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사고
안 종 문
아내와 함께 고향에서 며칠을 지내다가 대구로 나오는 길이었다. 집을 나서서 십 리도 채 안 된 곳에 차들이 양편으로 길게 줄지어 멈추어 서 있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인지 놀라며 앞쪽을 살폈다. 방금 일어난 교통사고였다. 차를 세워놓고 황급히 뛰어가 보았다.
보닛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찌그러진 승용차가 서로 마주 보며 도로 전체를 가로막고 있었다. 얄궂게도 양 차의 뒤 트렁크가 가드레일 위에 걸쳐진 상태였고, 거무스름한 기름과 새빨간 피가 섞여서 길 위에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사고를 크게 입은 차량의 어느 문도 열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저마다 휴대폰으로 연락하기에 바쁜 모습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차량 안의 사람을 들여다보고서도 한 숨만 내쉴 뿐이었다.
나는 콩콩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녹화하기 시작하였다. 소나타 차량의 운전자는 차 밖에 나와서 머리에 흐르는 피를 수건으로 지혈시킨 채 한 손으로 휴대전화 통화하고 있었고, 심하게 부서진 쎄라토 차량에는 네 명의 승객이 그대로 차 안에 있었다. 운전자는 에어백이 터져서 멀쩡하였으나 잔뜩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으며, 동료로 보이는 옆자리의 노인도 역시 크게 다치지 않았는지 참담한 눈빛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 승객 두 명도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 한 명은 앞 이빨을 다쳐서 오른손으로 입을 감싸지며 손가락 사이로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였고, 다른 한 명은 시트 앞 공간에 옆으로 드러누워 어딘가의 고통을 참고 있었다.
구조 차량이 왜 빨리 도착하지 않는지를 의아해하며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경찰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아래 위에서 거의 동시에 도착하였다. 이어서 119구급차가 도착하였고, 건장한 요원들이 익숙한 동작으로 구조 활동에 들어갔다. 이동 발전기를 가동해서 절단기로 차량 문을 어렵게 해체하고 나서야 다친 승객을 차 밖으로 끄내어 후송시킬 수 있었다. 운전자를 구출하는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차체가 심하게 뒤틀린 탓도 있었지만 밀려들어 온 엔진기관에 눌린 다리를 빼내는 데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폐차시켜야 할 사고 차량도 견인되어 갔다. 가까스로 현장은 수습되었다. 더 나쁜 운수로 불이라도 났더라면 네 명 모두가 고스란히 사망에 이르렀을 일이었다.
사고차량 뒤를 달리면서 순간을 목격하였다는 젊은이의 말에 의하면 오르막을 힘겹게 가고 있던 화물차를 앞지르다가 맞은편의 승용차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단다. 커브를 돌아 내리막길을 달려오던 소나타 운전자는 화물차 뒤편에서 갑자기 중앙선 침범 차가 나타났으므로 미처 손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의 커브 길 오르막 추월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칠십 대 후반의 운전자로 보였으니 더더욱 할 말을 잃었다. 사고를 낼 사람으로 보이지 않던 나이 지긋한 운전자가 어떤 사연으로 그토록 무모한 행동을 하였는지 그 내막이 오히려 궁금하였다. 옆의 동료나 뒷자리의 여인네가 부추기라도 하였을까? 그럴수록 자신의 주관이 필요하였을 터, 운전은 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우리들의 운명이요,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사고 현장 가까이까지 달려왔다. 소나타 차량의 운전자 아내가 소식을 접하였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양반 우예됐노?”를 연거푸 말하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남편의 안위를 허둥지둥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별안간 나의 아픈 기억도 되살아났다. 삼십 년 전 내 어머니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
스물아홉 살에 일으켰던 경운기 사고였다. 그때도 빨리 가고픈 마음이 문제였다. 온정에 과일을 내다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겁 없이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리막길을 내달려 내려왔다. 커브 길의 원심력을 채 감당하지 못해 경운기가 산으로 기어올랐고, 운전석의 내가 튕겨나서 배수구에 처박혀버린 사고였다. 중학생인 조카가 짐칸에 타고 있었지만, 차체 기둥을 꼭 붙잡고 있어서 말짱하였다. 나는 내동댕이쳐지면서 왼쪽 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고,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갈았다. 등의 충격도 숨이 막힐 정도로 얼얼하였다. 운 좋게도 척추와 경추, 그리고 머리의 주요부분을 다치지 않았다.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며 길가에서 난감해하고 있던 중 내려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놀란 어머니가 집 앞 다리까지 헐레벌떡 쫓아 나와서 내가 탄 버스를 세우고는 가슴을 녹이던 모습과 흡사하였다.
울적한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차를 몰고 대구 집으로 나오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겼다.
병원 입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할 시대였다. 보름간 시골집 방에 드러누워서 어떻든 조카가 탈 없었던 것과 다친 내가 급소를 피한 것에 고마워하며 남은 인생은 열심히 살 것을 하늘에 맹세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에 조카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죄인으로 괴로워하면서 살았을 게다.
지금도 면도할 때면 왼쪽 귀와 아래턱 쪽의 흉터를 보며 그때의 약속을 잘 지키며 살고 있는지를 되물으며 살지만 다짐의 되풀이로만 끝나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보자. 며칠 전에 손에 쥔 신호위반 스티커가 몹시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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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한번 안전운전의 경각심을 주시네요...
느긋한 심성의 강서방이 부러울 때가 많지요.... 건강 잘 챙기시고... 댓글 고마워요.
명심 또 명심 해야지요
과속 무단추월과 갑작스런 차선변경은 대형 사고의 원인이지요! 전방시야 확보안돼는 오러막 추월은 자살행위이고.....
인생의 축소판으로 볼 수도 있었지요... 소통 글 감사합니다.
훈장님으로써 남다른 도덕성도 영상으로 증명하네요
늘
소통 댓글 감사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만의 욕심이 부른 참화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주는 것 같아서 생생한 동영상 촬영 영상물이 무척 고맙게 생각됩니다. 어제 개학을 해서 학생들에게 값비싼 교훈을 보여주었더랬습니다. 건강하시고 재밌게 사세요, 설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