 통해 책정된 예산은 발주기관 전문가와 인증된 적산사의 보정을 거쳐 최종 계약금액으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