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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쏟아지는 서원대 캠퍼스엔 생기발랄한 청춘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약속장소인 창조관 3층 교수휴게실은 적막했다.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금형(57) 전부산경찰청장은 여전히 빈틈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경찰정복대신 남색 정장에 화사한 머플러를 목에 두른 그는 사진기자 앞에서 다소 어색해 했다. 3개월전 38년간의 경찰생활을 마무리한 이 전청장의 현재 직함은 교수다. 이 대학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 그리고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로 현역때 못지않게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학생들은 그에 대해 얼마나 알까. 그는 순경·여성·고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치안정감까지 올라갔다. 순경들의 '롤모델'이자 많은 젊은여성들의 '로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유리천정'을 깨기위해 오랜 세월 일과 공부에 파묻혀 보냈으면서도 딸셋을 모두 누구나 부러워하는 '엄친딸'로 키워냈다. '교수 이금형'으로 새출발하는 그와 '커피믹스'를 마시며 세월을 반추해 보았다.
▶이제 교수로 청주를 자주 오게됐다. 느낌이 어떤가.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이 서툴러 주로 고속버스를 타고 온다. 고향도 청주이고 5년전 충북경찰청 차장때 청주에 근무했지만 지금 사복을 입고 혼자 청주를 오가면서 예전과 다른 새로운 감흥을 느꼈다. 강남터미널에서 청주라는 팻말만 봐도 반갑다. 경찰관 시절 무심코 지나쳤던 무심천의 벚꽃도 이젠 눈에 들어온다"
▶퇴임한지 벌써 3개월이 됐다. 38년 경찰생활을 마무리한 소회도 남다를것 같다.
38년을 돌이켜보면 참 치열하게 살았다. 사회적 이슈가 됐던 마포 발발이 사건과 도가니사건 처리등 수많은 사건을 겪었고 본청 초대 여성실장시절 경찰청내 성폭력 원스톱센터 설치, 여성청소년과등을 신설했다. 늘 고민하고 노력했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경찰관으로 일했던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나라 여성경찰관은 대략 9천명에 달한다. 이 교수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간 유일한 여성이다. 또 자리를 옮길때마다 여성최초라는 말을 들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프로경찰이 되자고 다짐했다. 또 국민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치안서비스를 하자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순경에서 경정까지 5단계가 올라가는 동안 모두 시험으로 통과했다. 늘 바쁜시간에 주경야독하면서 50대 중반에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초대 여성실장때부터 성폭행으로 가정파괴를 겪은 주부와 고통받는 미혼여성,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학생을 둔 부모,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위해 전국을 떠도는 엄마, 성매매여성등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소외된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이후 인력, 예산을 따고 제도를 만들면서 이같은 문제가 국정과제로 채택되는데 뒷받침했다. "경찰이 안해도 될일을 이금형이 나서서 설친다"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앞장섰다. 뒤돌아보면 승진을 위해 뛰었다기 보다는 신념과 철학, 사명감, 책임감을 갖고 일했기 때문에 치안정감까지 올라간것 같다
▶이 교수는 여전히 여성경찰관의 로망이자 롤모델이다. 하지만 젊은시절 화가가 꿈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경찰이 천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다. 1978년부터 80년까지 순경때 충북경찰청 정보과와 민원실에 근무하면서 청주문화원에서 창미전이라는 그룹전을 열기도 했다. 보리그림으로 유명한 송계 박영대 선생이 은사다. 그땐 전업화가가 되거나 부업으로 그림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남편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면서 직장을 다니며 육아와 가사등 현실적인 난관때문에 붓을 놓았다. 경찰업무 특성상 정말 힘들고 피곤했다. 그때 송계선생님이 "인생은 한폭의 수채화다. 자기 인생이 예술이다. 알차게 보람되게 열심히 살다보면 예술못지 않게 의미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순경시절 본청으로 올라간것도 어찌보면 그림때문이다. 당시 드라마 수사반장에 나왔던 최불암씨 몽타주 그림을 본청에서 응모했는데 내가 그린것이 뽑히는 바람에 과학수사과로 옮기게 됐다. 이후 2006년 서울 마포경찰서장때 유치인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유치장 벽에 보리밭과 민화,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그려넣거나 하늘색과 분홍색등 밝은색을 칠했다. 2009년 충북경찰청 차장시절엔 도내 5개 경찰서의 유치장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그림과 경찰업무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광주경찰청장 시절엔 범죄환경을 바꾸는 벽화치안을 도입해 범죄를 예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난 뼈속까지 경찰이다.
▶현재 여성경찰의 비중은 전체 경찰관중 8.5%다. 하지만 여성총경 이상은 13명뿐이다. 고위직에 여성이 드믄것은 유리천정이 높아서 인가.
유리천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경찰에겐 기회다. 경찰의 업무가 규제에서 봉사하는 치안서비스로 바뀌고 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서민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는 여성경찰의 모성애가 중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치안정책결정과정에서 경찰지휘부가 여성경찰을 간부로 진출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여경들은 남성들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열심히 업무에 임해야 한다.
▶치안정감까지 승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난 경무관과 치안감 승진할때 1차에서 탈락했다. 자리도 모자라는 판에 순경에서 시작한 여경이 총경까지 했으면 많이 했지 뭘 더 바라느냐는 분위기였다. 똑같은 위치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며 성과를 냈는데도 그말이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당시 경찰지휘부는 99.9%가 남자였다. 특히 "이금형은 일을 쎄게 시켜서 직원들이 싫어한다"는 말이 가장 힘들었다. 또 지방에서 근무하면서 가족들이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주었지만 큰 아이 결혼식 준비나 가족이 아플때 제대로 못 챙겨준것이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
▶부산경찰청장시절엔 불교지도자가 준 찬조금 때문에 물의를 빚었다. 억울한 마음은 없었나.
작년 2월 부산경찰청 경승실장인 수불스님을 비롯 다섯분 스님이 집무실을 방문해 "고생하는 전·의경들의 간식을 사는 데 써달라"며 봉투와 그림 한점(복사본)을 주길레 경무과장에게 전달했다. 부산청은 이 돈을 전·의경 체육대회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해 체육대회가 취소되면서 경무과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논란이 되자 경찰청이 안전행정부 기부금심사과에 문의한 결과 심의절차를 안밟은것은 잘못이지만 징계줄 근거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시민사회단체에서 사퇴를 촉구하고 검찰에 고발한것은 경찰이 부산시청앞 상습적인 집회와 시위대를 해산하자 내가 눈에 가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경찰청은 작년 10월 경찰의 날에 최우수 지방경찰청으로 선정돼 대통령으로부터 단체 표창을 받았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
▶이 교수는 오래전부터 교단에 설 준비를 많이 한것으로 알고 있다. 방통대를 졸업했지만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땄다,.
난 오랜 경찰생활을 통해 실무와 이론을 겸비했다고 생각한다.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와 한국 양성평등 교육진흥원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정기적으로 강의를 한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이 교수는 슈퍼우먼 이미지와 딱 맞는 사람이다. 순경으로 출발해 치안정감까지 올랐고 그 바쁜와중에도 딸셋을 누구나 부러워하는 우리사회의 엘리트로 키웠다. 노하우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을 것같다. <첫째는 행정고시를 패스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카이스트를 졸업한 둘째딸은 하버드대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세째는 치대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다>
본청 과학수사과에 오래 근무하며 경정때까지 각종 사건·사고를 취급했다. 시어머니가 헌신적으로 도와주셨지만 주말에 쉬고 싶어 하셨다. 이때문에 주말에 아이들을 자장면 사준다고 사무실로 데리고 나와서 내가 일하는동안 공부하게 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에게 자극이 된것 같다. 내가 써먹은 녹음기학습법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다.<그는 석·박사 학위를 따기위해 집안일하면서 녹음기로 공부했는데 이때 망가트린 녹음기만 워크맨 3대, 오디오에 내장된 녹음기 2대등 5대라고 한다>
▶이 교수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면 솔선수범이다. 지휘관은 늘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회의를 주재하고 치안정책을 결정하려면 실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 2의 이금형을 꿈꾸는 순경출신 경찰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난 긍정의 화신이다. 남편이 "당신은 어떻게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난 순경, 여성, 고졸등 승진하는데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왔다. "긍정은 천하를 얻고 부정은 깡통을 찬다"는 말은 충북경찰청에 근무할때도 직원들에게 수시로 한말이다.
▶이 교수는 아직 젊다. 향후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미소를 지으며)보람된 삶을 살아가겠다. 지금처럼 강의하는 것도 좋다.
요즘 이금형 교수는 주목받고 있다. 총선이 일년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감한 질문은 손사레를 쳤다. 그는 '브랜드 이미지'가 좋다. 여성경찰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온갖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치안정감까지 올라갔다. 38년 공직생활동안 흠결도 없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이 있는 여성리더십은 인생의 자산이다. 그 자산이 그의 인생에 어떤 기회가 될지는 그에게 달렸다.
이금형 전부산경찰청장은?
청주 대성여상을 졸업하고 순경으로 입문해 부산경찰청장(치안정감)까지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순경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찰대학장을 역임했으며 경찰청 생안, 경무, 교통국장을 거쳐 정치적 성향과 지역정서가 뚜렷한 광주경찰청장과 부산경찰청장도 역임했다. 그 와중에 동국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도 땄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올해의 여성상과 국가인권위원장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jbnews 인터뷰^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인터뷰.
사진/김용수 jbnews영상미디어 부국장.